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과 싸워라” ‘심의 전쟁’은 아직 ‘진행형’
▲ 7월 23일 <디 워> 기자간담회에서 심형래 감독이 기자들의 질문을 듣고 있다. <디 워>는 평단의 혹평 속에서도 관객몰이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 ||
요즘 <디 워>의 흥행 열풍을 바라보며 심형래의 지인이 농담처럼 들려준 이야기다. 웃어넘기기엔 뼈가 들어있는 이야기다. <디 워>를 만들 의지와 노력이라면 사법시험 공부도 별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영화 <용가리>의 흥행 참패 이후 <디 워>를 통한 재기까지 심형래가 얼마나 고된 시간을 보내야만 했는지를 말해주는 대목이다. ‘이무기’는 500년마다 나타나는 여의주를 품어야만 ‘용’이 된다고 한다. 심형래도 그만큼이나 힘겨운 인고의 시간을 거쳐 <디 워>라는 여의주를 입에 물었다. 심형래의 ‘승천기’를 살펴본다.
‘신지식인으로 선정됐던 심형래 등 상당수는 그 후 사회적으로 많은 물의를 일으킴. 신지식인으로 선정됐던 면면들의 오늘도 점검해볼 필요.’
지난 2002년 여의도연구소가 작성해 한나라당 의원들에게 배포된 한 보고서에 적혀 있는 문구다. 세계적인 수준의 컴퓨터그래픽(CG) 기술을 선보이겠다는 야심을 갖고 영화 <용가리>를 제작할 당시 심형래는 한국 영화계의 새로운 희망으로 부각됐었다. 이로 인해 신지식인 제 1호로 선정됐을 정도로 각광을 받았던 심형래는 <용가리> 개봉과 동시에 ‘사회적으로 많은 물의를 일으키는’ 대상으로 전락하고 만다.
심형래 본인의 말처럼 <용가리>가 있었기 때문에 <디 워>가 탄생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용가리>로 인한 후유증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다. 수준 이하의 CG와 스토리의 영화라는 <용가리>에 대한 비난 여론으로 인한 마음고생을 채 되새김할 겨를도 없이 각종 송사가 파도처럼 밀려오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송사를 시작한 이는 세종문화회관. 세종문화회관은 지난 98년 <용가리>의 제작사인 ㈜제로나인엔터테인먼트(대표 심형래 현 ㈜영구아트)와 서울 강북지역 독점상영을 계약한 후 99년 7월 독점상영권을 포기하는 대신 예상수익금 8억 7000여만 원을 받기로 계약을 수정한 바 있다. 그런데 제로나인엔터테인먼트 측이 3억 5000여만 원만 건네자 99년 10월 미납금에 대한 소송을 제기한 것. 결국 법원은 ‘세종문화회관에 5억 2000여만 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같은 해 12월에는 <용가리> 제작에 11억 원을 투자한 CKD창업투자가 제로나인엔터테인먼트와 심형래를 상대로 22억 원의 위약금 청구소송을 서울지법에 내 심형래는 부동산까지 압류 당했다. 또한 2000년 9월에는 <용가리> 제작에 3억여 원을 투자한 축산물 가공판매업체 하림이 심형래와 그가 대표이사로 있는 ㈜제로나인엔터테인먼트를 상대로 낸 2억 5000만 원의 채권가압류 신청이 받아들여졌다. 이로 인해 심형래는 부동산에 이어 봉급 수당 상여금 등을 가압류당하게 됐다. 곧이어 <용가리>에 10억 원을 투자했던 경기도 수원시 역시 심형래의 소유 재산에 대한 가압류와 약정금 반환청구 소송을 법원에 내는 등 <용가리>는 각종 송사를 몰고 왔다.
이렇게 사면초가의 상황에 내몰린 듯 보이는 상황이었지만 심형래는 이에 굴하지 않고 그보다 차기작 구상에 대한 고민으로 더 바쁜 하루하루를 보냈다. 물론 <용가리>를 통해 일정 부분 손해를 봤지만 영구아트무비를 만들면서 들어간 투자비용도 포함된 만큼 미래를 위한 무형의 재산을 쌓았다는 데 더 큰 의미를 뒀다.
그러나 이에 그치지 않고 2001년 7월에는 느닷없이 회사 직원 A 씨가 ㈜영구아트의 회사공금 15억여 원을 횡령한 사건이 벌어져 검찰 수사가 시작됐다. 심형래는 참고인 자격으로 조사를 받았지만 A 씨가 비자금을 조성하라는 심형래의 지시를 따랐을 뿐이라고 주장해 의혹의 눈길을 받아야 했다. <용가리>의 여파는 2002년까지 계속돼 광고대행사 ㈜애드무비가 ㈜제로나인엔터테인먼트를 상대로 제기한 광고비 미지급금 청구 소송에서도 패소했다. 이렇게 각종 송사에 휘말려 구설수가 끊이지 않으며 심형래는 추앙받는 신지식인에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인물로 전락했다.
▲ 지난 2003년 심형래 감독이 회사 방문객들에게 영화 <디 워> 제작과정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 ||
당시 <일요신문>은 양평동 사옥에서 심형래와 인터뷰를 갖고 쌍방울과의 송사에 대한 입장을 들을 수 있었다. 당시 쌍방울은 건물 매각을 위해 ㈜영구아트 측에 임대재계약 의사가 없으니 건물을 비워달라고 요구해 왔으나 ㈜영구아트는 계속해서 재계약을 원해 타협점을 찾지 못한 것. 결국 쌍방울은 건물을 매각했으나 ㈜영구아트가 회사를 이전하지 않자 임대료 장기 체납과 무상 점유 등의 이유로 소송을 제기했던 것이다. 이에 대해 심형래는 “<디 워>의 미니어처가 90% 이상 완성돼 반드시 촬영을 이곳에서 해야 한다”면서 “다른 장비는 몰라도 미니어처는 이전할 경우 파손될 우려가 높아 <디 워> 촬영이 끝날 때까지는 사정을 봐달라는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또한 수억여 원의 임대료를 연체한 것이 회사의 자금난 때문이라는 시각에 대해서도 “이미 <디 워>에 100억여 원 이상이 투입됐고 지금도 투자 의사를 밝히는 곳이 많다”면서 “수억 원의 임대료 연체로 자금난을 겪고 있다고 할 순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소송과 관련된 얘기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자 심형래는 <디 워>에 대한 자랑을 늘어놓았는데 얼굴에 생기가 돌면서 표정이 달라졌다.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우리 자체 기술로 컴퓨터그래픽으로는 제작하기 힘든 장면들을 만들었다”는 심형래는 “영화 <스타워즈>와 <쥬라기 공원>은 게임도 안 된다”고 장담했다.
그러나 시련은 끝나지 않았다. 심형래는 2004년경 입이 돌아가고 마비 증세로 반신이 자유롭지 못할 정도로 어려운 시기를 겪었다. 믿었던 회사 직원의 배신으로 받은 정신적인 충격 때문이었다는데 당시 심형래를 만난 기자는 그 모습이 개그맨 당시 그의 심벌 같았던 ‘바보 영구’ 모습처럼 보여 너무나 안타까웠다고 한다.
그런 상황에서 심형래에게 가장 큰 힘이 되어 준 것은 직원들이었다. 80명의 영구아트 가족들이 회사 한 켠에 세워진 천막동에서 8년여를 동고동락하며 <디 워>를 만들어가고 있었던 것. 같은 해 심형래는 1억 8000만 원을 투자했던 30대 남성 투자자로부터 ‘원금에 대한 이자를 못 받았으며 원금을 받는 과정에서 협박까지 당했다’는 내용의 고소를 당했다. ‘협박’이라는 단어까지 오가며 심형래의 이미지를 훼손했던 이 사건은 다음 해 고소했던 30대 투자자가 무고죄로 구속되면서 마무리됐다.
2004년 연말이 돼서야 심형래는 <용가리>로 인한 채무 관계를 대부분 정리했다. 그해 12월 경기도 수원시에서 소송을 제기한 투자금 10억 원을 완납했는데 소송을 담당했던 수원시청 총무과 관계자가 “형편이 좋지 않아 투자금을 늦게 반환했지만 열심히 사는 모습에서 연민의 정을 느꼈다”며 심형래에게 진심 어린 박수를 보내 눈길을 끌기도 했다.
2005년 이후 회사 운영이 안정되고 지긋지긋한 각종 송사에서도 자유로워지면서 <디 워> 제작도 궤도에 올랐다. 문제는 <용가리>를 통해 큰 실망감을 갖게 된 관객들의 신뢰를 회복하고 각종 소송으로 얼룩진 심형래 개인과 회사 이미지를 개선하는 것이었다.
그러던 중 2006년 5월 또 하나의 송사가 터져 심형래를 곤란케 했다. <디 워> 제작에 참여한 재미교포 프로듀서가 감독 겸 제작자 심형래와 영구아트를 계약위반 및 사기혐의로 고소한 것. 이에 심형래는 “말도 안 되는 주장으로 나와 회사, 그리고 <디 워>의 명예를 훼손한 만큼 맞대응하겠다”고 격분하면서도 “<디 워> 개봉 일정에 문제가 되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최고의 개그맨에서 영화감독으로, <용가리>를 제작하며 ‘신지식인’으로 선정되기도 했던 심형래는 이렇게 7~8년여를 각종 송사와 편견에 맞서 싸우며 결국 <디 워>를 만들어 냈다. 적어도 그가 보여준 의지만은 높이 사야 할 것이다.
그러나 <디 워>가 완성되자 이번엔 각종 논란이 심형래를 뒤흔들고 있다. 하지만 관객들은 심형래와 <디 워>를 외면하지 않았다. 영화는 1000만 관객을 향해 내달리고 있다. 그 어떤 시련과 고난 속에서도 영화감독으로서 관객과의 약속만큼은 분명하게 지킨 것이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
홍재현 객원기자 hong92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