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으로 안되는 게 있단 걸 보여줄터”
▲ 서울 동작을 총선에 출마한 정동영 통합민주당 후보가 자신의 선거 사무실에서 총선에 임하는 심정과 앞으로의 계획을 허심탄회하게 밝히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통합민주당 서울 동작을 후보로 출마한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이 던진 일성이다. 동작을은 4·9 총선 최고의 격전지이자 전체 총선 판세를 가늠할 수 있는 척도로 평가될 정도로 핵심 지역구로 급부상하고 있다. 민주당이 수도권 돌풍과 ‘거여 견제론’ 바람을 일으키기 위해 정 전 장관을 전략공천하자 이에 뒤질세라 한나라당도 정몽준 최고위원을 대항마로 내세웠기 때문이다.
두 사람 모두 대권의 꿈을 품고 있어 이번 선거는 차기 대선 전초전 성격을 띠고 있기도 하다. 이번 선거에서 승리한 사람은 당권 및 향후 대권가도에 파란불이 켜질 것이고 패한 사람은 정치생명까지 위협받는 위기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대선후보는 잊었고 총선후보로 새롭게 시작하려고 나왔다”는 정 전 장관의 비장한 각오도 이러한 위기상황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지금까지 여론조사 결과 정 전 장관은 정 최고에 10%포인트가량의 지지율 열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그는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충분히 역전할 수 있다”며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20일 오후 선거사무실 개소식을 갖고 본격적인 ‘총선 전쟁’에 뛰어든 정 전 장관을 이날 오전 서울 사당동 남성역 인근 사무실에서 만나봤다.
―동작을 출마를 결심하게 된 동기나 배경이 있다면.
▲지난 대선 패배 이후 묵언수행하며 성찰의 시간을 가졌다. 당초 백의종군으로 전국을 돌며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을 위해 돕겠다는 것이 나의 계획이었다. 주변에서 출마를 권유하는 과정에서 이런저런 얘기가 나왔겠지만 당을 위해 보탬이 되는 일이라면 마른자리 진자리 가리지 않고 몸을 던지겠다는 것이 일관된 나의 생각이었다.
―손학규 대표와 종로 지역구를 놓고 신경전을 벌였다는 얘기도 있는데.
▲박재승 위원장으로부터 지역구 출마 권유를 받고 지역구는 당에 위임하겠다고 밝혔다. 내심 ‘어디로 가야 하나’ 생각은 했다. 주변에서 종로를 권하는 사람이 몇 있어서 지역구 사정은 어떤지 사무실을 얻게 되면 어디 얻어야 할지 알아보기도 했다. 그런 데가 종로뿐만 아니라 몇 군데 된다. 손 대표가 회견을 통해 종로 출마를 밝히고 남부 벨트를 맡아달라고 해서 수용한 것이다.
―손 대표와 사전 조율은 있었나.
▲회동하기로 여러 번 통화만 하다가 기자회견을 즈음해 손 대표가 전화를 걸어와 종로 출마 결심을 밝혀왔다. 사전 조율은 없었다.
―동작을에 별다른 연고가 없는데 이 지역의 현안이 뭐라고 생각하나.
▲동작 지역 시장 골목골목을 다니고 있는데 고향인 전주와 같은 친숙한 느낌이다. 동작을은 서민 중산층이 많이 사는 곳이다. 복지공간, 학교, 교통, 주차장 문제가 시급하다. 특히 도로율이 12%에 불과하다. 수도권 평균이 20%인데 도로문제가 열악하고 주차 공간 등 이런 문제를 자치단체와 결합해서 온몸을 던져 해결할 생각이다. 동작의 머슴이 되어 동작에 뿌리를 박겠다.
사당동은 동래 정씨 문중의 사당이 있던 곳이어서 사당동이라 부른다고 얘기 들었다. 수백 년 전 조상들의 음덕으로 (여기에) 오게 됐나 보다. 동작구에는 평균적인 수도권 시민들이 갖고 있는 꿈 희망 애환이 있는, 평범한 분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 길 하나 사이로 서초 강남이 있는데 교육 여건도 떨어지고 소외감이 큰 동네다. 또한 집이 오래된 지역이 많아 발전에 대한 욕구도 강하다. 평범한 시민들이 가지고 있는 보통의 꿈, 집 한 채 가지고 자녀들 교육 잘 시키고, 체육도 하고 여가활동을 즐길 수 있는 그러한 소망을 위해 동작구민에게 나 자신을 바치려고 한다.
―한나라당이 정몽준 후보를 공천한 배경을 두고 정가에선 뒷말이 무성하다.
▲한마디로 의도적인 징발·표적 공천이다. 정치 도의에 어긋난다. 정 의원이 독자적으로 결정한 것 같지는 않고 뭔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결정된 게 아닌가 싶다. ‘예나 지금이나 권력은 무섭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난다. 4·9총선의 향배는 동작을에서 결정난다. 견제 세력을 만들어 안정과 균형을 선택할 것이냐, 아니면 1당 독주로 ‘고릴라 여당’시대를 만들어 줄 것이냐가 판가름 날 것이다.
―BBK 사건과 관련해 검찰로부터 소환 통보를 받는가 하면 계파 의원 다수도 법정 공방전을 펼치고 있는데.
▲전형적인 보복정치이자 고도의 총선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실체적 진실은 국민들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 ‘서민의 대변자’임을 내세우는 정동영 후보가 동작구 지역주민들과 일일이 만나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 ||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개의치 않는다. 반드시 역전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한 달 전만 해도 서울 수도권 선거는 한나라당이 전승하는 분위기였다. 선거가 본격화되면 수도권 유권자들 사이에서 견제심리가 살아나리라 기대하고 있다. 동작의 머슴론과 견제 세력론을 앞세워 꼭 승리할 것이다. 또한 이번 선거를 통해 돈으로 안 되는 것도 있다는 것을 꼭 보여주고 싶다.
현장에서 만나는 주민들에게 ‘독특한 정부’를 견제해야 한다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 ‘독특한 정부’는 다름 아닌 독선·독주·독점적인 정부 또는 특정지역·특정학교·특권층에 편중된 이명박 정부를 지칭하는 것이다. 이런 정부를 강력하게 견제하기 위해서는 강한 야당이 있어야 한다는 견제론이 점점 힘을 얻고 있는 분위기다.
―정몽준 후보와의 차별화 전략 및 자신의 경쟁력을 평가한다면.
▲국회의원은 지역의 대표이자 국민의 대표다. 지역과 국가의 일을 같이 하는 것인데 그러기 위해선 대표성이 있어야 한다. 동작을의 18만 5000명의 주민 단 한 사람도 한나라당 후보와 닮은 사람, 비슷한 사람이 없다. 거의 모든 사람이 서민과 중산층인데 이들의 대표성을 누가 갖고 있겠는가.
대머리 이야기(정몽준 후보가 주장한 ‘대머리론’)가 나왔는데 대머리인 분들이 들으면 섭섭할 것이다. 지금까지 불량 발모제가 숱하게 나왔다. 근본치료가 되는 발모제가 없다. 특정인이 ‘내가 대머리 치료를 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는 것은 과장이다. 전문가와 모든 사람들이 지혜와 노하우를 모아서 노력해야 할 일이지 돈과 권력이 있다고 해서 발모제를 뚝딱 만들 수 있나. 발모제는 힘으로 만드는 게 아니다(정몽준 후보는 18일 MBC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탈모증세가 있는 분들에게 필요한 게 발모약인데, 이 발모약을 꼭 탈모증세가 있는 대머리가 개발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면 참 답답한 논리”라고 말한 바 있다. 자신이 서민과 괴리된 재벌후보라는 지적에 대해 서민은 아니지만 서민을 위해 일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한 얘기였다).
정 의원과 나의 가장 큰 차이점은 그는 재벌 아들이고 나는 서민의 아들이라는 사실이다. 나는 자수성가한 반면 정 의원은 현대그룹을 창업한 아버지의 후광을 업고 ‘탄탄대로’ 인생을 살아온 거 아니냐. 정 의원은 결코 서민과 중산층을 대변할 정치인이 될 수 없다.
이번 선거는 동작을에서 결판난다. 한나라당이 이기면 견제세력은 어려워지고 일당독재가 활짝 열릴 것이다. 대한민국 국회가 1% 이내 특권층 사람들로 구성되면 진정한 국회라고 할 수 있겠는가. 국회마저 한나라당에 내주면 민주주의의 위기가 도래한다. 동작에서 강력한 견제세력을 만들어줄 것으로 믿는다.
―동작을 선거가 차기 대권 전초전 양상을 띠고 있는데 부담스럽지는 않나. 지는 쪽은 치명상을 입을 수밖에 없는데.
▲나는 대선후보는 잊었고 총선후보로 나왔다. 새 정부 출범 한 달이 안 되었는데 다음 대선 이야기는 너무 빠르고 시기상조인 것 같다. 나는 여기서 새롭게 출발하고 뿌리 내리려고 왔다. 수도권 평균 선거구인 이곳에서 주민들과 함께 울고 웃는 서민과 중산층의 대표정치를 시작하고 싶다. 떠날 사람이라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는데 결코 떠나지 않을 것이다. 450년 전 조상이 터 잡고 살아온 이곳에서 뿌리를 내릴 것이다.
―이번 총선 공천 과정에서 측근 의원들이 대거 탈락해 향후 당내 입지가 약화될 것이란 관측도 없지 않은데.
▲마음이 아프다. 나를 도왔다는 이유만으로 공천 과정에 불이익이 있다면 그것은 정당 민주주의의 기본을 파괴하는 것이다. 혹여 그런 일이 있다면 공정성과 투명성이 없는 것이다. 어제(19일) 비례대표 심사위원 발표가 있었는데 그나마 개혁공천을 완전히 퇴색시키는 것 같아 우려를 금할 수 없다. 공정성과 투명성이 담보되어야 한다. 어떻게 견제세력을 만들 것인지, 여기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지금은 어떻게 살아남고 견제세력을 만드느냐, 이 하나의 기준이어야 하고 이것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안 될 것이다.
―출범 초부터 인사파동 등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는 이명박 정부를 평가한다면.
▲국민들이 막연하게 걱정했던 것들이 현실로 드러나고 있는 것 같다. 이명박 정부는 경제를 살릴 수 있다는 기대심리로 탄생한 정권 아닌가. 그런 정권이 표적공천에 몰두하고 총선에 개입하고… 안타깝다. 총선에 관심두지 말고 경제 살리기에 올인해야 할 것이다. 이미 과반수는 따 놓은 당상이고 200석을 얼마나 넘길 수 있을지 내부적(청와대)으로는 그렇게 생각한 것 같은데 과욕은 누구에게도 이롭지 않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