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학규 ‘구원 등판론’ 안철수 ‘충청 대망론’…‘문’ 삐걱대자 ‘불펜투수’ 주가상승
게다가 하산한 손학규 전 민주당 상임고문은 10월 19일 정계복귀를 전격 선언했다. 야권은 두 갈래 길에 놓였다. 하나는 ‘문재인 대세론’의 불씨 살리기다. 다른 하나는 ‘문재인 대안’ 찾기다.
회고록 파동 직전까지만 해도 민주당 주류 세력 내부에서 ‘문재인 필패론’은 일종의 ‘금기어’에 가까웠다. 그러나 회고록 파동 이후 야권 곳곳에서 문 전 대표의 대안 물색에 나서며 ‘대권 베팅’ 준비에 나선 기류가 감지된다. ‘문재인 대세론’과 ‘문재인 대안 찾기’의 숨바꼭질이 시작됐다는 얘기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정치에서 대안론은 필패론의 반작용이다. ‘문재인 대안 찾기’의 수수께끼를 풀려면 ‘송민순 회고록’ 파동에서 불거진 문 전 대표의 아킬레스건을 먼저 해부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번 파동은 지난 2007년 말 참여정부가 유엔(UN)의 북한인권결의안 기권 결정 과정에서 북한에 의중을 타진했고, 이 과정에 문 전 대표가 깊숙이 개입했다는 게 핵심이다.
문 전 대표는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이었다. 송 전 장관은 10월 18일 서울 삼청동 북한대학원대학교 출근길에서 “다 사실”이라며 자신의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이에 문 전 대표는 북한에 사전 통보 여부는 함구한 채 “가장 앞선 제가 두려워서 생긴 일”이라고 정면 돌파에 나섰다.
문 전 대표의 약한 고리는 친노(친노무현) 패권주의를 비롯해 참모형 리더십, 호남 비토론 등이다. 친노 패권주의 등 그림자 권력이 ‘집권 이후’의 문제라면, 참모형 리더십 등은 ‘집권 전’ 선거의 승리 셈법과 직결한 문제다. 2012년 대선 때도 ‘노무현 유산’에 갇힌 그는 9부 능선을 넘는 데 실패했다. 야권 지지층이 바라는 ‘비욘드 노무현’(노무현 전 대통령을 뛰어넘는 것)이 아닌 ‘어게인 노무현’(다시 노무현)에 그친 결과는 참혹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문 전 대표는 회고록 파동 과정에서 오락가락했다. 10월 14일 송 전 장관의 <빙하는 움직인다-비핵화와 통일외교의 현장> 회고록 출간 직후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을 향해 “종북 타령이냐”고 맞받아쳤으나, 정작 논란의 핵심에 관해선 유구무언했다.
이런 가운데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과 김만복 전 국가정보원 원장 등이 “문 전 대표가 (애초 결의안) ‘찬성’ 의견을 피력했다”고 하자, 17일 “솔직히 그 사실조차 기억이 잘 안 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은 “유체이탈 화법”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당 내부에서조차 스텝 꼬인 문 전 대표의 행보에 대해 “당이 엄호 사격했는데, 김이 새버린 격”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은 “당시 비서실장이었던 문 전 대표가 안보 문제를 풀어내지 못한다면, 논란이 장기화될 수 있다”며 “당시 입장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차기 대선주자로서 현재의 입장”이라고 꼬집었다.
이번 파동이 문 전 대표에게 뼈아픈 이유다. 친노에 갇힌 문 전 대표 포지션은 비단 리더십에서 그치지 않는다. 대선 승리에 대한 회의감에서부터 친노계의 아킬레스건인 ‘불안 코드’를 가중한다. 지난 4·13 총선에서 호남 민심을 안철수 전 국민의당 상임 공동대표에게 뺏긴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새누리당 한 의원은 이 모든 문제를 “친노의 한계”로 정의 내렸다. 여권 중진 의원실 관계자도 문 전 대표의 오락가락 행보에 대해 “뭔가 불안하다는 최대 약점이 드러난 것”이라며 “경제행보에 깔린 중도층 포섭전략과 부딪힐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의당 한 의원도 “저쪽에서 계속 말을 바꾸는데 어쩌라는 것이냐”라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민주당 주류인 친노계의 속내는 복잡하다. 8·27 전당대회 당시부터 정치권 안팎에서 제기된 ‘이래문(이래도 문재인·저래도 문재인)=필패’ 상황에 직면해서다. 이로써 야권 내부에서 ‘문재인 대체재’ 찾기에 대한 욕구가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송민순 회고록’ 파동에서 문 전 대표의 대응에 아쉬움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묻지마식 친노 비호’ 등 참모형 리더십에서 벗어나지 못한 문 전 대표가 1997년과 2002년 대선 등 두 번의 대선에서 연거푸 무너졌던 ‘이회창 대세론’의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일각에선 이번 파동이 친노 지지층의 결집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반론도 나온다.
다만 송민순 회고록 파동이 ‘문재인 대안론’의 물꼬를 튼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첫 번째 관전 포인트는 ‘손학규 구원등판론’이다. 중도층 포섭에 비교우위를 가진 손 전 고문은 10월 19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계복귀를 공식 선언했다. 2014년 7월 31일 정계은퇴를 전격 선언한 지 2년 2개월 만이다.
애초 손 전 고문은 지난 4·13 총선에서 복귀시기를 놓치면서 ‘한계론’에 휩싸였지만 회고록 파동을 역이용, 대안 주자로 급부상했다. 손 전 고문 역습이 시작된 셈이다. 정치권 안팎에선 송 전 장관이 2011년 손 전 고문의 대선특보단 구성 때 참여한 전례를 들어 정치적 노림수가 있는 게 아니냐는 얘기도 흘러나오지만, 회고록 당사자는 부인하는 상황이다. 송 전 장관은 2008년 손 전 고문이 민주당 대표 시절 비례대표에 발탁, 원내 입성에 성공했다.
손 전 고문이 사실상 차기 대권 도전을 천명함에 따라 제3지대 정계개편이 본격화할 전망이다. 민주당 내 10여 명에 달하는 손학규계 결집은 물론, 안철수 전 국민의당 상임 공동대표와 김종인 전 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등 반문(반문재인) 연대의 불씨가 타오를 수 있다는 얘기다. 문 전 대표의 아킬레스건인 중도 무당파 포섭과 안정성을 고리로 ‘야권 대안론’으로 부상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셈이다.
하지만 ‘손학규 대안론’의 파괴력은 여전히 물음표다. 친노계 의원실 보좌관은 “정치적 상황에 따라 위협적이 될 것”이라고 말했지만, 비노(비노무현)계 한 의원은 “지켜보자”며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충청 대망론’의 안희정 충남도지사 주가도 치솟고 있다. 지난해 이른바 ‘성완종 게이트’가 정국을 강타할 당시 여의도에선 ‘당권 문재인-대권 안희정’ 카드가 심심치 않게 제기됐다. 50대 기수론의 핵심인 그는 ‘원조 친노’다. 다만 문 전 대표와는 정치적 결을 달리하면서 친노 분화의 마중물 역할을 했다.
안 지사의 최대 강점으로 ‘비욘드 노무현’을 실현할 적임자라는 점이 꼽힌다. 그는 “김대중과 노무현이 못다 이룬 역사를 완성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통합과 협치를 통해 세대를 넘어 시대·세력 교체를 시대적 과제로 내세웠다. 친노(세력)·2040(세대)·충청(지역)·중도진보(이념) 등에서 강한 소구력을 갖췄다는 평가다.
안 지사도 10월 17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문 전 대표를 향해 “본인이 정치 지도자가 되겠다는 결심으로 이 길에 들어선 것이 아니라 부산을 대표하는 인물로 ‘병풍’이 돼주겠다는 생각에 등 떠밀려 정치를 시작했다”며 “한 나라의 지도자가 되겠다면 그 이상의 자세가 필요하며 스스로에 대한 깊은 고해성사가 필요하다”고 대립각을 세웠다. 새누리당 한 관계자도 “문 전 대표의 최대 적은 안 지사”라고 잘라 말했다.
특히 ‘노무현의 사람’인 이병완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안 전 지사를 돕기로 하면서 조직력을 보완할 수 있는 판을 만들 수 있게 됐다. ‘충청권 대망론’의 안 지사와 ‘호남’에 연고지를 둔 이 전 실장의 결합으로, 중원 공략과 호남에 퍼진 반문(반문재인) 정서의 반사이익을 꾀할 것이란 분석도 제기된다.
안 지사의 우군은 이 전 실장을 비롯해 박수현 전 민주당 의원과 김종민·조승래 의원, 여택수 전 청와대 비서관 등이다. 범주류 한 관계자는 “친문(친문재인)이 아닌 범친노 인사들이 안 지사를 염두에 둘 수도 있다”고 전했다. 반면 민주평화국민연대(민평련) 소속 한 의원은 “국회의원을 먼저 하는 게 순서”라며 “지사와 대통령직 수행은 차원이 다른 문제”라고 잘라 말했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김부겸 민주당 의원, 이재명 성남시장 등도 관심사다. 회고록 파동에서 이들은 긍정적으로도 부정적으로 부각되지 못하면서 이해득실은 제로에 가깝다는 게 대체적 평가다. 다만 야권 발 정계개편의 1차 진원지가 ‘문재인 필패론’, ‘문재인 불가론’ 등에서 촉발한다면 중도층 포섭을 비롯해 지역적(박원순 서울, 김부겸 대구·경북 등) 강점 등을 앞세워 다크호스로 떠오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박 시장은 서울시장 재선으로 한때 지지율이 20%를 상회했고, 김 의원은 영남 텃밭인 대구·경북의 여권 분열을 꾀할 수 있는 후보다. 친노 지지층에선 이 시장을 차차기 후보로 꼽는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송민순 회고록’ 파동으로 차기 대권이 시계 제로에 빠진 형국”이라고 말했다.
윤지상 언론인
국민의당 ‘양비론’ 노림수? 민주당과 차별화 전략 ‘송민순 회고록’ 파동에서 국민의당이 양비론을 앞세워 존재감 부각에 나섰다. 새누리당의 색깔론 공세에는 적극 방어하면서도 친노(친노무현)계 좌장인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대선후보 자격 문제를 거론하는, 이른바 ‘양 날개’ 전략이다. 이는 회고록 파동이 제2의 북방한계선(NLL) 논란으로 치닫는 상황에서 ‘거리 두기’를 통해 양측의 치킨게임에 말려들지 않겠다는 의도로 분석된다. 거대 양당(새누리당과 민주당)의 원색적인 비난전이 ‘차별화 전략’으로 이어질 것이란 판단도 양비론 전략에 한몫한다. 또한 정계복귀를 선언한 손학규 전 민주당 상임고문 등의 입당 공간을 넓혀주려는 의도도 깔렸다. 실제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는 10월 19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말 바꾸기’ 논란에 휘말린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를 향해 “대통령 후보를 꿈꾸는 사람으로서 위기관리 능력과 리더십 문제에 대해 강한 의구심을 가진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그러면서도 새누리당과 청와대를 향해 “시도 때도 없이 색깔론으로 계속 매도하려는 건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고 날을 세웠다. 앞서 국민의당은 청와대 비선실세 개입 의혹인 ‘미르·K스포츠’ 재단 설립 과정에서 ‘박근혜 대통령 사저 의혹’을 제기, 민주당보다 결정력 측면에서 우위를 점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제3당이 ‘미르·K스포츠’ 재단 등을 놓고 대통령 퇴임 이후를 위한 청와대와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대기업 간 삼각 고리의 축이라고 공격하자 새누리당은 국민의당을 향해 “민주당 2중대”라고 맹폭격을 가한 것이 대표적이다. ‘송민순 회고록’ 국면에서도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002년 5월 미래한국연합 대표 자격으로 방북, 김정일 당시 국방위원장과 회담한 내용을 공개할 수도 있다고 엄포를 놨다. 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사드·THAAD) 논란 당시에도 민주당이 ‘전략적 모호성’을 띠자, 국민의당은 사드 반대 당론을 앞세워 새누리당과 민주당을 동시에 압박했다. 당의 한 관계자는 “민주당과의 차별화 행보는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국민의당의 이 같은 ‘전략적 줄타기’는 향후 당의 앞길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민주당 한 의원은 “국민의당이 당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지 않는다면, 차기 대선 과정에서 야권 지지층도 중도층도 포섭하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당의 존재감 부각 극대화 여부는 10월 25일 김종필(JP) 전 국무총리와의 회동이 결정할 전망이다. 국민의당 핵심 관계자는 “JP가 안 전 대표를 좋게 보고 있다”고 귀띔했다. [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