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부와 제자 알쏭달쏭한 ‘이인삼각’
▲ 지난 6월 19일 이해찬 전 총리의 대선 출마 기자회견 모습. 친노 대표주자를 놓고 경쟁을 하게 된 유시민 의원과의 관계 재정립이 주목받고 있다. | ||
현재 친노세력 가운데 사실상 출사표를 던진 인물은 이해찬 한명숙 전 총리, 김혁규 신기남 유시민 의원을 들 수 있다. 이 가운데서도 특히 주목을 받고 있는 인물은 ‘정치적 사제지간’이라는 이해찬 전 총리와 유시민 의원이다.
이해찬 전 총리는 이미 손학규 전 경기지사,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과 함께 범여권 ‘빅3’라 불리며 나름대로의 지분을 확보하고 있다. 정치 경력으로나 지명도로나 범여권의 대표주자가 되기에 모자랄 것이 없다. 반면 유 의원은 이 전 총리에 비하면 대중성에서 한참 밀리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유 의원에게는 바로 이 대중성에서 밀린다는 것이 장점인지도 모른다. 친노그룹에 대한 충성도 면에서 높은 점수를 받고 있는 것이다.
일반 국민들을 대상으로 한 지지율 조사에서 이 전 총리나 유 의원이나 아직 1% 전후로 오차범위를 감안한다면 차이를 말할 단계는 아니다. 범여권 후보로 누가 적당한지를 묻는 질문에 손학규 27.2%, 정동영 9.0%, 한명숙 5.4%, 이해찬 5.1%, 유시민 4.4%의 지지로 유 의원이 다소 밀렸다. 그러나 열린우리당 지지층만 본다면 손학규 31.6%, 정동영 19.9%, 유시민 12.1%, 이해찬 5.7% 순이었다(지난 14일 실시한 동아일보와 코리아리서치센터 조사 결과). 한마디로 열린우리당 내에서는 유시민 의원이 이해찬 전 총리에 비해 꿀릴 것이 전혀 없다는 얘기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친노 인사들은 지금 ‘이해찬이냐, 유시민이냐’를 놓고 주판알을 튕기고 있다. 대통합이 속도를 내면서 친노세력을 포함하느냐를 놓고 범여권의 논쟁은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친노세력으로서는 살 수 있는 길은 무엇인지가 최대의 관심사다. 즉 누가 친노그룹을 살릴 수 있느냐가 초점인 것이다. 지금 친노주자들 가운데 한명숙 전 총리나 김혁규 의원은 대통합에 참여한다는 방침이다. 그런가 하면 이해찬 전 총리의 입장은 당대당 통합이면 얼마든지 참여하겠지만 당 해체나 탈당을 통한 참여에는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조금 어정쩡한 입장이다. 범여권의 단일후보를 꿈꾸는 이 전 총리로서는 판단이 쉽지 않다.
여기에 유 의원이 나설 자리가 마련된 것이다. 노 대통령의 마음을 누구보다도 잘 읽는 것으로 알려진 유 의원은 열린우리당 해체에 강력히 반대하며 친노 골수 세력을 등에 업고 이 전 총리에 대해 포문을 열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다. 유 의원이 얼마전 “이해찬 전 총리가 뜨지 않으면 내가 나갈 수밖에 없다” “일 잘하는 사람이 꼭 뽑히는 건 아니지 않으냐. 국민들은 일 잘할 사람만 눈에 두고 선택하는 게 아니다. 그게 현실이다”라고 측근들에게 얘기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 전 총리에 대한 대립각을 분명히 한 것으로 보고 있기도 하다. 이 발언은 특히 대선 출마 선언 이후 지지율이 오르지 않아 고심 중인 이 전 총리의 처지와 맞물리면서 여러 가지 추측을 만들어 냈다. 유 의원이 노무현 대통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출마를 결심했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이 전 총리와 이미 각자의 길을 가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유 의원이 한때 이 전 총리의 보좌관을 한 적도 있지만 현재는 경쟁상태에 있다는 점에서 불가근불가원의 관계이기도 한 것이다.
현재 두 사람 모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노심’이다. ‘노심’이 담긴 친노세력의 지지는 단순히 숫자만으로 얘기할 수는 없는 부분이다. 정통성에 관한 문제다. 만약 두 사람 모두 ‘노심’을 거스른다면 일반 국민들의 지지율이 미약한 상황에서 언제 낙마할지도 모르는 처지에 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최근 손학규 전 경기지사를 비판하고 나선 것도 노심을 업기 위한 움직임과 관련이 있다는 분석이다. 한 여권 관계자는 “노 대통령이 이른바 ‘친노주자’들을 지원할지는 장담할 수 없다. 차기 정권에서의 지분을 노리고 있는 노 대통령이 전략적인 판단을 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노 대통령의 지원을 받는 후보가 손학규 전 지사가 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라고 내다보기도 했다.
그런 움직임과는 정반대로 이 전 총리의 최근 행보 중 눈에 띄는 점은 유 의원과의 거리 좁히기다. 이 전 총리는 지난 18일 대선출마 선언 한 달을 맞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유 의원에 대해 “독자적인 정치인으로 나와 결부시키는 것은 결례”라고 밝혔다. 또한 유 의원의 출마 여부에 대해 “나보다 훨씬 뛰어난 철학가이자 정치인인 만큼 대선 출마를 해도 손색없는 인물”이며 “출마는 유 의원이 알아서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이는 그동안 이 전 총리가 유 의원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을 자제하며 거리감을 두어왔던 것과는 달라진 모습이다.
최근 유 의원의 친누나인 유시춘 전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이 이 전 총리 캠프의 홍보위원장으로 합류한 점도 두 사람의 ‘관계’를 주목케 하는 대목이다. 유 전 상임위원이 이 전 총리를 돕기로 한 것에는 유 의원의 적극적인 추천이 있었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이런 저런 움직임을 놓고 정계 일부에서는 두 사람의 행보가 친노 후보의 지지율을 높이기 위한 방편이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한마디로 이인삼각의 행보를 보이며 적절한 시점에 손을 잡을 것이란 얘기다. 정치권 관계자는 “양 주자를 중심으로 한 친노세력 내부에 모종의 합의가 이뤄진 것일 수도 있다. 유 의원이 당분간 독자적인 입장에서 대선 후보로서의 입지를 만들고 친노세력의 결집을 이뤄간 후 어느 시점에 가서 이 전 총리를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모습을 취할 수도 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현재로서는 유 의원이 ‘이해찬 띄우기’에 나선 것인지 이해찬 전 총리와의 경쟁에 승리해 ‘친노 대선주자’로 나설 것인지 섣불리 장담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열린우리당 사수를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는 그가 어떤 정치적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친노세력들의 경쟁구도도 그 궤를 달리할 것으로 보인다.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