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공업성 출범 핵무기 생산 상시화 의지
‘조선중앙TV’가 과거에 공개한 영변 핵시설 내부 모습. 연합뉴스
영변 핵시설은 평안북도 영변군에 자리한다. 평양과는 약 103km 떨어진 곳에 위치하지만 실제 공식적으로는 평양직할시 중구역 충성동으로 분류되며 특별 관리되고 있는 북한 핵개발의 본산지다.
대부분의 일반인들이 인식하기에 영변 핵시설은 황량한 주변부에 그저 기밀 연구소 하나가 덩그러니 들어선 것으로 알려져 있다. 허나 절대 그렇지 않다. 영변 핵시설은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연구단지로 이뤄져 있다. 즉 영변 안에는 시설의 근간이자 핵심인 핵물리연구소, 핵재료연구소, 원자력 연구소를 중심으로 그와 관련한 연구소 및 기관들이 대거 들어서 있다.
미국의 주요 핵실험 장소이자 유령도시로 불리는 네바다 주와 견줄 정도는 아니지만 제법 적잖은 규모로 이뤄져 있다. 네바다가 유령도시로 불리듯 영변은 오랜 핵 연구 및 실험 과정에 그대로 노출된 주변 주민들이 방사선 피폭 피해를 입기도 한다.
필자가 최근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이 영변 핵시설 안에는 ‘우라늄자원 개발연구소’, ‘핵물리 연구소’, ‘방사화학 연구소’, ‘동위원소이용 연구소’, ‘중성자물리 연구소’, ‘원자로설계 연구소’, ‘핵전자학 연구소’, ‘방사선방호 연구소’ 등이 들어서 있다. 북한의 핵기술과 관련한 거의 모든 세부 분야의 연구소가 바로 이 영변 핵시설 단지에 밀집해 있는 셈이다.
입주 연구소들이 이용하는 주요 시설들을 살펴보면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제1~3호 원자로’를 비롯해 방사화학실험실(핵연료봉 재처리시설로 내부에서는 12월 기업소라고 부름), 핵연료가공공장(핵연료봉 제조시설로 내부에서는 8월기업소라고 부름), 핵연료저장실, 핵폐기물 저장소, 고폭 시험장 등이 자리한다. 북한의 핵 기술 발전을 위한 실험과 연구에 있어서 단지 안에서 거의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도록 갖춰진 셈이다. 또한 시설 관리를 위해 131지도국의 지휘를 받는 제43공병여단이 배치돼 있으며 대공미사일기지와 같은 방어 군사시설도 상시 작전을 수행하고 있다.
참고로 영변 핵시설 단지 안에는 특별한 교육시설이 존재한다. 바로 영변물리대학이다. 영변물리대학은 한 마디로 핵기술 전문 교육기관이다. 이곳에서 핵기술 전문 인재들을 주변 연구소에 대거 공급하고 있다. 우리나라 대전광역시 유성구에 위치한 국내 대표 연구단지인 ‘대덕연구단지’와 단지 내에서 연구 인력을 양성하는 전문 고등교육기관인 ‘한국과학기술원(KAIST)’의 관계와 매우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그래픽=백소연 디자이너
영변물리대학은 자연과학 부분의 최고대학인 ‘리과대학’에 견줄 정도로 북한 전역의 과학 분야 우수 인재를 선제적으로 선발하여 입학시킬 수 있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이 때문에 영변물리대학은 북한 내에서도 손꼽히는 핵관련 부문의 최고 명문대학으로 통한다. 다만 최근에는 생명안전과 관련하여 실질적인 현장에 투입된다는 단점 탓에 인재들이 기피하고 있다는 정보도 존재한다. 김일성종합대학 물리학부와 김책공업종합대학의 핵물리학부 졸업생들은 대부분 핵개발 관련 과학연구 전문가들을 키워낸다면 영변물리대학의 졸업생들은 핵 개발 각 부문의 실질적인 운영 기술자들을 키워낸다는 차이가 있다.
이 영변 핵시설의 역사를 놓고 보면 몇 가지 중요한 기점들이 있다. 영변 핵시설의 역사가 곧 북핵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북한의 원자력 연구소는 1952년 12월 한국전쟁 중 김일성의 명령으로 설치됐다. 창립 당시는 과학원 내 한 개의 작은 부속연구기관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후 북한 핵기술 발전은 소련의 기술 원조로 비대해지기 시작한다. 전쟁이 끝나기 직전인 1953년 3월 북한은 소련과 원자력 평화적 이용 협정을 체결한다.
이로부터 9년 후인 1962년 비로소 ‘평안북도 영변’ 지역에 원자력 연구소 건립의 첫 삽을 뜬다. 이듬해 6월경 소련은 2메가와트 급 소형 연구용 원자로인 ‘IRT-2000’를 북한에 제공한다. 이것이 바로 앞서 필자가 언급한 영변의 세 개 원자로 중 ‘제1호 원자로’다. 초기 능력은 1MW이었지만 증식하여 현재는 5MW로 능력이 개선되었다. 이 시점을 기점으로 북핵의 영변시대가 개막됐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영변 핵시설의 두 번째 중요한 기점으로 필자는 감히 1986년을 꼽고 싶다. 이는 필자가 관련 부문의 간부를 지낸 한 내부인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직접 전해들은 내용을 기반으로 한다. 1986년 이전 북한의 영변 핵시설에서는 기본적인 원자력 연구를 선행했다. 반면 1986년 이후 영변 핵시설에서는 말 그대로 실전목적인 ‘핵폭탄’을 연구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쉽게 말하면 이때 처음으로 관련 연구기관에서는 실질적으로 무기 급 플로토늄 몇 그램을 제조했던 것이다.
물론 이 단계에 진입하는데 있어서 구(舊)소련 과학자들의 기술적 도움이 무척 컸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특히 핵심 기술인 연료봉 처리 문제를 두고 북한은 자체 해결을 꾀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이후 소련 과학자들의 도움을 받고서야 일을 해결했다는 후문이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영변 핵시설은 군사기밀단지로 전환됐고 약 10여 개의 연구소와 관련 보장시설들이 추가로 들어섰다. 이 시기를 근간으로 북한의 핵기술은 사실상 현재에 이르며 비약적인 발전의 토대를 마련했다.
사실 이 영변 핵시설에서는 무기 급 플로토늄을 통해 핵무기를 만들기 위한 개발연구사업과 함께 한편으로 민수용 원자력 발전기를 만들기 위한 연구사업도 함께 진행되기도 했다. 현재 이 기지 안에서 이용하는 전기는 자체로 발전해 이용 가능한 수준이라고 한다.
영변 핵시설의 세 번째 중요한 기점은 1995년이다. 1995년부터는 파키스탄의 협조를 통해 우라늄 농축기술 확보를 위한 연구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물론 우라늄 농축기술의 핵심시설도 이 지역 안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정확히 자료적으로 입수된 것은 아직 불명확하다. 명백한 것은 이 시점부터 북한의 핵기술은 급속히 진전되었으며 2000년대 첫 핵실험 이후 제4차 핵실험(2013년)이 진행된 김정은 정권부터는 우라늄 핵물질을 이용한 핵실험이 진행됐다는 정보가 입수되기 시작했다.
영변핵시설 위성사진. 연합뉴스
원자력공업성은 2013년 3월 31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경제·핵무력 병진노선’ 채택과 4월 1일 최고인민회의 관련 법령 제정의 후속조치로 신설됐다. 형식적으로는 내각 산하 조직인 것으로 보이지만 당적으로는 당 기계공업부의 지시를, 행정적으로는 국방위원회 직속 단위다. 또한 일반 민수 부문에서는 절대로 접근할 수 없는 극비밀부서로 되어 있다.
북한은 2013년 4월 11일 원자력공업성 설치 이유에 대해 “나라의 원자력 공업을 현대화·과학화하며 최첨단 과학기술의 토대 위에 확고히 올려세워 핵물질의 생산을 늘리고 제품의 질을 높이며 자립적인 핵동력 공업을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라고 밝혔다. ‘공업’이란 명칭을 사용한다는 것은 두 가지 목적이 있다. 표면적으로는 핵관련 산업을 통해 발전을 비롯한 민수공업에 사용하기 위해 핵관련 연구를 한다는 상징적 명분이 있다. 또한 내면적으로는 북한 정권이 핵무기 생산을 상시적으로 또한 본격적으로 나서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현재의 영변 핵시설과 그 안의 수많은 연구소 및 시설들은 신설된 원자력공업성의 체계에 놓이게 됐다.
이윤걸 북한전략정보서비스센터 대표
정리=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자강도 성간지역 등 극소수만 정보 공유’ 북한 최대 규모 우라늄 농축시설 증언 핵기술의 핵심은 결국 핵물질의 ‘농축기술’이다. 필자가 최근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북한 내 최대 규모의 우라늄 농축시설이 자강도 성간지역과 평안북도 용천의 양책지구 및 태천지역에 위치한 것으로 파악된다. 이는 필자가 북한 내 공식화된 문서를 입수한 것이 아니기에 확실한 증거를 공개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니다. 다만 내부 소식통들의 종합된 분석결과와 인근 지역에 거주하는 복수의 현지인들이 ‘우라늄 농축시설이 존재한다’며 앞서 이 지역들을 지목하는 증언들이 여럿 있었다. 또한 성간지역에는 김정일이 생존 당시 두 차례에 걸쳐 비공개로 다녀갔다고 한다. 최고지도자의 동선은 곧 특별한 의미로 여겨진다. 복수의 증언에 따르면 우라늄 농축시설로 의심되는 모처는 국방위원회와 당 기계공업부(군수공업부)를 비롯한 제2자연과학원의 극소수만 정보를 공유하고 있으며 공식 서류에는 그 어떤 기록도 기입되지 않은 상황이다. 아직까지 북한 내 대규모 우라늄 농축시설에 대해 존재를 추정하고 있을 뿐 정확히 어떤 곳에 위치해 있는지 알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편 북한은 이미 2010년 1월부터 자체적으로 원심분리기를 생산하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원심분리기는 원심력을 이용해 핵물질 농축을 꾀하는 핵심시설이다. 국제사회에서는 현재 북한의 원심분리기 자체 생산 능력에 대해 이미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는 분위기다. 필자가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북한의 제2자연과학원(국방과학원)은 시험공장안에서 2010년 1월부터 우라늄 농축을 위한 원심분리기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초창기 월 10~15대가량의 생산 수준을 나타냈는데, 당시 내부 자료에 따르면 북한은 연간 200대 생산능력을 목표로 설정했다. 이미 북한 내부에는 자체 생산한 원심분리기가 대거 존재하고 작동하고 있는 것이 확실시 된다. [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