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민 몰아내려고 싸웠는데 박근혜 이사장이 물러나더라”
지난 1990년대 육영재단 분쟁 당시 ‘박정희 숭모회’를 만들었던 이영도 회장은 최 목사 일가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인물이다. 최순실 씨는 지난 1994년 부친이 사망하자 이 회장을 지목하며 “그 사람 때문에 아버지가 (화병으로) 돌아가셨다”고 말한 바 있다.
국회 시정연설을 끝낸 박근혜 대통령이 최순실 의혹 규명을 요구하는 야당 의원을 무시하고 지나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이 회장은 “우리는 박근혜 대통령을 몰아내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최태민 일가를 몰아내려고 했던 것인데 박 대통령이 책임을 지고 물러났던 것”이라며 “박 대통령보다는 최태민 일가가 문제였다”고 회고했다. <일요신문>이 10월 25일 이 회장을 만나 육영재단 사태 당시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어봤다.
―최순실 씨가 대통령 연설문 작성에 관여하는가 하면 청와대 인사에까지 개입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과거 최태민 목사도 측근들을 육영재단 요직에 앉혀 전횡을 일삼았다. 당시 재단에 출근하면 어느 날 갑자기 새로 온 사람이 자리에 앉아 있고 그랬다. 최 목사는 공식적인 직책도 없었는데 재단 일에 사사건건 개입했다. 정식 라인에 있지도 않으면서 인사 채용할 때 면접 비슷하게 입사자들과 면담을 가지기도 했다. 그래서 재단 사람들이 요즘 말로 최 목사가 ‘오바’한다고 수군거렸다. 당시 재단 내에서 ‘그 사람(최 목사)에게 찍히면 나간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박 대통령과 최순실 씨는 어떤 관계인가.
“당시만 해도 최순실이 육영재단 사태에 등장하긴 했지만 최태민에 가려 크게 주목받진 못했다. 나도 최순실에 대해서 잘 몰랐다. 그런데 최태민의 권력을 그대로 승계한 최순실은 오늘날 괴물이 된 것이다. 당시 최순실이 어린이회관 유치원 운영에 깊게 관여해 직원들의 불만이 많았다. 결국 최태민, 최순실 물러가라며 노사분규가 터졌다. 일개 재단 직원들도 최태민 일가의 전횡에 반발해 노사분규를 일으켰는데 명색이 청와대에서 근무하는 최고 엘리트들이 최순실 개입에 반발하기는커녕 동조했다는 사실이 매우 한심하다.”
―최순실 씨의 재산이 수백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 최태민 일가가 재단의 돈을 빼돌려 재산을 증식한 것 아닌가.
“그것은 알 수가 없다. 과거 우리가 성명서를 낼 때도 최태민 일가가 전횡을 저지르고 있다고 했지, 횡령이나 돈을 빼돌렸다고 표현하지는 않았다. 우리가 회계 장부를 다 살펴봤는데 횡령이 있었는지는 확인이 안됐다. 물론 그런 방식으로 재산을 증식했을 가능성은 있지만 확인이 안 된 이야기를 할 수는 없다.”
―최태민 일가가 전횡을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박 대통령은 몰랐나.
“문제가 외부로 표출되기 전에 (박 대통령에게) 이야기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결국 결말도 이상하게 나 버렸다. 우리는 최태민 일가가 물러나기를 원했는데 박 대통령은 ‘최태민 물러가라는 소리는 자신보고 물러나라는 소리가 아니겠냐’며 이사장직에서 사퇴했다.”
―최태민 일가가 재단의 돈을 빼돌렸다면 박 대통령에게도 일부 돈이 흘러갔다고 보나.
“나는 그럴 가능성은 적다고 생각한다. 미르재단, 케이스포츠재단도 박 대통령이 퇴임 이후를 준비하기 위해 만들었다는데 코미디다. 박 대통령이 현재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수장학회, 부산일보, 영남대학, MBC 등등과 비교하면 800억 원짜리 재단은 스케일이 작다. 대통령 퇴임 후에도 일거수일투족이 언론에 보도될 텐데 그 돈으로 호화생활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단순하게 접근해서는 안 된다. 두 재단을 만든 진짜 이유는 따로 있을 것이다.”
―박 대통령이 최태민 일가에게 의지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박근혜 대통령은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의 충신들이 대통령 서거 후 완전히 돌아서는 모습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최태민 일가는 대통령 서거 이후에도 박근혜 대통령 곁을 끝까지 지킨 사람들 아닌가? 그래서 신뢰하게 된 것 같다.”
―최태민이나 최순실은 어떤 사람이었나.
“최순실과는 만난 적이 없다. 당시 우리는 최태민과 싸우고 있었고 최순실은 조연에 불과했으니까. 최태민과는 4시간가량 독대를 한 적이 있다. 어느 날 위에서 보자고 해 갔더니 박 대통령이 아니라 최태민이 앉아 있더라. 박근혜 씨를 잘 도와달라고 하더라. 논리는 정연했던 인물이었다.”
―박 대통령 동생인 박근령 전 육영재단 이사장의 미국행을 부추긴 것도 최태민 일가라고 하던데.
“당시 박근령 전 이사장이 박 대통령의 비서 역할을 하고 있었는데 첫 번째 결혼에 실패한 후 미국으로 떠났다. 물론 개인적인 의견에 불과하지만 박 전 이사장이 뒤늦게 생각해보니 최태민 일가가 자신을 박 대통령에게서 떼어내기 위해 그런 식으로 한 것 아닌가 의심이 들더라는 것이다. 미국에서 돌아와 보니 이미 최태민 일가가 박 대통령 주변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최순실 씨는 정윤회 씨가 아닌 다른 사람과 결혼 생활 중이었다고 들었다. 최 씨의 첫 번째 남편도 육영재단 일에 개입했나.
“첫 번째 남편은 육영재단 일에 관여하지는 않았다. 3년 정도 결혼 생활을 하다 이혼한 것으로 알고 있다. 첫 번째 딸도 있었는데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과거에 비선실세가 없었던 정권이 있었나? 김영삼정부 때는 아들인 김현철이 소통령으로 불렸고, 이명박정부 때도 형인 이상득 전 의원이 인사에 깊게 관여하지 않았나. 물론 잘못된 일이지만 박 대통령만 유독 가혹한 비판을 받고 있는 것 같다. 나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존경해 숭모회까지 만든 사람이다. 박 전 대통령의 자손인 박근혜 대통령이 나쁘게 되길 바라겠는가. 하지만 이번 기회에 최태민 일가와는 완전히 선을 그었으면 좋겠다. 최태민 일가가 박 대통령 주변에서 계속 문제를 만든다면 내가 나설 것이다. 아직도 할 말이 많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