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룩 감추려다 오물 뒤집어쓴 ‘미련한 곰’
경기북부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팀은 11월 7일 프로야구 승부조작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2014년 KBO리그에서 승부조작에 관여했던 전·현직 프로야구 투수 7명, 브로커 2명 등 총 19명을 국민체육진흥법위반 혐의로 검거했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이번 발표에서 가장 주목받았던 부분은 프로야구단의 ‘은폐’ 시도가 처음으로 수사 대상에 올랐다는 점이다. 경찰은 “압수수색으로 확보한 NC 구단 내부 회의 기록에서 구단이 선수의 유해 행위를 알고도 은폐했다는 정황을 포착했다”고 강조했다. 은폐를 주도했던 NC 단장과 운영본부장은 특정 경제 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이 적용돼 사기 혐의로 입건됐다.
# NC, 구단의 ‘은폐’ 시도로 수사 대상 오른 첫 사례
경찰은 수사 발표에서 실명을 구체적으로 거론하지 않았다. 그러나 롯데 이성민은 이미 수사 과정부터 이름이 공개돼왔다. 롯데가 아닌 NC 소속일 때 승부조작에 가담한 부분도 알려졌다. NC의 ‘은폐’는 그 당시에 벌어졌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확실히 과정이 석연치 않다. NC는 2013년 신인 우선 지명 때 계약금 3억 원을 주고 영남대 투수 이성민을 뽑았다. 그러나 2014년 11월 제10구단 kt의 특별 지명 때 이성민을 20인 보호 선수에서 제외했다. kt는 냉큼 이성민을 뽑았고, NC는 그 보상으로 10억 원을 받았다. 이성민은 2015년 5월 트레이드돼 롯데로 갔다.
NC는 하루 뒤 이 혐의를 부인했다. 경찰 발표 다음 날인 11월 8일 이태일 대표이사 명의의 보도자료를 배포해 “관리를 충실하게 하지 못한 부분은 사죄하지만, 떳떳하지 못한 행동은 한 적이 없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경찰은 고의적 은폐를 확신하고 있다. “해당 선수를 방출할 것인지, 아니면 군에 입대시킬 것인지 논의한 내부 회의 기록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NC는 2014년 여름 이성민의 승부조작과 관련한 전화를 받았다. “NC 소속 젊은 투수가 승부 조작에 가담했고, 조작이 실패로 돌아가 큰 손해를 봤다”는 내용이었다. 승부조작 브로커, 혹은 전주로 추정되는 이 인물은 이렇게 고발하면서 구단에 돈을 요구했다. 두 번째 통화에서는 이성민의 이름도 언급했다. 물론 당시 이성민은 구단의 자체 조사에서 관련 내용을 모두 부인했다. 그러나 경찰이 밝혀낸 내용에 따르면, 이성민은 2014년 7월 4일 마산 LG전에서 1회 볼넷을 내주는 대가로 300만 원을 받았다. 구단은 “이성민을 의심했지만 승부 조작 사실은 확인하지 못했다”, 경찰은 “NC가 승부 조작 사실을 인지하고 고의적으로 은폐했다”고 각각 주장하는 이유다.
아직 양측은 진실공방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NC의 은폐가 확인되면 엄중한 징계를 피할 수 없다. KBO 야구규약 152조(유해행위의 신고) 2항에는 “구단이 소속 선수가 유해행위를 했다고 인지하였음에도 그 사실을 즉시 총재에게 신고하지 않거나 이를 은폐하려고 한 경우, 총재는 당해 구단에 대해 제재를 가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제재 원칙은 경고, 1억 원 이상 벌금, 제명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프로야구 퇴출을 의미하는 ‘제명’은 구단이 조직적으로 승부 조작에 개입했을 때만 적용할 수 있는 징계다. 반대로 ‘경고’는 수위가 너무 낮다. 사실로 밝혀질 경우 벌금 징계가 가장 유력하다.
혐의가 사실로 드러난다면, NC엔 또 다른 규약 위반도 적용된다. 규약 제150조(부정행위에 대한 제재) 6항은 “구단이 소속 선수의 부정행위를 인지하였음에도 이를 숨긴 채 선수 계약을 다른 구단으로 양도한 경우, 양도 구단은 이적료·이사비 등의 비용을 양수 구단에 배상해야 한다”고 적시한다. NC가 kt에 이성민을 보내면서 받았던 이적료 10억 원을 돌려줘야 한다는 얘기다. 그라운드에서 젊고 건강한 활기를 내뿜던 NC는 이번 사태로 인해 그동안 쌓아 올린 이미지를 와르르 무너트렸다.
# 두산도 은폐에 거짓말 의혹까지
두산 진야곱은 불법 도박 베팅 혐의로 소환 조사를 받은 직후 경기에도 모두 출전했다. 연합뉴스
두산은 경찰의 승부 조작 조사 결과 발표 이틀 뒤인 11월 9일 오후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이날 오전 두산 투수 진야곱(27)도 불법 스포츠 도박 베팅에 참여했다는 사실이 알려진 탓이다. 경찰청 발표에는 “투수 G와 H가 2011년 각각 160만 원과 600만 원을 불법 스포츠 도박에 베팅했지만, 형법상 공소시효가 만료돼 불기소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G의 정체는 NC 이재학. 이미 잘 알려진 내용이다. 이재학은 지난 7월부터 승부조작 루머에 휩싸였고, 플레이오프 엔트리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승부조작 혐의는 벗게 됐다. 그러나 두산 소속이던 2011년 160만 원을 대리로 불법 도박에 베팅한 혐의가 적용됐다. 당시 감춰졌던 H의 신원은 이틀 뒤 공개됐다. 이미 야구계에 “H는 진야곱”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이재학과 진야곱은 2011년 두산에서 한솥밥을 먹었다. 진야곱의 베팅 금액과 횟수는 이재학보다 더 크고 더 많다.
두산은 “소속 선수가 불법 스포츠 도박 사건에 연루된 데 대해 책임을 통감한다. 프로야구를 사랑하는 팬 여러분께 실망감을 안겨드려 대단히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사과했다. 이어 “구단은 지난 8월 KBO가 지정한 부정행위 자진 신고 및 제보 기간에 모든 소속 선수를 대상으로 개별 면담을 진행했다. 이 선수가 면담을 통해 2011년 불법 스포츠도박 사이트에서 베팅을 했던 사실을 털어 놓았다”며 “구단은 이 사실을 곧바로 KBO에 통보했다”고 해명했다. “비록 공소시효가 지나 법적인 책임이 없다고는 하지만, KBO리그와 구단의 방침에 어긋나는 불법 행위를 저지른 것은 사실이다. KBO 징계와는 별도로 구단도 자체 징계 절차를 곧바로 밟겠다”고 목소리도 높였다.
그러나 이 보도자료에는 의문점이 많았다. 진야곱은 KBO 자진신고 기간이 끝난 이후에도 계속 경기에 나섰다. 8월 7경기, 9월 11경기에 출전했다. 두산이 진야곱의 ‘자수’를 받고도 경기에 계속 내보냈다는 의미가 된다. KBO 쪽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자수로 정상 참작이 됐다 하더라도, 결국 관리기관인 KBO가 수사기관에 신고하지 않고 방치했다는 결론이 나온다.
곧 이유가 밝혀졌다. 구단들의 신고를 직접 받았던 KBO의 책임자는 두산의 사과문 발표 직후 “자진신고 기간에 두산으로부터 진야곱에 대해 통보받은 사실이 없다. 그때 KBO에 통보가 왔다면, KBO도 적절한 조치를 취했을 것”이라고 부인했다. 이 인사는 “오히려 9월 중순쯤 경찰에서 진야곱의 휴대전화 번호를 KBO에 문의해왔다. 선수 전화번호 대신 구단 관계자 전화번호를 알려줬고, 구단에는 혹시 조사를 받게 되면 미리 얘기를 해달라고 전했다”며 “그 후 두산에서 9월 26일 진야곱이 소환 조사를 받는다는 연락을 해와 KBO가 알게 됐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진야곱이 소환된 9월 26일은 경기가 없는 월요일이었다. 진야곱은 이날 조사를 받은 뒤 28일과 29일 경기에 모두 출전했다. 결국 두산이 진야곱의 불법 스포츠 도박 사실과 소환 조사 사실을 적극적으로 은폐하려 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시치미를 뚝 떼고 있다가 진야곱의 이름이 공개된 뒤에야 부랴부랴 사과문을 발표했다. 두산은 이 부분이 문제가 되자 뒤늦게 “승부조작이 아닌 불법 베팅이라 사태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 경찰 소환 조사를 받고 난 뒤 그제야 진야곱을 1군 엔트리에서 제외한 데 대해 책임을 통감한다”고 털어 놓았다.
다만 ‘자진 신고’ 부분에 대해서는 “구단 운영팀이 분명히 KBO에 전화로 통보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업무상 커뮤니케이션 착오가 있었던 것 같다”고 거듭 강조했다. 의도적인 거짓말은 아니었다는 주장. 그러나 이 해명을 듣고 고개를 끄덕인 이는 많지 않았다. 어느 쪽이든 두산이 비난을 피할 수는 없는 상황이라서다. 최고의 한 해를 보낸 두산이 미숙한 일처리와 꼼수로 그 영광에 찬물을 끼얹은 격이다.
# 뿌리 깊은 은폐 관행에 경종 울렸다
이 사건들은 프로야구계에 뿌리 깊었던 관행에 경종을 울렸다. 프로야구 초창기에는 구단 프런트의 주요 업무 가운데 하나가 ‘은폐’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카메라가 부착된 휴대전화도 없었고, 인터넷 게시판이나 SNS 활동도 활발하지 않았다. 선수들은 그만큼 운신의 폭이 넓었다. 야간 경기가 끝나고 한밤중에야 자유를 찾을 수 있는 직업적 특성 탓에 이런저런 ‘사고’를 치는 선수들도 많았다.
자연스럽게 술자리에서의 주먹다짐이나 음주운전과 관련된 해프닝이 많이 벌어졌다. 음주운전 단속에 걸렸지만, 경찰관이 선수의 얼굴을 보고 훈방 조치했다는 에피소드가 넘쳐났다. 구단 홍보팀 직원이나 매니저가 새벽에 전화를 받고 인근 경찰서로 달려가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한 원로 감독은 한때 “예전에는 경기장에서 상대팀과 1차전을 치르고, 경기가 끝난 뒤 경찰서에서 우리 팀 선수들과 2차전을 치러야 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2000년대 이후에도 다르지는 않았다. 몸값이 높아진 요즘 선수들은 예전만큼 술을 많이 마시지 않는다. 그래도 혈기왕성한 젊은이들이라 종종 사건과 사고에 휘말렸다. 무엇보다 야구만 잘하면 구단이 다 덮어주는 문화가 여전했다. 구단 이미지를 위해 프런트가 ‘해결사’로 나섰다. 사채로 도박 빚을 진 선수의 부채를 대신 갚아줬고, 여자 문제가 불거지면 구단 관계자가 여성 측을 만나 설득하고 합의했다. 한 수도권 구단은 악동으로 유명한 프랜차이즈 스타 한 명의 사생활 뒤치다꺼리를 하느라 데뷔 때부터 은퇴 때까지 생고생을 했다. 뒷얘기는 알음알음 흘러 나왔지만, 결국 세상에 드러나지는 않았다. 그러니 선수들은 행여 문제를 일으켜도 구단이 덮어줄 것이라고 믿게 됐다. 실제로 구단도 그렇게 해왔다.
그러나 이제 세상은 달라졌다. 무사히 덮고 넘어갔다고 판단했던 일들이 몇 달 후, 길게는 몇 년 후 예기치 않은 시점에 드러나고 있다. ‘눈 가리고 아웅’은 통하지 않는 시대다. 은폐와 거짓말이 드러나는 순간, 당연히 비난도 더 거세진다. 프로야구의 인기와 영향력이 커진 만큼, 구단과 선수들 모두 그에 비례하는 책임감과 품위가 뒤따라야 한다. 그 각성의 속도가 프로야구의 발전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모양새다.
배영은 일간스포츠 기자
은폐가 불러온 ‘미첼 리포트’ 파문 빅리거 75명 줄줄이…스테로이드 시대 흑역사 2007년 12월 13일. 세계 최고의 위용을 자랑하던 메이저리그는 엄청난 충격에 휩싸였다. 일명 ‘미첼 리포트’가 공개됐기 때문이다. 미국 전 상원의원 조지 미첼은 2006년 3월부터 20개월에 걸쳐 메이저리그 선수들의 금지 약물 복용 실태를 자체 조사했다. 그리고 수많은 레전드 스타들의 이름이 담긴 이 보고서를 당시 버드 셀릭 메이저리그 커미셔너에게 제출했다. 311페이지에 달하는 이 보고서의 내용이 세상에 알려진 순간, 파장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그 안에는 현직과 전직 메이저리거 75명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 가운데 가장 충격적이었던 인물은 단연 로저 클레멘스. 당시 클레멘스는 단순히 메이저리그의 스타가 아닌, 미국인의 영웅이었다. 약물 복용 의혹이 불거지자 누구보다 단호하게 펄쩍 펄쩍 뛰었다. 명예 훼손으로 고소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 보고서에는 9페이지에 걸쳐 무려 82번이나 클레멘스의 이름이 언급됐다. 1998년 말부터 스테로이드를 복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동료에게 추천까지 했다. 그야말로 메이저리그의 뿌리를 뒤흔들 만한 사건이었다. 무엇보다 그동안 선수 본인은 물론 각 구단과 메이저리그 사무국 관계자들이 이 같은 사실을 알면서도 고의로 덮어왔다는 의혹까지 불거졌다. 이미 2005년 3월 열린 금지약물 청문회에서도 예견됐던 일이다. “선수들의 약물 복용 실태를 알고서도 은폐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을 받았던 셀릭 커미셔너와 도널드 퍼 선수 노조 위원장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으로 어두운 현실을 눈감으면서 결국 메이저리그의 명예에 더 큰 얼룩이 남은 것이다. 1990년대 중후반부터 2000년대 초중반은 메이저리그 역사의 부흥기였다. 수많은 스타플레이어들이 그라운드를 누비면서 메이저리그의 위상을 높이 세웠다. 그러나 이제 그 시기는 ‘스테로이드 시대’로 기억된다. 한 번 내린 뿌리는 더 땅속으로 깊게 파고들고, 한 번 난 상처를 내버려 두면 더 크게 곪는 법이다. 방대한 분량의 ‘미첼 리포트’와 그로 인한 파장은 은폐의 잘못된 결과를 고스란히 보여줬다. [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