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박 못잖은 손-정 전쟁 시작
▲ 지난 6일 통합신당 경선후보들이 <100분 토론> 출연에 앞서 한 자리에 모였다. 왼쪽부터 유시민 손학규 한명숙 이해찬 정동영. 국회사진기자단 | ||
#치열해진 손-정 싸움
대통합민주신당의 예비경선은 발표 이후에도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예비경선 결과가 뒤늦게 번복돼 발표되자 논란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초 당선자 발표에서는 1위 손학규, 2위 정동영, 3위 이해찬, 4위 한명숙, 5위 유시민 순이었으나 경선위는 발표 당일인 5일 밤늦게 4위 유시민, 5위 한명숙 순으로 순위를 조정해 다시 발표했다.
이목희 경선위 집행위원장은 “실무자 착오로 일반 여론조사 반영비율을 잘못 대입해 곱하는 바람에 일부 후보의 득표율과 4·5위 순위가 바뀌었다”며 “후보들의 재검표 요구가 있으면 조사 결과를 낱낱이 공개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사태로 이 위원장은 사의를 표명했음에도 불구하고 개표 순위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예비경선 결과에 가장 크게 반발한 것은 손 전 지사 측. 각종 여론조사에서 정 전 의장을 압도적으로 리드하던 것에 비해 초라한 승리로 끝났기 때문이다. 특히 본 경선에 도입될지도 알 수 없었던 일반인 여론조사만 승리를 거뒀을 뿐 선거인단 득표수에서는 오히려 정 전 의장에게 132표 차이로 뒤지기까지 했다. 또한 경선위가 과열경쟁 등을 우려해 공개하지 않겠다던 득표 순위와 득표율까지 발표해 예비경선 2위인 정 전 의장의 사기만 올려주는 꼴이 되고 말았다.
이런 파행에 손 전 지사 캠프의 우상호 대변인은 지난 6일 경선위가 예비경선의 순위와 득표 결과를 공개한 것에 대해 불만을 표하는 한편 재개표를 요구하고 나섰다. 유시민 의원 역시 순위 번복 등을 이유로 재개표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등 경선 자체에 대한 불신감이 더욱 커지고 있다.
여권 내에서는 이번 컷오프로 사실상 대선 후보의 윤곽이 그려질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결과는 그 정반대로 범여권 대선후보의 윤곽은 더더욱 안개 속으로 들어선 느낌이다.
우선 정 전 의장은 이번 예비경선에서 손 전 지사에게 54표라는 아주 근소한 차이로 짐으로써 본 경선에서의 경쟁력을 확실히 보여주는 계기가 됐다는 평이다. 정 전 의장은 국민과 당원들 가운데서 선출한 선거인단 1만 명을 대상으로 한 득표에서는 2339표를 획득해 손 후보(2207표)를 132표 차로 이긴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일반인 여론조사에서 정 후보(2274표)는 손 후보(2460표)에게 186표 뒤져 결국 합계 54표 차이로 뒤졌다. 본 경선에서 일반인 여론조사를 도입하지 않는다면 손 전 지사에게 충분히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이로 인해 손 전 지사와 정 전 의장 측은 ‘일반국민 여론조사를 도입하느냐 마느냐’의 의견 대립으로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손 전 지사 측은 “대선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여론조사 도입을 꼭 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는 반면 정 전 의장 측은 “(여론조사를) 1%도 인정할 수 없다”며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결국 한나라당 이명박 박근혜 후보가 여론조사 도입여부를 놓고 싸울 때 ‘저런 추한 싸움을 벌이지 않겠다’고 장담했던 범여권은 첫 투표를 불과 일주일도 남겨놓지 않은 시점까지도 자신들이 비난했던 문제로 진통을 겪은 것이다.
#친노세력 단일화되나
본 경선에서 더 큰 변수로 예상되는 것은 친노세력의 후보 단일화다. 예비경선에서 각각 3·4·5위를 차지한 이해찬(14.4%) 유시민(10.1%) 한명숙(9.4%) 세 주자의 득표율을 그대로 합치면 총 33.9%로 1위인 손 전 지사의 24.8%를 크게 앞선다. 대통합민주신당 내에서는 이 세 주자가 단일화를 이루게 된다면 본 경선에서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이번 컷오프를 통해 이미 범여권 경선이 친노 대 비노의 대립 구도로 정착된 만큼 앞으로 치열한 다툼을 피할 수 없는 형국이다.
하지만 이들의 후보 단일화도 그리 순탄치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 세 주자들 중 예비경선 순위에서 가장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은 이해찬 전 총리이지만 세 주자 모두 순순히 단일화의 대표 자리를 양보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명숙 전 총리는 지난 6일 CBS <뉴스레이다>에 출연해 “예비경선 순위는 1인 2표제로 조합의 성격이 있고 암암리에 연대가 이뤄져 진정한 의미의 민심 반영이 아니다”라며 예비경선 순위에 의한 후보 단일화에 반대했다.
유시민 의원도 최소한 이달 말까지는 독자적으로 행보를 유지하겠다고 밝혀 아직 단일화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유 의원은 지난 6일 “저를 좋아하고 지지하는 유권자도 있는데 정치인이 명분 없이 ‘형님 먼저 아우 먼저’하면 어느 유권자가 용납하겠느냐”고 말한 바 있다.
#탈락주자들의 향배
컷오프에서 탈락한 주자들의 향배도 경선에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예비경선을 통과한 주자들은 컷오프가 끝나자마자 탈락한 추미애 천정배 김두관 신기남 후보 영입 경쟁에 뛰어들었다. 가장 관심이 쏠리고 있는 것은 단연 추미애 전 의원이다. 추 전 의원은 같은 여성 후보였던 한명숙 전 총리에게 113표 차이로 아쉽게 5위의 자리를 내줬다. 컷오프 통과 주자들이 다른 어떤 탈락 주자들보다도 추 전 의원에게 관심을 쏟고 있는 이유는 그의 지나온 행적 때문. 현재 범여권 내에서는 ‘영남의 딸 호남의 며느리’라는 애칭으로 통하는 추 전 의원은 대통합민주신당 내에서 참여정부와 무관하고 민주당 지지 세력을 끌어들일 수 있는 유일한 후보로 평가받고 있다. 추 전 의원을 영입하면 그만큼 득이 크다는 것이 각 후보 진영의 판단인 것.
손 전 지사는 지난 6일 SBS의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추미애 전 의원은 대통합의 정신에 따라 여기 오신 만큼 통합의 화신이라 얘기할 수 있는 나를 적극 지원해 줄 것으로 믿는다”며 공개적으로 러브콜을 보냈다. 정 전 의장 등 컷오프를 통과한 다른 예비 후보들도 경선 직후 추 전 의원에게 영입을 권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추 전 의원 측은 “당내 경선에 관여해 어느 한쪽의 편을 들어주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며 “당 후보가 정해지면 대선 승리를 위해 전력을 다한다는 입장”이라고 말해 특정 후보를 지지하기보다는 대선 승리을 위해 큰 역할을 하고 싶다는 뜻을 내비췄다.
김 전 장관은 예비경선 탈락과 동시에 손-정 양 캠프로부터 영입제의를 받고 상당히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김 전 장관은 손 전 지사 측의 지속적으로 합류 권유를 받아온 것으로 알려져 있고 한때 손 전 지사와 연대 입장을 밝히기도 했었다.
이 밖에도 정동영 전 의장은 컷오프 직후 천정배 의원 영입에 공을 들이고 있으며 신기남 의원은 실질적으로 그동안 한명숙 전 총리와 정책연대를 맺어온 것으로 알려진다.
#문국현 전 사장 변수
그러나 통합신당 안팎의 관심은 장외 주자인 문국현 전 유한킴벌리 사장의 향배다. 최근 주가가 오르고 있는 문 전 사장 진영에는 상당수의 범여권 인사들이 참여한 상태다. 여기에 컷오프 탈락 주자들이 가세한다면 본 경선에 새로운 변수가 추가될 수밖에 없다. 더구나 문 전 사장이 신당을 만들고 통합신당이 본 경선을 통해 대선 후보를 확정한 후 단일화를 들고 나온다면 범여권의 대선구도는 폭풍에 휩싸일 가능성도 없지 않다.
탈락 주자들 가운데 천정배 신기남 의원은 문 전 사장과 연대를 모색할 뜻을 보여 주목된다. 천 의원은 “12월 대선까지 문국현 사장과 계속 정치연대를 해나가겠다”고 말한 바 있고 천 의원 쪽 관계자도 “문 전 사장 쪽과 다양한 연대 방안을 고민 중”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바로 문 전 사장 캠프로 합류할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자칫 ‘경선불복’으로 비칠 수 있어 문 전 사장을 본경선으로 견인하는 역할을 맡아 자연스럽게 손 잡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김두관 전 장관도 한때 문 전 사장을 지지하겠다는 속마음을 털어놓은 바 있다.
그러나 문 전 사장은 지난 5일 “국민이 마음을 주고 신뢰할 수 있는 새로운 정당을 늦어도 10월 말까지 만들겠다”며 독자적인 창당 구상을 밝히며 손 전 지사에 대해서는 “가치관의 혼란을 일으킨 장본인으로 시대정신과 맞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정 전 의장에 대해서도 “그분은 중도보수이지 진보라 할 수 없다”며 각을 세우고 있는 상황이다.
김장환 기자 hwan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