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일요신문] 박하늘 기자 = 대전시가 내년부터 시작되는 ‘파이로프로세싱’ 실험으로 발칵 뒤집혔다.
실험주체인 정부와 한국원자력연구원(원자력연)은 원자력발전소에 배출되는 핵폐기물을 효과적으로 처리할 방법이라며 파이로프로세싱 실험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반면 환경단체와 지역주민들은 실험의 안전성과 경제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실험 불가’를 외치고 있다.
가뜩이나 방사성폐기물 문제와 잦은 지진으로 어느 때보다 강한 불안감에 휩싸여있는 지역주민들은 내년부터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파이로프로세싱 실험’이 주거지와 인접한 곳에서 시작된다는 데에 반감을 드러내고 있다. 주민들의 불안감에는 정부에 대한 불신이 짙게 배어있다.
강한 반발에도 정부는 이 실험을 국가경쟁력과 연계하며 ‘일방통행’ 의지를 표하고 있다.
이 문제는 정부와 지자체, 여당과 야당 간의 갈등으로 확대되고 있으며 일각에서는 사회적 합의를 이루지 못한 채 파이로프로세싱 실험이 강행된다면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하고 천문학적 예산만 낭비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파이로프로세싱, 안전한가?
파이로프로세싱은 원자력 발전소에서 발생한 ‘사용후핵연료’를 재활용해 다시 연료로 사용하는 기술이다.
원자력연에 따르면, 이 기술을 활용 시 사용후핵연료를 지하에 묻는 것과 비교해 고준위폐기물량을 약 20분의 1, 처분장 면적의 약 100분의 1, 방사성 독성감소 기간의 약 1000분의 1 수준으로 감축할 수 있다.
정부는 1997년부터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기술 개발에 뛰어들었으며 올해 4월 한미 원자력협정이 개정됨에 따라 본격적인 연구를 진행하게 됐다. 정부는 오는 2025년까지 파이로프로세싱 실증시설을 구축하고, 재처리된 연료로 전기를 생산하는 ‘소듐냉각 고속증식로’를 2028년까지 상용화한다는 계획이다. 올해까지 투입된 예산은 4900억여 원이며 2020년까지 총 8500여억 원을 투입될 예정이다.
원자력연은 지난해 12월 대전에 파이로프로세싱 시험시설인 ‘PRIDE’를 준공하고 방사성이 약한 모의핵연료를 이용해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내년 7월에는 ‘하나로 원자로’의 방사능 차폐시설인 ‘핫셀’에서 독성이 강한 사용후핵연료를 사용해 실험을 진행할 계획이다. 하나로 원자로는 원자력연 안에 있다.
그러나 이 실험은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아 주민들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
지난달 3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파이로프로세싱의 위험성’ 관련 토론회에서 미국 천연자원보호위원회 강정민 박사는 “사용후핵연료를 조밀한 수조에 저장하는 방식은 지진·쓰나미뿐만 아니라 테러·미사일 공격 등을 받을 때 냉각기능 손실로 인한 사고 위험이 더욱 크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이 지난 9월8일 주최한 ‘2016 방사선안전연구 심포지엄’에서 신형기 KINS 선임연구원도 “파이로프로세싱 공정시설은 저농축우라늄핵연료 제조시설보다 방사선적 위험도가 상대적으로 높다”며 위험성을 제기했다.
파이로프로세싱 실험의 위험성은 과학계와 환경단체의 공통된 의견이다. 아직 성공 사례가 나온 적이 없으며 미국, 일본 등이 원자력 선도국에서도 이 실험을 포기하고 있다.
그러나 원자력연은 실험의 안전성에 자신감을 나타내고 있다.
원자력연 안도희 부장은 “사용후핵연료는 세슘 등의 고독성의 방사성 물질이 문제다. 원자력연에서 계산한 바로는 냉각수가 빠지더라도 재처리된 핵연료는 200도 이상 올라가지 않는다. 세슘의 녹는점은 약 490도 가량으로 폭발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며 “이전에 진행했던 파이로프로세싱과 비슷한 실험에서도 세슘이 유출이 된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파이로프로세싱, 꼭 필요한가?
원자력연은 파이로프로세싱으로 인한 원자력 관련 기술 보유가 경제성보다 큰 가치가 있다고 설명한다. 오히려 연구를 중단하는 것은 국가 경쟁력의 약화로 이어진다고 주장한다.
정용환 원자력연 원자력재료개발단장은 “경제적으로 아직 원전을 대체할 에너지가 없는 상황에서 연구 중단은 첨단 기술 예속을 심화시켜 궁극적으로는 국가 경쟁력의 약화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파이로프로세싱을 전담하고 있는 원자력연의 안도희 핵주기공정개발부장은 “고준위핵폐기물 처분 방식이 아직 확실치 않은 상황에서 기술개발을 안 할 수 없다”며 “다른 기술이 나와서 대체하면 좋을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큰 사회적 문제가 초래될 수 있다”고 실험의 당위성을 설명했다.
#정부의 일방적인 실험 강행에 예산 낭비 우려만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는 파이로프로세싱의 내년도 예산 중 25억 원을 삭감했다. 아직 국회 예결위의 승인이 떨어지진 않았지만 파이로프로세싱 연구진은 삭감된 예산으로 어떤 연구를 지연시킬 지를 고민하고 있다. 과학계에서는 지속성 없는 지원에 파이로 프로젝트는 물론, 원자력 기술과 연구인력까지 모두 잃게 될 것이라고 걱정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대전시와 유성구 등 지자체가 잇따라 정부를 비판하는 성명을 내고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그러는 사이 주민들의 정부에 대한 불신은 깊어지고 있다.
결국, 정부가 이 실험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통에 사회 불신을 초래하고 나아가 국가경쟁력 마저 흔들리게 됐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다. 실험 담당자인 안도희 부장도 주민과 지역사회에 설득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다고 시인했다.
더불어민주당 최명길 국회의원은 “정부는 지금까지 이 실험에 대해 어떠한 사회적 논의도 진행한 사실이 없다. 안전 문제에 대한 주민 동의나 기술개발 자체에 대한 사회적 합의 없이는 지속적인 정책 추진이 어렵다”고 못 박았다.
유성핵안전시민대책본부 이경자 집행위원장은 “아무런 협의와 아무런 안전장치도 마련하지 않고 정부는 실험 강행 의지만 보이고 있다”며 “먼저 시민이 안심할 수 있는 안전장치 확보와 원자력 관련 시설의 내진설계가 선행돼야 한다”며 안전성 확보가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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