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방산 죽이고 해외 무기 사재기…록히드마틴만 웃었다
대형 무기수입 사업 관련 최순실 개입 의혹이 일고 있다. 청와대 전경. 일요신문DB
국방‧안보 분야는 최순실 씨의 손길이 닿았다는 의심을 받고 있는 분야 중 하나다. 의혹의 핵심은 대형 무기수입 사업으로, 차세대 전투기(F-X) 사업부터 고등훈련기(T-50), 사드 배치 결정까지 이어진다. 이 사업 과정에서 비선 실세의 힘이 작용한 게 아니냐는 게 주요 내용이다.
그런데 최근 박근혜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와 지시로 2014년 11월 구성된 사상 최대 규모의 방산비리 합동수사단에 비선 실세의 힘이 작용됐으며,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깊게 관여돼 있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해외 무기수입을 유리하게 하기 위해 국내 방산업을 무리하게 단속했다는 얘기다.
실제로 합수단과 방사위사업청, 감사원 등의 전방위 방산비리 조사는 현재 한국 방산시장을 급격히 위축시킨 핵심 요인으로 손꼽히고 있다. 이로 인해 국내 방산기술 연구개발 및 계획은 축소되거나 지연됐고 그 빈자리는 대부분 해외 첨단 무기수입으로 채워졌다. 특히 무기 수입 사업과 관련, 미국 군수업체 록히드마틴과의 거래가 짧은 기간 크게 늘었다.
# “합수단 수사는 정치적 기획 수사”
그동안 합수단의 수사는 방산비리 근절과 관계 없는 ‘청와대의 정치적 기획 수사’라는 의혹을 받아왔다. 당시 세월호 참사와 정윤회 문건 파동 등으로 논란에 휩싸였던 청와대가 강력히 추진했다는 것이다.
특히 일부 야권 의원들은 이 ‘기획 수사’의 정점으로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을 지목하고 있다. 우 전 수석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에 관여했거나 방조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핵심인물로, 현재 검찰 수사 대상에 올라있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정치적 논란을 헤쳐 나가기 위한 방편으로 이 문제(방산비리 척결)가 국가 의제로 올라왔다. 기획된 사정에 의해 부풀려진 것 아니냐는 의문이 드는 것이다. ‘정치적 기획’이라는 해석도 있다”며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대통령에게 신임을 받는 수단으로 삼았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종대 정의당 의원도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합수단 수사는 박근혜 정부가 실적을 올리려고 급조한 수사”라며 “우 전 수석이 방산비리수사의 컨트롤 타워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합수단 출범 전까지 청와대 민정수석실 비서관이었던 우 전 수석은 지난 2015년 2월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승진했다. 2015년 3월 초 ‘합수단 출범 100일 성과 발표’ 직전이었다.
최근 법원의 판결로 드러나고 있는 합수단의 부풀려진 수사 결과가 ‘정치적 기획 수사’라는 두 의원의 주장에 힘을 싣는다. 합수단은 지난 2015년 7월 중간 수사 결과 발표에서 “해군 통영함·소해함 사업, 해상작전헬기(와일드캣) 도입 등 12건의 방위사업에 대한 수사 결과 9809억 원의 사업 비리가 적발됐다. 63명을 기소했고 이 가운데 47명은 구속기소했다”고 밝혔다. 수사에 착수한 지 8개월 만에 이뤄낸 ‘기적적인’ 성과였다. 그러나 비리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군 장성 가운데 절반은 최근 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고, 민간업체의 비리는 대부분 혐의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합수단이 수사한 사건 대부분이 과거 군 검찰 등 감사기관에서 무혐의로 처분이 내려졌던 사건이라는 점이다. 유죄 판결이 내려진 사건 일부는 과거에 검찰과 감사원 등이 적발했다가 뚜렷한 결과 없이 덮어졌던 사건이었다. 결국 합수단이 직접 수사해서 적발해낸 비리는 없었다. 또한 방산비리 금액은 순수 비리금액이 아닌, 총 사업비로 계산됐다. 실제 재판 과정에서 밝혀진 전체 뇌물수수 등의 규모는 10억 원에도 미치지 못했다. 합수단의 수사가 처음부터 ‘방산비리 근절’과는 거리가 멀었으며, 기획 수사였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정치적 기획 수사’ 의혹을 받고 있는 방산비리 수사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곳곳에서 청와대의 ‘흔적’
수사 과정에 대한 석연치 않은 증언도 잇따르고 있다. 합수단 구성 초기 사정을 잘 알고 있는 한 검찰 관계자는 “당시 내부적으로 대규모 방위사업 전반을 살필 ‘시간’은 없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성과를 빨리 내야 한다는 게 중론이었다”고 증언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내사를 거쳐 수사에 착수하는 기존 수사 과정과는 달리 합수단의 수사는 짧은 시간에 쫓기듯 시작됐다.
최근 감사원의 감사관이 직권남용과 협박 등의 혐의로 고발된 사건에서는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전면에 등장한다. 국내 방산업체를 상대로 방산비리 수사가 한창 진행되던 시기, 한 방산업체를 조사했던 감사관이 “수사에 협조하지 않으면 방사청과 관련업체를 이용해 회사를 망하게 하겠다”고 협박하며 불법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이 조사를 토대로 감사원은 앞서의 업체를 비리업체로 판단했고, 방사청은 감사원의 조사 결과를 토대로 약 112억 원을 부당이득금으로 보고 환수조치했다. 업체는 이 사실을 국민권익위에 제보했고, 권익위는 조사 끝에 업체 측의 잘못이 없는 것으로 판단해, 112억 원 환수조치 취소를 방사청에 권고했다.
그런데 당시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전 권익위 관계자에 따르면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권익위 관계자들을 소환했다고 한다. 앞서의 전 권익위 관계자는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권익위에 ‘왜 비리 업체 편을 드느냐’며 사건 자료를 요구했고, 민정수석실 자체 검토 결과 비리 혐의가 드러나지 않자 권익위에 ‘정무적으로 판단하라’며 압력을 행사했다“고 주장했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반대의 경우인 해외 무기수입 과정에서도 등장한다. 최순실 씨가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차세대 전투기(F-X)사업 과정에서, 핵심 기술 이전을 약속한 업체 대신 기술 이전을 거부한 록히드마틴과 계약했다는 사실이 지난 2015년 뒤늦게 드러나면서 논란이 거세지자,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지난 2015년 말 진상파악을 위한 조사에 착수했다. 당시 민정수석실은 국방부와 방사청 사업 관계자들을 불러들이고 자료를 요구했으면서도 현재까지 조사 결과는 나오지 않고 있다.
# 비리 수사 진행되는 동안 무기 수입 크게 늘어
합수단 출범 이후 국내 무기연구개발은 지연되거나 축소됐다. 현재까지도 예정됐던 전력화 계획이 대부분 지연돼 있는 상태다. 반면 비슷한 시기 매년 약 9조 원(약 78억 달러) 상당의 해외 무기수입 계약(미국 90%)을 체결했다. 특히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의 군사비 현황을 보면, 한국은 2014년 무기수입 세계 1위다. 지난 2010년 이후 2013년까지 매년 30억~35억 달러의 무기를 수입해오던 것과 비교하면 큰 폭으로 증가한 것이다.
특히 최순실 씨와 거래를 한 것으로 의심을 받고 있는 록히드마틴이 2010~2015년 사이 한국과 맺은 무기 도입 계약은 40여 건이다. 대부분의 계약은 박근혜 정부에 집중돼 있다. 사업 규모는 대형수송기 도입 사업(약 4300억 원)과 야간표적 식별장치 2차 사업(약 1850억 원) 등 7900억 원에 이른다. 여기에 F-35 40대 도입 사업으로 내년부터 2021년까지 7조 3419억 원을 가져간다. 차기 이지스 구축함 광개토-Ⅲ(Batch-Ⅱ)에 탑재할 이지스 전투 체계 사업이 1조 5000억 원, 1조 8000억 원의 KF-16 개량 사업도 록히드마틴이 맡았다. 얼추 계산해보면 향후 한국 정부는 록히드마틴에 12조 원 이상을 지불해야 한다. 여기에 사드를 도입할 경우 1개 포대 배치에 최소 1조 원이 더 들어간다.
또한 북한의 도발이 발생할 때마다 반복적인 외국 첨단무기 구입이 이뤄졌다. 북한의 위협이 증가하면 할수록 ‘끼워 팔기’식으로 무기 수입이 증가했다. 이에 대해 한 방산 전문가는 “이 시기 방산업계에서는 ‘록히드마틴이 북한에 미사일을 쏘도록 돈을 지불하고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돌 정도로 수입 규모가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그는 “물론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 필요한 무기는 맞다. 문제는 기술축적이 가능한 국내 방산기술 개발이 아닌 무기구입에만 크게 치우쳐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근 방산업계에선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국회 국정조사특위와 수사팀을 꾸리고 있는 특검에 대한 기대감이 높다. 앞서의 의혹이 명확히 규명될 수 있을 것이라는 얘기다. 반면 정치권은 신중한 분위기로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현재로선 의혹만 제기된 상태다. 의심만 가지고 조사하는 건 쉽지 않다”고 말했다. 반면 김종대 정의당 의원은 “아직까지 숨겨져 있는 외교·안보·국방 분야에서의 검은 커넥션을 백일하에 밝혀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익명을 요구한 또 다른 의원실 관계자는 “현재 최순실-국방 관여 의혹과 관련해 조사를 진행 중이다. 조만간 국정조사에서 질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앞서의 방산 전문가는 “관련자의 기초 자료를 확보해 단계별로 조사하면 충분히 확인이 가능하다. 무기 사업 분석 능력을 갖춘 사업 전문가와 수사 전문가가 치밀하게 준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
록히드마틴과 진행한 무기사업 셋 공통점…박 대통령 “무조건 고” 차세대 전투기, 고등훈련기, 사드배치 결정 등 최근 몇 년 새 진행된 대형 무기사업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이들 사업은 모두 박근혜 대통령의 ‘관심 사업’이었으며, 석연치 않은 정책 결정이 뒤따르면서 무기 도입 과정이 매끄럽지 못했다. 또한 세 사업 모두 세계 최대 무기 업체인 미국의 록히드마틴과 진행 중이다. 차기 전투기(F-X) 사업은 공군의 주력 전투기면서도 북한의 핵과 미사일을 공격하는 킬체인(Kill Chain)의 핵심 전력이다. 2013년까지 이 사업의 단독 후보는 보잉사의 F-15SE였는데 돌연 록히드마틴의 F-35로 변경됐다. 이 과정에서 김관진 당시 국방부 장관(현 청와대 안보실장)은 “정무적 판단을 해야 했다”고 말했다. 전투기를 고르는 데 ‘정무적 판단’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발언으로 인해 한동안 논란이 불거졌다. 뒤따른 문제도 심각했다. F-35 선정은 우리나라 입장에선 상당히 손해를 보는 결정이었다. F-35가 고가였던 탓에 예산이 초과돼, 당초 계획했던 전투기 60대 도입이 40대로 대폭 축소됐다. 나머지 20대는 추가 비용을 들여 다시 사야 한다. 한국형 전투기(KF-X) 사업을 위해 가장 공들여 살펴봤던 ‘핵심 기술 이전’도 록히드마틴의 거부로 무산됐다. 이로 인해 현재 한국형 전투기 사업은 차질을 빚고 있다. 앞서 보잉과 또 다른 후보였던 유럽항공방위우주산업(EADS)은 “해외에서 사서라도 핵심 기술을 이전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고등훈련기(T-50) 사업에선 박근혜 대통령의 행보가 주목을 받았다. T-50은 한국항공우주산업(KAI)과 록히드마틴이 미국 수출을 겨냥해 공동 개발한 국산 고등 훈련기다. 이 사업 역시 박근혜 대통령의 ‘관심 사업’이었다. 그는 2015년 12월 17일 경남 사천에서 열린 ‘T-50 공개 기념행사’에 직접 참석해 “이번 사업의 성공을 위해 최선을 다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 기념행사는 국방부 장관 주관으로 열릴 예정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박 대통령이 참가하는 행사로 격상됐다. 한 방산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당시 일각에선 “최근 수년 새 한국군의 대형 무기도입 사업을 ‘싹쓸이’하고 있는 록히드마틴 관련 행사에 대통령이 직접 참석하는 게 적절하냐”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여기에 국방부와 방위사업청은 T-50의 미국 수출사업을 지원할 뿐, 이 사업의 직접적인 이해당사자도 아니었다. 정부와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는 사업 행사에 대통령이 이례적으로 참석했다는 얘기다. 사드 배치 결정도 석연치 않은 부분들이 많다. 정부는 지난해까지 사드와 관련해 “미국의 요청도 협의도 결정된 바도 없다”는 입장을 견지해오다 올해 초 기존 입장을 뒤집었다. 일주일 전에 있었던 북한의 4차 핵실험에 대한 대응 조치라고 설명했지만, 지난해 한국을 방문했던 마이크 트로츠키 록히드마틴 부사장이 2015년 10월 30일 워싱턴에서 기자회견을 자청해 “한미 양국 정책 당국자들 사이에서 (사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은 확인할 수 있다”고 말한 뒤에 나온 결정이라 논란이 가중됐다. 지난 7월 8일 사드 배치 발표에서도 청와대와 국방부의 손과 발이 맞지 않았다. 불과 사흘 전까지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한미 간의 실무 협의 단계에 있다. 결정된 바는 없다”고 했지만 이틀 후에 청와대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열어 사드 배치를 결정하고 다음날 발표했다. 여기에 사드 배치 발표 당일, 미국과 사드 관련 협의를 위해 역할이 컸던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바지 수선을 위해 백화점에 있었다. 이와 관련해 김종대 정의당 국회의원은 보도자료를 내고 “당시 NSC 회의에서 사드는 국방부가 준비한 안건이 아니라 대통령이 직접 결정한 것”이라는 사실을 폭로하기도 했다. 청와대가 주무 부처인 국방부의 안건에도 없었던 사드 배치를 “대통령의 결정”이라며 밀어붙였다는 얘기다. [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