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학규와 조조 ‘버려야 산다’ 닮은꼴
이런 가운데 대선전을 고사에 비유하고 대선주자들을 당시의 인물들에 비교한 책이 나와 눈길을 끌고 있다. 교수신문 편집국장으로 알하고 있는 신동준 씨가 쓴 <사슴을 쫓는 자는 토끼를 돌아보지 않는다>는 현재 우리나라의 대표적 정치인 21명을 동양의 통치리더십 분석틀로 분석하고 이제마의 사상론으로 분류했다.
<사슴을 쫓는 자는…>는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이명박 전 서울시장을 춘추시대 말기의 월나라 정치가 범리와 비교한다. 와신상담 끝에 라이벌 오왕 부차를 꺾고 천하의 패권을 차지한 월왕 구천은 패권 쟁취의 일등공신이던 범리를 제거하려 했다. 이에 범리는 재빨리 그 곁을 떠나 이름을 바꾸고 상업에 종사해 큰돈을 벌었다. 이명박 전 시장도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국민당을 창당하자 그와 결별하고 YS를 도와 14대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한 것이 범리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용인술에 있어서 이 전 시장이 “아무나 쓰지 않지만 누구나 쓴다”와 같은 열린 자세를 가지고 있는 것은 춘추시대 관중의 용인술 ‘지용임신(知用任信 알면 쓰고 맡기면 믿는다)’에 비견할 만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신뢰와 원칙을 중시하는 신라의 선덕여왕에 비유된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여성의 신분으로 지존의 자리에 올라 신뢰와 원칙의 용인술을 구사하는 대표적인 인물로 신라의 선덕여왕을 들 수 있다. 그녀의 관인명민에 대해 당시 사람들은 크게 공감했다. 박근혜 역시 주변 사람들로부터 관인명민하다는 칭송을 받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신라는 선덕여왕이 보위에 오를 당시 백제와 고구려의 공세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러나 선덕여왕은 김춘추 김유신 등을 등용해 이 위기를 벗어났을 뿐 아니라 3국 통일의 기초를 쌓았다. 이는 박 전 대표가 탄핵역풍 속에서 난파 위기에 몰린 한나라당을 구해낸 일에 비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사상론으로 볼 때 박 전 대표가 전형적인 외유내강형의 소음인이며 머리가 총명하고 판단력이 빨라 조직을 만드는 데 장기를 발휘한다고 말한다.
손학규 전 경기지사는 조조와 비교된다. “상호 계륵의 관계에 있던 손학규와 한나라당의 관계는 결국 손학규의 결단에 의해 묘한 동거 관계가 청산된 셈이다. 삼국시대 조조는 버리기 아까운 한중을 과감히 포기하고 철군을 결정했다. 그의 결정이 현명한 것이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손학규 역시 머뭇거렸다면 빅2의 그늘에 가려 오늘의 그는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는 것이 필자의 설명이다. 그러나 실제로 손 전 지사가 조조와 같은 점은 이 같은 후퇴와는 정반대로 늘 앞으로만 나가려 할 뿐 물러서지 않으려는 성정이라며 이는 태양인 기질의 특성이라는 것.
▲ 노무현(왼쪽), 이회창 | ||
이해찬 전 총리의 경우는 조선 세조 때의 재상 정인지와 비교하고 있다. “정인지는 자신의 고리대 사실이 드러나 대간들의 탄핵이 빗발치는데도 모든 사람들이 다 하는 짓이니 이를 탓해서는 안 된다는 식으로 변명했다. 이는 결코 당대 최고의 원로가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이해찬은 명실상부한 범여권의 대선주자로 부상하고자 하면 먼저 골프 파동 등 자신의 부적절한 과거 처신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더불어 새롭게 태어난 모습을 분명하게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 그 이유다.
이 외에도 강금실 전 법무장관은 전쟁터 한복판에서 위기에 처하자 아들만 조자룡에게 넘기고 우물에 뛰어들어 자결한 자긍심 강한 유비의 아내 미부인으로, 권영길 의원은 스스로 천하의 호걸로 자부한 삼국지의 관운장으로, 김혁규 의원은 천하의 대상인에서 정치인으로 화려하게 변신한 진나라의 여불위로 비유된다.
또 노회찬 의원은 조조나 유표에게 맞서서도 굽히지 않고 촌철살인의 설봉을 휘두른 기인 예형과, 문국현 유한킴벌리 사장은 전국시대에 비웃음을 감수하고 스스로를 천거해 나라를 구한 모수, 원희룡 의원은 병자호란 당시 척화의 기치를 내건 김상헌과 비슷하다는 것.
뿐만 아니라 유시민 의원은 조조가 세운 위나라를 폐하고 서진을 세운 사마 씨의 일급 책사 가충으로, 천정배 의원은 지모가 뛰어난 천하의 재사 제갈량으로, 한명숙 의원은 전형적인 어머니상으로 각각 비유되고 있다.
한편 이 책은 노무현 대통령을 “출신배경과 입신과정을 볼 때 한고조 유방을 닮았다”고 평하고 “명나라를 세운 주원장과도 닮았는데 주원장은 황제가 된 후 자격지심에 사로잡혀 명나라 개국 초에 수많은 일을 일으켰다”고 덧붙였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에 대해서는 ‘천하를 다 거머쥐는 상황에서 끝내 눈물을 흘린 것은 일세를 풍미했던 초패왕 항우의 불우한 삶과 닮았다’고 덧붙였다.
저자는 책 머리말에서 “북핵문제 등으로 4강국이 한반도를 응시하는 지금이야 말로 그 어느 때보다 자강불식의 리더십이 더 절실하게 요구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저자 신 씨는 ‘춘추전국시대의 정치사상’으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정치부 기자를 거쳐 현재는 각 대학에서 통치리더십을 강의하고 있다.
이윤구 기자 trus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