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이 최고’를 말릴 수 없다
▲ 경선 과정에서 이명박 캠프의 야전사령관 역할을 톡톡히 한 이재오 최고위원. 소장파들의 2선 퇴진론에도 불구하고 일단 ‘넘버투’의 입지를 굳힌 것으로 보인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동시에 그의 향후 행보는 박근혜 전 대표 측과도 투쟁이냐, 화합이냐를 결정할 중요한 지표로 인식된다. 또한 이 후보의 개혁 의지를 이 최고위원의 행보를 통해서도 확인해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이 최고위원의 2선 퇴진론은 현재도 진행형이라고 볼 수 있다. 이명박 한나라호의 항로를 ‘이 최고’의 행보를 통해 예상해본다.
이재오 한나라당 최고위원만큼 인물평이 극단적으로 엇갈리는 정치인도 드문 편이다. 그를 오랫동안 지켜본 한 초선의원은 “정치 감각이 빠르고 추진력이 있고 뭔가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투사형 정치인”으로 묘사한다. 하지만 또 다른 당직자는 “30분 전에 했던 말도 바로 뒤집고 모른 체 하는 못 믿을 정치인”으로 보기도 한다. 이번에 경선에서 그를 가까이 지켜본 사람들의 평가도 엇갈린다. 그를 지지하는 한 의원은 “일을 끌고 나가는 힘이 대단하다. 어떨 때는 아주 독하다”며 일에 관한 한 끝장을 보는 정치인으로 평가한다. 하지만 “자신의 스타일에 맞지 않다고 생각하면 냉정하게 내치기 때문에 포용과는 거리가 멀다”라고 평가하는 사람도 있다.
이러한 양 극단을 오가는 평가는 그가 6·3 세대에다 재야그룹인 민중당의 사무총장을 역임하다 한나라당 전신인 신한국당에 전격 입당한 것을 해석하는 것만큼 복잡한 코드다. 또한 그의 신한국당 입당은 정치인 이재오를 읽는 중요한 코드다. 이 최고위원 본인을 봐서라도 15대 총선에 당선돼 내리 3선을 시켜준 사건의 단초가 바로 신한국당 입당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그의 신한국당 입당은 김문수 현 경기도 지사와 함께 당시 재야 운동권 사이에서도 최대의 화제였다. 그는 유신시절 세 차례, 5공과 6공 시절 각각 한 차례씩 모두 합쳐 다섯 차례 구속된 경험이 있다. 그가 감옥에서 지낸 세월은 10년 6개월에 이른다. 이 최고위원은 사석에서 종종 “자랑은 아니지만 현직 국회의원 가운데 옥살이 기간을 따지면 내가 제일 길고 그 다음은 장영달 의원”이라고 말하곤 한다.
이 최고위원이 오랜 감옥 생활과 재야 활동 뒤 드라마틱하게 신한국당으로 입당한 것은 앞서 밝힌 두 가지 극단적인 평가의 배경이 되고 있다. 먼저 “추진력이 있고 일을 끌고 나가는 힘이 대단하다”고 평가하는 부분은 그가 오랜 감옥 생활에서 터득해낸 삶에 대한 애착에서 나온 절박함 때문일 것이다. “나보다 더 오랫동안 감옥생활을 한 정치인은 없을 것”이라고 스스로 밝히는 부분은 감옥에서 그가 얼마나 정상인의 삶을 갈망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그는 지금도 자전거를 타고 새벽부터 지역구 구석구석을 돌며 삶의 현장을 돌아본다. 지난 경선에서는 전국 당협위원장을 하루가 멀다 하고 집으로 초대해 부인과 딸이 음식 뒷바라지를 하는 데 큰 애를 먹었다고 한다. 밤늦게까지 전화통을 붙잡고 일일이 표를 확인하기도 했고 캠프 관계자들도 수시로 집으로 초대해 격려하는 등 경선을 자신의 일로 생각하고 뛰었다고 한다.
▲ 지난 7월 19일 캠프 의원들과 함께 이명박 후보의 검증청문회를 지켜보는 이재오 최고위원. 국회사진기자단 | ||
하지만 그의 신한국당 입당은 그를 ‘일 열심히 하는 정치인’에서 ‘상황논리에 따라 조변석개하는 못 믿을 정치인’으로 극단적인 반대 평가의 빌미가 되기도 한다. 전민련 조국통일위원장을 거쳐 민중당 사무총장을 역임한 그가 대표적 ‘주적’ 신한국당에 입당했을 때 그의 동지들은 그를 향해 ‘재야 운동 최악의 변절 사건 장본인’이라는 ‘주홍글씨’를 찍으며 흥분했다.
그럼에도 그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YS 정권 마지막에 들어왔다. 내가 신한국당 때 YS에 의해 영입되어 들어온 뒤 내가 한나라당의 과오를 책임질 그런 위치에 있지 않았다. 또 잘못된 지난날 한나라당의 과오를 대변할 처지도 아니다”라고 반박한 바 있다. 또한 “국회의원도 안하고 밖에서 비실비실 놀면서 말로만 ‘민중 민중’하면 그것이 민중을 위한 정치가 아니다”라며 신한국당 입당에 대한 일부의 비판에 반박했었다.
그런데 그의 이런 주장에 대해 일부 진보 지식인들은 “지난 친일파 청산운동에서 우리가 공통적으로 발견하는 그들의 논리가 있다. 그것은 ‘일제의 탄압 속에서 부역 한 번 안해 본 사람 어디 있겠냐’는 것이다. 우리는 친일파들의 ‘나는 잘못이 없으며, 나의 행동은 현실상황에서 어쩔 수 없었다’는 논리를 정치인들의 입을 통해서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라고 말한다.
이런 논리는 그의 동료 의원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한나라당의 한 의원은 이에 대해 “이 최고위원이 능력이 있는 것은 그렇다 치고 운동권 출신은 기본적으로 믿을 수가 없다. 하루가 멀다 하고 다른 말을 한다. 기존의 자기 주장을 뒤집는 논리도 교묘하다. 순진한 사람들은 쉽게 믿겠지만 그의 논리가 또 언제 바뀔지 알 수 없다. 그를 상대했던 여당의 대표들이 혀를 내두르더라. 바로 몇 분 전에 합의한 내용도 ‘언제 그랬냐는 듯’ 뒤집어버린다고 하더라. 그를 오랫동안 지켜봤지만 그는 기본적으로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인 것 같다”라고 냉혹한 평가를 했다.
그런데 ‘이 최고위원의 상황논리 때문에 신뢰도에 문제가 있다’라는 평가는 최근 불거져 나온 2선 퇴진론의 중요한 배경이 된 것도 사실이다. 경선 결과가 발표되자마자 ‘반이재오’ 진영에서는 즉각 “그가 조직 표를 잘못 계산한 책임을 져야 하지 않느냐”는 반응이 나왔다. 이러한 반응의 기저에는 이재오 최고위원을 이명박 후보 마지막 순간까지 충성하는 ‘믿을맨’으로 보는 게 아니라 상황에 따라 언제든 1인자의 자리를 넘보는 위험한 ‘넘버 2’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 최고위원은 사석에서 종종 “나와 이 후보는 동업자”라고 농담처럼 말하곤 한다. 하지만 이 후보는 이제 대통령 후보가 되었다. ‘넘버 2’를 용납하지 않는 권력의 속성상 두 사람간의 파트너십이 언제까지 갈지는 알 수 없다.
이 최고위원은 종종 “당권과 대권은 분리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이 그가 당권을 꿈꾸는 중요한 논리가 되고 있음은 물론이다. 더욱이 한나라당 당권과 그 이상도 꿈꾸는 이 최고위원으로서는 이명박 후보가 영원히 모셔야할 ‘주군’이 아니라는 점에서 반이재오 진영의 견제는 앞으로도 더욱 집요하고 끈질기게 이 최고위원을 노릴 것이다.
그리고 박 전 대표 측의 복수는 지난해 7·11 전당대회 대표 경선에서 그대로 나타났다. 당시 이명박-박근혜 대리전 양상으로 전개됐던 전당대회 경선에서 이 최고위원은 다 이겨놓은 선거를 박 전 대표 측의 막판 색깔론 공세 탓에 강재섭 대표에게 역전을 허용했다. 경선 결과 발표 때 이 최고위원은 입술을 굳게 깨물며 관중석에 있던 박 전 대표를 뚫어져라 쳐다보기도 했다. 그로선 이번 대선 후보 경선에서 그 ‘구원’을 푼 셈이 됐다. 이런 사정 때문에 이 최고위원과 박 전 대표 관계는 한마디로 최악이다.
그래서 박 전 대표 측도 이 최고위원의 행보를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 그의 거취에 따라 이명박 후보가 말하는 ‘화합’의 진정성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 최고위원측은 경선 직후 터진 ‘2선 퇴진론’도 박 전 대표 측 일부에서 언론 플레이를 더 심하게 해서 사태가 악화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그 뒤 이 최고위원이 ‘진 사람이 먼저 반성해야 한다’고 직격탄을 날린 것도 응전의 성격이 강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두 사람간의 긴장관계 때문에 이명박 후보 측도 이재오 최고위원의 퇴진 논의를 한 것으로도 알려진다. 대선 승리를 위해선 ‘당심’을 장악한 것으로 나타난 박 전 대표 측의 도움을 얻어야 하는데 이 최고위원의 존재 때문에 일이 복잡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후보는 이 최고위원을 좀 더 쓰는 쪽으로 결론을 낸 것으로 알려진다. 최측근 정두언 의원도 “아직 이 최고위원이 할 일이 많다. 이 후보에 도움이 되는 사람을 퇴진시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한다. 이런 이 후보의 이 최고위원에 대한 신뢰는 ‘이재오 맨’으로 불리는 이방호 의원을 사무총장에 앉히는 것으로 더욱 힘을 받고 있다.
앞으로 선대위가 어떻게 꾸려질지 알 수 없지만 현재로선 이 최고위원이 ‘넘버 2’의 입지를 확실히 굳혔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방호 의원의 사무총장 임명은 박 전 대표에 대한 선전포고나 마찬가지다. 비서실장이 ‘중립’ 임태희 의원에 돌아가긴 했지만 자금과 조직을 총괄하는 사무총장에 ‘이재오 계’를 임명한 것은 앞으로 박 전 대표와의 당내 전선에서 확실한 우위를 확보하겠다는 이 후보의 뜻이 반영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 총장의 임명은 박 전 대표 측을 자극하면서 양측은 대선까지 긴장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
이재오 최고위원의 존재는 이명박 후보의 개혁노선에도 일정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이 최고위원이 선명한 개혁론자이긴 하지만 상황 논리에 따라 이 후보의 노선과 어긋나는 행보를 보일 수도 있다. 최근 이 후보가 ‘화합’을 외치는 데 반해 이 최고위원이 ‘개혁’을 주장하며 엇박자를 낸 것에 대해서도 뒷말이 많았다. 이 후보가 이 최고위원을 확실히 컨트롤하지 못한다는 얘기도 나왔다. 앞으로 이 최고위원이 특유의 논리로 이 후보와 다른 목소리를 낼 경우 이 후보에게도 일정한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이재오 최고위원만큼 평가가 엇갈린 정치인도 드물다. 이 같은 평가는 ‘있으나마나한’ 활동으로 선수만 채우는 중견 정치인에 비하면 그가 얼마나 정치인의 삶을 치열하게 살았는지를 말해준다는 점에서 최고의 찬사로도 들리는 대목이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