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 ‘정조’ 남원 ‘춘향’…지역 홍보 효자 노릇
그중 하나, 제9회 익산서동배 전국바둑왕전이 10월 29일과 30일 전북 익산시에서 열렸다. 올해 익산서동배는 최강부, 고등부 중등부, 초등 최강부, 초등 유단자부 등 4개 부문이 전국대회부로 치러졌으며 전라북도 거주 노인들과 여성들이 출전하는 노년부와 여성부, 어린이부 등 9개 부문이 전부 지역대회부로 열려 전국에서 약 600명의 선수들이 대회장을 찾았다.
바둑대회는 단기간에 많은 인원이 한 자리에 모이는 대회이기 때문에 지방자치단체의 홍보에 적합하다는 인식이 심어져 있다. 사진은 익산서동배 수상자들.
백제의 서동(薯童:백제 무왕의 어릴 적 이름)이 신라 제26대 진평왕 때 선화공주를 흠모하는 마음에 지었다는 민요 형식의 노래인 서동요가 바로 이곳 익산이 무대다. 그래서 바둑대회 명칭에 ‘서동’을 넣었는데 사실 이 서동배가 사연이 많은 바둑대회다.
익산서동배 바둑대회는 2007년 창설됐다. 당시 산파는 김삼배 익산시바둑협회장(현 익산바둑협회 고문)과 지금도 지역구를 지키고 있는 조배숙 의원(국민의당, 전북 익산시을). 두 사람은 힘을 합쳐 익산에 번듯한 전국바둑대회를 탄생시켰다.
주말, 겨우 이틀간 열리는 아마 바둑대회는 프로기전에 비해 규모도 작고 짧은 시간 내에 끝나기 때문에 즐기는 이는 허무한 느낌이 들지도 모르지만, 사실 대회 하나가 만들어지고 열리기까진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수고가 녹아있는 것이다.
“아마추어 바둑대회의 준비 과정은 겉으론 평화로워 보이지만 수면 아래에선 열심히 발을 놀리고 있는 오리와 같다. 개인이 아닌 지자체 예산으로 바둑대회를 준비하고 기획하는 것은 정말 어렵다. 서동배를 예를 들면 올해 약 2000만 원 정도를 익산시로부터 지원받았는데 체육 종목에서 이 정도 예산을 지원받는 단체는 흔치 않다. 바둑이 뒤늦게 체육으로 발을 내디딘 것 치고는 인식이 좋은 편이다. 하지만 그에 만족해서는 안 되고 당연히 더 노력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경쟁이 치열해서 다음 해 예산을 기대할 수 없다. 전국의 모든 아마추어 바둑대회가 이런 분위기 속에서 치러지는 것이다. 아마 이것은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김삼배 고문)
아마추어 바둑의 황금기였던 70~80년대에는 기업이나 개인이 후원하는 대회가 많았지만 최근의 흐름은 지방자치단체가 선도하는 경우가 많다. 다행히 바둑은 지자체로부터 인식이 좋은 편이다. 전국대회로 치러지면서도 상대적으로 큰 예산이 필요치 않고 전국에서 많은 인원이 대회를 열리는 고장을 찾는다는 이점도 있다. 많을 경우 선수와 학부모까지 1000명 이상 대회장을 찾게 되니 이들이 지역에서 쓰고 가는 비용까지 생각하면 오히려 지방자치단체로서는 남는 장사라는 것. 보통 실내 체육관 등에서 한꺼번에 대회가 치러지기 때문에 바둑대회는 지자체의 활동을 선전할 수 있는 홍보의 장이 되기도 한다. 최근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지역의 대표적인 축제와 바둑대회를 연계해 행사를 치르는 경우가 많은데 거기에는 이런 배경이 있는 것이다.
익산서동배의 산파 조배숙 의원(오른쪽)과 정헌율 익산시장이 개막식을 찾아 서동배 발전을 위해 의견을 교환했다.
제9회 익산서동배 전국바둑왕전은 최강부, 고등부 중등부, 초등 최강부, 초등 유단자부 등 4개 부문이 전국대회부로 치러졌으며 전라북도 거주 노인들과 여성들이 출전하는 노년부와 여성부, 어린이부 등 9개 부문이 전부 지역대회부로 열려 전국에서 600여 명이 대회장을 찾았다.
경기는 조별 예선을 거쳐 본선 토너먼트로 열렸으며 총 호선, 덤6집반, 각자 제한시간 15분을 통해 승부를 가렸다. 관심을 모은 전국 최강부에서는 결승에서 주니어부의 최광호 선수가 시니어부 우승의 최욱관 선수를 물리치고 대회 정상에 올라 150만 원의 우승상금을 획득했다. 이밖에 전국 초등최강부에서는 양유준 군(양천대일바둑도장)이 정상에 올랐으며 각부 입상자에게는 상패와 소정의 연구비가 수여됐다.
예산이 부족해 지역대회로 치러야 했던 지난 4년과 비교하면 올해는 꽤 근사하게 치렀다는 대회 관계자들의 자평이 있었다.
하지만 아쉬움은 항상 남게 마련. 지난 9월 취임한 익산시바둑협회 최성엽 회장은 벌써 다음 대회 준비에 여념이 없는 모습이다. “올해 익산서동배는 다양한 계층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전국 최강부를 비롯해 전국부 5개 부문과 전북 일반부, 전북 노인부, 전북 여성부 8개 부문을 합쳐 총 13개 부문으로 나뉘어 열렸다. 그러나 남녀노소가 함께 어울린 모습은 좋았지만 한편으론 대회 운영이 약간 산만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그래서 내년부터는 우리도 테마가 있는 바둑대회를 치르면 어떨까 궁리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경기도 화성시가 매년 여는 ‘정조대왕 효(孝) 바둑축제’와 이웃 남원시가 올해 새롭게 선보인 여자들만 참가할 수 있는 ‘남원바둑 춘향바둑대회’는 지역의 특색과 바둑이 절묘하게 결합한 좋은 대회라고 생각한다. 우리도 좋은 테마와 바둑이 연계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대회를 치른 소감을 말했다.
10여 년의 기다림 끝에 올해부터 전국체전 정식종목에 입성한 바둑은 여전히 갈 길이 멀다. 바둑이 재미있는 스포츠 종목이라는 것도 증명해야 하고, 때로는 타 종목과 치열한 예산 싸움을 벌여 승리도 해야 한다. 바둑의 전국체전 정식종목 원년, 바둑인들의 분발이 필요한 요즘이다.
유경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