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진 것 없는 이 시장 기득권에 일격 강점” vs “경선은 문재인판…바람은 조직을 이길수 없다”
“제가 들어도 시원할 만큼 사이다가 맞다.”
12월 2일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는 <TBS 라디오> 인터뷰에서 “분명하고 위치 선정이 빠르고 아주 훌륭한 최전방 공격수 역할을 잘하고 있다”고 이재명 성남시장을 칭찬했다. 하지만 그는 “탄산음료가 밥은 아니고 금방 목이 마르지만, 고구마는 배가 든든하다”는 말도 보탰다. 문 전 대표가 자신을 ‘고구마’로 이 시장을 ‘사이다’로 빗댄 것이다.
이 시장은 같은 날 문 전 대표 발언에 대해 “사이다에 고구마를 같이 먹으면 맛있고 든든하다. 제가 아니라 우리가 이기는 게 먼저고 우리는 한 팀”이라고 화답했다. 하지만 이 시장은 이튿날 “목마르고 배고플 때 갑자기 고구마를 먹으면 체한다. 사이다로 목 좀 축이고 난 다음에 고구마로 배 채우고 든든하게 열심히 하면 된다”고 밝혔다.
야권 차기 대선 주자의 톱2가 ‘문-안’에서 ‘문-이’로 재편됐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문재인 전 대표와 이재명 시장이 조기대선에서 강력한 경쟁관계를 형성할 것으로 보인다. 임준선·박은숙 기자
둘의 고구마·사이다 발언은 일단락됐지만 정치권에선 “고구마(문)가 사이다(이)를 본격적으로 견제하기 시작했다”는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민주당의 한 비서는 “여론조사 지지율을 살펴보면 문 전 대표와 이 시장 차이가 거의 없다. 음식 종류로 서로를 빗대는 과정에서 야권 ‘톱2’ 사이에 신경전이 일어났다. 문 전 대표가 이 시장을 우회적으로 비판하기 위해 고구마·사이다 발언을 꺼낸 것 같다. 이 시장이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상황에서 문 전 대표가 견제구를 날렸다. 이 시장이 앞으로 더욱 치고 올라갈 것”이라고 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후 이 시장 지지율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12월 5일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얼미터>의 11월 5주차 주간 집계에 따르면 이 시장(14.7%)은 3위를 차지했다. 문 전 대표(20.8%)가 1위, 반기문 UN 사무총장(18.9%)이 2위였다. 이 시장 지지율은 3주 연속 최고치를 경신했고 리얼미터 조사 이래 처음으로 안철수 전 국민의당 상임대표(9.8%)를 오차범위 밖에서 앞섰다(이번 조사는 매일경제·MBN ‘레이더P’ 의뢰로 11월 28~12월 2일까지 5일간, 전국 2528명을 대상으로 실시했다. 응답률은 11.7%였고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1.9%p였다.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
이 시장 지지율은 6주 만에 5.3%(10월 4주차)에서 14.7%(11월 5주차)로 수직 상승했다. 야권 차기 대선 주자의 톱2가 ‘문-안’에서 ‘문-이’로 재편됐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는 까닭이다.
전계완 정치평론가는 “문 전 대표의 가장 강력한 대항마는 이 시장이다. 이 시장은 이미 다크호스 수준을 넘어섰다. 문 전 대표의 철옹성 같은 지지율이 이 시장에 의해 깨지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당분간 이 시장의 상승모드를 꺾을 수 있는 요인은 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을 당한다면 문 전 대표와 이 시장이 조기대선을 두고 강력한 경쟁관계 형성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동안 야권 대선지도의 중심은 문 전 대표와 안 전 대표였다. 둘이 선두권을 차지한 가운데 박원순 김부겸 손학규 안희정 등 군소 주자들이 뒤를 이었다. 민주당의 한 당직자는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이 결정적이었다. 문 전 대표를 포함한 다른 주자들은 현 체제에 안주한 측면을 보였다. 하지만 이 시장은 박 대통령 하야와 탄핵을 먼저 주장하며 치고 나갔다. 원래 그는 ‘센’ 발언으로 중앙정부와 치고받고 싸우는 모습으로 ‘뭔가를 확 뜯어고칠 수 있는 사람’으로 인식됐다. 그런 이미지가 국정농단 사건과 맞물리면서 시너지 효과를 일으킨 것”이라고 말했다.
이 시장은 지지자들 사이에서 ‘사이다’로 통하고 있다. 민주당의 한 권리당원은 “지금 배고픈 사람이 누가 있나. 고구마를 먹을 때는 아니다. 배가 부른데 누가 고구마를 먹나. 한국 정치 현실이 이 시장처럼 시원한 지도자들을 원하고 있다. 있는 사람은 너무 많이 먹고, 없는 사람들은 너무 못 먹는 세상이다. 사이다를 먼저 먹는 것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다른 권리 당원도 “문 전 대표가 고구마 발언을 했다는 것 자체가 이 시장을 상당히 껄끄러운 상대로 인정했다는 뜻”이라고 덧붙였다.
이 시장 특유의 화법도 지지층이 몰리고 있는 주요한 원인으로 꼽힌다. 이 시장은 평소 입버릇처럼 “친일·독재·부패의 쓰레기를 한 번쯤은 청산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8월 5일 호주에서 열린 강연회에서 “누구는 미래지향적인 얘기만 하라는데 청소를 해야 새로운 삶이 가능한 것이다. 쓰레기통에서 무슨 새로운 삶이 가능한가”라고 반문했다. 이 시장의 연설 모습이 담긴 촛불집회 유튜브 동영상은 기록적인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국회의 다른 관계자는 “이 시장의 화법은 정확히 노무현 전 대통령 화법이다. 자극적이지만 기득권 세력을 향해 시원하게 일격을 가하는 화법도 이 시장의 힘이다. 문 전 대표가 대통령 경선 토론회에서 이 시장과 붙으면 질 수밖에 없다. 지난 대선 당시 박 대통령의 ‘그래서 제가 대통령 하겠다는 것 아니에요’라는 주장에 문 전 대표는 미소만 지었다. 이 시장이었다면 ‘박 후보, 거짓말 하지 말라’고 호통을 쳤을 것이다. 문 전 대표의 우유부단한 태도는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물론 ‘문재인 대세론’은 여전히 공고한 진용을 구축하고 있다. 추미애 대표를 포함한 민주당 지도부는 친문 일색이다. 민주당의 다른 당직자는 “선거는 조직이다. 바람은 조직을 이길 수 없다. 이 시장은 민주당내 지지 세력이 없어 대통령 후보 경선 때 대의원이나 당원 투표에서 불리할 수가 있다. 이 시장이 문 전 대표를 꺾기 위해서는 지지율 1위로 치고 나가야 한다. 여전히 민주당 경선은 ‘문재인’판이다. 조직이 없는 이 시장의 앞날이 밝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치권 일각에선 ‘이재명 신드롬’이 ‘문재인 대세론’의 아성에 위협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내놓고 있다. 앞서의 국회 관계자는 “만약 국민들이 대선투표용지를 받았는데 ‘기호1번 문재인, 기호2번 안철수’처럼 5년 전의 선택지와 같은 종이가 놓여있다면 기권할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중간에 이 시장이 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이 시장은 기성 여의도 정치권과는 거리를 두고 있는 이단아다. 한국사회의 시대정신은 불공정에 대한 응징이다. 문 전 대표가 대통령이 되면 몸을 사리겠지만 이 시장은 정치적으로 빚진 것이 없어 시원하게 응징을 가할 수 있다”고 밝혔다.
고구마(문)와 사이다(이) 전쟁의 또 다른 변수는 김종인 전 민주당 대표다. 김 전 대표는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 시장의 지지율이 더 약진할 가능성이 있다. 이 시장 상승세에 문 전 대표에 대한 회의론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김 전 대표는 대표직을 사임한 뒤 개헌 문제를 포함해 문 전 대표와 지속적으로 갈등을 겪었다. 김 전 대표가 ‘이재명 띄우기’에 나선 것에 정치적 의도가 담겨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문 전 대표의 과감한 전략이 필요하다고 조언하고 있다. 전계완 정치평론가는 “친문 패권은 친박 패권의 다른 얼굴일 수 있다. 문 전 대표는 자신이 공격적으로 나가서 성을 쌓고 영토를 넓히는 것보다 현재의 자산을 유지하면 승산이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하지만 지키려고 하다가 망하는 수가 있다. 이 시장은 친문 진영의 최대변수가 넘어선 상수다. 상수에 대한 대비를 게을리하고 자신에게 유리한 전대 룰을 고수한다면 문 전 대표의 대권가도에 어려움이 생길 것”이라고 평했다.
최선재 기자 sun@ilyo.co.kr
‘노무현 경선기적 재현’ 이재명 광주에 공 들이는 중 2002년 3월 16일 당시 광주 염주종합체육관에서 열린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의 화두는 ‘이인제 대세론’이었다. 이인제 민주당 후보는 당원·대의원 여론조사 지지율 1위를 달렸고 자신의 승리를 무난하게 예상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3월의 광주는 노무현 후보를 선택했다. 이 후보는 동교동계의 막강한 지원을 받고 있었지만 가상대결에서 한나라당의 이회창 후보를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 영남 출신 노 후보는 본선 경쟁력에 대한 자신감으로 이 후보의 약점을 파고들었다. ‘노무현 대안론’ 전략은 결국 ‘이인제 대세론’을 무너뜨렸다. 당시 광주 경선에 참여했던 한 당원은 “버스 몇 대가 체육관으로 올라왔고 버스 당 45명 정도가 탔다. 윗선에서 ‘이인제를 찍으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저는 이 후보를 찍고 버스에 올라탔는데 나머지 44명이 전부 노 후보를 찍었다. 노 후보가 일을 내겠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회고했다. 그 이후 광주는 민주당 대통령 경선의 상징적인 도시로 자리매김했다. 정치권 일각에선 “이재명 성남시장이 고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바람을 일으키려면 광주 경선이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민주당의 한 당직자는 “문재인 대세론과 이인제 대세론의 속성이 비슷하다.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이 터졌지만 문재인 민주당 전 대표의 지지율은 20% 내외를 벗어나지 못한 답보 상태다. 호남 지역의 반문정서는 여전하다. 노무현 대안론이 광주를 사로잡았듯이 이 시장이 자신의 집권능력을 광주 시민들에게 입증한다면 호남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시장은 최근 호남 지역에 공을 들이고 있다. 9월 6일 이 시장은 광주트라우마센터를 찾았다. 11월 19일 금남로 옛 전남도청 앞 민주광장에서 열린 촛불집회에선 “바로 이 광장에서 광주시민을 학살했던 자들이 박근혜·새누리정권이었다. 나라를 망친 저들이 반격을 시작했다“며 거침없는 발언을 토해냈다. 평론가들은 ‘이재명=노무현’ 등식의 성립 여부에 대해 조심스러운 전망을 내놓고 있다. 전계완 정치평론가는 “광주 경선이 코앞으로 닥치면 이 시장이 문 전 대표보다는 낫다는 현실 정치적 고려가 등장할 수 있다. 문 전 대표가 광주에서 절대적인 지지를 확보하지 못하면 지지층 분화가 일어나면서 이 시장이 광주에서 기적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선] |
‘문팬’ vs ‘손가혁’ 팬클럽 신경전도 고조 이재명 성남시장이 10월 23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전국 SNS 지지자들과 만나는 카페트 토크콘서트에 참석해 발언을 하고 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 공식 팬클럽은 ‘문팬’이다. 문팬은 ‘문사모’ 등 4개의 팬클럽이 하나로 뭉친 팬클럽이다. 포털 사이트 다음에 기반을 두고 있는 문팬의 회원 수는 12월 7일 현재 약 1만 1400명이다. 최근 문팬 자유 게시판에선 이 시장 관련 글이 급증하고 있다. 12월 4일 문팬의 한 회원은 “이 시장 지지자들이 강성이 많은 것 같다. 문 전 대표에 대한 욕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서 주먹다툼 직전까지 갈 뻔했다. 지지자들도 문제지만 이 시장 자체가 문제인 것 같다”는 글을 올렸다. 다른 회원은 이 글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 소추안이 의결되면 전면전으로 갈수밖에 없다. 각자 인내할 수 있는 범위가 다르다. 참고 있다”는 댓글을 달았다. 이 시장의 지지자들과 문 전 대표의 지지자들의 신경전이 고조될 조짐을 보이는 것이다. 이재명 성남 시장의 팬클럽이자 SNS 지지세력은 ‘손가락혁명군(손가혁)’이다. 손가혁은 주로 이 시장의 페이스북 게시글이나 트위터를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다. 손가혁은 네이버 밴드를 이용해 실시간으로 정보도 공유하고 있다. 최근 손가혁 다음 카페 자유 게시판에도 문 전 대표 관련 글이 자주 등장하고 있다. 12월 4일 손가혁의 한 회원은 “문재인과 이재명의 가장 큰 차이점이 있다. 문 전 대표가 ‘지는 해’라면 이 시장은 ‘뜨는 해’라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 글에 대해 손가혁의 다른 회원은 “문 전 대표는 민심을 전혀 읽지 못하고 헛발질을 계속하고 있다. 힐러리와 비슷하다. 이 시장과의 강력한 정치적 연대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