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상민 전 교수 “200만이 햐야 외쳐도 대통령은 지금 평온”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제공=청와대
박 대통령의 3차 담화 이후 여야 정치권은 엇갈린 반응을 보이며 혼란에 빠진 모습이다. 새누리당은 공식 논평을 통해 “대통령직 임기 단축을 포함해 진퇴 여부를 국회의 결정에 맡기겠다는 것은 국민의 뜻에 따르겠다는 무거운 결단”이라면서 “대통령 권한을 내려놓겠다는 각오와 국정 혼란·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한 의지를 담은 호소”라고 평가했다. 반면 야 3당은 박 대통령이 전한 메시지가 “탄핵을 피하기 위한 꼼수, 함정”이라며 강력 비판했다.
전문가들은 박 대통령의 담화를 어떻게 봤을까. 황상민 전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박 대통령의 행동이 자신의 의도나 전략에 의해서가 아닌 누군가의 지시에 따른 ‘꼭두각시’ 행동이라고 분석했다. 황 전 교수는 “박 대통령의 심리적 배경을 추론하려면 먼저 현재 그의 행동이 꼭두각시가 하는 행동과 비슷하다고 가정을 해야 한다”면서 “그렇다면 꼭두각시가 하는 행동이 바뀌는 것은 조종하는 사람들이 달라졌다는 말”이라고 말했다.
이어 황 교수는 “꼭두각시를 조종하는 사람의 의향이나 의도, 전략이 그대로 드러나는 게 지난 29일 담화다”라고 주장했다. 황 전 교수는 그 이유로 담화 전날 서청원, 최경환 등 새누리당 친박 중진 의원들이 박 대통령에게 명예퇴진론을 제안했다는 언론보도를 들었다. 그는 “국회에서 명예로운 퇴진을 할 수 있게 해달라는 이야긴데 아마 새누리당에서 ‘이렇게 말씀하십시오’라고 로드맵을 줬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박 대통령의 담화 이후 국회에 임기단축 진퇴 여부에 대한 결정을 맡기겠다는 박 대통령의 의중이 무엇인지에 대한 관심이 고조됐다. 일각에서는 박 대통령으로선 최고의 선택을 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와 관련해 황 전 교수는 톨스토이의 단편소설 <바보 이반>의 사례를 들었다.
황 전 교수는 “박 대통령이 상당히 전략적인 선택을 했다라고 하는 순간 굉장히 이슈가 복잡해진다. 이걸 잘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가 <바보 이반>이라는 동화”라며 “바보와 악마가 싸우는 이야긴데 악마는 번번이 바보 이반한테 당한다. 악마는 복잡한 수를 써서 바보 이반을 골탕 먹이고 음모를 꾸미지만 항상 바보에게 당한다. 하지만 그것이 바보가 잔머리를 써서 이긴 게 아니라 본인이 가장 단순하게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해 나가는 것일 뿐인데 악마가 이중 삼중으로 이반의 의중을 파악하려고 애쓰다 보니 항상 당하고 지는 거다. 이는 때때로 가장 단순한 방식이 복잡한 방식을 이길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지금 언론에서 아주 복잡한 수가 발동할 수 있다는 가정 하에 박 대통령의 행동을 해석하는데 그러다보니 어떻게 보면 너무 바보 같은 제안일 수 있는데 그렇게 바보일 수는 없지 않겠느냐 생각해서 이게 노림수가 있는 것 아니냐 해석을 하게 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내 1세대 프로파일러인 배상훈 서울디지털대 경찰학과 교수는 박 대통령의 심리를 일반 사람과는 다른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배 교수는 “박 대통령은 일반 사람이 생각하는 ‘진실과 거짓’의 개념이 다르다. 박 대통령이 말하는 진실은 순수함의 의미가 없다. 그것을 일반사람들의 정서로 해석하면 파악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이어 “오랫동안 누군가에 세뇌당하고 다른 사람의 생각을 반복했던 경우는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라 마치 남의 이야길 하는 것 같은 심리적 특성이 나타난다”고 말했다.
배 교수는 박 대통령이 담화에서 범죄 사실을 부인한 것과 관련해서도 “(검찰수사와 언론 보도 등을 통해 드러난) 박 대통령 자신이 저지른 일들 또한 범죄라고는 생각 안 할 수 있다”며 “그 이유는 자신의 아버지가 한 일, 자신이 늘 해오던 방식 등으로 봤을 때 주변에서는 항상 박 대통령에게 ‘옳은 결정이다’, ‘잘했다’고만 하기 때문인데 박 대통령은 이를 범죄라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황 전 교수도 “박 대통령의 심리는 자신이 하는 모든 것은 국가를 위한 것이고 사익을 위해 사는 사람이 아니라고 믿는 것”이라며 “그 말은 즉 박 대통령은 ‘자신이 바로 국가다’라는 멘탈리티(mentality)를 확고히 가진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어 “일반 사람들이 이런 이야기를 하면 정신병이 되는 것이지만 박 대통령이 그런 이야기를 하면 많은 사람들이 ‘그럴 수도 있다’고 받아들이는 상황의 차이가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박 대통령은 그동안 오락가락 행보를 보여 왔다. 지난 10월 24일 개헌 카드를 꺼내 든 박 대통령은 언론을 통해 태블릿PC가 공개되자 바로 다음날 대국민사과를 했다. 이후 박 대통령은 지난달 4일 대국민담화에서 “검찰조사에 성실히 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난달 20일 “검찰의 수사가 공정하다 생각하지 않는다”며 말을 뒤집었다. 그 과정에서 박 대통령은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된 엘시티 사건에 대해 검찰에 엄정 수사를 지시하기도 했다. 상황변화에 따라 극과 극을 오가는 입장을 내놓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황 전 교수는 박 대통령을 보필하던 주변 참모진의 변화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최순실 씨가 구속된 후) 자기를 돌보던 사람이 없어졌다는 데서 오는 상실감이나 생활의 혼란, 무기력감을 느꼈을 수 있다. 그래서 본인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 처했을 것”이라며 “지금은 박 대통령 뒤에서 조언을 하고 지시하는 사람이 달라졌다. 그 사람들에 적응해야 하는데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락가락 하는 행보를 보였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난번 담화 때와 달리 이번 3차 담화 때 박 대통령은 굉장히 여유롭고 편안해 보였다. 지금은 (바뀐 참모진이) 익숙해졌기 때문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나미 이나미심리분석연구원장은 이에 대해 “검찰 수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유영하 대통령 변호사가 박 대통령 주변에 머무르기 시작하면서 행동이 바뀐 것 같다”며 “유 변호사가 법적으로 조언을 했을 텐데 국민감정이 가라앉을 때까지 버티는 게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버텨야 보수가 다시 결집할 것이다’ 이렇게 중간에서 코치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박 대통령은 상황변화에 따라 극과 극을 오가는 입장을 보여왔다. 사진은 유영하 대통령 변호인. 일요신문 DB
그렇다면 현재 박 대통령의 심리 상태는 어떨까. 이 원장은 “박 대통령 자신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숨죽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 수 있다”며 “‘샤이 트럼프’ 이후 촛불집회에 나온 200만이 소수고 나머지 4800만은 가만히 숨죽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샤이 트럼프’란 트럼프에 대한 지지를 공개적으로 밝히기를 꺼려해 여론조사에서는 속내를 숨기다가 실제 투표에서 진심을 드러낸 트럼프 지지자들을 말한다. 이 원장은 이어 “지금으로선 박 대통령을 좋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에 가만히 있는 세력들이 숨죽이고 있고, 그들이 시간이 지나면 다시 나서서 원래 자리로 복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황 전 교수도 현재 박 대통령의 심리를 오히려 평온한 상태라고 분석했다. 그는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사퇴하라’는 목소리를 들으면 엄청나게 위축되거나 쪼그라들거나 부담감을 갖고 발표해야하지 않나. 그런데 박 대통령은 (담화 모습을 봐도) 그런 게 전혀 없는 분이다. 200만 명이 나와서 하야하라고 소리쳐도 박 대통령한테는 사실 의미가 없다”라고 말했다. 이어 “일부러 신경을 안 쓴 게 아니라 원래 신경 자체를 잘 안 쓰는 분이기 때문이라고 표현하고 싶다”며 “박 대통령의 심리는 ‘최순실이 나쁜 짓을 해도 나는 나쁜 짓을 한 적이 없다’라고 느끼거나 사람들이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라 최순실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 생각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박 대통령의 현재 심리 상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박 대통령의 특수한 성장과정을 이해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서천석 서울신경정신과 원장은 박 대통령을 거짓된 자기를 스스로의 자신이라 믿으며 마음의 평화를 얻는 ‘리플리증후군(Ripley syndrome)’에 빗댔다. 다만 특수한 점은 스스로 의도한 것이 아닌 주변 환경이 박 대통령을 포장해줬다는 것이다.
서 원장은 지난달 6일 자신의 SNS를 통해 “박 대통령 행동은 거짓 자기를 스스로 자기라 믿으며 마음의 평화를 지켜가는 리플리증후군과 비슷해 보인다. 결정적인 차이는 리플리증후군처럼 적극적으로 자기와 주변을 속이기 위해 거짓말을 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는 매우 특수한 그의 조건 덕분인데 그는 ‘영애=공주’로서 10대를 보냈다. 스스로를 포장하기 위해 타인에게 체계적인 거짓말을 하지 않아도 타인이 적당히 포장해준다. 그저 그럴듯하게 보이도록 노력하는 수준이면 충분했다. 무능이 드러나지 않도록 노출을 피하는 정도면 마음의 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이 원장은 박 대통령의 성장과정에서 겪은 제한적인 환경을 연예인의 상황과 빗대어 설명했다. 이 원장은 “박 대통령이 어렸을 때부터 청와대에 오랫동안 살았기 때문에 제한적인 환경이 성격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며 “항상 감시받고 주변 몇 사람하고만 친해질 수밖에 없는 보호받는 환경에서만 지냈을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 “이는 연예인 매니지먼트 회사에서 연예인들 관리하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보통 연예인들과 대중의 관계는 상호작용이 아닌 굉장히 피상적인 관계지 않나. 실제로 연예인 대부분이 고립돼 지내고 주변 코디네이터나 메이크업아티스트 같은 사람들과 친한데 그것과 비슷한 경우”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이 원장은 부모가 비명횡사한 성장과정이 오히려 박 대통령을 강하게 만들었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부모를 잃고 상실감에 따른 비극적인 성장기를 거치면서 약해진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강해진 면도 있을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그 강해진 면이 고집으로 강해졌지 약한 사람을 배려하거나 공감해주는 쪽으로 보긴 힘들다”고 진단했다.
김상훈 기자 ksangh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