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작 엎드려도 피할까 말까인데…
▲ 대선정국 소용돌이에 휘말린 전군표 국세청장, 김만복 국정원장, 정상명 검찰총장(왼쪽부터). | ||
우선 김만복 국정원장은 정치권으로부터 집중적인 공격을 받고 있다. 탈레반 피랍 사태 해결 과정에서 ‘불필요한 노출’ 시비를 일으킨 바 있는 김 원장은 6일 또다시 ‘몸값 지불’ 논란과 관련해 애매한 입장을 밝혀 파문을 자초하고 있다. 이날 비공개로 진행된 국회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한 김 원장은 몸값을 지불했다는 의혹에 대해 “탈레반과 약속한 것이 있어 밝힐 수 없다”며 “석방 직후인 만큼 당분간 묻어뒀으면 좋겠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말하겠다”고 밝혔다. 그동안 “몸값 지불은 없었다”며 일관된 입장을 견지해 온 청와대와 외교통상부의 입장과는 다소 차이가 있는 답변으로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몸값 지불’ 가능성을 암시하는 발언으로 읽힐 소지도 다분하다.
실제로 김 원장은 ‘몸값으로 국정원 예산을 쓴 게 드러나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정보위원들의 질문에 “법에 따라 책임지겠다”고 답변했다. 김 원장의 애매한 답변을 들은 한나라당 의원들은 “김 원장이 시인도 부정도 하지 않은 것은 몸값을 지불했고 탈레반과 이면합의가 있었다는 것을 사실상 시인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김 원장의 협상 지휘 모습 노출에 여론은 부정적인 의견이지만 노 대통령은 이에 아랑곳 않고 있어 논란은 그치지 않고 있다. 김 원장은 또 국정원의 이명박 태스크포스팀 운영 의혹과 관련해 한나라당으로부터 수사 의뢰를 당한 상태다.
김 원장의 총선 출마설도 논란거리다. 국회 정보위 소속인 정형근 한나라당 의원은 6일 김 원장이 고향인 부산 기장군 지역에서 총선 출마와 관련된 여론조사를 하고 지역 기관장들과 회식을 하는 등 사전선거운동을 했음을 시사하는 문건을 공개하기도 했다.
정 의원은 이날 A4용지 2쪽 분량의 ‘국정원장 관련 문건’을 기자들에게 배포했다. 문건에 따르면 김 원장이 올해 1월 29일부터 5월까지 모두 13차례에 걸쳐 주민들의 국정원·청와대 견학 초청을 주선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김 원장이 축하 화환을 보낸 10개의 행사 내역도 상세히 적시돼 있다. 한나라당 관계자들은 “김 원장이 내년 총선을 염두에 두고 지역구 관리를 해 온 사실을 입증하는 자료”라며 김 원장의 총선 출마 의혹을 부추기고 있다.
하지만 김 원장은 “통상적 안보 견학은 예전 국정원장이 했던 것의 100분의 1도 안 되는 수준이고 화환 역시 국정원장 취임 초기에 지역사회 주민들이 과시하느라 내 이름을 빌려 무단 사용한 것”이라며 “내년 총선에 출마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전군표 국세청장도 난감한 입장이다. 국세청이 27명의 대선 예비 주자와 그 가족 등 108명에 대한 뒷조사를 했다고 주장하고 있는 한나라당이 전 청장 등 국세청 관계자들을 5일 검찰에 수사의뢰를 했기 때문이다.
안상수 원내대표는 6일 최고위원회의에서 “검찰이 국세청을 단단히 조사하면 모든 진상이 밝혀질 것으로 본다”며 “검찰이 제대로만 수사하고 결과를 발표하면 엄청난 파문이 일어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세청이 이명박 후보와 그 가족들만 집중 조사할 경우 정치공작 의혹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해 이른바 ‘물 타기’ 전략으로 정치인 27명을 조사 대상에 포함시켰다는 게 한나라당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하지만 국세청은 대선 출마 예상자의 재산 관련 정보가 외부로 유출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이들의 재산변동 명세를 담고 있는 전산망을 봉쇄한 것이라고 해명하고 있다.
권력형 비리 의혹으로 비화될 조짐이 일고 있는 김상진 씨 사건을 촉발한 장본인이 국세청 전직 고위간부라는 사실도 전 청장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 부산지방국세청장과 국세청 부동산납세관리국장을 지낸 정상곤 씨가 세무조사 무마 청탁 명목으로 김 씨로부터 1억 원의 뇌물을 수수한 혐의가 드러나면서 수면위로 부상한 이 사건은 노 대통령 측근인 정윤재 전 청와대 비서관 개입 의혹 등이 불거지면서 권력형 비리로 확전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정상명 검찰총장은 대선정국 주도권 싸움과 맞물린 정치권의 고소·고발건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특히 청와대가 이명박 후보를 고소함에 따라 뜨거운 감자를 받아든 격이기 때문. 정성진 법무장관과 정 총장 등 검찰 수뇌부 20여 명이 6일 저녁 폭탄주 회동을 가진 것도 민감한 정치사건 문제와 무관치 않을 것이란 시각에 힘이 실리고 있다. 일단 검찰은 지난 7일 청와대가 서울중앙지검에 고소장을 접수시킨 데 대해 이 사건을 공안1부에 배당하고 통상적인 수사를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검찰의 한 고위간부는 이 후보 고소건과 관련해 “검찰은 지난 97년 대선 당시 최대 핵뇌관이었던 김대중 비자금 사건 수사를 대선 이후로 연기한 사례가 있다”며 “검찰 수뇌부는 검찰조직이 정치공방전에 휘말리게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 후보 고소건에 대한 입장 표명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일선 검사들 사이에서는 “고소건이 접수된 만큼 수사는 불가피하다”며 “도곡동 땅 문제 등 일부 중단된 이 후보 관련 수사를 전면 재개하고 필요하다면 이 후보도 소환해야 한다”는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정 총장의 임기가 오는 11월 23일에 만료된다는 점도 민감한 정치사건과 맞물려 적잖은 논란을 야기할 것으로 보인다. 검찰총장은 선거사범 수사를 총괄 지휘하는 등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국가 사정기관 사령탑이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은 대선정국에 구애받지 않고 원칙과 절차에 따라 후임자를 내정한 뒤 인선 절차를 밟든지 아니면 후임자를 즉각 발표하지 않고 대선까지 대행체제를 가동하는 방법을 선택할 것으로 관측되나 두 경우 모두 정치적 논란은 불가피할 것이란 시각이 많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