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의 일등공신 ‘메시아’로 부활하나
▲ 정대철 열린우리당 상임고문이 ‘노무현 대통령을 배제한 통합신당론’으로 주목받고 있다. 지난 7월 상임고문단 오찬에 참석한 정 고문. | ||
집권당(당시 민주당) 대표 시절인 2004년 1월 굿모닝시티 사건에 연루된 혐의로 구속 수감된 정 고문은 지난해 8·15 대사면으로 정치활동을 재개할 발판을 마련했다. 사면 과정에서 불거진 ‘특혜’ 논란 등 따가운 여론을 의식해서 였을까. 그는 사면 후 정치활동을 자제하고 미국 연수 등 내실을 기하는데 주력해 왔다.
하지만 정 고문은 미국 연수 기간 중에도 가끔 귀국해 청와대에서 노 대통령과 만나 정계개편 등 국정전반에 대해 의견을 조율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7월 노 대통령과 정 고문을 비롯한 여권 중진들이 회동을 갖고 차기 대선구상 등 국정운영 전반에 대해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는 사실은 그 대표적인 사례다.
정 고문이 최근 주장한 ‘노 대통령을 배제한 통합신당론’을 둘러싼 여권내 논쟁도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참여정부 출범에 기여한 일등공신임에도 적잖은 세월을 음지에서 보낸 온 정 고문. 그가 들고 나온 통합신당론 카드의 진실은 무엇일까. 또 ‘부패정치인’이라는 오명을 씻고 재기에 성공할 수 있을까. 오랜 공백을 깨고 뉴스메이커로 부상한 정 고문의 파란만장한 정치역정과 향후 그의 역할론을 조명해 봤다.
정대철 고문이 오랜 공백을 깨고 다시 뉴스메이커로 등장했다.
미국 연수 중인 정 고문은 지난 9월 13일 일시 귀국해 열린우리당과 민주당 소속 전·현직 의원들을 두루 접촉하는 등 심상치 않은 행보를 걸고 있다.
18일을 전후해서는 일부 언론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전시작전통제권(작통권)과 정계개편 등 민감한 국내외 현안문제와 관련한 자신의 소신을 피력하고 있다. 정 고문은 보혁 갈등으로 치닫고 있는 작통권 환수 문제와 관련해 2002년 대선 직후 미국 부시 대통령의 특사 자격으로 리언 러포트 한미연합사령관 겸 주한미군사령관이 미국의 전략과 계획을 설명했던 비사를 털어놔 논란을 야기하기도 했다.
또 최근에는 지난 7월 초 있었던 청와대 뒤산 정자에서 있었던 노 대통령과 여권 중진들의 회동 내용을 공개하기도 했다. 정 고문은 정계개편 문제와 관련 “여당 주도로 민주당 등을 흡수·통합하는 것보다는 기득권을 버리고 신당을 창당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며 범여권 통합신당론을 주창했다. 여기에 “노 대통령은 정계개편 논의 과정에서 빠져야 한다”며 이른바 ‘노 대통령 배제’를 주장해 그 배경과 숨겨진 진실을 둘러싼 논란도 심화되고 있는 형국이다. 문희상 전 의장과 28일 창립식을 가진 탈계파 초선모임인 ‘처음처럼’ 소속 의원들이 “노 대통령을 배제한 통합신당론은 또 다른 분열”이라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계개편의 필요성 및 범여권 대통합론에는 공감하면서도 노 대통령과의 관계 설정 문제와 관련해서는 중진들과 제 세력들이 상반된 논리를 펼치고 있는 분위기다. 따라서 수면위로 부상한 여권의 정계개편 논의는 갈수록 더욱 뜨거워 질 것이고 이 과정에서 정 고문이 어던 역할을 할지 정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실제로 정 고문은 노 대통령에게 직언을 아끼지 않는 몇 안 되는 측근 인사로 분류되고 있다. 정 고문과 노 대통령의 정치적 인연은 지난 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경성사건에 연루된 정 고문이 수감 중일 때 노 대통령은 면회가서 “형님이나 저나 DJ가 별로 예뻐하지 않는 사람 아닙니까. 그래서 이 고생을 하는 것 아닙니까”라며 위로했다는 말은 지금도 정가 주변에서 회자되고 있다.
두 사람의 정치적 인연과 신뢰는 97년 대선후보 경선으로 이어졌다. 당시 노 대통령은 김원기 김상현 김근태 의원 등과 함께 국민경선추진위원회를 구성해 정 고문을 지원했다. DJ의 아성에 도전한 정 고문이 비록 큰 표차로 패하긴 했지만 ‘반 DJ’ 그룹을 매개로 한 두 사람의 정치적 연대감은 더욱 끈끈해 졌다.
2002년 대선 때는 두 사람의 입장이 바뀌었다. 우여곡절 끝에 민주당 대선후보가 된 노 대통령은 당시 정 고문에게 “형님밖에는 없다”며 선대위원장직을 제의했고 그는 노 대통령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 (위에서부터) 대선 전날인 지난 2002년 12월 18일 밤 지지철회를 발표한 정몽준 의원 자택으로 달려온 정대철 당시 노무현 후보 선대본부장, 지난 2003년 6월 청와대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독대하는 정대철 당시 민주당 대표, 지난 2004년 1월 여당 대표 신분으로 영장실질심 | ||
하지만 이러한 기쁨도 잠시, 그는 또다시 깊은 수렁에 빠져들었다. 바로 2003년 말부터 2004년 초까지 정치권을 뒤흔들었던 이른바 ‘굿모닝 게이트’ 사건 때문이다. 정 고문은 굿모닝시티 윤창열 전 대표로부터 4억 원을 받은 혐의로 2004년 1월 사상 초유의 집권당 대표 구속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영어의 몸이 되고 말았다.
정 고문의 구속을 지켜보는 노 대통령의 심사도 결코 편치 않았다. 정 고문이 수감된 서울구치소에 여권 실세들이 연일 면회를 갖던 배경에는 노 대통령의 배려와 입김이 작용했을 것이란 관측이 적지 않다.
지난해 2월 17일 대법원에서 징역 5년을 확정 선고 받은 정 고문은 같은해 5월 2일 형집행정지로 석방된 후 결국 8·15 대사면을 통해 자유의 몸이 됐다. 하지만 여론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야권은 ‘정대철을 위한 대사면’이라며 정 고문 등 정치사범들에 대한 사면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비난 여론을 의식한 듯 정 고문은 지난해 11월 1년 일정으로 미국 연수길에 오른다. 참여정부 탄생의 일등공신인 정 고문이 사면에 만족하고 정치일선에서 물러나는 듯한 모양새였다.
하지만 정 고문은 은밀히 정치활동을 재개해 왔던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다. 미국 연수 와중에 간간히 귀국해 노 대통령을 비롯한 여야 정치인들을 두루 접촉해 왔던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7월 노 대통령이 여권의 원로 중진 인사들을 청와대로 불러 만찬을 함께한 자리에 정 고문이 참석했다는 사실은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특히 이날 만찬에서는 정계개편 문제와 내년 대선을 겨냥한 대통합 신당 문제 등이 논의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을 부추기고 있다. 정 고문은 이 자리에서 노 대통령에게 “정권 재창출을 위해선 열린우리당과 민주당, 고건 전 총리 등을 아우르는 대통합 신당을 추진해야 한다”는 이른바 통합신당론을 주장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후 정 고문은 통합신당론과 관련한 자신의 입장을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강하게 어필하고 있다. 물론 정 고문의 구상이 개인적인 생각인지 노 대통령의 의중을 내포한 견해인지 여부는 불확실하다.
정치권 관계자들은 현역 정치인보다 정치 일선에서 한발 물러나 있는 정 고문이 좀 더 자유로운 입장에 있는 여당발 정계개편론에 불씨를 지핀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정 고문이 꺼내든 통합신당론은 숨겨진 진실과 그 실현 가능성 여부를 떠나 그동안 물밑에서만 진행돼 온 정계개편 문제를 수면위로 끌어올린 기폭제가 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방법론에 다소 차이가 있을 뿐 여당내 여러 세력들도 정 고문의 범여권 대통합에 공감하고 있는 분위기다.
정 고문은 10월 3일 다시 미국으로 떠날 계획이다. 출국에 앞서 정 고문은 김원기 전 국회의장, 김근태 의장, 문희상 전 의장 등 전·현직 당의장 및 중진들의 모임을 주선한 상태다.
참여정부를 탄생시킨 일등공신으로 위기에 처한 여권을 살리기 위한 사심 없는 충정일지 아니면 오는 11월 완전 귀국을 앞두고 정치활동을 본격화하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일지 그가 꺼내든 통합신당론이 가을정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