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 게이파 탄압에…너도나도 “팬티 편”
아일랜드를 비롯해 세계무대에서 활동 중인 무대 연기자이자 TV 셀러브리티인 로리 오닐, 아니 ‘팬티 블리스’는 2014년에 1월 11일에 RTE의 <새터데이 나이트 쇼>에 출연한다. 시청료로 운영되는 아일랜드의 공영 채널인 RTE는 팬티 블리스와 이미 1990년대부터 관계를 맺어온 곳. 그런 만큼 그날 쇼에서 편하게 이야기했던 듯하다. 진행자 브렌든 오코너는 아일랜드에서 게이로 산다는 것에 대해 물었고, 팬티 블리스는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했다. 오코너의 질문 중엔 민감한 것도 있었다. 그 중 하나가 “안티-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누구냐”는 것이었다. 팬티 블리스는 평소의 생각을 유감없이 드러내며 존 워터스와 브레다 오브라이언, 그리고 아이오나 협회를 언급했다.
아일랜드의 게이 인권 액티비스트이자 화려한 드랙 퀸이었던 로리 오닐. 무대에선 ‘팬티 블리스’라 불렸다.
존 워터스는 유명한 컬트 감독으로 그가 만든 <헤어스프레이>(1988)는 2007년에 뮤지컬로 리메이크되어 큰 인기를 끌기도 했다. 그의 영화엔 종종 여장남자(드랙 퀸)이나 트랜스젠더들이 등장했고, 관점에 따라선 매우 부정적인 이미지로 재현되곤 했다. 브레다 오브라이언은 아일랜드의 보수주의자 중 한 명으로 존 워터스와 함께 <더 아이리시 타임스>의 칼럼니스트다. 그녀는 게이의 동성 결혼 반대자로 유명하다. 아이오나 협회는 아일랜드의 우익들이 설립한 일종의 ‘싱크탱크’ 같은 곳으로, 온갖 보수적 법안과 아이디어들이 만들어지는 곳이다.
방송이 나가자 존 워터스와 아이오나 협회는 곧장 항의를 했다. 존 워터스는 아일랜드방송위원회 회원이기도 했고, 아이오나 협회의 입김도 무지막지했다. 결국 방송사는 온라인의 다시보기 서비스에서 이 에피소드를 제외했다. 하지만 몇몇 사이트에 편집본이 돌았고, 뒤늦게 그 영상을 본 사람들 사이에 팬티 블리스에 대한 지지의 움직임이 생겨났다. ‘팬티게이트’라는 단어도 등장했다.
하지만 존 워터스와 브레다 오브라이언과 아이오나 협회는 강경했다. 법적 조치를 강구했고, 이에 방송사는 몰래 그들에게 합의금을 건넸다. 나중에 밝혀진 바에 의하면 합의금의 총액은 8만5000유로(1억 600만 원). 1월 23일에 돈이 전달됐고, 1월 25일 <새터데이 나이트 쇼> 방송에선 진행자가 이 사건에 대해 사과했다. 팬티 블리스가 경솔한 말을 했다는 것이다. 당사자에게 허락 받지 않은, 방송사의 일방적 사과였다.
이에 평등법 전문 변호사인 브라이언 배링턴은 방송사에 공개서한을 보내, 과연 그것이 사과할 일인지를 물었다. 시청자들도 방송사와 아일랜드방송위원회에 맹공을 가했다. 아일랜드 상원에서도 이슈화되었다. 이에 정부는 “방송사의 결정에 정부가 간섭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공적 방송으로서 제 기능을 해주길 바란다”는 입장으로 양쪽을 모두 아우르려 했다. 그 어떤 주장이나 관점도 없는 논평으로 사건을 무마하려 한 것. 물론 일은 이후 더 커졌다.
2014년 2월 1일, 방송이 나간 지 3주 정도 되었을 때 폭탄이 터진다. 합의금을 건넸던 사실이 폭로된 것. 이에 팬티 블리스는 더블린의 애비 씨어터에서 공연을 마친 뒤,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겪었던 차별의 역사에 대한 연설을 했다. 이 영상은 유튜브에 올라 이틀 동안 10만 명이 볼 정도로 화제가 되었고, 다음 날 더블린에선 약 2000명의 LGBT(게이, 레즈비언,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가 모인 시위가 일어났다.
2월 3일,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의 유럽의회에서 아일랜드의 유럽의회 의원인 폴 머피가 강렬한 발언을 했다. “이것은 RTE라는 공영 방송사를 통해 자행된, 우익 보수의 공격이다. 그 목적은 검열을 강화하는 것이고, 더 멀리 나아가 동성애자의 권리를 제한하려는 것이다.” 그러면서 존 워터스 영화의 역겨운 풍자와, 브레다 오브라이언의 완고한 주장과, 아이오나 협회의 동성애 반대 캠페인을 싸잡아 비판하며 “쓰레기”라고 주장했다.
이에 전세계에서 지지가 이어졌다. 아일랜드의 배우인 그레이엄 노튼이 트위터에서 지지 발언을 한 이후 마돈나를 비롯 스티븐 프라이, 대러 오브리언 등 수많은 셀러브리티들이 동영상을 찍어 올렸다. 아일랜드 하원에서 논쟁이 일어났고, 2월 11일엔 RTE의 시사 프로그램 <프라임 타임> 방청객들은 “나는 팬티와 같은 편”(I‘m On Team Panti)라는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입고 앉아 연대감을 표시했다.
그리고 2월 13일, 니암이라는 초등학생이 팬티의 동영상에 감동을 받아 편지를 보냈다. “나는 모든 사람들이 평등한 대접을 받아야 한다고, RTE는 그들에게 돈을 주지 말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삶과 결정을 받아들여라. 그들은 당신들에게 게이가 되라고 하지 않는다.”
이 편지가 공개되자 여론은 더욱 격렬하게 움직였고, 팬티 블리스는 3월에 있었던 뉴욕의 게이 퍼레이드에 초청 받아 명예상을 수상했다. 영국의 유명 밴드 ‘펫 샵 보이즈’(Pet Shop Boys)는 댄스 리믹스 앨범에 팬티 블리스의 연설을 싣기도 했다. 상원의원 데이비드 노리스는 그들이 받은 합의금을 모두 뱉어 놓도록 정부가 압력을 행사하라고 주장했다.
사소한 한 마디에서 시작한 동성애자 인권 운동인 ‘팬티게이트’는 아일랜드 사회를 뒤흔들었던 거대한 변혁의 움직임이었다. 한편 존 워터스는 결국 <더 아이리시 타임스> 필진에서 하차했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