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경기가 위기 그 부담마저 즐긴다
▲ 지난해 9월 아시안컵 예선 이란전에서 활약하는 박지성. | ||
그런데 그 어떤 화려한 ‘추임새’가 없어도 이름만으로 존재감이 드러나는 선수가 박지성이다. 맨유라는 세계적인 유명 클럽에서 퍼거슨 감독으로부터 인정받으며 성장하고 있는 박지성은 영국에 진출한 다른 ‘국가대표 3인방(이영표 설기현 이동국)’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가운데서도 꾸준히 출전 기회와 시간을 늘리며 ‘맨유맨’으로 입지를 굳혔다.
얼마 전 오른 무릎 부상으로 잠시 그라운드에서 벗어나 휴식을 취하고 있는 박지성과 <일요신문> 창간 15주년 특별 인터뷰를 가졌다. 인터뷰는 이메일로 진행됐는데 부상의 혼란스러움에도 불구하고 박지성은 많은 질문들에 성실한 답변과 진솔한 내용으로 ‘창간 축하 선물’을 대신했다. 축구 선수 박지성과 스물여섯 살 청년의 색다른 느낌을 전하는 자연인 박지성의 두 가지 모습이 인터뷰 속에 녹아 있다.
―이전 네덜란드 에인트호번 시절 <일요신문>에서 2년여에 걸쳐 ‘박지성의 네덜란드 일기’를 진행했었다. 그 일기를 읽어 봤었나.
▲물론 읽어 봤다. 하나도 빠짐없이 읽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힘들었던 시기였는데 그래도 상당히 재미있게 읽었다.
―공인의 어려움을 느낄 때가 있나. 요즘 워낙 인터넷이 발달돼 있어서 자칫 잘못하면 구설수에 오르기 쉽지 않은가.
▲나도 같은 사람인데 다른 사람들이 하는 평범한 행동들을 할 수 없을 때 가장 불편하다. 그리고 인터넷의 반응은 거의 신경을 안 쓴다.
―이전에는 스포츠신문 1면을 장식하는 스캔들이 아주 가끔 났었다^^. 그런데 요즘은 너무 뜸하다. 있든 없든 뭐가 좀 터져야 하는 나이 아닌가.
▲나이로 따지면 나보다 더 터져야 할 사람이 많을 것 같은데…^^. 그리고 내가 만나는 사람이 공인이 아니라면 1면을 장식하기에는 모자라지 않나. 언론 입장에서 본다면 그럴 것 같은데 아닌가?
―최근에 소개팅 받은 적이 있나(물론 한국에서).
▲예전에는 가끔 소개팅을 받기도 했었다. 그런데 요즘에는 나한테 소개시켜 주기가 부담스럽다고 한다^^. 친구들도 관리 못한다고 잘 해주지 않으려고 한다.
―나만을 바라보고, 나만을 사랑해주는 여자친구의 존재가 가장 절실할 때가 언제인가.
▲내가 힘들 때. 친구의 도움도 필요하지만 힘들고 외로울 때는 이성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걸 느낀다.
―한국에 들어오면 경기 외의 시간에, 아님 휴가 때 어떻게 보내는지 궁금하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를 많이 꺼려했었다. 그래서 만나던 사람들과 같이 밥 먹고 차 마시고 남들처럼 지낸다. 하지만 이젠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도 가질 생각이다.
―지난 번 우루과이전을 앞두고 귀국했을 때 귀국하자마자 미용실에 갔었나. 영국에도 미용실이 있을 텐데 한국의 단골 미용실을 이용하는 이유는.
▲물론 갔었다. 한국에 가면 가장 먼저 찾는 곳 중의 하나다. 물론 전담 헤어 디자이너가 있다. 2002년 월드컵 이후부터 나의 머리를 책임지고 있다. 모든 헤어스타일은 디자이너 분이 알아서 해 주신다. 그리고 영국은 동양 사람 머리를 잘 못한다^^.
―유명 스포츠 스타들이 청담동 부근의 미용실을 이용하는 걸 두고 색안경을 끼고 보는 이들도 있다. 혹시 그런 오해를 받은 적이 있었나.
▲글쎄… 지금까지는 그런 일 없었다.
(박지성의 청담동 미용실 이용을 반대하는 사람이 딱 한 명 있다. 바로 박지성의 아버지 박성종 씨다. 박 씨는 ‘남자는 이발소에서, 여자는 미용실에서’ 머리를 해야 한다는 보수적인 사고를 갖고 있다. 하지만 축구 선수의 헤어스타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는 박지성은 아버지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특히 박 씨는 미용실이 스캔들의 온상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아들의 미용실 출입을 달가워하지 않지만 박지성 자신이 스캔들이 날 일을 만들지 않는다는 게 미용실 관계자의 전언이다)
―최근 영화배우 유해진 씨가 박지성 선수와 닮았다고 해서 화제가 됐다. 혹시 그 연기자를 알고 있는가. 인터넷을 통해 사진을 본 적이 있는지, 있다면 정말 자신과 닮았다고 생각하는지 알고 싶다.
▲물론 알고 있다. 그 분이 영화 <주유소 습격사건>에 나올 때부터 알게 된 것 같다. 친구가 그 영화를 보고 나랑 닮았다고 했다. 실제로 한 번 뵌 적이 있었는데… 나랑 정말 닮은 것 같다^^.
▲ 박지성이 세계 최고 클럽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점점 자신의 입지를 굳혀가고 있다. 지난 3월 26일 출국하기 전 <일요신문> 창간 15주년 축하 사인을 하는 모습.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물론 알고 있다. 그런 일이 있으면 주변 사람들이 잘도 나에게 알려 준다^^. 송윤아 씨 같은 분이 여자친구라면 남자라면 누구나 좋아하지 않겠나. 나 역시도 그렇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너무나 많은 관심을 받게 될 것 같다. 난 그런 관심은 부담스럽다.
―팬도, 기자도 모르는, 자신만 아는 일이라는 단서를 달아보자. 혹시 맨유 입단 후 스스로 위기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나. 있다면 언제인가.
▲솔직히 말해서 매 경기, 매 시간이 나에게는 위기다. 여기는 최고의 선수들이 모여 있다. 언제나 그만큼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부담스럽지만 지금은 그 부담마저 즐기고 있다.
―자신이 아무리 ‘산소탱크’라고 해도 유럽 선수들을 따라갈 수 없다고, 분명 한계가 있다고 느낀 적이 있는가.
▲그런 건 없다. 우리나라도 어릴 때부터 체계적인 훈련과 시스템만 갖고 있다면 그들을 넘어설 수도 있다. 그리고 축구는 체격으로만 하는 운동이 아니지 않은가.
―듣기에는 영국 출신의 선수들과 그 외의 나라에서 온 선수들 사이에 거리감이 있다고 하더라. 실제로도 그런가.
▲글쎄 잘 모르겠다. 조금은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설기현 선수는 이전 벨기에 시절 동료들로부터 인종차별을 받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박지성 선수는 어떤가.
▲솔직히 그런 거에 둔해서 잘 모른다. 있을 수도 있었겠지만 모두 다 내가 못해서 그러려니 했다.
―일본 네덜란드 영국을 거쳐 왔다. 대학 이후 줄곧 외국에서만 살았는데 외국에서, 아니 외국팀에서 살아남는 노하우가 있다면….
▲운동만 잘하면 누구나 살아남을 수 있다. 그리고 얼마나 환경에 잘 적응하느냐가 아닐까. 생활이 적응이 안 되면 아무래도 운동장에서 심적으로 편하게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없게 되니까 말이다.
―어느 종목에서나 선구자 역할을 하는 선수는 다른 대접을 받게 된다. 미국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박찬호, 골프의 박세리 등등. 박지성 선수도 마찬가지다. 프리미어리그에 첫 깃발을 꽂았고 이후 한국 선수들의 프리미어리그 진출이 활발해졌다. 이런 현상에 대해 어떻게 보나.
▲당연히 너무나도 좋다. 한국선수들이 유럽의 좋은 리그로 진출하는 것은 한국 축구 발전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앞으로 더 많은 선수들이 더 많은 리그로 진출하기를 바라고, 나 역시도 꾸준히 좋은 모습으로 한국선수에 대한 이미지를 업그레이드시키고 싶다.
―기자들은 박지성 선수의 주전 자리나 선발 출전에 대해 집착한다. 정작 본인은 어떤가. 이전 맨유 입단 초에는 단 1분을 뛰더라도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을 했었다. 지금도 그 마음에는 변함이 없나.
▲물론 변함은 없다. 하지만 축구선수로서 더 많은 시간 경기장에 있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다 같다. 나 역시 그렇기 때문에 조금씩 더 많은 경기에 더 많이 출전하려고 노력한다.
―외국에서 생활하다 대표팀에 합류하는 생활의 반복이었다. 세월의 흐름처럼 대표팀 생활에도 많은 변화가 있을 것 같다.
▲글쎄 특별히 변한 건 못 느끼겠다. 가장 큰 차이점은 장비 담당 역할을 안 하는 것^^. 내가 처음 대표팀에 합류했을 때는 장비 담당이 없어 훈련 끝나면 장비 챙기는 게 일이었다. 그리고 갈수록 후배들이 많아져 이젠 밑에서 세는 것보다 위에서부터 세는 것이 더 빠르다^^.
▲ 이번 시즌 프리미어리그 경기 모습. 로이터/뉴시스 | ||
▲우선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문제가 있었다면 우린 월드컵 4강에 들지 못했을 것이다. 각 시기마다 구성되었던 팀의 문제점은 있었겠지만 지금까지 계속 이어지는 문제점은 없다고 생각한다.
―같은 운동선수지만 운동선수가 보기에도 너무나 매력적인 선수가 있는가. 한국, 외국 상관없다. 이유도 말해주면 고맙겠다.
▲외국선수는 제외하고 한국선수 중에는 김남일 선수! 이유는 카리스마가 느껴지지 않는가^^.
―이전에는 ‘내 집’이 없을 때도 있었다. 얼마 전 부모님께 좋은 집을 사드렸다고 해서 화제가 됐었다. 지난 번 귀국해서 처음 가봤을 텐데, 글쎄 ‘집’에 대한 박지성 선수의 추억이나 사연이 있다면….
▲어릴 때 주택에서 아파트로 이사를 갔었다. 그런데 난 어머님께 다시 주택으로 가자고 졸랐다. 어머니도 가끔 그 얘기를 하신다. 난 그냥 주택이 좋다. 보통 남자들은 차를 좋아하는데 난 차보다는 집이 좋다.
(박지성은 올 초 자신을 위해 헌신적으로 뒷바라지를 해주신 부모님께 36억 원 상당의 최고급 전원 주택을 선물했다. 수려한 자연경관과 고급 시설을 갖춰 수원의 ‘베벌리힐스’라고 불리는 경기도 용인시에 위치한 ‘노블힐스’는 박지성 집으로 알려지면서 내외부 모습이 담긴 사진들이 인터넷을 통해 인기 검색 순위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집 명의는 부모님이 아닌 박지성이다.)
―FS코퍼레이션에서 JS리미티드로 에이전트사가 바뀌면서 많은 잡음이 있었다. 지금까지 그 부분에 대해선 박지성 선수가 별다른 멘트를 하지 않았다. 자신을 둘러싼 이해 관계와 다툼에 대해 많은 안타까움이 있었을 것 같은데….
▲글쎄 나 역시도 보통 사람과 똑같다. 모든 사람들이 만났다가 헤어진다. 오랜 전부터 잘 지켜오던 우정이나 사랑이 깨지기도 한다. 다만 난 축구선수로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것이 다를 뿐이다. 그래서 일이 더 커졌겠지만…. 사람이 헤어질 때는 물론 한 사람만의 잘못도 있겠지만 두 사람이 서로 잘못을 하고 오해를 해서 헤어질 때도 있다. 헤어지는 것은 언제나 슬프다. 하지만 다시 새로운 좋은 사람과 만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2006 독일월드컵 전에 <멈추지 않는 도전>이란 책을 내서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다. 다음에 책을 낼 계획이 또 있나. 있다면 그 책에 꼭 넣고 싶은 이야기들은 무엇인가.
▲솔직히 한 번 더 내고 싶다. 내가 축구선수로서 인생을 마칠 때 그때까지의 모든 이야기들을 담은 책을 내고 싶다. 두께가 상당히 두꺼울 것 같지만^^.
―너무나 이른 질문이다. 운동 선수의 끝을 어디서 보내고 싶나. 보통 마무리할 때가 되면 한국에 들어오거나 아니면 어학 연수 차원에서 호주, 미국 등에 가기도 했던 게 선배들의 사례다.
▲아직 생각해 보지 않았다. 유럽에서 마무리할지 한국에서 할지 아님 제 3국이 될지 모르겠다. 그때 가봐야 알 수 있지 않을까.
―유소년 축구에 대해 많은 관심이 있다고 들었다.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은퇴 후 가고자 하는 길이 지도자인가.
▲구체적으로 계획을 갖고 있지는 않다. 난 현재 축구선수가 최우선이지 다른 것이 최우선이 될 수는 없다. 하지만 전체적인 그림은 유럽의 시스템을 얼마나 한국문화에 맞게 바꿔서 어린 선수들에게 유럽의 선수들과 같이 자유스럽고 체계적인 교육을 받게 하느냐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난 지도자가 될 생각이 없다. 그렇다고 축구계를 떠나지는 않는다, 난 평생축구인이니까.
―마지막 질문이다. 너무 많은 걸 물어봐서 미안하다. <일요신문>이 창간 15주년을 맞았다. 독자들에게 인사를 전한다면?
▲(정말 많은 질문들이었다^^) 먼저 창간 15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앞으로도 사람들에서 좋은 기사, 좋은 지식과 정보를 주기 바라며 전문성 있는 칭찬과 비판의 기사를 볼 수 있기를 애독자의 입장에서 바란다.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