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선은 떡먹기’라고 누가 그랬나
▲ 지난 10일 전북지역 합동연설회에 앞서 이명박 박근혜 대선예비후보가 ‘비빔밥 오찬’을 위해 모였다. 사진제공=한나라당 공보실 | ||
사실 두 후보는 경선 레이스 내내 “당신은 후보가 돼선 안 될 사람”이라며 네거티브 공방으로 일관해 국민들의 외면과 비난을 자초하고 있다. 여기에 남북 정상회담 등 외적인 요인도 만만치 않다. 상처만 남은 한나라당 경선. 과연 그 승자는 본선에서도 웃게 될까.
한나라당 경선은 ‘내가 잘 하는 것은 이것이다’라고 설명하는 포지티브 경쟁이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너는 이런이런 문제 때문에 절대 후보가 될 수 없고 되더라도 본선에서 필패다’라는 네거티브 공방으로 이어져 왔다. 캠프 관계자들이야 태풍의 눈에 들어가 있기 때문에 자신들의 네거티브 공방에 대해 별다른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이나 정치학자들은 한나라당의 경선 과정을 매우 비판적으로 보고 있다.
한 정치학자는 이에 대해 “후보 검증은 다른 나라에서도 상당히 혹독하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이루고자 하는 것의 수단이 될 수는 없지 않느냐. 정상적인 선거 국면의 한 과정이 될 수는 있지만 선거운동 기간 내내 후보검증을 빌미로 인신 공격성의 비난이 난무했다. 이 전 시장이 온갖 비리의 온상이라며 전과 14범 운운했던 경우(이 전 시장 측은 회사 문제 때문에 법인대표로서 벌금형을 받은 경우가 있었겠지만 개인 문제로 인한 전과는 한 건도 없는 경우를 마치 개인이 있는 것처럼 해석한 사례가 포함돼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나 박 전 대표가 여자이고 ‘공주병’이기 때문에 후보가 될 수 없다는 비논리적인 공격 사례가 대표적이다.
두 사람의 싸움을 보고 ‘둘 다 싸우는 것 보니 모두 정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국민들이 대부분이다. 이것은 초등학교 반장 수준의 선거도 아니다. 이번 한나라당 경선은 나올 수 있는 모든 네거티브 방법이 다 등장했기 때문에 한국 정치학의 사례 연구로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을 뿐 정치적으로는 최빈국 후진국 수준이다”라고 말했다.
사실 한나라당은 이명박-박근혜라는 두 명의 빅스타를 보유하고 있음에도 그것을 대선 승리를 위한 지렛대로 승화시키지 못하고 오히려 경선 뒤 본선에서의 경쟁력을 걱정하고 있다. 경선에서 막가파식 싸움을 한 뒤의 후유증이 본선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예상을 하는 사람도 많다. 일부에서는 오랜 야당 생활을 한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 사이의 오랜 갈등을 거론하는 사람도 있다.
먼저 이명박 전 시장의 경우를 보자. 이 전 시장이 예선에서 승리한다고 해도 한나라당 내부에서조차 그가 제2의 이회창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그를 둘러싼 모든 의혹이 밝혀져야 한다는 대전제가 있긴 하지만 그런 의혹이 해소되기 전까지 이 전 시장 하면 떠올리는 이미지는 ‘비리와 의혹’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 전 시장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그에 대해 “‘다른 것은 몰라도 경제 하나만은 자신 있으니 맡겨 달라’는 이야기를 듣다 보면 왠지 믿음이 생긴다. 오랜 실물경제 경험을 바탕으로 한 구체적이고 실증적인 노하우가 있는 것은 리더에게 중요한 자산이다. 여의도식 정치는 아직 적응이 안됐겠지만 경제 하나만은 확실하게 챙길 지도자로 충분한 사람이다”라고 평가한다.
하지만 이런 장점은 그를 둘러싼 지지자들만 느끼는 것일 뿐, 이 전 시장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에겐 이번 경선 과정을 통해 ‘뭔가 문제가 있을 것 같은’ 정치인으로 치부될 뿐이다. 한나라당의 한 ‘중립’ 관계자는 이에 대해 “사실 이 전 시장의 인상이 그리 서글서글한 인상은 아니지 않는가. 그런데 경선 과정에서 각종 의혹이 그에게 집중되면서 더욱 이미지가 부정적으로 굳어지는 것 같다. 이회창 전 총재의 경우도 비슷하다. 그가 가진 비전이나 국가 운영 능력도 빌라 파동과 아들의 병역비리 문제로 가려졌다. 문제는 이 전 시장을 둘러싼 의혹이 얼마나 객관성을 가지고 있는지를 가리는 것이다. 여권이 대선 승리를 위해 막가파식으로 의혹을 제기한 것에 국민들이 현혹된다면 그것은 분명 국가적 손실이다. 그런 점에서 이 전 시장도 자신의 강점이 무차별적으로 제기되는 의혹에 가려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라고 말했다.
박근혜 전 대표도 마찬가지다. 그도 경선 과정에서 상처를 많이 입었다. 특히 그가 총선·재보궐 선거에서 보여준 무패 신화의 카리스마가 경선 룰 합의 과정에서 ‘생떼를 쓰는 정치인’으로 무참히 짓밟힌 점이나 한나라당 대표직 외에 경영 능력을 검증할 수 없기 때문에 국가 운영을 맡기기가 불안하다는 비판이 그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런 비판 또한 박 전 대표를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의 얘기를 들으면 오해이거나 왜곡된 경우가 많다. 그를 잘 아는 사람들은 대부분 “박 전 대표가 그동안 선거에서 보여준 능력은 단순히 박정희 대통령의 딸이기 때문이어서가 아니라 그만이 가진 인간적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를 가까이선 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먼저 상대를 생각하고 배려할 마음의 준비를 항상 하고 있는 사람’으로 생각한다. 또한 한번 원칙을 정하면 하늘이 무너져도 지키고 관철시켜 나가려고 한다. 특히 퍼스트레이디 경험을 해 본 박 전 대표는 국가를 운영할 능력이 충분하다고 본다. 경선 운동 기간 지켜본 박 전 대표는 큰 틀의 결정을 하고 나머지는 모두 아랫사람들에게 일임하는 편이라 밑에서 일하기가 편하다”라고 평가한다.
하지만 경선 기간 동안 그의 ‘카리스마’와 ‘신비감’이 많이 훼손된 측면이 있다. 박 전 대표 측의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특히 이 전 시장 측에서 최태민 목사와 관련한 의혹을 제기하고 ‘뭔가 있을 것 같은’ 분위기를 잡아나가면서 ‘박 전 대표도 어쩔 수 없는, 그렇고 그런 정치인이다’라는 인식도 생긴 것 같다. 박 전 대표가 순결무구한 성자는 아니지만 적어도 다른 정치인에 비해 훨씬 도덕적인 사람인 것만은 분명하다. 하지만 경선 과정에서 박 전 대표가 가지고 있던 고유한 이미지가 무너진 것 같아 안타깝다”라고 밝혔다.
정치권의 또 다른 관계자는 이에 대해 “박 전 대표가 경선에서 승리해 본선에 가게 되더라도 경선 과정에서 불거져 나온 최태민 목사와의 관계, 국가 경영 능력이 없는 ‘공주병’ 정치인이라는 꼬리표가 계속 그를 괴롭힐 것이다”라고 밝혔다.
그런데 정치권에서는 이-박 두 후보 모두 경쟁력 있는 대선 주자임에도 본선에 나서면 여권의 ‘복병’에 고전할 수도 있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대표적인 변수가 남북정상회담이다. 노무현 정권이 2차 남북정상회담을 ‘무리하게’ 개최하려는 배경에는 ‘대선용 맞춤후보’를 띄우기 위해서라는 시각이 있다. 한나라당의 한 전략 전문가는 이에 대해 “남북정상회담은 그 자체로 한반도에 평화무드를 조성하는 대형 이벤트다. 그런데 여권 입장에서 보면 대선을 불과 4개월 앞두고도 변변한 후보 한 명 만들어내지 못한 위기 상황이다. 그래서 정상회담과 그 이후의 변수들이 대선 구도를 여권 주도로 만든 뒤 그에 적합한 후보를 만들어내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본다. 문제는 한나라당의 이-박 두 후보가 경제와 민생 회복에 포커스를 맞춘 나머지 남북관계에 정통하고 평화 모드에 어울리는 여권 후보와 경쟁할 경우 고전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대선 구도가 여권 기대대로 평화 콘셉트로 갈 경우 이-박 두 후보는 그 점에서 취약하지만 여권 후보는 맞춤형으로 태어나 국민들의 기대를 맞출 수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경선이 네거티브로 얼룩져 만신창이 후보를 대선에 내는 것도 마이너스 요인이지만 그 승자가 평화 모드에 적합한 후보인지에 대해서도 의문스럽다”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여권의 의도대로 대선 구도가 정해질지에 대해서는 시각이 분분하다. ‘정상회담 결과물이 빈약하고 남북관계를 너무 정략으로 이용한다’라는 역풍을 맞을 경우 향후 대선 판도가 한나라당 주도의 경제 이슈로 되돌아올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전 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는 지난 8월 10일 전주 시내에서 당 지도부 주선 아래 비빔밥을 함께 먹었다. 당 지도부는 그 자리에서 경선 뒤 누가 패자가 되든 두 사람 모두 국회의원 및 당협회장 워크숍에 참석한다는 다짐을 받는 등 두 후보의 경선 뒤 ‘화합’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과연 두 사람은 비빔밥을 나눠먹는 심정으로 경선 뒤 함께할 수 있을까.
경선 뒤 한나라당 후보가 갑자기 등을 돌릴 가능성은 여러 가지 여건상 크지 않다. 하지만 경선 전쟁이 박빙으로 승부가 결정되고 막판에 두 후보 가운데 어느 누가 결정적 ‘히든 카드’를 공개하며 판을 흐릴 경우 경선이 끝나도 양측의 지루한 싸움은 계속될 전망이다. 더구나 후보는 어쩔지 몰라도 그 밑의 가신들은 얼마든지 말을 갈아 탈 수 있다. 그 과정을 팔짱 끼고 보며 웃을 사람들은 물론 여권 후보들이 아닐까 하는 것이 한나라당 중진 의원들의 우려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