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인사 본인 아지트로 불러 ‘면접’까지…박 대통령과 논의 후 없던 일로”
최 씨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되고 있는 가운데 그녀를 둘러싸고 수많은 의혹들이 봇물처럼 제기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일요신문>은 최 씨가 포스코 그룹 인사에 개입하려 했던 정황을 포착했다. 최 씨가 박 대통령을 등에 업고 사기업에도 영향력을 미치려 했던 것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어서 파장이 예상된다.
정윤회 씨(왼쪽)와 전 부인 최순실 씨가 2013년 7월 19일 경기도 과천 경마공원 관중석에 앉아 있는 모습. 사진제공=한겨레
지난해 2월 초 논현동의 한 커피숍에 최순실 씨가 모습을 드러냈다. 최 씨가 운영하는 것으로 드러난 고급커피숍 ‘테스타로사’였다. 최 씨는 논현동과 청담동 일대에 본인과 측근들이 사용하기 위한 비밀 아지트를 여러 개 뒀는데, 테스타로사도 그 중 하나였다. 특히 이곳은 최 씨가 정재계의 인사들을 소개받기 위한 용도로 자주 활용됐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날 만남은 청와대 전직 고위관계자가 주선했다고 한다. 최 씨와 친분이 있던 그가 재계인사 두 명을 데리고 와 최 씨에게 인사를 시키는 자리였다. 여기엔 최 씨와 오래전부터 가깝게 지냈던 지인도 한 명 동석했다. 당시는 최 씨가 비선 실세임이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때였다. 다음은 이 자리에 참석했던 재계 인사의 말이다.
“특별한 제안을 할 게 있어서 정윤회 씨와 접촉하기 위해 수소문을 했다. 그런데 정 씨는 부인과 이혼한 후에 사실상 권력에서 멀어졌다는 얘기를 들었다. 오히려 최 씨가 막후에서 최고 실력자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평소 알고 지내던 청와대 전직 고위관계자에게 부탁했고, 2월 초 논현동 커피숍에서 최 씨를 봤다. 최근 뉴스를 보고 나서 그곳이 테스타로사임을 알게 됐다.”
특별한 제안이라는 말에 관심이 쏠렸다. 박근혜 대통령과 수시로 연락할 정도로 실세 중 실세였던 최 씨와의 만남이 성사됐던 이유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앞서의 재계 인사는 “포스코와 관련된 것이었다. 우리가 미는 특정 인사들을 회장과 고위임원 자리에 앉히기 위해선 권력의 힘이 필요했다. 그래서 최 씨에게 줄을 댔던 것이고, 실제로 만나서 이 문제들을 최 씨 등과 논의했다”고 귀띔했다.
이날 최 씨를 만난 청와대 전직 고위관계자와 재계 인사들은 권오준 포스코 회장을 중도 하차시키고, 새로운 인물을 회장직에 발탁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2014년 3월 취임한 권 회장 임기가 채 일 년도 지나지 않았는데 교체를 추진했던 것이다. 더군다나 포스코는 정부 입김에 휘둘린다는 지적을 끊임없이 받긴 했지만 2000년 민영화된 사기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 씨를 앞세워 포스코 회장을 바꾸려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한 사정당국 고위인사는 “포스코 회장 자리와 관련해 이러한 움직임은 당시에 포착이 됐었다. 그래서 자체적으로 조사를 벌인 적이 있다. 결론은 특정 세력이 자기 입맛에 맞는 인물을 회장 자리에 내세우기 위한 것이었다. 포스코라는 회사를 통해 이권을 챙기기 위한 시도였던 것이다. 최 씨까지 연결돼 있다는 것은 알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포스코는 민영화된 후에도 정치적 외풍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정권 실세들이 연루된 비리 의혹도 여러 번 제기됐다. 지난 정권 땐 정준양 전 회장 임명 과정에 이상득 전 의원 라인들이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정황이 검찰 수사 결과 드러나기도 했다. 지난해 검찰은 포스코에 대한 수사를 진행해 이 전 의원과 그룹 전·현직 고위 임원을 기소한 바 있다.
이런 측면에서 봤을 때 포스코 회장 교체 움직임은 앞서 사정당국 인사의 증언처럼 부적절한 의도가 담겨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포스코를 장악하기 위해선 일단 회장을 바꿔야만 했고, 이 과정에서 힘을 써줄 정권 실세인 정윤회 씨를 수소문하다가 최 씨까지 연결됐다는 얘기다.
최 씨 역시 초반엔 긍정적인 반응이었다고 한다. 이는 권 회장 자리를 대신할 인사와 직접 만났다는 것에서 짐작할 수 있다. 첫 번째 만남 후 한 달 뒤인 3월 초 최 씨는 청와대 전직 관계자가 데려온 그를 3시간가량 만났다. 장소는 역시 테스타로사였다. 사실상의 면접이었던 셈이다.
아무런 권한도 없는 일반인이 국내 대기업 회장을 바꾸기 위해 그 후보자 중 한 명을 자신의 아지트로 부른 것으로, 상식적인 수준에서 이해하기 힘든 장면이다. 그러나 권 회장 교체는 이뤄지지 않았다. 이에 대해 최 씨는 ‘VIP 뜻’이라고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앞서의 재계인사 말이다.
“최 씨가 회장 후보자를 만나고 난 뒤 보름쯤 후에 전달을 받았다. 박 대통령과 논의해본 결과 지금의 교체는 적절치 않다고 결론을 내렸다는 것이었다. 또 새롭게 회장을 맡을 인물을 탐탁지 않아했다”면서 “당시 우리는 최 씨가 진짜 박 대통령과 그런 사안을 가지고 얘기를 주고받았을까 하는 의구심이 있었다. 그냥 최 씨가 힘을 못 쓰니까 박 대통령 핑계를 대는 줄로 알았는데, 지금 보면 거짓은 아니었던 것 같다.”
이처럼 지난해 2~3월경 있었던 포스코 회장 교체 시도는 무산됐다. 어떻게 보면 최 씨 주변에서 벌어진 무수한 일 중 하나로, 해프닝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나타난 최 씨의 모습은 그녀가 얼마나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는지를, 또 이러한 것에 대해 별다른 문제의식이 없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국민의당의 한 중진 의원은 “미르나 K스포츠재단, 이화여대 등에만 최 씨 그림자가 있는 것은 아니다. 최근 최 씨가 민간기업 인사에도 관여했다는 보도가 나오지 않았느냐. 이는 최 씨가 현 정부 내내 다양한 분야에서 힘을 과시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본인의 이권 챙기기는 물론 여러 민원도 들어줬을 것으로 보인다. 단군 이래 가장 힘이 센 비선 실세라고 할 수 있다. 대대적이고 성역 없는 수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