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중심 리더십’ 성과만큼 불만 낳아
▲ 최근 어청수 경찰청장은 불교계와 시민단체들로부터 거센 퇴진 압력을 받고 있다. | ||
일반인들의 생각과는 다르게 어청수 청장은 가톨릭 신자다. 지난 6월 ‘경찰복음화 대성회 포스터’에 그의 사진이 들어간 일 때문에 개신교 신자라는 오해가 적지 않았고 아직도 그렇게 알고 있는 사람들도 많지만 그는 프란치스코라는 세례명을 가지고 있으며 집무실에 성당 상징물을 비치해 놓았을 정도로 독실한 가톨릭 신자다.
그런데 최근 그는 자신이 한때 불교 신자였다는 사실을 밝히기도 했다. ‘포스터 사건’과 ‘조계종 총무원장 검문·검색 사건’으로 불교계의 표적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 말이다. 그는 8월 25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나는 원래 불자였으며 남해 보리암에 가면 부처님께 절을 올리는 사진이 있다”며 “가족들 중에는 여전히 불교 신자들이 많다”고 말했다.
또 그는 불교계 중진 스님 300여 명에게 등기우편으로 사과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삼보에 귀의하옵고’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이 편지에는 여러 가지 불교용어가 등장해 눈길을 끈다. 어 청장은 이 편지에서 ‘2000만 사부대중들께 큰 걱정과 염려를 끼쳐드린 데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불기 2552년 8월 14일 경찰청장 어청수 합장’이라는 말로 끝맺고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불교 형식으로 쓴 서신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불교계의 반응은 냉담하다. 불교계의 한 관계자는 “범불교도 대회를 앞두고 이런 편지를 보낸 것은 대회를 축소하려는 의도로밖에 생각되지 않는다”며 “자신이 개종했다는 사실을 얘기하는 건 불교를 두 번 죽이는 일”이라고 일축했다.
그의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정치권에서도 나오고 있다. 이미 야권에서는 “촛불시위 강경진압과 인권 침해”를 이유로 경질을 강력하게 주장해 왔다.
특히 8월 28일 광우병 국민대책위원회는 야권 의원 14명이 참가한 가운데 ‘어 청장 파면을 위한 국민청원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국회에 신청한 국민청원에는 11만 4050명의 시민도 함께 참여했는데 시민단체 관계자에 따르면 “단 하루 만에 받은 서명 숫자”라며 “지난 3개월간 1500여 명의 국민을 체포한 결과”라고 전했다.
경질론은 여권 내부에서도 흘러나오고 있다.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는 8월 25일 최고위원회에서 “어 청장에 대한 책임 있는 조치가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 일각에서도 “불교계 공세가 계속되면 어 청장이 자진 사퇴를 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나타내기도 했다.
하지만 청와대의 ‘경질 불가’ 방침에는 변함이 없다. 청와대 관계자에 따르면 “가톨릭 신자인 그가 개신교 행사 포스터에 등장한 걸 두고 종교편향으로 보기는 힘들며, 또 그동안 어 청장이 꾸준히 불교계에 사과를 해왔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야권에서는 이러한 청와대의 반응에 대해 “지나치게 감싸는 것 아니냐”는 반응.
그런데 어 청장은 노무현 정부 시절에 임명된 경찰청장이다. 게다가 그는 노 정부 내내 경찰 내부의 주요 요직에서 일한 ‘실세’로 통했다.
그는 2008년 1월 8일 이택순 전 경찰청장의 후임으로 내정되었다. 이는 당시 대통령직인수위원회와 노 정부가 협의를 거친 결과였다. 들리는 얘기로는 인수위원회에서 어 청장을 먼저 낙점을 하고 이를 청와대가 수용하는 쪽으로 결정되었다는 얘기도 있었으나 확인된 바는 없다. 다만 그가 노 정권과 인수위원회의 합의 하에 이루어진 최초의 인사였다는 건 사실인 것 같다.
어 청장이 경찰청장으로 내정되었을 때 노 정부에서조차 “상황 판단이 빠르고 업무 조정 능력이 탁월한 인물”이라는 평을 내리며 “무난한 인사”라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어 청장은 내정이 되자마자 “전·의경을 없애지 않고 1만 5000~2만 명 수준으로 유지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발언을 해 노 정부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전·의경 모집을 단계적으로 축소하고 나중에는 폐지하겠다는 게 당시 노 정부의 방침이었기 때문이다.
▲ 노무현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수여받는 모습(위), 이명박 대통령과 회의실로 들어서는 모습. | ||
경남 진양 출생으로 73년에 진주고, 80년에 동국대 경찰행정학과를 졸업했다. 동국대에서 사회복지학 석사과정을 마쳐 사회복지사 1급 자격증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그는 88년 부산 동래 경비과장으로 경찰에 입문했다. 이어 서울 강남서 정보과장, 서울 김포공항 경찰대장, 서울 경찰청 정보관리부장, 부산지방경찰청장, 서울지방경찰청장 등의 요직을 두루 거쳤다. 한 경찰 관계자는 이러한 이력에 대해 “어 청장은 고위직 인사의 하이라이트로 평가받을 만큼 고속 승진을 한 케이스”라고 평하기도 했다.
어 청장이 이렇게 주목받을 수 있었던 데에는 몇 가지 큰 ‘성과’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1995년 그가 경남 합천경찰서장 부임 당시 전두환 전 대통령이 구속되는 일이 있었다. 그때 주민들의 반대가 거셌는데, 이들을 잘 설득해 전 전 대통령을 마찰 없이 연행할 수 있었다고 한다.
또 2006년 경기지방청장 시절엔 국방부가 평택의 미군기지 이전 지역에 대한 경비를 요청한 일이 있었다. 이때 어 청장은 “법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러한 판단에 대해 주변으로부터 “경찰이 주민과 국방부 중간에서 욕을 먹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는데 선을 확실히 그어서 경찰의 위신을 세웠다”는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당시 “주민이 살던 집을 강제 철거하고 폭력진압을 했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어 청장은 또 물대포와 인연이 깊다. 2005년 부산에서 열린 APEC 회의 시위대를 향해 물대포를 발사해 물의를 빚었다. 최근의 촛불 시위에서 물대포로 진압한 일 역시 당시에 효과를 톡톡히 본 경험이 있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이러한 물대포 사용으로 ‘과잉 진압’이라는 비난은 면치 못했지만 정부 고위층 인사들로부터 ‘시위를 확실하게 진압하고 완벽한 경비를 했다’는 평가를 받는 긍정적인 작용도 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러한 경찰로서의 ‘성과’보다는 ‘인맥’으로 고속 승진했다”는 곱지 않은 시선도 있다. 실제로 어 청장은 이명박 대통령과는 꽤 오래 전부터 친분을 쌓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두 사람의 인연은 어 청장이 강남서 정보과장이고, 이 대통령이 민자당 비례대표 의원이었던 1992년부터 시작된 것으로 알려진다. 이때 어 청장은 이 대통령에게 정치적인 조언을 하면서 친분을 쌓았다고 한다. 또 이 대통령이 종로 지역구 의원으로 출마했던 1996년에는 어 청장은 종로서 정보과장이었다. 이러한 인연은 이 대통령의 서울시장 재직 시절에도 이어져 2003년에 그는 서울경찰청 정보관리부장을 맡게 된다.
어 청장이 2000년 은평경찰서장으로 재직할 당시에는 이 지역구의 이재오 의원과 각별한 사이로 지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그가 경찰청장으로 내정될 당시 “이재오 의원이 적극 추천했기 때문에 경찰청장이 될 수 있었다”는 뒷말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어 청장의 좌우명은 ‘솔선수범, 선공후사’다. 이러한 신념에서 나타나는 업무 스타일이 ‘현장 중심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시위 현장에 직접 나타나 진두지휘를 하는 걸 즐긴다. 경찰청 취임 당시에도 취임사를 통해 “치안의 승부처는 현장이다. 문제의 원인도 현장에 있고 해답도 현장에 있다. 현장을 살피지 않는 치안은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늘 일선 경찰공무원들에게 ‘현장중심, 실무중심’을 강조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경찰 내부에서는 “아래 사람들의 의견을 듣는 것보다는 생각하는 바를 밀어붙이는 스타일”이라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한 경찰 간부는 “실무중심와 밀어붙이기 스타일은 이 대통령의 스타일과도 많이 닮아 있다”는 평을 하기도 했다.
▲ 어청수 청장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국법회. | ||
하지만 민주당 최영희 의원이 “어 청장의 동생이 직접적으로 관여했다는 문서가 발견됐다”고 밝히면서 동생 문제가 다시 불거져 나왔다. 게다가 최 의원은 “어 청장이 자신의 지위와 직권을 이용해 동생의 성매매업소 운영을 은폐하려고 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부산 MBC 노조 역시 “어 청장이 부산경찰청 정보과로부터 언론사의 취재 동향과 취재기자의 신상정보를 보고 받았다”며 사건 은폐 의혹을 제기했다. 하지만 경찰청 측은 “이러한 의혹 제기가 사실과 다르다”는 입장을 보이며 해당 언론에 정정보도 요청을 하기도 했다.
어 청장은 슬하에 2남을 두고 있다. 최근 큰아들의 군면제가 도마에 올라논란이 되기도 했지만 여기엔 잘못 알려진 부분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아들 군면제는 그가 경찰청장으로 내정되었을 때 이미 밝힌 바 있는 사안이다. 당시 어 청장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준비하던 한 야당 의원은 어 청장 아들 병역문제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려 했으나 어 청장 측의 해명을 듣고 바로 접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가 됐던 것은 군면제 사유인 질병을 공개하지 않았던 부분인데 해명 요청을 받은 어 청장 측이 병명을 밝히면서 공개하지 못한 사연과 그 아들을 위해 자신이 해온 고민과 노력을 털어놓았고 이에 의혹을 제기했던 야당의원도 흔쾌히 동의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어 청장의 사퇴 여론이 높아지면서 아들의 군면제 사유 즉 ‘질병 명 미공개’가 인터넷에서 다시 불거졌다. 한 포털 사이트에서 어 청장 아들 군면제 관한 글이 올랐지만 얼마 후 삭제됐는데 이를 두고 말썽이 인 것. 네티즌들은 “아들 군면제 사유는 유명 언론사 인물정보에도 기록되어 있는 내용인데 포털 측에서 삭제한 건 외압이 작용한 것 아니냐”며 의혹을 제기했다.
글을 삭제하는 과정에서 절차상의 문제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 청장으로선 아들 군면제에 있어서만큼은 떳떳하다는 게 주변의 주장이고 야당 측도 공감하는 부분이다.
한편 그는 지난 3월 고위공직자재산공개에서 11억 1499만 4000원을 신고했다. 이는 경찰 고위직 간부들의 평균 재산 정도다.
어 청장은 현재 촛불시위에 대한 과잉 진압, 조계종 총무원장 검문으로 발화된 불교계의 반발 등으로 안팎에서 거센 퇴진 압력을 받고 있다. 특히 불교계의 반감은 그 강도가 심하다. 불교계 일각에서 “다른 건 몰라도 어 청장만큼은 물러나게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올 정도.
이러한 불교계의 반발에 대해 정치권 일각에서는 “정부가 어 청장을 희생양으로 삼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즉 “촛불시위부터 최근의 KBS사장 문제로 계속되고 있는 반정부 민심을 돌리고 축소하기 위해 불교계의 불만을 의도적으로 방치했다”는 얘기. 하지만 여권에선 이 같은 시각에 대해 “불교계의 반발이 촛불 민심으로 옮아가는 형국을 보이는 최근 정세를 볼 때는 설득력이 없다”며 일축했다.
조계종 관계자는 “‘범불교도 대회’가 시작일 뿐이며 앞으로 5년 동안 대정부 공세를 계속할 생각”이라고 강조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어 청장의 퇴진론은 약방의 감초처럼 끊임없이 제기될 터. 따라서 ‘퇴진 불가’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청와대의 고민도 계속될 듯하다.
류인홍 기자 ledh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