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 같아선 재산 모조리 몰수하고 싶지만…’ 위헌 가능성 걸림돌
일요신문 DB
심재철 국회부의장실 관계자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에 대해 국민적인 관심이 일고 있다. 비선실세의 국정 농단에 대해 처벌 가능성을 열기 위해 공소시효 폐지로 처벌을 강화했다. 비선이 범죄를 저질렀을 경우 재산상 이익을 환수할 수 있는 방안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범죄의 공소시효를 폐지해서라도 대통령과 측근들의 권력형 비리를 발본색원하겠다는 취지다.
법안은 대통령과 그의 보좌진, 친인척, 법률상·사실상 친분 관계가 있는 자 등 특수 관계인의 뇌물, 사기 등의 범죄에 대해 공소시효를 폐지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대통령에 대한 수사를 명문화해 헌법 제84조의 해석을 둘러싼 논란을 정리하고 범죄로 취득한 재산상 이익에 대한 몰수와 추징의 근거도 제시했다.
심 부의장은 법안 통과에 의지를 드러내고 있지만 잡음도 무성하다. 법조계 일각에선 “공소시효 폐지는 위헌 소지가 있다. 소급입법 금지원칙 위반”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법무법인 강의 구주와 변호사는 “법안의 취지는 좋다. 하지만 법정형이 사형에 해당하는 죄도 공소시효가 있다. 최 씨에 대해 공소시효 없이 적용될 수 있는 혐의들이 많은데 무리하게 위헌 논란을 일으키면서 공소시효를 폐지할 필요는 없다. 국가차원의 중요한 법률이다. 위헌 소지가 없도록 발의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소급입법금지는 이미 종결된 사실관계 또는 법률관계에 적용하기 위해 새로운 법안을 만드는 것을 금지하는 헌법원칙이다. 헌법 제13조 1항은 “모든 국민은 행위시의 법률에 의해 범죄를 구성하지 아니하는 행위로 소추되지 아니하고 동일한 범죄에 대하여 거듭 처벌받지 아니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헌법 제13조 2항은 “모든 국민은 소급입법에 의하여 참정권의 제한을 받거나 재산권을 박탈당하지 아니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다른 변호사는 “과거에 축적한 재산에 대해 특별법을 적용해서 현 상태로 국가로 귀속되는 것은 향후에 문제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정치권에서도 “도대체 법률상·사실상 친분 관계가 있는 자가 누구인가”라는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비서는 “법률상 또는 사실상 친분관계를 어떻게 정의해야 하나. 법원에 법률상 친분을 어떻게 증명해야 하나. 최 씨도 박근혜 대통령을 모른다고 딱 잡아뗐다. 너무 모호해 ‘화풀이’ 법안 같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심재철 국회부의장실 관계자는 “법률상·사실상 친분관계라는 개념이 애매한 부분이라는 점을 인정한다. 우리도 고민 중이고 상임위 단계에서 다듬어질 것이다. 수사가 진행 중인 범죄에 대해서도 시효가 완성되지 않은 범죄에 대해 공소시효를 연장하거나 신설하는 것은 헌재판례상 가능하다. 위헌 소지를 완전히 없애는 것은 우리에게도 여전한 숙제”라고 했다.
국민의당도 최근 당론으로 ‘최순실법 3+1패키지’ 법안을 발의했다. ‘민주헌정침해행위자의 부정축적 재산 환수에 관한 특별법’과 몰수 대상을 넓히고 소급 적용이 가능한 형사 몰수 관련 법안 3건을 담고 있다. 채이배 국민의당 의원은 11월 8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최순실과 결탁한 부역자들이 국정 전반을 농단한 사실들이 드러나고 있다. 막대한 재산도 취득했기 때문에 이들이 얻은 범죄 수익을 몰수해서 민주주의 질서를 바로잡고자 발의한 것”이라고 했다.
법안은 민주헌정침해행위자들이 불법적으로 형성한 재산에 대한 환수를 골자로 하고 있다. 국회의장 소속의 부정축재조사위원회가 민주헌정침해자의 재산조사와 부정재산 여부를 결정하는 내용(제4조)도 담고 있다. 형사 몰수 관련 법안엔 공무원범죄몰수법과 범죄수익은닉규제법상 몰수·추징 대상에 직권남용·강요·공무상 비밀이용 등의 추가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몰수의 성격을 형벌에서 보안처분으로 변경하고 유죄판결을 받거나 기소하지 않는 경우에도 몰수재판이 가능하도록 한 점도 특징이다.
채 의원실 관계자는 “권력의 정당한 위임을 받지 않은 자의 국정 개입을 처벌하는 법안이다. 위원회가 민주헌정침해행위를 규정하고 부정재산 범위를 확정하면 그 재산을 몰수하는 것이다. 사건 초기에 검찰이 최 씨에 대해 형법상 강요죄나 직권남용죄로 기소하려고 했다. 그렇게 되면 뇌물죄가 아니기 때문에 재산상 이익을 몰수하거나 추징할 수 없었다. 그래서 형사 몰수법 관련 개정안을 추가로 발의했다”고 설명했다.
정치권 일각에선 “재산 형성 범위를 특정하는 기준이 애매모호하다”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국회의 한 관계자는 “최 씨의 종자돈이 어디서 나왔는지 밝히기 힘들고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재산 축적은 다양한 방법으로 할 수 있다. 재산증식 과정을 어떻게 밝힐 수 있을지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최태민 일가는 1970년대부터 육영재단과 영남대 재단에 개입해 재산을 축적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최태민 일가의 범죄수익과 최순실 일가 재산의 연관성을 밝히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이다. 하지만 채 의원실 관계자는 “국회 소속 위원회 특검과 국정조사의 자료들을 토대로 부정축재한 재산의 범위를 특정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법률 전문가들도 조심스럽게 위헌 가능성을 전망했다. 구주와 변호사는 “법안 취지는 좋지만 기소 전 또는 유죄판결 확정 전의 몰수 규정은 헌법상 무죄추정 원칙에 위반될 여지가 있다. 몰수 자체가 현행 형법 제41조 제9호에 규정된 형의 종류의 하나다. 형사소송법상 ‘압수’ 규정으로 규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법무법인 덕수의 임애리 변호사도 “무죄추정원칙에 반할 수 있다. 유죄판결 확정 전이나 기소 전에 잠정처분이 행해질 수 있다는 판례가 있지만 보안처분이라 하더라도 형벌과 다를 뿐이지 실질적으로 재산권의 종국적인 박탈이라는 측면에서 잠정처분과는 성격을 달리한다. 몰수하는 것은 위헌 소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더불어민주당도 ‘최순실 특별법’에 공을 들이고 있다. 특히 민병두 의원이 법안 발의에 의지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민 의원이 발의 예정인 ‘국헌문란 행위 또는 국정문란행위 등으로 인한 부정수익의 몰수 및 피해구제에 관한 특별법안’도 앞서 채 의원 법안과 비슷한 내용이 들어가 있다. 법안 제5조는 “몰수청구는 부정수익을 취득한 행위자에 대한 유죄 재판을 하지 아니하거나 공소를 제기하지 않는 경우에도 요건을 갖췄을 경우 몰수를 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무죄 추정의 원칙 위반 우려가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이에 대해 민병두 의원실 관계자는 “2003년 UN부패방지협약 제54조는 ‘사망, 도주 또는 부재를 이유로 기소될 수 없거나 그 밖의 다른 적절한 경우 유죄판결 없이도 관련재산을 몰수할 수 있는 방안의 도입을 고려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제 기준을 따라야 한다. 위헌 논쟁에 매달리다 보면 누군가 위법하지 않은 한도 내에서 교묘하게 부정 축재를 할 수 있다. ‘제2의 최순실’을 사전에 막아야 한다”고 했다.
최선재 기자 s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