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 비웠다던 분이…”
▲ 지난 13일 이명박 후보가 단식 중인 권철현 의원을 찾았다. 국회사진기자단 | ||
권 의원을 찾아간 지난 15일 오후 8시 30분경. 권 의원은 상당히 초췌한 모습이었다. ‘단식 선언’을 하던 날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의원실 집기들을 모두 치운 채 한 가운데 앉아있었고 뒤쪽에 붙어있던 ‘총재님 사랑합니다. 그러나 출마는 잘못된 것입니다’라고 써 붙은 대자보도 여전했다. “몸은 괜찮으냐”고 말을 건네자 그는 “오늘은 기력이 상당히 떨어진 상태다”라고 힘없이 답했다.
권 의원은 여전히 이 전 총재와의 지난 애정을 강하게 기억하고 있는 듯했다. 그는 정치판에 ‘마지막 비서실장은 영원한 비서실장’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이 전 총재가 정계 은퇴 선언을 한 뒤에도 그의 옆에서 5년 동안 비서실장처럼 모셨다고 한다. 그랬던 권 의원도 이 전 총재의 출마는 ‘꿈도 꾸지 못했던 일’이었다.
권 의원은 “가끔 함께 술 한 잔을 할 때 이 전 총재에게 ‘아직도 정계에 미련이 있으십니까’ 물으면 항상 ‘무슨 소리야. 맘 다 비웠어’라고 답하던 분이었다”며 “그럴 때면 나 역시 ‘우리는 국가의 원로가 없는 나라니 국가의 원로로 기둥처럼 남아주십시오’라고 말하곤 했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렇게 이 전 총재와의 지근거리인 탓에 권 의원은 지난번 이방호 사무총장이 거론했던 ‘최병렬 수첩’에 적혀있다는 대선자금 사용 내역의 실체를 가장 잘 알고 있을 만한 인물로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권 의원은 ‘최병렬 수첩’의 내용에 대해 “전혀 모르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최병렬 전 대표는 당시 대표도 아니었고 서청원 고문이 대표였기 때문에 대선 자금을 관리할 위치에 있던 인물이 아니다”라며 “이방호 사무총장 역시 일방적으로 최 전 대표에게 들었다는 것이지 그도 당시 대선자금을 관리할 위치의 인물이 아니었기 때문에 신뢰가 안가는 얘기다”라고 말했다.
당초 한나라당 내에서는 이 전 총재의 출마선언과 함께 권 의원이 맨 먼저 이 전 총재에게 달려 갈 것이라는 소문도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권 의원이 단식에 들어가자 그의 진정이 알려졌고 여러 사람이 나서 단식을 만류했다. 지난 8일 오전에는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가 직접 권 의원을 찾았고 이명박 후보, 이상득 부의장 또한 권 의원의 단식을 만류하기 위해 그의 의원실을 방문했다. 중국에 출국해 있던 이재오 의원 역시 전화를 걸어 권 의원의 단식을 만류했다고 한다. 권 의원 역시 단식을 그만두기 전날 이 전 총재의 마음을 돌리기는 힘들 것으로 보고 앞으로 남은 선거에 주력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전했었다.
권 의원은 그러나 아직도 이 전 총재에게 인간적인 의리를 지키고 있었다. 질문을 끝내고 의원실을 나오는 기자에게 권 의원은 “이 전 총재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기사는 쓰지 말아 달라”는 부탁을 남겼다.
김장환 기자 hwan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