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차 핵실험 직후 신설…‘풍계리 핵시설 몸통’ 131지도국도 지휘
216연구소는 북핵 개발 및 기획을 진두지휘하는 컨트롤타워조직이다. 사진은 지난 2016년 1월 13일 수소탄시험성공에 기여한 핵 과학자들과 기술자, 군인건설자, 노동자, 일군들에 대해 당 및 국가표창을 수여하는 김정은의 모습. 연합뉴스
216연구소는 아직까지 국내외 언론과 정보기관 및 학계에서조차 제대로 조명되지 않은 북한의 비밀 특수조직이다. 216이란 연구소의 이름(2월 16일은 김정일 생일)만 봐도 알 수 있듯 해당 조직이 북한 내부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중과 의미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해당 조직의 탄생을 살펴보고자 한다면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2006년 10월 9일은 북한의 현대사에 있어서 중요한 기점이 되는 날이다. 북한의 당 창건일인 쌍십절(10월 10일)을 하루 앞둔 이날 북한은 제1차 핵실험을 감행한다. 당시 핵실험 규모는 0.5kt(1945년 일본 히로시마에 투입된 핵폭탄 리틀보이 규모는 15kt)이었다.
지난 5차 핵실험이 8~9kt 규모인 것에 비춰봤을 때 당시 1차 핵실험은 보잘 것 없는 수준이었지만 그것이 시사하는 바는 무척 컸다. 선대 김일성 주석은 체제 성립 직후 1952년부터 핵기술에 큰 관심을 보여 왔다. 이어 1962년 영변 핵시설 건립과 1980년대 들어 플루토늄 추출을 시작한 이래 핵무기 보유는 체제의 지상목표처럼 여겨졌다.
이러한 준비 과정 속에서 북한 핵개발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1986년부터라고 볼 수 있다. (현재도 마찬가지지만) 당시부터 미국과 일본 등 서구사회는 물론 중국과 러시아 모두 북한의 핵개발에 부정적이었지만 북한은 이 모든 외교적 약점들을 감수하고도 핵개발에 집착했다.
2006년 10월 9일 1차 핵실험 폭발은 북한이 이 기나긴 기간 동안 집착해온 핵개발의 결과물이자 산물이었다. 하지만 당시엔 성과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1차 핵실험은 당시 결정적인 오류를 남겼다. 바로 핵실험에서 비롯된 유출 성분이 아무런 필터링 없이 그대로 외부로 빠져나갔던 것이다. 이는 1차 핵실험 당시 북한의 차폐기술이 부족했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차폐기술이란 핵실험 이후 여러 가스를 비롯한 유출 성분이 밖으로 나오지 않게 하는 기술을 의미한다.
미국을 비롯한 주변국은 한반도 주변 상공에 정밀 감지기술을 탑재한 항공기를 띄웠다. 이 과정을 통해 당시 핵실험에서 유출된 제논 등 방사성 가스성분을 회수했다. 이 때문에 미국 등 주변 국가는 당시 북한의 1차 핵실험 방식(플루토늄 추출), 규모 및 기술수준 등을 거의 완벽하게 가늠할 수 있었다.
이 대목에서 당시 김정일은 핵실험 성공에 대한 관계자들의 노고 치하와는 별개로 노발대발했다고 한다. 특히 지하핵실험 차폐기술 관계자에게는 그 문제점에 대해 심하게 문책했다. 당시 이를 기획한 핵심조직인 북한 핵물리연구소와 방사선방호연구소에 대해 특히 그러했다. 이러한 과정 상 오류 속에서 보다 전문적이며 긴밀한 프로세스를 구축할 별도의 특수조직에 대한 필요성이 북한 내부에서 제기됐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바로 지금의 216연구소다.
필자가 입수한 관련 내부보고서에 따르면 216연구소는 1차 핵실험 직후인 2006년 12월경 신설됐다. 올해로 신설 10년을 맞이하는 상황이다. 그 조직의 성격은 물론 존재까지도 철저하게 비밀 사항이다. 기본적으로 216연구소는 기존의 핵물리연구소를 전신으로 한다. 앞서 밝혔듯 해당 연구소의 1차 목표는 1차 핵실험에서 문제시됐던 차폐기술의 오류 등 난제들을 극복하고 개발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고자 함에 있었다.
이렇게 탄생한 216연구소는 현재 기준으로 북한의 핵개발 과정과 기획을 진두지휘하는 헤드쿼터이자 컨트롤타워 조직의 성격을 띠고 있다. 전신 조직은 영변 핵시설 내 위치했지만 216연구소 조직 이후 국방위원회 본부로 이관됐다. 현재 216연구소는 평양시 중구역 창광동에 위치한 국방위원회 본관 내부에 본부를 두고 있다. 편제 역시 국방위원회 직속 산하 기관으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보통 연구소 소속 구성원들은 국방위원회 정치국에서 당 생활을 하고 있으며 중앙당의 군수공업부에서도 어느 정도 관여하는 것으로 보인다.
컨트롤타워 조직 특성상 규모는 그리 크지 않다. 소속 조직원들은 30명 안팎으로 파악된다. 연구소는 북한 내 관계 분야를 전공한 석사 및 박사 급 연구위원들이 주를 이룬다. 이들은 체제 방위와 관련한 최고 중요도의 기밀시설과 자료를 다루기 때문에 북한 내에서도 상당히 특수한 취급을 받는다. 216연구소 연구원들은 북한 내 최고 기밀사항이라 할 수 있는 핵시설을 아무런 통제 없이 드나들 수 있는 유일무이한 조직원들이다. 그 중 일부는 북한 핵시설의 각종 설계도를 비롯한 기밀자료를 직접 기획하고 다룬다.
풍계리 핵실험장을 비롯해 북한 핵시설을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131지도국(원자력총국)조차 216연구소의 지도 및 지휘를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진은 풍계리 핵실험장 위성사진. 연합뉴스
앞서 필자가 언급한 ‘특수한 취급’이란 상반된 두 가지 성격을 모두 내포한다. 최고의 대우와 함께 반대로 현미경과 같은 촘촘한 감시를 받게 된다는 뜻이다. 내부 자료에 따르면 216연구소 소속 연구원들은 김정은으로부터 평양 창전거리에 위치한 신식 아파트 입주권을 선물 받았다고 한다. 이뿐만 아니라 해당 연구소 연구원들의 집 내부에는 김정일과 김정은으로부터 받은 각종 생활용품과 집기들이 가득하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그만큼 216연구소 조직원들에 대한 감시체계는 타 조직원들과 비교해도 아주 유별난 편이다. 이들에 대한 감시 임무를 맡은 별도의 조직원들이 존재하며 거의 실시간 일거수일투족이 기록되는 보고 시스템이 운영된다. 여기에는 당연히 그들의 가족들도 포함된다.
주목할 점은 이 216연구소와 131지도국과의 관계다. 북한의 핵개발과 관련해 그나마 외부에 알려진 기관이 131지도국이다. 원자력총국으로도 불리는 131지도국은 사단급 규모(산하에 여단 급 부대 3개와 기타 연대 및 대대 급 부대들이 편제돼 있다. 어림잡아도 대략 2만여 명 규모의 큰 조직이다)로 구성된 북핵 핵개발의 주요기관으로 유명하다. 131지도국은 현재 풍계리 핵시설의 관리 및 운영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고 있는 몸통 기관으로 지목되고 있다. 아직 풍계리 핵시설 운영주체에 관해서는 이견이 존재하지만 여러 정황상 131지도국이 이를 수행하고 있을 가능성이 지금으로서는 가장 높다.
확실한 것은 이 131지도국이 전적으로 216연구소의 지휘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131지도국의 책임자는 중장급 인사로 파악된다. 앞서의 216연구소의 연구소장도 같은 중장급 인사다. 하지만 서열에 있어서 같은 중장급 인사라 하더라도 216연구소의 연구소장이 131지도국장에 비해 훨씬 월등한 것으로 전해진다. 216연구소는 131지도국을 밑으로 둔 명실상부 북핵 최고 상부기관인 셈이다.
한편 최근 북한의 잇따른 핵실험 속에서도 또 한 가지 주목받고 있는 북한의 핵기술 중 하나가 차폐기술이다. 최근 북한의 핵실험 뒤에도 주변국은 지난 1차 핵실험과 달리 여러 정보를 담고 있는 유출 성분 채취가 상당히 어려워지고 있다. 내부 자료에 따르면 216연구소의 시작이 바로 차폐기술의 오류에서 비롯된 만큼 연구소 조직 이후 무엇보다 해당 기술의 발전이 가장 큰 성과로 나타났다는 분석이다.
이윤걸 북한전략정보서비스센터 대표
정리=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김정은이 직접 참여 ‘핵안전관리소조’ 어떤 곳? 필자는 216연구소와 관련한 내부정보를 입수하는 과정에서 북한 최고위급 지도자들이 직접 참여하는 별도의 북핵 관련 회의기구가 존재한다는 사실 역시 파악할 수 있었다. 바로 북한군 최고사령부 내 ‘핵안전관리소조’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는 회의기구다. 그 참여인사들만 놓고 본다면 그 어떤 북한 내 회의기구와 견주어도 화려하다. 여기에는 김정은이 소조 좌장으로 직접 참여하며 대부분의 최고위급 간부들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 해당 소조가 실질적으로 상설기구로서 역할을 다하고 있는지 아니면 그저 형식상의 비상설기구인지에 대해선 좀 더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다만 소조 참여 구성원들을 놓고 유추해 본다면 북핵과 관련한 개발 문제와 외교적 문제를 포함해 큰 틀에서의 의사결정을 집행하는 기관으로 유추가 가능하다. [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