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팎에서 줄줄줄… ‘물’ 새는 소리
▲ 지난 1일 한나라당 대선필승 정책보고대회에 참석한 이명박 후보. 부시 미국 대통령(원안)과의 면담 추진이 해프닝으로 끝나면서 이명박 캠프의 문제점이 불거지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이에 따라 ‘부자 몸조심’ 심정이었던 캠프에서도 긴장하는 모습이다. 이번 사건으로 위기감을 느낀 캠프에서는 그동안 이 후보에 대해 쏟아지는 ‘비판’과 관련한 총체적인 점검에 들어갔다는 후문이다. 대선을 불과 2개월여 앞두고 이 후보에게 쏟아지는 ‘문제’는 과연 무엇이 있는지 긴급 진단해보았다.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후보는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과의 면담이 무산되었다는 최종 보고를 받고 한동안 말이 없었다고 한다. 평소 웬만한 일에 대해서는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며 대범하게 넘어가는 편이지만 이번 ‘사건’만큼은 충격을 받은 듯 한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는 게 주변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특히 ‘다 된 밥에 코 빠뜨리듯’ 막판 보안에 좀 더 신경을 썼다면 충분히 면담이 성사될 수도 있었던 것에 대해 이 후보가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는 후문이다.
사실 이 후보는 사석에서 종종 “내가 나이가 많고 외모도 좀 촌스럽게 보이지만 젊은 시절부터 외국에 나가서 생활을 많이 했기 때문에 같은 나이대 사람들에 비해 국제감각이 뛰어나다고 자부한다”라고 말하곤 했다. (이 후보는 현대건설 입사 초기 태국 현지 근무를 시작으로 사업과 관련해 세계 여러 나라를 두루 방문했고 1996년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잃은 뒤에는 미국으로 건너가 1년간 생활하기도 했다. 그때 그의 아파트에서 ‘식객’ 노릇을 했던 사람이 바로 홍준표 의원이었다. 홍 의원은 ‘이 후보가 그쪽(여의도)은 쳐다보고 싶지도 않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라’고 회고한 바 있다.) 이에 참모들도 이 후보의 강점으로 ‘글로벌 리더십’ 이미지를 내세우며 4강 외교도 의욕 있게 추진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4강 외교의 핵심이 바로 미국 부시 대통령 면담이었다. 비록 야당 후보로서 현직 미국 대통령을 만난 전례가 없었지만 이 후보로서는 자신의 강점을 십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로 보고 면담 성사에 상당한 애착을 보였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야당 후보로서 면담 추진에 한계가 있었다. 이 후보 측은 이미 지난 6월부터 주한 미 대사관 측에도 미국 방문과 부시 대통령 면담을 요청했다. 이때 비선 라인도 함께 총동원했지만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그래서 강영우 백악관 차관보와 공화당 인사들을 ‘대안 채널’로 섭외한 것으로 알려진다.
그런데 이러한 인맥 선정 과정이 공개 검증 과정을 거치는 게 아니라 비밀리에 추진되면서 문제를 낳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 후보는 지난 경선 과정에서 일부 대학 교수들을 경선 전략 수립에 투입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들의 실무 능력이 크게 떨어지고 캠프 관계자들과도 손발이 맞지 않아 일부는 결국 ‘퇴출’되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사실 이 후보의 인사 스타일은 좀 독특하다. 일단 누구로부터 인물을 천거 받으면 그 사람에게 무조건 일을 툭툭 맡기는 편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 사람이 구체적 성과를 내고 능력을 인정받으면 계속 일을 주고 곁에 둔다는 것이다. 하지만 진행 능력이 떨어진다고 생각되면 그냥 일거리를 주지 않아 자연스럽게 그를 떠나게 한다는 것이다. 이 후보 측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그런데 특정 인사의 능력을 검증하는 과정에서 잦은 시행착오가 발생해 캠프 전체에 부담을 줄 때가 있는 것 같다. 지난 경선 때도 일부 교수 출신 관계자들의 일 처리가 서툴러 다른 실무자들이 대신 하느라 애를 먹었던 적이 있었다. 특정 인사를 쓰려면 비공개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사안을 가지고 미리 검증을 미리 해본 다음 ‘충분하다’고 판단되면 그때 더 큰 일을 맡겨도 늦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이번 면담 무산은 외교 관례를 무시한 채 무리하게 ‘비선’을 동원해 진행했기 때문이란 비판에 대해 이 후보의 인사 스타일도 일정한 책임이 있다는 지적이다. 또한 이 후보는 “원칙보다는 성과를 내기 위해 무리하게 밀어붙이다가 결국 화를 자초했다. 기업을 운영하는 식으로 외교사안을 처리하다 낭패를 본 것 아니냐”는 비판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다.
▲ 이번 면담 무산으로 이명박 후보는 강재섭 당 대표(사진)와도 갈등을 빚고 있다. | ||
사실 이번 면담 무산에 대해 강재섭 대표가 단단히 화가 났다고 한다. 그는 최고위원회의에서 “최근 당직자들이 확정되지도 않은 정보를 자기 과시를 위해 언론에 흘리는 등 기강이 해이해진 것 같다. 이런 식이면 대형 사고가 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느냐”고 발표 당사자들을 강하게 질책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지금 보면 당과 대표는 전혀 없고 후보와 캠프만 있는 것 같다. 그렇지 않아도 강 대표는 당이 이 후보 위주로 돌아가고 자신은 겉돈다고 생각하는데 이번 일이 면담 추진부터 무산까지 자신은 하나도 모를 정도로 철저히 소외된 데 대해 불만이 상당히 컸던 것 같다. 이는 앞으로 대선 국면에서 불거질 후보 진영과 당의 결합 문제를 미리 지적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또한 한나라당의 한 당직자는 이에 대해 “지난 대선 때도 이회창 전 총재의 부국팀이 당 시스템을 무시하고 전횡을 휘두른다는 말이 많이 나왔다. 대선 후보들은 당직자들이 당의 근간이라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자신들의 ‘가신’들에게만 의존한다. 이번 일도 당과 긴밀한 협의를 통해 상의했다면 그 실수를 줄일 수도 있었다는 점에서 앞으로 이 문제를 꼭 해결해야 한다고 본다. 그렇지 않다면 수많은 당직자들을 바보로 만들어 결국 대선 경쟁력 약화로 이어지게 될 것 같아 안타깝다”라고 말했다.
여기에 외교라인에 대한 보강과 책임 문제도 다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이 후보 스스로 ‘글로벌 리더십’을 갖춘 지도자로서 자긍심을 가지고 있는데 정작 그 콘텐츠는 너무 국내적이라는 비판도 그래서 나온다. 이 후보 측 외교일정을 담당하는 국제팀은 박대원 전 주 알제리대사를 정점으로 실무자 3명을 포함해 4명으로 구성돼 있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미국 조야의 실력자들과 깊은 교분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은 전무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래서 이 후보 측이 이번 무산 건과 관련해 “외교 안보의 아마추어리즘이다” “외교라인이 허약하다”는 비판에 대한 진화를 서둘러야 한다는 게 정치권의 일치된 시각이다. 한 핵심 참모는 “사실 외교라인 보완 필요성은 내부적으로 이전부터 있었다. 그런데 역량과 경험도 있고, 신뢰성 있는 사람을 구한다는 게 쉽지는 않다. 당내 외교인맥 활용 문제 등도 검토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
한 정치학자는 이에 대해 “이명박 후보가 해외를 두루 다닌 점을 얘기하며 글로벌리더를 자처하지만 이런 행사를 세심하게 배려하지 않는 것은 아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물론 그가 CEO시절 해외를 누비며 비정치적이고 실무적인 방식에 익숙해진 것은 이해하지만 이제는 대선 후보로서 외교 행위에 안정감이 있어야 한다”고 밝히면서 “하지만 야당 후보로서 정보력 인맥 등이 여권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게 사실이다. 그런데 인맥이 없다고 해서 일 처리도 대충하라는 논리는 성립할 수 없다. 일 처리에 관한 한 프로라는 얘기를 들어야 국민들도 집권이라는 일자리를 이명박 후보에게 줄 것”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