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에선 “충직한 지팡이” 아래선 “민중의 몽둥이”
만약 검찰 수사 발표 후 김 내정자가 자진 사퇴하는 수순을 밟거나 이명박 대통령이 ‘경질’ 카드를 꺼내들 가능성도 높다. 그러나 이 대통령이 ‘김석기’ 카드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경우 정치권은 인사청문회와 2차 입법전쟁과 맞물려 또다시 정면충돌을 피할 수 없어 사태가 확전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1·19 개각 하루 전에 경찰 총수로 내정됐다가 이틀 후 터진 ‘용산 참사’ 사건으로 책임론과 사퇴론에 시달려 온 김 내정자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 또 ‘김석기 문제’로 장고를 거듭하고 있는 이 대통령의 복심은 대체 무엇일까. 2월 정국 최대 ‘화약고’인 김 내정자의 인생역정과 확전되고 있는 ‘용산 참사’ 후폭풍 속으로 들어가 봤다.
경북 영일 출신인 김 내정자는 영남대 행정학과를 졸업한 뒤 1979년 경찰간부 후보 27기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경찰에 입문했다. 김 내정자는 경찰 간부 승진 시험에서도 1등을 놓친 적이 거의 없을 정도로 경찰 내에서는 우등생으로 잘 알려져 있다.
김 내정자는 대한민국 경찰의 상징인 ‘포돌이’ 창시자로 유명하다. 1990년 일본경찰대학 연수 시절 일본 경찰의 마스코트를 보고 국민과 경찰의 매개체 역할을 할 수 있는 마스코트를 창안해 보겠다는 마음으로 ‘포돌이’ 창안 작업에 돌입했다고 한다. 김 내정자는 97년 인천연수경찰서장 재직시절에 ‘연수서+경찰’을 의미하는 캐릭터 ‘연폴’을 창안한 데 이어 98년 수서경찰서장 재직 당시에는 ‘수서경찰서+경찰’을 의미하는 ‘수폴’ 마스코트를 만들었다.
김 내정자가 만든 마스코트가 시민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자 99년부터 김 내정자가 창안한 포돌이는 대한민국 경찰을 상징하는 마스코트로 자리매김했다.
“포돌이의 큰 귀는 ‘시민의 소리를 잘 듣겠다’는 의미이고, 큰 눈은 ‘어두운 곳까지 잘 살피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고, 미소는 ‘친절’을, 가슴의 천칭은 ‘공정한 업무집행’을 뜻한다”고 김 내정자는 설명한다. ‘포돌이’에 대한 자부심 또한 남다르다. 김 내정자는 e-메일 주소로 ‘포돌이 창안자’라는 뜻을 담고 있는 ‘Podoricreator’를 쓰고 있고, 자신이 운영하는 미니홈피에도 ‘우리들의 친구 포돌이’라는 코너를 따로 만들어 39장에 이르는 포돌이, 포순이 캐릭터 사진을 올려놓고 있다고 한다.
김 내정자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는 상관에게도 직언을 서슴지 않을 정도로 원칙주의자로 통한다. 2007년 한화 김승연 회장의 보복 폭행사건 은폐 의혹이 불거져 경찰 내부가 동요하자 당시 이택순 경찰청장에게 ‘물러나라’고 직언한 사실은 지금도 경찰 내에서 회자되고 있다. 이 직언 이후 김 내정자는 대구경찰청장에서 경찰종합학교장으로 좌천성 인사를 당하기도 했다.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 김 내정자의 성격과 자질을 놓고 경찰 내부의 평가는 다소 엇갈리고 있다. “수십 년 만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는 청장감”이라는 극찬이 있는가 하면 “겉으로는 원칙을 지향하면서도 내심 정치권력을 가까이 한다”는 비판적 시각도 적지 않다.
실제로 TK(대구·경북) 출신인 김 내정자는 현 정권 실세들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강한 ‘충성심’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김 내정자가 이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의 고교 후배라는 점에서 현 정부 출범 후 승승장구하면서 차기 경찰청장 1순위로 급부상한 바 있다.
지난해 3월 치안정감으로 승진한 김 내정자는 같은 해 7월 촛불집회가 절정으로 치닫던 시기에 서울경찰청장으로 부임해 촛불집회를 ‘성공적으로 진압’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당시 최루액과 색소분사기 사용, 검거 위주의 진압 등 강경 대응책을 내놓았고, 유모차 부대와 청소년들에 대한 수사를 벌여 시민단체 등으로부터 지탄을 받기도 했다. 시위자를 검거한 경찰관에게 포상금을 지급하는 방안을 추진해 논란을 야기했던 장본인이기도 하다.
이 대통령이 1·19 개각 때 김 내정자를 차기 경찰청장으로 발탁한 배경에는 촛불집회 진압 과정에서도 보여준 김 내정자의 ‘법질서 확립’ 의지와 강직한 충성심이 작용한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 촛불집회 당시 시민과 대치 중인 전경들의 모습(위)과 화재로 6명이 사망한 용산 참사 현장. | ||
논란이 일자 청와대는 1월 19일 해명자료를 통해 “김 내정자의 치안감 계급정년은 경찰공무원법 제24조 5항의 규정에 따라 2008년 6월 말까지”라며 “2008년 3월 치안정감에 승진한 인사는 적법하다”고 반박했다. 경찰공무원법 제24조 5항에는 “경찰공무원은 그 정년에 달한 날이 1월에서 6월 사이에 있는 경우에는 6월 30일에, 7월에서 12월 사이에 있는 경우에는 12월 31일에 각각 당연 퇴직된다”고 적시돼 있다. 이 규정에 따라 김 내정자의 치안감 계급정년은 2008년 6월까지로 해석해야 한다는 게 청와대와 경찰청의 논리다.
하지만 경찰공무원법 제24조 5항 규정은 통상적으로 ‘정년퇴직’과 관련된 것으로 “승진자는 이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법 해석이 일반적이다.
참여정부 시절 인사제도비서관을 지내면서 경찰 최고위 인사를 담당했던 C 씨는 최근 기자와 만나 “치안감 이상 경찰 최고위직 인사는 경찰 내부 평가와 자질, 업무수행 능력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후보자를 2배수 이상 추천해 왔다”라며 “김 내정자의 경우 (당시) 치안정감 승진 후보자 2배수에도 포함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C 씨는 이어 “김 내정자는 참여정부 말 옷을 벗었어야 했는데 이명박 정부가 탄생하면서 기적적으로 회생한 케이스”라며 “계급 정년을 2개월 넘긴 것도 분명한 위법으로 김 내정자가 경찰 수장에 오를 경우 두고두고 논란의 불씨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용산 참사’ 책임론에 휩싸인 김 내정자의 거취 문제는 정치권을 넘어 사회적 이슈로 확전되고 있는 형국이다. 용산 사건 이후 야권과 시민단체는 줄기차게 김 내정자의 사퇴와 이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해 왔다. 하지만 청와대와 한나라당은 ‘선 진상규명’ 입장을 거듭 천명하는 동시에 검찰 수사와 여론 추이를 살피면서 ‘버티기’로 일관해온 형국이다. 당초 설 연휴를 전후로 그의 거취가 결정 날 것이란 관측이 우세했지만 청와대는 검찰 수사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김 내정자의 거취 문제를 차일피일 미뤄왔다.
지난 2월 초를 전후해서는 ‘검찰 수사 발표 직후 김 내정자가 자진 사퇴 수순을 밟게 될 것’이란 얘기가 정가에 설득력 있게 나돌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검찰 수사 발표가 연기됨에 따라 김 내정자의 거취 문제 또한 검찰이 용산 사건 수사 발표를 예고한 2월 9일 이후 가닥이 잡힐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여권 내부에서는 여전히 교체론과 유임론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분위기다. 교체론은 홍준표 원내대표가 가장 적극적이다. 홍 대표는 “이번 사건은 일하다가 접시를 깬 게 아니라 일하다가 집을 홀랑 태운 것”이라며 “김 내정자는 사법책임이 아니라 관리책임을 져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청와대의 한 핵심관계자도 “용산 참사로 6명이나 숨졌고, 조기 진화에 나서지 않을 경우 더 큰 사회적 파장을 야기할 수 있다는 점에서 ‘김석기 지키기’는 분명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본다”며 교체론에 방점을 찍었다.
유임론도 만만치 않다. 검찰 수사 결과 김 내정자가 형사책임이 없는 것으로 나왔는데도 교체를 한다면 공직사회 사기가 저하될 수 있고 법치가 흔들릴 우려가 있다는 게 유임론자들의 논리다. 1월 30일 SBS TV <대통령과의 원탁대화>에 참석한 이 대통령이 법질서 확립을 강조하면서 꺼내든 이른바 ‘접시론’도 유임론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이 대통령이 1·19 개각을 통해 정리한 집권 2기 권력기관 운영 구상과 함께, 어청수 전 청장에 이어 김 내정자마저 낙마할 경우 마땅한 대안이 없지 않느냐는 ‘대안부재론’도 유임론을 부추기고 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이 김 내정자를 끝까지 지킬 수 있을지에 대해선 회의적인 시각이 적지 않다. 검찰 수사가 사실상 김 내정자에게 면죄부를 주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부실 수사’ 논란과 맞물려 민주당 등 야권은 ‘특검’ 카드를 꺼내들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이 김 내정자를 경질하지 않을 경우 2차 입법전쟁을 앞두고 있는 2월 정국 또한 파행을 거듭하면서 극한 대치상황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시민사회단체들은 김 내정자의 처벌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에 돌입한 상태고, 용산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는 정치권과 시민단체들의 대규모 집회도 지속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김 내정자 거취 문제가 사회 저항 운동을 넘어 자칫 정권 퇴진 운동으로까지 확전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검찰 수사 발표 후 김 내정자가 자신 사퇴하는 수순을 밟거나 이 대통령이 ‘김석기’ 카드를 버릴 수밖에 없을 것이란 관측에 무게감이 실리고 있는 정황들이다.
초읽기에 돌입한 ‘김석기 거취’ 문제와 관련해 당사자인 김 내정자와 인사권자인 이 대통령이 과연 어떤 결정을 내릴지 국민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