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눈치 미국 압박… 첫발부터 북핵난제
▲ 유엔 사무총장에 임명된 반기문 장관 앞에 벌써부터 난제들이 던져졌다. 특히 최근 ‘북핵실험’ 파문으로 기쁜 마음 한켠에 무거운 마음을 동시에 지닌 채 총장 임무를 시작하게 됐다. | ||
반 장관이 지구촌 국제정치의 본산지 유엔의 수장 자리에 오른 것은 60년 한국 외교사의 빛나는 쾌거가 아닐 수 없다. 유엔의 지원 아래 국가의 초석을 다졌던 한국의 입장으로서도 유엔 사무총장의 배출은 유엔을 위해 일을 할 기반을 갖춘 국가로서의 위상을 인정받은 셈이다. 반 사무총장 임명자의 입장으로서는 37년간의 외교 경력의 정점에서 이루어낸 결실이 아닐 수 없다.
전 세계의 분쟁을 해결하는 일부터 인도적 지원에 이르기까지 유엔이 떠맡고 있는 중요한 임무를 고려해 볼 때 반 유엔 사무총장 임명자의 역할이 앞으로 얼마나 막중할지는 미루어 짐작이 간다. 한 유엔평론가가 “위대한 유엔 사무총장은 유엔뿐 아니라 세계의 귀중한 자산”이라고 말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더구나 분단국가 출신의 장관에게 국제 정치의 조정자라는 입장은 다른 사무총장들보다 힘겨울 것이 분명하다.
앞으로 5년간 지구촌의 살림을 맡게 될 반 사무총장 임명자의 모습을 살펴본다.
유엔 사무총장에 임명된 반기문 장관 앞에는 벌써부터 여러 가지 난제가 던져져 있다. 그 중 한국의 외교부 장관으로서도 어깨의 짐으로 이고 왔던 북핵문제가 사무총장의 자리에서도 해결해야 할 가장 큰 숙제일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12일자에 다음과 같은 사설을 실었다. ‘반 장관이 유엔 사무총장으로 최종 선출되면 북한 핵실험 문제에 대해 신속하게 개입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반 장관이 잘해주기를 희망한다. 유엔은 미국의 외교정책 목표를 실현시키는 데 있어서 필수적인 조직일 뿐만 아니라 보다 평등하고 평화로운 세계를 만들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곳이기 때문이다.’ 미국 내의 여론 또한 그가 북핵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나갈 것인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이다.
반 장관이 북핵문제가 전 세계적 이슈로 떠오른 시기에 맞춰 사무총장이 된 것은 어쩌면 하나의 숙명인지도 모른다. 반 장관 또한 이를 충분히 인식한 듯 사무총장으로 내정된 직후인 지난 4일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에 출석해 “유엔 사무총장으로 진출한 뒤 주어진 권한에 따라 북핵문제가 조속한 시일 내 해결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반 장관은 기쁜 마음 한켠에 무거운 마음을 동시에 가진 채 사무총장의 임무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큰 숙제를 짊어지고 출발하게 된 반기문 장관. 올해 예순둘이 된 반 장관은 외교업무를 맡은 지 37년째가 되었다. 반 장관은 1970년 외무고시에 합격해 외무부 외교정책실 실장, 대통령비서실 외교안보 수석비서관, 외교통상부 차관, 대통령비서실 외교보좌관 등 요직을 두루 거친 후 2004년 1월 외교통상부 장관에 임명되었다.
반 장관의 주변 사람들이 하나같이 그의 장점으로 꼽는 점은 바로 인간성이다. 그는 주변에 적이 없다. 남에게 싫은 소리를 절대 하지 않는다는 평이 나올 정도로 반 장관은 상사는 물론 부하직원들에게도 인심을 두둑히 얻고 있다. 한 외교부 직원은 “반 장관이 소리 지르는 것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전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반 장관은 때로 부하직원들에게 친필편지를 쓸 정도로 사려 깊은 마음씨를 갖고 있다. 이 직원은 “(반 장관은) 특히 외국에 나가 있는 직원들을 챙기는 데 남다른 신경을 쓴다”고 말했다.
반기문 장관이 가진 성격상의 장점 중 또 한 가지는 자신이 모셨던 상사들로부터 장점을 배워 자기 것으로 만드는 습관이라고 한다. 이러한 점은 상사들의 마음을 얻는 데 주효했을 것이다. 반 장관 스스로도 한 인터뷰에서 “윗사람의 장점을 내 것으로 만들려 했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다.
또 외교관으로서의 그의 지론은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면 오해 살 일도 원한 살 일도 안 생긴다’는 것. 이러한 점을 보여주는 일화가 있었다. 반기문 장관은 김영삼 정부 후반기에 대통령의전수석비서관과 외교안보수석비서관을 지냈다. 당시 주변에서는 정권이 바뀔 훗날을 대비해 청와대에서 나오라는 조언을 건네는 이들이 많았으나 당시 반 장관은 “공무원이 자신에게 부여된 임무를 어찌 거부하느냐”며 자신의 소신대로 자리를 지켰다.
하지만 반기문 장관에게도 몇 차례 위기는 있었다. 지난 2001년 갑작스럽게 차관자리에서 물러나면서 좌천을 당한 것. 당시 그는 유엔총회 의장을 겸하던 한승수 외교부 장관의 발탁으로 유엔총회 의장 비서실장으로 옮겨가게 됐다. 그때 반 장관은 공직생활을 마감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심각한 고민을 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결국 그때 경험한 유엔 생활은 지금 그를 사무총장으로 만드는 결과를 낳았다.
▲ 반기문 외교장관 | ||
지난 2004년 6월에 일어난 ‘김선일 씨 피살사건’ 또한 반기문 장관에게 예기치 못한 위기였다. 당시 그는 이 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기 위해 장관직에서 물러나려고 했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을 얻고 있던 그는 대통령의 만류로 자리를 지키게 된다.
반기문 장관은 장관직을 수행하는 동안 외교 상대국을 대하는 것에도 자신만의 철칙이 있었다. 그의 외교수칙은 ‘공식적’이고 ‘형식적’인 대우가 아니라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상대방에 대해 진심과 정성을 다하는 것에 있다. 그래서 그를 아는 다른 나라 외교장관들은 그를 ‘친구’라고 부르며 사무총장 선거 캠페인에서도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반기문 장관의 어린 시절로 거슬러가 보자. 1944년 충북 음성에서 태어난 반기문 장관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충주로 이사해 고등학교까지 그곳에서 다녔다. 반 장관의 집안은 넉넉한 편이 아니었으나 반 장관은 1등자리를 거의 놓치지 않았다고 한다. 반 장관의 초등학교 동창인 충주 교현초등학교 한승수 교장은 “특히 산수와 글짓기를 잘했다. 주판 놓기 내기를 하면 이길 때까지 다시 하자고 할 정도로 도전 정신도 강했다”고 전했다.
외교관으로서의 반기문 장관의 꿈은 이미 초등학교 시절부터 시작되었다. 그가 다니던 초등학교에 당시 변영태 외무부 장관이 강연을 하러 왔었다고 한다. 그때 강연을 듣고 큰 감명를 받은 반 장관은 외교관이 되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반 장관의 어린 시절 별명은 ‘부처님’이었다. 콧등에 있는 점 때문에 친구들은 반 장관이 오면 “부처님 온다”면서 놀렸다고 한다. 하지만 이 별명을 반 장관은 그다지 싫어하지 않았다고 한다. 아마 어머니가 독실한 불교 신자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얘기를 전하던 한승수 교장은 “(반 장관이) 나이가 들면서 어린 시절보다 인물이 더 나아지고 기품이 생긴 것 같다”며 웃음을 보이기도 했다.
외국인을 만나면 스스로 먼저 말을 걸 정도로 영어를 열심히 했고 그래서 고등학교 시절 대표로 미국을 방문, 케네디 대통령과 만난 것도 그의 인생 항로를 결정 짓는 계기가 됐다는 것이 그를 어릴 적부터 아는 사람들의 말이다.
반기문 장관이 유엔 사무총장의 자리에까지 오른 것에는 관운이 따랐다는 분석도 있다. 물론 이 말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의 치밀한 준비성과 타고난 품성이 없었다면 ‘운’을 ‘기회’로 붙잡진 못했을 것이다. 또 반 장관은 외교업무를 맡기 위해선 체력이 강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건강을 챙기는 것에도 남다른 신경을 쓴다. 초등학교 시절 강연을 왔던 변영태 장관은 ‘평소 아령으로 건강유지를 한다’며 아령 시범을 펼쳐 보이기도 했다고 한다.
앞으로 반기문 장관이 사무총장의 자리에서 해야 할 일은 많다. 특히 그가 놓일 입지에서는 지금보다 훨씬 신중한 선택을 해야 할 것이다. UN이 최근 미국 부시 행정부와 그다지 매끄러운 관계를 만들어오지 못한 점도 그가 헤쳐 나가야 할 과제다. 물론 미국의 태도에도 문제가 있지만 반기문 사무총장이 자신의 입지를 공고히 하지 못한다면 미국정부에 끌려가는 상황도 발생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반기문 장관이 안보리 상임이사국들의 이해관계 때문에 유엔 사무총장이 제3세계 국가들에서 배출된다는 점을 역설해, 그가 특히 우리나라에 민감한 대미관계에 있어 미국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반 장관이 ‘이라크파병’이나 ‘한중일 관계’에 있어서 때로 한국 외교정책과는 엇갈린 정책을 펼 가능성도 크다는 것. 이에 대해 한 정치전문가는 “한국여론이 지금처럼 계속 반 장관에 대해 우호적일지는 장담할 수 없다. 그가 사무총장으로 보이는 행보는 때로 한국 입장에서는 ‘친미외교’로 비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이 점은 반 장관이 임기 내내 고민해야 할 부분일 것이다.
과연 반기문 장관이 특유의 유연함과 민첩함으로 한국의 입장을 살려가면서 사무총장의 권위를 확고히 할 수 있을까. 한국과 미국 사이에서, 동시에 전 세계 각국을 고루 돌봐야 하는 자리에서 반 장관이 큰 활약을 펼치기를 기대해 본다.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