우회 없는 뚝심운전 벼랑끝에 서다
▲ 뚝심의 경영자 정몽구 회장이 자신과 아들 정의선 사장의 검찰소환 위기를 어떻게 헤쳐나갈까. | ||
정 회장과 검찰은 악연이 있다. 지난 1978년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특혜분양 사건으로 당시 건설을 맡았던 한국도시개발(현 현대산업개발)의 사장이던 정 회장이 옥살이를 했던 것.
그 사건 이후 30여 년 만에 이번에는 정몽구 회장과 그의 아들인 정의선 기아자동차 사장의 검찰 소환이 예고되고 있다. 비극은 세대를 되풀이하면서 재연되는 것일까. 뚝심의 경영자 정 회장은 그답게 이 위기를 정면으로 돌파할 수 있을까.
이번 현대차 비자금 파문은 금융브로커 김재록씨 파문으로 촉발된 수사 흐름과 현대차그룹 내부 인사의 제보, 이 두 가지가 맞물리면서 검찰은 압수수색이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고 이내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검찰은 압수수색에서 예상치 못했던 ‘대어’를 낚아 올렸다는 것이다. 재계에선 이중 더 치명적인 것은 현대차 내부의 제보였던 것으로 보고 있다. 때문에 현대차 비자금 파문을 촉발시킨 현대차의 내부 사정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현대차 안팎에선 검찰에 대한 제보가 현대차 내부의 알력과 관련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뚝심의 경영자’로 불릴 정도로 카리스마 넘치는 오너 경영인인 정몽구 회장의 통솔하에 있는 현대차에서 무슨 문제가 있었던 것일까.
정 회장에게 현대자동차를 ‘헌납’한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도 그를 가리켜 “뚝심이 있다”고 평했을 정도다. 현대그룹의 창업주인 정주영 회장도 스스로를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라고 규정했었다. 현대 정씨 일가 사이에선 ‘몽구가 화끈하지’라는 말로 그를 평한다고 한다. 밀어붙이는 스타일이나 일하는 방법이 부친인 정주영 회장과 가장 비슷하다는 것이다.
▲ 건물사진은 현대차·기아차 사옥. | ||
하지만 무엇보다도 더 큰 파격은 인사의 화끈함이다. 99년 현대자동차 접수와 함께 부사장급으로 출발한 이계안 현대자동차 기획조정실장(현 국회의원)은 2001년 현대캐피탈로 떠날 때 직급은 부회장이었다. 또 그의 급작스런 현대캐피탈 발령은 왕자의 난 주도멤버의 2선 퇴진으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기존에 정 회장 옆에서 수십년간 함께했던 현대모비스 출신의 MK사단 멤버라 할지라도 정 회장의 벼락같은 인사에서 예외는 아니었다.
한때 정 회장의 ‘최측근’ 또는 ‘오른팔’이라는 말을 듣던 전문 경영인은 이 말이 오히려 화근이 됐다. 그런 말이 언론에 나는 순간 그의 보직 수명은 짧아지는 게 상례였다. 오랫동안 정 회장을 보좌했던 이상기 전 부회장이나 이중우 사장, 김승련 전무 등의 인사에서 볼 수 있듯 정 회장 주변에서 오래 있다고 소문이 나는 경우 밖으로 돌리는 게 정 회장의 인사 스타일이다. ‘최측근’이라는 말이 당사자에겐 ‘독’이 되는 셈이다.
이를 가부장적 스타일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현대의 창업자인 정주영 회장이 가정에선 가부장적인 가치관을 지니고 있었고, 정몽구 회장도 그런 스타일이 몸에 배어 있다는 것이다. 정주영 회장 생전에 가족 모임에서 장자격인 정몽구 회장이 삼촌들 말석에서 다소곳하게 서있는 사진이 자주 눈에 띄는 것은 이런 까닭에서다.
게다가 정주영 회장도 예측 불허의 인사, 파격 승진 인사의 대명사였다. 물론 그 기저에는 철저한 논공행상 논리가 따라 붙는다. 일한 만큼, 충성한만큼 챙겨준다는 논리다.
MK 회장도 수시로 벼락 같은 인사권을 행사해 이를 임원들 사이에 충성심, 견제와 균형을 끌어내는 지렛대로 활용하는 셈이다. 문제는 이런 견제와 균형이라는 정몽구식 인사 스타일의 의도가 이번 파문으로 문제를 노출했다는 점이다.
MK 사단의 현대차 접수 이후 기존 현대차 출신의 인사와 MK 사단 출신 인사와의 보이지 않는 벽이 지난 6년여 동안 많이 사라진 것으로 여겨졌지만 이번 제보를 통해 내부에 또다른 차원의 문제가 있다는 게 적나라하게 드러난 셈이다.
현대차 비자금 사건과 김재록 게이트가 만나는 부분도 현대차 인사의 후유증으로 풀이하는 시각도 있다.
지난 2001년 7월 그룹의 기획통으로 불렸던 이계안 부회장이 급작스레 물러난 뒤 그해 말 현대차 그룹은 주당 1원에 구조조정회사에 넘겼던 위아를 단돈 7억 원에 인수하는 등 2세 재산승계와 관련한 프로그램을 본격적으로 가동하기 시작했다. 또 이런 프로그램이 현대차 내부의 아이디어가 아닌 김재록이라는 금융브로커이자 기획가가 그려준 도면으로 실행됐던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2세 승계 과정을 그룹 구조본에서 짜고 실행한 삼성그룹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게다가 이런 플랜이 가동되면서 정의선 사장이 2001년 상무에서 2005년 사장으로 ‘현대 속도’로 승진했다. 한번 결정하면 좌고우면 없이 질풍같이 몰아가는 것이 정몽구 회장의 스타일인 것이다. 그게 기업경영이든 인사든 말이다.
덕분에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의 해외공장 건설도 중국과 인도, 미국, 체코 등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게다가 안으로는 현대그룹 정주영 창업자의 오랜 소원이기도 했던 현대제철의 고로 건설도 진행중이다. 한보철강을 인수한 뒤 당진만 공장에 고로제철소를 짓고 있는 것. 국내에서 고로는 포스코뿐이었다. 때문에 일각에선 현대자동차그룹의 동시다발적인 대형 프로젝트에 대해 우려를 보내는 시각도 없지 않다. 자금 소요가 큰 대형 프로젝트를 동시다발적으로 진행시키다가 자금 회전에 무리가 오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하지만 현대차 쪽에선 이런 시각에 대해 문제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이미 현대차그룹의 캐시카우인 현대자동차의 수익성에 문제가 없을 뿐더러 최근 신규 계열사들의 잇따른 상장으로 상당한 자금이 축적돼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정몽구 회장은 지난 99년 현대차 경영권을 확실히 한 뒤 예상을 뛰어넘는 실적을 보여왔다. 미국 수출도 기대 이상이었고 품질 향상을 강조한 그의 ‘화두 경영’도 시의적절했으며 또 효과를 본 것으로 평가받았다. 덕분에 현대차그룹의 시가총액은 무섭게 커졌다. 그룹 분리 이후 6년여 만인 지난해 삼성그룹에 이어 재계 2위 자리에까지 치솟았고, 총수별 보유주식 시가평가에선 정 회장이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 지난 3월 13일 기아차의 미국 조지아주 현지공장 투자계약서 교환식. 정의선 사장 뒤에서 정몽구 회장이 환하게 미소짓고 있다. | ||
정몽구 회장은 2년 뒤인 2008년이면 칠순이다. 외아들인 정의선 사장은 36세. 세상을 뜰 때까지 제왕이었고 집안 여성의 경영참여에 부정적이었던 정주영 회장에 비해 정몽구 회장은 좀 다르다. 부인(이정화)과 맏딸(정성이)도 경영에 참여시키고 외아들 의선씨에 대해서도 배려를 아끼지 않고 있다.
지난 3월 13일 기아자동차는 정몽구 회장이 조연을 맡고 아들인 정의선 기아차 사장이 주연을 맡는 행사 사진을 배포했다. 기아차의 미국 현지공장을 조지아주 웨스트포인트시에 짓는다는 투자계약서 교환식의 중심에 정의선 사장이 서있고 정 회장이 환한 미소로 병풍을 쳐주는 모습이었다.
8일 새벽 비행기로 귀국한 정 회장의 가슴 속에 어떤 결단이 들어있을지 주목받고 있다.
[프로필]
△1938년 3월 19일, 범띠
△좋아하는 팝송: 징기스칸.
△좋아하는 인물: 징기스칸(몽골 출장길의 발언)
△직위: 현대차·기아차 대표이사 회장, 한국표준협회장
△자녀수: 1남 3녀
△경영철학: 깨끗한 경영
△취미: 등산, 테니스
△주량: 두주불사
△인물평: 소탈하면서도 강한 추진력 겸비
△학력
-1959 경복고등학교
-1967 한양대학교 / 공업경영 / 학사
△경력
1970. 현대건설 입사
1973. 현대자동차 이사
1974. 현대자동차서비스 대표이사
1977. 현대정공 대표이사 사장
1983.~1998.03 한국도시개발(현 현대산업개발) 대표이사
1996.01. 현대그룹 회장
1998.12. 현대자동차 대표이사 회장
1998.12. 기아자동차 대표이사 회장
김진령 기자 kj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