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보수’라 부르는 시선이 더 보수적이다”
▲ 영국의 대처 수상처럼 대한민국의 중병을 고치고 싶다는 박근혜 전 대표. 그러려면 먼저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이명박 전 시장을 경선에서 꺾어야 한다. 사진은 박 전 대표가 어머니 육영수 여사의 생가가 있는 충북 옥천에 들렀을 때의 모습. 국회사진기자단 | ||
<일요신문>은 대선주자 릴레이 기획시리즈로 지난주 이명박 전 시장에 이어 박근혜 전 대표를 밀착취재 했다. 서면으로 진행된 인터뷰와 현장에서 지켜본 박 전 대표의 모습을 함께 담아본다. 박 전 대표는 근래 몇 차례 언론과의 인터뷰를 가진 바 있으나 주로 정책전반에 관한 ‘딱딱한’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연예인도 아닌 박 전 대표가 ‘신비주의 전략을 쓰는 것 아니냐’는 쓴소리를 듣고 있기도 한 터라 좀 더 인간적이고 개인적인 부분에 대한 속내도 들어보았다.
지난 3일 오전 여의도에 있는 박근혜 전 대표 사무실. 이날 박 전 대표 캠프에서는 신년인사회가 열렸다. 2007년의 첫 번째 일정이었다. 2000명 가까운 지지자들과 의원들, 당 관계자들이 몰려 사무실 안팎은 그야말로 북새통을 이뤘다.
수많은 사람들에 둘러싸인 박 전 대표가 “12월 19일을 향한 긴 마라톤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며 ‘대권도전’에 대한 포부를 밝히자 현장에 있는 지지자들도 ‘박근혜!’를 외쳤다.
이날 신년인사회는 대선 출정식을 방불케했다. 대선이 임박한 선거유세장에 못지않은 열기가 온몸으로 느껴졌다. 더구나 이날 따라 실내 온도를 높혔는지 현장에 있던 이들 모두 비지땀을 흘리고 있었다. 열기 때문인지 난방 때문인지 분간되지 않을 만큼 현장의 상황은 뜨거웠다. 박 전 대표의 모습도 사기가 오른 모습이었다.
박 전 대표의 신년인사회에는 ‘친박 인사’들도 대거 모습을 보였다. 사회를 맡은 한선교 의원을 비롯해 권영세 김무성 김영선 김용갑 김태환 박계동 박희태 이계진 이규택 전여옥 전재희 허태열 의원 등 모두 46명. 사회를 맡은 한선교 의원은 방송인 출신답게 매끄러운 진행을 했으나 간간이 마이크가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행사를 마친 박 전 대표는 공간이 비좁아 사무실에 들어오지 못한 지지자들과 인사를 나누기 위해 1층으로 자리를 옮겼다. 한동안 손에 붕대를 감고 다니기도 했던 박 전 대표가 이날 나눈 악수만도 수백 번은 족히 넘을 듯했다.
과연 그에게 2007년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첫 번째 질문으로 대선이 있는 2007년을 맞이하는 소감을 물어 보았다.
―한나라당 대권경쟁이 본선만큼이나 치열하다. 대선이 있는 새해를 맞이하는 소감은.
▲올해는 우리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정짓는 정말 중요한 1년이 될 것이다. 새해에는 바른 지도자를 뽑아 경제가 살아나고 나라의 정체성도 바로 서고 새롭고 희망에 찬 대한민국이 되었으면 한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뛸 것이다.
―차기 대통령이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시대적 요건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다음 대통령은 무엇보다 국민의 힘과 마음을 하나로 모아서 다시 한 번 뛰어보자는 자신감 넘치는 나라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 경제를 살리고 국가정체성을 확실히 하고 공권력을 바로 세워 사회의 부패와 부조리를 없애서 제대로 된 선진국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 깨끗한 사회를 만들 때 국민통합도 가능하다. 그리고 세계와 북한을 상대로 훌륭한 외교력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해서 나라의 비정상적인 것을 바로잡고 선진국을 만드는 것이 차기 대통령이 해야 할 시대적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 지난 3일 있었던 박근혜 전 대표의 신년인사회. 사진=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새해를 맞아 대권 후보들은 잇따라 전직 대통령들을 찾아가 새해 인사를 했다. 얼마 전 대권출마를 선언한 원희룡 의원은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큰절’을 올린 탓에 여론의 질타를 받기도 했다. 그런데 박 전 대표만은 전직 대통령에게 세배를 하지 않아 상대적으로 눈에 띄었다. ‘호남표’를 의식한다면 김대중 전 대통령을 외면할 수도 없고 현 지지 세력을 볼 때 다른 전직 대통령들을 나몰라라 할 수도 없는데도 말이다. 박 전 대표는 지난 4일 사무실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세배를 다니지 않은 이유’를 묻자 “12월 초에 찾아뵙기도 했고 그때 그때 계기가 있으면 조용히 찾아뵙는다. 의도적으로 안 가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한나라당이 집권하려면 후보단일화가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당내 경선을 통한 후보단일화에 성공하리라고 보나.
▲경선을 통한 후보단일화는 당연히 성공하리라고 본다. 만약에 경선에 불복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면 그런 사람은 후보 자격조차 없는 사람일 것이다. 이번 대선은 개인을 넘어서 국가의 운명이 달려있고 국민들의 생존이 달려 있다. 이 시대가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후보들 모두 잘 알 것이다.
지난해 12월 29일 한나라당은 당 지도부와 대권후보들의 간담회 자리를 갖고 공정한 경선을 치를 것과 경선승복에 대한 의지를 다지기도 했다. 그러나 앞날은 알 수 없는 것. “만약 다른 후보가 경선 결과에 승복하지 않을 경우 어떤 대응법을 갖고 있느냐”는 질문에 박 전 대표는 “그럴 일은 없을 것이라 믿고 있다”고 잘라 답했다.
―최근 한나라당 일부에서는 완전국민경선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데.
▲한나라당은 지금의 경선제를 만들기 위해 무려 9개월 동안 50회 이상의 공청회를 가졌고 당원 모두가 합의해 결정한 것이다. 당시 이렇게 만들면 내게 불리하다는 말씀을 하는 분들이 많았는데 나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지금의 한나라당 경선규정이 바꿔야 할 확실한 명분이 있다면 몰라도 단지 열린우리당이 궁여지책으로 하려는 것을 따라서 하는 것이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 당원들의 의사를 확인하는 방법은 당에서 결정할 것이다.
▲ 지난 11월 중국 청도의 세정악기를 방문한 박근혜 전 대표가 기타를 들고 연주하는 모습. 평소 노래 부르기가 취미라고 한다(위), 2002년 박 전 대표의 삼성동 자택 공개 당시 모습. 독신인 박 전 대표의 사생활은 그리 잘 알려져 있지 않다. | ||
▲나는 주목을 끌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의 공약을 뛰어넘는 더 큰 공약을 내야 한다는 식의 생각은 하지 않는다. 열차페리 구상도 오래 전부터 구상하고 노력해온 유라시아 철도 연결이 북한 변수 때문에 언제까지 북한만 바라보고 기다릴 수 없기 때문에 대안으로 내놓은 것이고, 중국에 가서 직접 보니 그 자체만으로도 경쟁력이 크다는 것을 확인했다. 앞으로 각 분야마다 내가 구상해온 방안들을 하나하나 국민들에게 말씀드릴 것이다.
박근혜 전 대표가 자주 듣는 질문 중 하나는 바로 ‘지지율’에 관한 것이다. 이에 대해 박 전 대표는 “정치를 시작할 때부터 지지율에 연연하지 않았다”며 “특단의 대책 같은 것은 없다”고 응수해 왔다.
─이명박 전 시장의 지지율이 고공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이명박 대세론’이 얼마나 지속되리라 보는가.
▲이 전 시장의 지지율이 높은 것은 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앞으로 나도 열심히 하겠다
─보수적이라는 평가가 많다. 보수적 이미지를 탈피할 방안이 있는가.
▲내가 보수적인가. 나는 국민들이 겪고 있는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경제 교육 부동산 과학기술정책 할 것 없이 국정 전분야에 걸쳐 혁명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혁명적인 변화를 주장하는 사람이 보수적일 수 있는가. 다만 자유민주의와 시장경제, 법치주의에 대한 원칙, 그리고 작은 정부와 감세, 규제 혁파를 통한 큰 시장을 만들어야 하는 확고한 신념이 보수적이라고 한다면 보수적이란 말이 영광이라 생각한다. 그런 신념을 가지고 영국의 대처 총리가 영국병을 치유해서 새로운 도약을 이룩한 것처럼 국민들의 걱정을 덜어드리고 대한민국이 앓고 있는 중병을 고쳐 놓겠다.
박 전 대표는 ‘겸손한’ 대답을 내놓으면서도 자신이 보수적이라는 말에는 힘을 주어 소신을 피력했다. 끝으로 그에게 2006년을 보내는 소감과 새해를 맞는 화두를 물었다.
“지난해는 기억나는 일이 정말 많았던 1년이었다. 엄동설한에 사학법 장외투쟁으로 시작했고 5월에는 지방선거 유세 중에 피습을 당하기도 했다. 그래도 지방선거에서 유례없는 압승을 거둘 수 있어 행복했다. 날씨가 궂거나 하면 (상처부위에) 약간 통증은 남아있지만 큰 문제는 없다. 올해에 나는 꿈과 용기를 신년의 화두로 생각한다. 이 어려움도 우리가 꿈과 용기를 갖고 열심히 노력하면 반드시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