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이재오 최고위원) 최고’ 형님, ‘최저위원’이 되십시오
▲ 사진=우태윤 기자 wdosa@ilyo.co.kr | ||
지난해 5·31 지방선거를 통해 정치인에서 행정가로 변신한 김문수 경기지사. 지난 1년 동안 경기도 살림을 꾸려온 김 지사의 소감은 “답답하고 괴롭다”는 것이었다. 웃으며 얘기한 농담조의 답변이었으나 서울에 비해 ‘소외’돼 있는 경기도의 상황을 한마디로 ‘강변’하는 듯 느껴졌다.
지난 12일 저녁 경기도청 집무실에서 만난 김문수 지사는 정신없이 바쁜 스케줄을 소화해내고 있었다. 인터뷰 내내 경기도 행정에 대해 설명을 쏟아내는 김 지사의 모습을 보니 그의 일과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을 듯 했다. 기자 한 명을 마주하고 하는 인터뷰임에도 김 지사는 경기도 지도 곳곳을 직접 레이저포인터로 찍어가며 브리핑을 열심히 해주었다. 김 지사는 “10월 초 남북정상회담이 다가오면서 경기도의 역할이 더 중요하리라 본다”며 현재 진행하고 있는 각종 정책에 대한 설명도 곁들였다.
국회의원 시절과는 또 다르게 도지사로서 느끼는 고충도 크겠지만 그는 정치권 에서 한 발 물러선 지금 느끼는 점도 많다고 했다. 한나라당 경선 과정을 지켜보며 경선 이후 외부에서 비판받고 있는 한나라당의 화합문제에 관해서도 여러 가지 생각이 있는 것 같았다. 취임 1주년을 넘긴 김문수 경기 지사를 만나 여러 가지 정치 현안에 관한 다양한 얘기를 들어봤다.
기자와는 지난해 12월 이후 9개월 만의 재회였다. 당시 취임 6개월을 즈음에 만났던 김문수 지사는 ‘초보’ 도지사로서 겪고 있는 여러 가지 소회를 들려주었다. 그때 기자에게 들려준 ‘경기도를 세계의 중심으로 만들겠다’던 야심찬 포부만큼 지난 1년여 시간 동안 김 지사는 많은 정책들을 수립하고 실천하고 있었다. 국회의원 시절에도 그는 ‘의정활동을 잘 하는 국회의원’에 종종 꼽힌 바 있다.
―우선 도지사로서 1년 2개월을 보낸 소감을 들려달라.
▲1년 동안 경기도의 곳곳을 다녀보았다. 경기도가 참 넓고 다양하고 다이내믹한 곳인데 여러 가지 이유로 개발되지 못한 곳들이 많다. (지도를 가리키며) 경기 북부지역은 북한에 포함돼 있고 DMZ와 미군기지, 접경지역까지 합하면 경기도의 상당부분이다. 이런 곳은 도로도 없을뿐더러 공장도 대학도 짓지 못한다. 규제가 풀리지 않고 있으니 갑갑하고 답답한 면이 많다. 효순·미선이 사건이 일어난 양주 지역에 얼마 전에 다녀왔는데 그 곳이 통학로가 없는 곳이다. 이곳이 전국에서 교통사고 사망률이 가장 높은 곳이다. 정부로부터 버림받은 땅처럼 느껴질 정도다.
―경기도 지사로 이룬 가장 기억에 남는 성과는 무엇인가.
▲대중교통 환승할인제가 아닐까 한다. 경기도는 서울에 비해 땅 크기가 17배가 넘는다. 서울은 대중교통이 없으면 걸어서라도 가지만 경기도는 땅이 넓어 도저히 걸어갈 수도 없다.(웃음) 자가용이 없는 서민들과 학생들에게 ‘거침없이’ 갈아탈 수 있는 선택권들 드렸다는 것에 대해 많은 보람을 느낀다. 앞으로 좌석버스에까지 추진하고 있는데 내년 7월 1일을 목표로 하고 있다.
―얼마 전에 포브스 경영품질대상 공공혁신부문 상을 받았는데 높은 점수를 받은, 눈에 띄는 정책들이 있었다. 대표적 정책에 관해 설명해 달라.
▲‘아파트 품질 검수단 발족’은 주부님들께 큰 호응을 얻었다(웃음). 맞벌이하는 분들이 아파트 입주 전에 미리 가서 보기도 힘든 상황인데 경기도에서 책임지고 입주자 입장에서 검수를 하는 정책이다. ‘애프터서비스’가 아닌 입주 전 ‘프리서비스’를 해드리는 개념이다. 현재 8개 팀이 있는데 앞으로 더 늘릴 생각이다. 스타벅스에서의 경기미 떡 판매는 실은 애초에 제과점을 상대로 추진하다가 교섭에 실패했다. 결국 스타벅스에서 빵을 팔고 있기에 떡을 함께 파는 방법을 논의했더니 그쪽에서 호응을 했던 것이다. 우리나라의 좋은 떡도 알리고 경기미도 파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학교와 군부대 급식에도 떡을 넣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대북문제에 대해서도 관심이 높은 것으로 알고 있다. 남북 정상회담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정부에 주문하고 싶은 회담 과제가 있다면.
▲남북정상회담과 관련해 정부에 몇 가지 의제를 건의한 상태다. 그중 예를 들면 임진강과 예성강, 한강 하구가 만나는 지역을 남북이 공동으로 개발해 이익금을 절반씩 나누는 정책과 오는 11월에 임진각에서 판문점 앞까지 단축마라톤을 추진할 계획이다. 앞으로 개성시내에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코스를 추진할 것이다. 남북관계의 변화는 갑작스럽게 다가올 것이다. 그에 대비하는 정책들을 경기도 차원에서 전문가그룹을 만들어 준비하고 있다. DMZ 지역과 개성과 가까운 접경지역의 관리 문제, 교통 문제 등 미리 계획해야 할 문제들이 많다.
―‘2007년도 경기도 지방재정’ 공시에 따르면 지난 4년 동안 경기도의 실질 채무액이 7배가량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고 재정자립도 역시 줄어드는 추세다. 재정상황 개선을 위해 어떤 계획을 마련하고 있는가.
▲지방 채무는 도로건설, 산업단지 조성과 같은 사회간접자본시설 확충을 위해 발생한 것이고 예산 대비 채무비율은 10% 이내로 건전한 상태다. 연도별 실질채무 증가를 살펴봐도 경기도가 타 시도에 비해 높은 편이 아니다. 재정자립도가 낮아지는 이유 역시 최근 복지 분야의 국고보조사업비가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경기도에서는 예산 부분에 관해 ‘선 계획 후 예산제도’를 운영해 사전에 사업성과를 평가하고 업무계획을 수립해 예산에 반영하는 제도를 운영 중이다. 또 성과가 부진한 사업을 과감하게 퇴출하고 신규 사업을 발굴하는 건전한 재정을 운용하고 있다.
최근 자서전을 출간한 차명진 의원은 책 속에서 자신의 ‘정치적 스승’으로 꼽는 김문수 지사에 관한 여러 가지 에피소드를 실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김 지사의 국회의원 시절 보좌관으로 인연을 맺은 차 의원은 20년 넘게 그와 막역한 사이로 지내오고 있다. 차 의원은 지난해 7·26 보궐 선거에서는 ‘김문수 의원’의 오랜 지역구였던 부천시 소사구에 출마해 당선된 바 있기도 하다. 김문수 지사 또한 인터뷰 중에도 자신의 정계 입문 지역이었던 부천 소사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보였다.
▲ 기자에게 경기도 지도 곳곳을 레이저포인터로 가리키며 브리핑하고 있는 김문수 지사(위). 아래 사진은 의원 시절 이재오 의원(가운데)과 함께. 김 지사는 정치인에서 행정가로 변신했지만 한나라당에 대한 쓴소리도 잊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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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 소사구는 내게 잊을 수 없는 곳이다. 나는 아직 집도 그곳이다. 감옥생활, 도피생활, 민중당 생활 하다가 당이 해산되고 인생에서 한참 고민스러웠던 시기에 소사구에서 다시 정치를 시작했다. 박지원 전 장관, 박두식 전 의원, 김만수 전 (청와대) 대변인과 같은 최강자들과 붙었는데 수도권 일대에서 최고의 득표율로 승리했다. 그곳은 내 정치적 고향이고 그 곳 주민들은 정치적 부모님과 같다. 그곳에 대한 애환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다. 그곳이 인구 22만 명의 넓지 않은 곳인데 골목 하나, 나무 한그루, 돌부리 하나까지도 잊지 못할 정도다. 지하의 공장에서 옥탑방까지 안 가 본 곳이 없다. 그렇게 뛰면서 그분들과 함께 호흡했으니 어찌 다 말로 표현하겠는가(웃음).
―이어서 정치 현안에 관한 답변도 듣고 싶다. 최근 경기도당 위원장에 당선된 남경필 의원에 대해 ‘줄서기 비판’이 있었다. 남 의원이 경기도지사 자리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얘기도 들리는데 남 의원의 행보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줄서기가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그건 선택의 문제이다. 남 의원 역시 경기도와 국가를 위해 애쓰시는 분이고 원만하게 잘 하고 있다고 본다. 중요한 것은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하고 역사에 떳떳하게 행동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명박 후보의 선대위에 ‘친박 인사’들이 포함돼 있지 않아 박 전 대표 측에서 불만을 제기하는 이들이 많다. 객관적으로 보기에도 ‘중용’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있는데.
▲이번 한나라당 경선이 국민들의 우려에 비해서 아름다고 훌륭하게 잘 끝났다. 경선이 끝난 이후의 시너지 효과도 여론조사를 통해 확인이 되고 있다고 본다. 박근혜 전 대표 역시 훌륭한 모습을 보여주고 계신데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두 분이 손을 잡고 리더십을 보여주실 것이다.
―좋은 말씀이신데(웃음), 실제적으로 불만이 나올 만한 인사가 아닌가.
▲인사가 이번이 끝이 아니고 시작 아닌가. 시작은 작게 해서 앞으로 더 많은 부분들이 포용되고 이뤄질 것이라 본다. 친박, 친이 이런 것을 떠나, 또 한나라당을 떠나 더 넓은 폭으로 많은 인재들을 끌어안고 역량이 결집돼야만 할 것이다. 유능한 분이라면 삼고초려를 해서라도 모셔 와야 할 것이다. 선진국으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대탕평, 대통합, 대개방 전략으로 나가야 한다고 본다.
―최근 정치적 현안에 관해 이명박 후보와 어떤 얘기를 나누고 있나.
▲자주 연락은 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현재 정치권에서 좀 떨어져 있기 때문에 구체적인 것은 잘 모르고 그저 공자님 말씀만 할 뿐이다. 그런데 그 공자님 말씀도 좀 도움은 되나 보다.(웃음)
―한나라당 경선 이후 박 전 대표의 행보에 대해서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앞으로 박 전 대표가 한나라당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보나.
▲당으로 봐서는 이명박 후보 이상의 득표를 얻었고 이 후보 이상의 영향력을 갖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명박 후보 이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해주셔야 한다고 생각한다. (선대위원장 직이 거론됐던 것에 대해) 구체적인 직을 떠나 ‘결정적’인 역할을 하셔야 하지 않겠나 하는 것이 당원들이 갖고 있는 기대감이다.
―이재오 의원과도 인연이 깊은 것으로 알고 있다. 일각에서는 당 화합을 위해 이재오 의원이 물러나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었다.
▲물러서기보다는 낮추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현재 최고의원으로 있는데 ‘최저의원’처럼 하시면 더 박수를 많이 받으실 것으로 본다. 개인적으로 형님처럼 오랜 세월 겪어온 분인데(김문수 지사는 1990년 이재오 장기표 씨와 함께 민중당을 창당하며 정치권에 입문했다) 마음이 참 순진하고 한마디로 ‘촌놈’같은 분이시다.(웃음) 본인이 세련되게 표현하지 않아서 그렇지 얼마든지 악조건 속에서 본인을 낮출 줄 아는 분이다.
―이명박 후보의 ‘대운하 공약’이 앞으로 다시 한 번 검증을 거칠 가능성이 큰데 어떻게 평가하고 있나.
▲대운하 공약에 대해 자세히는 모르지만 경기도와 관련해 하고 싶은 말은 있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서해와 한강수운을 많이 이용해 왔다. 마포, 영등포가 다 ‘포’ 아닌가. 그런데 요즘은 배를 볼 수가 없다. 이렇게 좋은 수운을 이용하자는 면에서 ‘대운하 공약’은 탁견이라고 본다. 다만 수질이 오염될 것이라는 우려가 있는데 이 문제는 청평댐을 위쪽으로 올려서 해결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 그렇게 되면 상수원보호구역으로 묶인 많은 지역의 규제가 풀리게 되면서 경기도로서도 개발 가능성이 커지게 된다. 이 점에 관해서는 심층적인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김 지사의 전임인 손학규 전 지사가 탈당 전력에 관해 계속해서 비판받고 있는데.
▲개인적으로도 가깝고 훌륭하신 분이다. 한나라당에서 많은 훌륭한 일을 하실 수 있는데 안타깝다. (탈당과 관련해서는) 비판받을 수 있는 것 아닌가. 내가 탈당했어도 비판받았을 것이라 본다.
―마지막 질문이다. 경기지사를 역임한 손 전 지사도 대권에 도전하고 있는데 대통령에 대한 꿈은 없는가.
▲전혀(웃음). (I) have no idea, 허허허.
―현 상황에서 그렇다는 말인가.
▲앞으로에 대해서는 누구도 모르겠지만, 지금은 이 넓고도 다이내믹한 경기도에 푹 빠져있다. 다른 건 생각한 겨를도 없다.(웃음)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