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침없는 파격과 추진력… ‘악몽’은 없다?
▲ 추석 이후에도 여전히 지지율 고공행진을 하고 있는 이명박 후보가 지난 9월 27일 ‘샐러리맨 온라인 커뮤니티 및 블로그 운영진과의 대화’ 행사에 참석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이 후보의 이러한 파격은 그의 ‘신 집권 전략’으로 연결되고 있다. 이 후보의 측근들과 그가 그동안 보인 언행을 종합해서 보면 그의 신 집권 전략은 기존 정치 체제에 바탕을 둔 ‘이념, 분열, 공론(空論), 서열, 고정관념’ 등의 다섯 가지 구태로부터 탈피하는 ‘탈오(脫五)’에서 ‘실용, 통합, 현장, 능력, 발상전환’ 등의 새 옷을 입는 ‘입오(入五)’ 전략으로 이번 대선에 임하려고 한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과연 이러한 전략이 성공할 수 있을까.
최근 한나라당 당직자들은 이명박 대선 후보 체제가 들어서면서 크고 작은 변화에 직면해 있다. 먼저 아침 7시 30분까지 바짝 앞당겨진 출근시간이 가장 몸에 와 닿는 변화다. ‘정말 일다운 일 한번 해보자’라는 이 후보의 주문에 그동안의 ‘관행’에 젖은 일부 당직자들은 “일부 대기업에서 실시했던 ‘7·4제(7시 출근 4시 퇴근)가 요즘에는 거의 흐지부지됐다. 그런데 우리는 퇴근마저 10시까지라고 하니 더 괴로운 심정”이라고 불만을 토로하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반응은 “정권 재창출을 위한 대선을 위해서 비상체제로 일하는 것은 당연하다. 한번 열심히 해보자라는 분위기”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명박 후보가 최근 제안한 ‘출근시간 앞당기기’는 ‘여의도식 정치’를 멀리하고 ‘이명박식 실용정치’로 바꾸기 위한 상징적인 조치라는 게 참모들의 설명이다. 이러한 이 후보의 새로운 정치 접근 방식을 ‘탈오입오 전략’으로 요약해볼 수 있다.
먼저 ‘탈(脫) 이념 입(入) 실용’은 이명박 후보가 가장 강조하는 정치 철학의 핵심이다. 이 후보의 측근들은 그가 ‘여의도 정치’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비효율성과 저생산성을 꼽는다고 한다. 캠프 대변인을 지낸 박형준 의원은 “이 후보는 정당과 국회가 정책 생산의 근간이자 국정의 한 축이 돼야 한다고 보지만 현실은 그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정당의 생산성과 효율성을 평가하는 시스템 도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사실 이 후보는 노무현 정권이 이념문제에서 기인했던 4대 개혁법안 문제로 5년을 허송세월했다고 보고 있다.
이 후보는 최근 인천의 한 중소기업을 찾은 자리에서 “프랑스 사르코지 대통령이 ‘친미를 부끄러워하지 말자’고 했는데 프랑스 대통령이 하기는 힘든 말이다. 이념 논쟁을 뛰어넘어 사르코지 대통령처럼 과감하게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혀 실용 중심 전략을 철학의 근간으로 삼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그의 참모들은 이에 대해 “10월 2일부터 열리는 남북 정상회담과 이후 몰아닥칠 북한 이슈, 이념 논란을 실용주의로 돌파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라고 말한다.
비서실장 임태희 의원은 그에 대해 ‘평가’하면서 “세간의 ‘철학에 대한 문제를 (이 후보에게) 많이 주문하더라’는 의견을 전달한 적이 있다. 그에 이 후보는 ‘그런 것(의견)들은 철학의 밑바탕이고, 나는 행동을 통해 철학을 나타내겠다’고 말하더라. 이 후보가 철학조차 실용적으로 접근하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 다음은 ‘탈 분열 입 통합’ 전략이다. 이는 최근 이 후보가 가장 관심을 가지는 당의 화합과 맥이 닿은 부분인 동시에 대선 전략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통합의 리더십은 박근혜 전 대표와의 화합이 필수적이다. 한나라당의 한 당직자는 이에 대해 “이 후보가 대선에서 시너지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영남권의 친박 세력을 그대로 흡수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또한 내년 총선을 위해서도 박 전 대표 세력과의 화합이 선행되어야 한다. 공동정권 약속이라는 최후의 승부수까지 가정해서 박 전 대표 세력을 감싸 안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통합의 리더십은 ‘외연 확대’도 동반해야 한다. 이 후보 측은 ‘정권교체냐, 정권연장이냐, 이것이 이번 대선의 기본 구도’라고 보고 있다. 외연 확대를 통한 ‘한나라당 대 비 한나라당’ 구도 돌파를 대선 전략의 핵심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 후보는 “정치권, 시민단체 등 정권교체에 동의하는 모든 분들과 함께할 계획으로 이미 그 작업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우선적 대상은 “서부벨트를 포용해야 한다”(정두언 대선준비팀장)는 언급처럼 충청권이다. 특히 범여권 후보로 충청 출신인 이해찬 전 총리가 될 경우 그 카운터파트로 국민중심당 심대평 후보의 영입이 필수적이란 게 이 후보 측 판단이다. 또한 지리멸렬한 범여권 이탈 세력 포용도 적극 검토 중이다.
시민사회의 경우 이재오 최고위원 등 핵심 측근들이 최근 일부 뉴라이트 측 인사들과 접촉하고 있다. 또한 이석연 변호사 등을 선거대책공동위원장으로 영입하는 방안도 거론하고 있다.
한나라당의 한 당직자는 이러한 외연 확대에 대해 “기존 정치권과의 차별화를 꾀하고, 탈 여의도를 지향하는 ‘이명박식 실용정치’를 보여주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 후보가 외부 수혈에 심혈을 기울이는 이유는 한나라당의 전통적 약세인 수도권과 30~40대 화이트칼라층의 표를 얻기 위해 당의 변화를 보여줄 참신한 인재를 앞세우겠다는 의도도 담겨있다. 이 또한 여의도 정치에 대한 불신이 그 원인이라는 것이다. 이 후보 자신이 당의 전통적 주류인 ‘TK 강경보수’와 거리가 있는 비주류라는 점도 ‘새로운 피’를 찾는 데 관심을 갖게 한 요인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외연확대를 명분으로 ‘잡탕식 정당’을 만들면 결국 당 지지율이 떨어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세 번째로는 ‘탈 공론 입 현장’을 들 수 있다. 이것 또한 이 후보의 평소 ‘실용’ 스타일이 가장 잘 녹아있는 모토라고 볼 수 있다. 참모들은 이 후보가 주재하는 회의에 들어가면 긴장감을 감추지 못한다. 그는 책상 앞에 수첩을 꺼내놓고 여러 가지 이야기를 경청하지만 거의 수첩은 보지 않고 발언자를 똑바로 쳐다보며 이상한 수치가 나오거나 하면 즉각 근거자료를 요구하기도 한다. 이 후보는 회의가 아무리 오래 걸려도 대충 넘어가는 적은 거의 없다고 한다.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그는 시간보다는 ‘결과’를 높이 평가하기 때문에 회의는 시간을 넘기기 일쑤라고 한다. 그래서 회의 때 의제가 상당히 중요하다고 한다. ‘쓸데없는’ 주제로 탁상공론하는 것을 없애기 위해 안건 정하는 것도 어렵고 조심스럽다는 게 참모들의 전언이다.
또한 이 후보는 의원들에게 당에서 ‘알짱거리지’ 말고 지역에 내려가 대선 현장 활동을 하라고 독려한다. 때로는 리포트를 제출하라는 등의 까다로운 요구를 해 의원들의 불만이 높지만 이 후보는 현장중심 활동을 철칙으로 삼고 있다. 그래서 후보 선대위도 철저하게 현장중심으로 짤 예정이다. 박형준 대변인은 “2002년 대선 때와는 전혀 다른 조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우선 선거운동을 현장 중심으로 한다는 내부 방침에 따라 지방 선대위의 기능이 어느 때보다 커지게 된다. 이 후보 측은 “2002년 대선 때처럼 중앙 선대위에 중진 의원들이 대거 포진하면 현장과 거리가 생기고 후보에게 전문성을 갖춘 실무진의 접근을 차단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이 후보 진영은 과거와 달리 지방 선대위를 조직본부장 산하가 아닌 후보 바로 아래에 두기로 했다. 지방선거조직이 중간 단계를 거치지 않고 후보와 직접 협의하는 체계를 갖추겠다는 것이다. 또 현역 의원들은 중앙 선대위보다는 시·도 선대위에서 역할을 맡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탈 공론 입 현장’ 모토는 자연스럽게 ‘탈 서열 입 능력’ 구조로 이어지게 된다. 현장 중심으로 대선 체제가 바뀌면서 서열 파괴와 함께 능력 위주 인사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과거 대선기획단장은 3선 이상 급에서 맡는 것이 관례였지만 이번에는 기구를 대선준비팀으로 축소하면서 팀장으로 초선인 정두언 의원을 앉힌 것이 대표적 예다. 홍준표 박진 의원 등의 중진들을 제치고 서울시당위원장을 초선인 공성진 의원에게 맡긴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공 의원은 지난 경선에서 공을 세웠다. 한 측근은 이에 대해 “이 후보가 30대 중반의 젊은 나이에 능력을 인정받아 대기업 사장에 오른 것처럼 공이 있으면 보상이 따라야 한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당내에선 “의원들을 무슨 기업 대리 취급해서는 안 된다”는 불만도 흘러나온다.
마지막으로 ‘탈 고정관념 입 발상전환’을 들 수 있다. 이 또한 이 후보가 기업가 마인드로 정치 구조 자체를 바꿔보겠다는 의지의 산물이다. 특히 이 후보는 한반도 대운하 건설과 관련해 발상의 전환이 있어야 한다고 설명한다. 이 후보 측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경부고속도로, 고속전철 등 현재 국가 경쟁력과 삶의 질을 높였다고 평가받는 국책사업도 시작 단계에서는 많은 반대에 부딪혔다. 운하도 이러한 맥락에서 고려해야 한다. 50년 앞을 내다보기 위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때다. 신 성장 동력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이 후보도 ‘현재의 보이는 1% 가능성을 가지고 보이지 않는 99%의 가능성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라고 말하며 운하 건설에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라고 말했다. 정치권에선 “대운하 건설 때 세금으로 공사 대금을 충당하지 않고 강을 준설한 뒤 모래를 판 자금으로 하겠다는 등의 구상은 이 후보가 아니면 할 수 없는 발상의 전환”이라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정치와 국가정책을 기업가식 밀어붙이기로 일관한다면 새만금사업의 부작용 같은 큰 재앙이 올 수도 있다. 기업 경영과 국가 운영은 전혀 다른 패러다임”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수도권의 한 정치학과 교수는 “이명박 후보가 탈 여의도 정치를 선언하고 기업식 정치 패러다임을 시도하겠다는 자체는 의미가 있다. 그런데 최근 국제 흐름이 ‘기업 경영’의 장점을 국가 운영에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있긴 하지만 그 실현 가능성은 크지 않다. 최근 십수년 내 OECD국가 중 기업가 출신 지도자는 이탈리아의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 정도가 유일했다. 하지만 그도 결국 기업과 국가를 혼동한 도덕적 해이로 인해 실패한 총리로 끝났다. 국민들이 이 후보에게 바라는 한 가지가 있다면 기업과 국가를 혼동하지 말라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추석 후에도 이 후보는 여전히 여야 대선 주자들 가운데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다. 그러나 아직 대선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남아있다. 2002년 이때쯤에는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도 당선을 확신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이 후보가 이런 여러 가지 의구심을 떨치고 순조로운 대권 플랜을 펼칠 수 있을지는 지금부터가 시작이라는 것이 정치권의 전망이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