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 사업 추진 위해 물 먹여”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사업 축소 배경에 최순실 등 비선 실세가 개입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전경.
19대 국회에서 아시아문화전당 사업을 이끌었던 박혜자 전 의원은 지난 5월 발간한 2016 정책자료집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백서’에서 문화전당 사업이 도중에 갑자기 지지부진하게 된 상황을 상세히 기술했다. 박 전 의원은 3일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문화전당 사업이 국책사업임에도 정부의 무관심과 방해 등 우여곡절 끝에 지금까지 왔다”며 “되돌아보면 그 우여곡절이 지금 최순실 상황과 상당히 겹쳐져 보인다”고 말했다.
백서에서 박 전 의원은 지난 2015년 창조경제 추진단장 겸 문화창조융합본부장으로 재임하던 차 씨가 최 씨와 함께 비선 실세들이 개입한 문화창조융합벨트 사업의 예산 확보를 위해 아시아문화전당의 사업을 그대로 베꼈고, 베낀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문화전당 예산도 축소했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비선 실세들이 추진했던 사업과 아시아문화전당 창제작센터 모두 문화와 기술의 융합 등에서 크게 다를 바가 없다는 게 박 전 의원의 주장이다. 정부의 예산은 한정돼 있는데 두 개의 대형 사업을 추진하다 보니 애꿎은 아시아문화전당만 피해를 본 셈이다.
아시아문화전당의 무력화를 위해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박 전 의원에 따르면 최 씨의 측근인 차 씨는 지난 2014년 8월 대통령직속 문화융성위원이 된 이후 외삼촌 김상률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과 스승 김종덕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을 통해 문체부 조직을 교체하고 문화전당 사업마저 무력화시키려 한 것으로 의심을 받고 있다.
박 전 의원은 아특법 개정안 발의 과정에서 2014년 7월 유진룡 장관이 경질된 후 그 해 9월 김 신임 문화체육부 장관이 임명된 후 문화전당 사업에 대한 문체부의 태도가 상반되게 바뀌었다고 밝혔다. 박 전 의원은 김 장관 취임 후 일주일 뒤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박주선 의원, 도종환 의원과 함께 아전당 개관 준비 관련 간담회를 가졌다고 전했다. 이 자리에서 아특법 개정안에 대해서 국회에서의 여야합의에 맡겨달라고 주문했고 김 장관으로부터 “국회에서 결정하는 대로 따르겠다”는 답변을 이끌어 냈다고 그날 상황을 자세히 기록했다.
그러나 그해 12월 국회 상임위 법안심사소위에서 문체부는 입장을 갑자기 바꿨다. 그는 “김희범 문체부 1차관이 특별한 문제가 없다고 했는데 법안심사소위 회의가 시작되자마자 김 차관을 비롯한 문체부 공무원들의 태도가 180도 변해 어안이 벙벙해졌다”고 그날 충격도 생생히 전했다. 이와 관련해 박 전 의원은 “지금 생각해보면 이때부터 최 씨 측 인사들이 문체부를 장악하고 문화전당 사업에도 영향력을 행사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백서’에는 비선실세 의혹을 받은 최 씨와 차 감독이 문화창조융합벨트사업 추진을 위해 문체부를 장악했다는 정황을 가늠할 대목도 나온다. 박 전 의원은 지난해 1월 22일 김 차관이 갑자기 사표를 낸 점을 의아스러운 점 중 하나로 들었다. 그는 “당시 새누리당이 악법 개정안을 들고 나왔던 상황에서 김 차관이 야당 의견을 지나치게 수용해 문책성 경질을 당했다는 얘기가 떠돌았다”며 경질의 배경에 비선 실세들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의문을 제기했다.
비선 실세들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정부의 문화창조융합벨트의 문화창조센터 건립사업도 기능이 비슷한 문화전당의 발목을 잡았다고 주장했다. 박 전 의원은 “정부가 문화창조융합벨트 사업을 추진하면 아시아문화개발원의 이름이 바뀌고 문화전당도 정부예산 등에서 홀대받았다”며 “작년 6월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나서 문화전당 특별법 개정안을 대표적인 당리당략법으로 지목하면서 법에 따른 예산지원마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당시에는 몰랐지만 이 모든 상황의 뒤에는 다른 누군가가 있었다는 생각이 지금은 강하게 든다”며 “최순실 정국에서 반드시 밝혀져야 할 부분이다”고 강조했다.
의혹을 제기한 박혜자 더불어민주당 전 의원.
문체부는 당초 아시아문화전당조성특별회계(아특회계) 등을 통해 오는 2023년까지 콘텐츠개발·운영비로 연간 700억~800억 원씩 총 9900억 원의 국비를 문화전당에 투입한다는 계획이었다. 총 사업비 9900억 원 가운데 지난 2013년부터 올해까지 투입된 예산은 2374억 원에 불과하다. 아시아문화전당이 당초 건립 취지에 맞게 아시아를 대표하는 문화발전소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특화된 문화전당 운영 프로그램 및 콘텐츠 개발이 절실한 실정이다. 그럼에도 정부의 의도적인 외면 속에 갈수록 예산이 줄고 있는 추세로 약속했던 정부 지원을 제대로 받아낼 수 없을 것이라는 비관론도 만만치 않다.
현 정부 들어 노골적으로 ‘문화전당 지우기’가 시도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은 아특법 개정안을 통해 국책사업으로 완공된 아시아문화전당을 법인화하려 했고, 아시아문화개발원 명칭 사용금지, 지역민 우선채용 등도 막으려 했다는 것이다. 특히 새누리당이 아시아문화개발원 명칭 사용금지 개정안을 발의한 데는 2014년 10월 박근혜 대통령이 부산서 열린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에서 밝힌 아세안문화원 건립을 염두에 두고 발의한 개정안이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됐었다.
박 전 의원은 그동안 정부와 여당에 훼손된 문화전당을 온전히 추진하기 위해서는 차씨가 기획한 문화창조융합벨트사업 내년 예산 1278억 원을 전액 문화전당사업으로 귀속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현재 정치권에서 ‘최순실 예산’으로 통하는 문화창조융합벨트 구축사업 내년도 편성액 1278억 원을 전액 삭감하려는 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지역 문화계 한 인사는 “우선 삭감된 문화전당 관련 예산을 충분히 지원하고 문화전당장 직무대리 체제와 아시아 문화중심도시 추진단의 직제 복원도 서둘러야 한다”며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아직도 문체부 내에 남아 있을, 그동안 문화 체육 분야를 떡 주무르듯이 주물러 왔던 최 씨와 차 씨 인맥부터 정리하는 것이 순서다”고 말했다.
정성환 기자 ilyo66@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