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락가락 설계에 110억 ‘묻지마 베팅’
워터파크 사업의 시작은 20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역 발전과 수익 다원화에 대한 지역민들의 요구에 따라 강원랜드가 가족휴양리조트 건설을 통해 지역에 기여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취지는 좋았지만 이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여러 의혹이 제기됐다.
강원랜드 워터파크 사업은 잦은 설계변경으로 논란이 되고있다. 사진=일요신문 DB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는 것은 설계다. 워터파크 사업은 2007년 사업이 승인되고 난 후 4차례 설계 변경이 이뤄졌다. 그에 따른 설계·용역비만 120억 원가량 소요됐다. 또 설계 변경 과정에서 이를 담당한 건설사와 설계사 등 특정업체를 밀어줬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와 관련, 감사원은 지난 7월 워터파크 사업을 추진한 직원 A 씨가 사업 추진 업무를 부당하게 처리했다며 해당 직원에 대한 징계요구 처분을 내린 바 있다. 하지만 한 직원의 잘못으로 마무리짓기에는 부적절한 의견이 적지 않다.
강원랜드는 2007~2011년 워터파크 사업의 타당성과 관련해 여러 차례 이사회와 용역 과정을 거쳤으나 이렇다 할 결론을 내지 못했다. 사업이 지연되자 지역 내 갈등이 심화되고 사업 경쟁력마저 떨어지면서 비난을 초래했다. 2010년 조정식 민주당 의원은 국정감사 지식경제부 확인감사에서 “국책기관에서 객관적으로 사업성 평가 후 사업추진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며 원점에서 재검토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결국 강원랜드는 2011년 3월 한국개발연구원(KDI)에 사업타당성 조사를 의뢰했다. 2012년 1월까지 10개월에 걸쳐 진행된 KDI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강원랜드가 워터파크 사업을 얼마나 허술하게 진행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KDI는 “강원랜드가 산정한 이용객 수와 사업면적·사업비 등이 과다하다”며 “오히려 순현재가치(NPV)가 마이너스(-) 285억 원으로 경제성이 없고 공공성을 고려하더라도 사업 타당성을 단정 짓기 어려워 사업 추진 여부를 신중하게 판단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당시 상황에 대해 잘 알고 있는 한 인사는 “KDI가 (워터파크 사업을) 할 거면 실내에 조성하라는 조언도 했다”며 “강원랜드가 고지대에 있어 한여름에도 낮 기온이 30도를 넘지 않고 겨울이 길기 때문”이라고 귀띔했다.
그러나 강원랜드는 KDI의 조언을 무시했다. 워터파크 사업 추진을 강행했을 뿐 아니라 워터파크사업 태스크포스(TF)팀을 꾸려 워터파크의 실내와 실외 면적 비율을 30 대 70으로 설계용역을 진행했다. 기껏 국책기관에 의뢰해 받은 의견을 묵살한 셈이다. 강원랜드 내부에서조차 “정선은 여름에도 저녁이 되면 서늘한데 실외 워터파크를 크게 만든다는 게 처음부터 잘못된 일”이라는 말이 많았지만 강원랜드는 설계·공사를 강행했다.
강원랜드 내 건설부서가 존재함에도 ‘설계 발주’를 위해 TF팀을 꾸렸다는 것도 의혹을 증폭시키는 요인이다. 당시 강원랜드 건설팀 소속이던 한 직원은 “TF팀에서 설계에 관해 건설팀과 한 번도 상의한 적 없다”며 “TF팀이 설계 발주를 독단적으로 진행했다”고 털어놨다.
강원랜드 워터파크사업 TF팀은 당시 삼우건축사사무소 컨소시엄(삼우)과 67억 원의 설계 용역계약을 맺었다. 경쟁 입찰 방식으로 진행했지만 건축업계 일부에서는 “형식상 절차일 뿐 실은 특정업체를 밀어준 것”이라며 “당시 최흥집 강원랜드 대표의 비서실 직원과 강원랜드 재정운영실장이 삼우 출신이어서 삼우와 강원랜드의 연결고리 역할을 했다”고 전했다. 이후 삼우는 삼성물산에 인수돼 2014년 9월 삼성그룹 계열사로 편입됐으며 재정운영실장은 2015년 경영기획본부장으로 승진했다.
강원랜드 측은 “TF팀은 사기업도 프로젝트에 따라 꾸리는 자연스러운 일인 데다 설계사업자는 경쟁 입찰 방식과 적법한 절차에 따라 선정했다”며 “삼우에 근무하다 (강원랜드로) 온 (앞의) 두 사람은 당시 삼우를 그만둔 지 오래 됐던 터라 연결고리 운운은 지나친 억측”이라고 잘라 말했다.
강원랜드는 2015년 기존 설계안을 뒤집고 시공사인 동부건설에 설계를 변경할 것을 요구했다. 여기에는 워터파크 내부와 외부 면적을 5 대 5로 수정할 것 등이 포함됐다. 문제는 이미 원 설계대로 공사가 진행 중이었던 데다 설계를 변경하면서 43억 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한 것. 공사가 중단되면서 손실이 발생했을 뿐 아니라 앞서 67억 원을 포함해 설계 비용으로만 총 110억 원이 들어간 것이다.
국내 4번째 규모로 예정된 강원랜드의 워터파크 설계비 110억 원은 국내에서 두 번째 규모인 김해롯데워터파크와 비교해도 3배나 많은 액수다. 워터파크업계 관계자는 “강원랜드의 워터파크 설계비는 잘 봐줘도 시장 가격의 2~3배가 넘는다”며 “전례가 없는 액수라 업계에서 말이 많았다”고 꼬집었다.
강원랜드가 설계 변경을 지시한 이유는 대략 이렇다. 원 설계안은 실내 워터파크가 경사지역에 들어서도록 돼 있는데, 경사지역에 공사를 할 경우 비용이 많이 들 뿐 아니라 매립토로 돼 있어 지반 안정성이 낮아 위험하다. 뿐만 아니라 실내·외 워터파크 위치가 분리 조성돼 탈의실·편의시설·출입구 등 제반 시설을 따로 설치해야 하는 불편함도 있었다. 이 같은 이유로 강원랜드는 설계 변경을 지시했지만 이 과정에서 또 다른 의혹이 제기된다.
강원랜드는 직접 나서지 않고 동부건설 컨소시엄이 자체적으로 설계용역을 수행할 업체를 선정할 수 있도록 했다. 동부건설은 설계 변경을 담당할 업체로 ‘나우동인’과 수의계약을 맺었다. 그런데 ‘나우동인’은 문제가 된 원 설계 용역 담당 업체다. 여러 문제점 때문에 설계를 변경하겠다면서 원 설계 업체와 다시 수의계약한 것이다.
감사원은 강원랜드가 마치 동부건설 컨소시엄이 워터파크 사업의 발주기관인 것처럼 해 계약 상대를 선정하게 하고, 특정업체에 수의계약 형태로 특혜를 줬다고 지적했다. 전 강원랜드 직원은 “동부건설 직원들 사이에서 강원랜드가 압력을 넣어 특정 업체를 선정하라고 했다는 말이 많았다”며 당시 상황을 전했다. 강원랜드와 동부건설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일축했다. 동부건설 관계자는 “나우동인은 워터파크 설계에 전문성이 있고, 원 설계를 진행해 당시 상황을 가장 잘 알기 때문에 선정했다”고 해명했다.
감사원은 또 강원랜드가 워터파크 사업계획을 대폭 수정하며 ‘재설계’가 아닌 ‘설계변경’을 한 것이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국가계약법 시행규칙 제74조와 공사계약 일반조건 제19조에 따르면, 사업계획 변경으로 공사 계약업체와 설계를 변경할 수 있는 허용범위는 설계 원안과 도면 일부분을 수정하는 경우로 한정된다. 강원랜드의 경우 기존 사업계획을 대폭 변경해 새로 설계해야 하므로 다시 경쟁 입찰 방식으로 용역업체를 선정해야 타당하다는 것이다.
강원랜드 관계자는 “설계변경 업체 선정은 동부건설이 전권을 가지고 있었고 강원랜드의 어떠한 개입도 없었다”며 “이권을 두고 경쟁하다보니 입찰에 탈락한 기업과 각자 시각에 따라 잡음이 나오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금재은 기자 silo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