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들의 열망 업고 앞만 보고 달려라
▲ 각종 의혹에도 불구하고 정동영 후보를 여유있게 따돌리며 대승을 거둔 이명박 당선자. 그러나 BBK특검 이란 족쇄가 아직 벗겨지지 않아 안심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지난 20일 오전 10시 서울 프레스센터.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는 당선 후 첫 공식 기자회견을 통해 국민들을 향한 무한한 감사함을 표했다.
이명박 당선자는 이날 오전 7시 48분께 가회동 자택을 나서 국립현충원으로 향했다. 이 당선자는 강재섭 대표, 이방호 사무총장, 정몽준 상임고문 등 당 지도부 및 당직자 200여명과 함께 무명용사탑에 헌화하고 묵념을 올린 뒤 프레스센터에서 내외신 기자회견을 가졌다. 그리고 염창동 당사로 이동, 중앙선대위 해단식에 참석했다. 이어 여의도 당사에서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 시게이에 도시노리 주한 일본대사의 예방을 받았다. 당선자로서의 바쁜 일정이 시작된 것이다.
대통령 후보의 신분에서 하루 만에 대통령 당선자의 신분으로 바뀐 그의 머릿속에는 지나온 치열했던 대선 레이스의 과정들이 스쳐 지나갔을 것이다. 지난 해 6월 서울시장직에서 퇴임한 이후 1년 6개월여의 기나긴 대선행보를 걸어오는 동안 이명박 당선자는 크고 작은 위기를 수 없이 겪어왔다. 이 당선자는 “선거가 아무리 치열하고 격렬했다 하더라도 분명한 사실은 우리 모두가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점”이라며 “저부터 마음의 응어리가 있다면 풀겠다”고 지나온 나날들에 대해 짧은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대선 주자로 첫발을 내디딘 이후 이명박 당선자가 걸어온 지난 1년간의 대선 행보는 또 그대로 2007년의 역사이기도 하다. 이명박 당선자의 대선 레이스를 되짚어 보았다.
이명박 당선자는 대통령 선거가 있던 지난 19일 아침 ‘어젯밤에 편하게 잠을 잘 잤다’는 소감을 밝혔다. 정동영 캠프에서는 ‘기적이 일어나 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지만 이명박 당선자는 승리를 예견하고 있었던 것이다. 정동영 후보가 ‘기적’이라는 표현을 쓴 것도 이 후보를 ‘꺾는’ 일이 그만큼이나 어려운 것임을 드러낸 것이었다. 지난 해 7월 공식 대선행보를 시작한 이후 추석이 끝난 뒤인 10월 이후부터 내내 40% 대의 지지율을 유지해 온 이명박 후보는 대세론을 결국 대선 승리로까지 이어갔다.
이명박 후보 캠프에서는 선거 당일 승리 여부가 아닌 ‘득표율’이 어느 정도나 될 것인가에 관심의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결과는 48.7%. 26.1%를 기록한 정동영 후보와는 무려 500만 표가 넘는 표차이가 나는 ‘대승’이었다. 대선 3일을 앞두고 BBK 동영상이 터져 나오며 대세론에 금이 가는 것은 아니냐는 우려가 없었던 것도 아니지만 결과는 달랐다. 오히려 이명박 캠프에서는 “BBK 동영상 파문만 아니었다면 50% 이상 득표가 가능했다”고 분석하고 있고 이회창 후보 측은 동영상 파문으로 위기감을 느낀 이명박 당선자 쪽 표가 뭉쳤다고 보았다.
BBK는 이명박 당선자의 선거 기간 내내 발목을 잡았던 난제 중의 난제였다. 한나라당 경선 과정에서도 중심 문제는 바로 이 BBK였으며 여권이 “(이명박은) 한방이면 날아간다”고 장담하던 그 한방이 바로 BBK였다. 그리고 그 BBK는 선거가 끝난 후에도 이명박 당선자의 앞길에 역시 그림자를 길게 드리우고 있다.
한나라당 나경원 대변인도 대선이 끝난 이후 “BBK 사건에 대해 아무리 진실을 말해도 국민들이 믿어주지 않았던 것이 가장 힘들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내내 40%대를 기록하던 높은 지지율이 30%대로 무너지며 ‘이명박 대세론’이 크게 흔들렸던 때도 바로 BBK 주가조작 사건의 핵심인물인 김경준 씨가 국내에 귀국한 지난 11월16일 직후였다.
이명박 캠프 측이 더 긴장했던 까닭은 그간 에리카 김과 이명박 당선자의 남다른 친분이 종종 ‘부적절한 관계’로 비춰졌기 때문이다. 미모의 엘리트 교포 변호사인 에리카 김과 이명박 후보와의 관계는 자칫 스캔들로 비화될 가능성이 짙은 사안이었다. 연이어 이면계약서에 찍힌 이명박 후보의 인감도장의 진위여부를 두고 벌어진 공방전은 도장이 이 후보 본인의 것이 맞다는 결론이 나며 이 후보에게 불리하게 돌아갔다. 대선 행보의 최대 고비였던 BBK 의혹을 ‘무사히’ 넘기느냐의 칼자루는 오로지 검찰에게 쥐어져 있던 상황이었다.
이 고비를 무사히 넘기게 한 것은 12월 5일 검찰조사 발표였다. 검찰은 다스 실소유주 의혹뿐 아니라 BBK 관련 사안의 모든 부분에서 이명박 후보의 무혐의 결론을 내렸고, 이에 대해서는 한나라당 내 일각에서도 이명박 후보 측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결과였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출마선언 이후 이명박 후보의 지지율이 가장 높았던 것도 검찰 수사 발표 직후였다.
본격적으로 대선 행보를 시작한 지난해 7월부터 지난 19일 대통령에 당선되기까지 1년 6개월간 이명박 당선자는 BBK 이외에도 수많은 역경에 직면해야 했다.
이명박 당선자는 서울시장 재임 시절 이미 청계천 복원 등의 치적을 통해 잠재적 대선 예비주자로 주목을 받아왔지만 본격적인 대선 행보는 지난해 6월 30일 시장직에서 퇴임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안국포럼’이란 대선 캠프를 가동할 때까지만 해도 이 당선자의 지지율은 15% 안팎으로 고건 전 총리,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에 이어 3위에 머무르고 있었다. 그러나 지난해 추석 연휴를 거치고 10월말 북핵 사태로 안보 위기의식이 고조되면서 지지율이 40%대로 급상승, 고건 전 총리와 박 전 대표를 크게 앞지르며 상황은 급변했다. 이때부터 대선이 끝날 때까지 단 한 차례도 선두를 빼앗기지 않는 독주 체제를 구축했으며 고 전 총리가 지난 1월 중순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자 지지율이 50~60% 대를 오르내리는 ‘고공 비행’을 거듭했다. 그러나 이 당선자에 대한 소위 ‘검증’이 본격적으로 제기된 것도 바로 이 때부터다. 당시엔 범여권보다 당내 경쟁 주자였던 박 전 대표 진영의 공세가 더 날카로웠다.
올 초 박근혜 전 대표 경선캠프의 정인봉 법률특보가 이 당선자의 도덕성 의혹을 담은 ‘이명박 X파일’을 공개하겠다고 나섰고, 이 당선자의 국회의원 시절 비서관을 지낸 김유찬 씨가 이 당선자의 ‘위증교사 및 살해협박’ 의혹 등을 제기해 파장을 일으켰다.
또 박 전 대표 측의 유승민, 이혜훈 의원 등은 이 당선자의 한반도 대운하 공약에 대한 공격의 선봉에 서는가하면 경선전이 본격화된 6월부터 8월까지 경선후보 정책토론회와 사상 초유의 당내 후보 검증청문회, 합동연설회를 거치면서 이 당선자의 각종 의혹설을 집중 제기하고 나섰다. 뿐만 아니라 병역 기피 의혹도 제기됐고 자녀 교육을 위한 위장 전입 사건과 처남 김재정 씨의 부동산 투기의혹, 도곡동 땅 차명 소유 의혹 등이 줄줄이 터지며 ‘도덕성’에 관해 집중적인 공세를 받기 시작했다. 8월초에는 이 당선자의 어머니가 일본인이라는 얼토당토 않은 의혹까지 제기되기도 했지만 검찰의 유전자 검사로 이 의혹은 거짓으로 판명됐다.
▲ 지지자들 환호에 답하고 있는 이 당선자와 부인 김윤옥 여사.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아래는 이명박 당선자가 20일 국립현충원을 방문, 조문하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하지만 이명박 당선자가 경선 이후 ‘박근혜 끌어안기’에 소홀한 모습을 보이면서 ‘당의 해체설’까지 나도는 위기를 맞는다. 경선 패배에 깨끗이 승복하면서 경선 이전보다 오히려 주가가 급상승한 박근혜 전 대표를 ‘견제’하는 것에 주력했던 탓이다. 결국 이명박 후보 캠프의 좌장인 이재오 최고위원의 2선 후퇴로 또 한 차례의 고비를 넘기게 된다.
결국 이 당선자는 대선후보 경선에서 ‘난적’ 박 전 대표에게 신승을 거두고 8월 20일 한나라당의 대선후보로 공식 확정되지만 여전히 말끔하게 풀리지 않은 의혹들 속에서 험난한 여정은 계속됐다.
10월 열린 국회 국정감사는 주요 상임위에서 이 당선자에 대한 범여권의 도덕성 의혹 제기가 잇따르면서 ‘이명박 국감’으로 변질됐다. ‘대운하 논란’이 재점화됐고 정무위와 재경위에선 BBK가 이 후보 소유라는 신당 의원들의 주장이 잇따랐다. 복지위에선 이 당선자의 탈세 및 국민연금, 건강보험료 탈루 의혹도 제기됐고 BBK 의혹을 풀 열쇠인 김경준 씨의 귀국이 점차 현실화되기 시작했다.
이런 공세로 지지율이 하락세로 돌 무렵 다시 하나의 거대한 격랑이 덮친다. 11월 7일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탈당 및 무소속 출마 선언이었다. 여기에 9일 후에는 김경준 씨가 전격 귀국하면서 이 당선자의 지지율은 30%대 후반까지 떨어지는 마지막 고비를 맞았다. 설마 설마 했던 이 전 총재의 출마가 현실화되자 한나라당은 그저 이회창 전 총재에 대한 ‘비난 발언’을 내놓으며 대처하는 것 외엔 묘수가 없었다.
결국 모든 역경은 검찰의 BBK 수사결과 발표로 일단 잠재워지는 듯했다. 검찰이 BBK와 관련해 이 당선자에게 제기됐던 모든 의혹들에 대해 “무관하다”는 결론을 내리며 지지율은 다시 40%대 중반으로 반등했고 이회창 후보의 지지율은 떨어지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터진 BBK 동영상도 우려와는 달리 보수층의 표를 결집시키는 역할까지 했다.
일부에서는 이 당선자에게 지나온 위기보다 앞으로가 더 문제라는 얘기도 없는 것은 아니다. BBK 특검의 결과에 따라서는 엄청난 파문이 예상되며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또 한 번 치열한 ‘진흙탕 싸움’을 벌이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무엇보다 큰 과제는 역시 대통령으로서 자신의 약속대로 “경제의 선진화와 삶의 질의 선진화가 함께 가는 시대”를 열기 위해 어떻게 해 나갈 것이냐의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