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외연확장 ‘반’ 검증부재 약점…대세론도 대망론도 불안
문재인 전 대표.
1년 이상의 장기 레이스에선 초반 스텝이 꼬이더라도 국면전환 카드를 통한 9회 말 투아웃 만루타가 가능하다. 위기는 곧 나의 힘이다. 이제는 아니다. 연습은 없다. 각 후보의 아킬레스건 해부가 판세 전망의 바로미터인 이유다. ‘콘크리트 지지율’이었던 박 대통령을 절름발이로 전락시킨 200만 촛불 민심이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불안코드를 떼려는 대권잠룡들의 대선 나기는 이미 시작됐다.
조기 대선 시기는 유동적이다. 박 대통령은 12월 6일 청와대에서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와 정진석 원내대표를 만나 “(국회가) 탄핵소추 절차를 밟아 가결되더라도 헌법재판소 과정을 보면서 국가와 국민을 위해 차분하고 담담하게 갈 각오가 돼 있다”며 “(이미) 4월 (말) 퇴진·6월 (말) 대선 당론을 받아들여야겠다고 생각해 왔다”고 말했다.
12월 9일 국회 본회의에서 가결된 탄핵 소추안에 대한 헌재 탄핵 심판 결과가 나올 때까지 ‘마이웨이’ 할 뜻을 밝힌 셈이다. 이로써 6월 ‘여름 대선’이 한층 유력해졌다. 헌재 판결에 따라 이르면 3월 대선, 늦어도 8월 대선을 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전자는 박한철 헌재 소장의 임기(1월 31일) 전 판결, 후자는 훈시규정인 헌재 심판 기간(180일)을 최대치로 잡고 계산한 셈법이다. 현행 헌법 제68조에 따르면 대통령 궐위 시 60일 이내 선거를 실시토록 돼 있다.
현재 양자 구도는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반기문 유엔(UN) 사무총장이다. ‘최순실 게이트’ 전까지 반 총장이 문 전 대표를 앞서는 구도였지만 이후 상황이 역전됐다. 다만 문 전 대표의 지지율은 ‘박스권’, 반 총장은 ‘하락세’다. 오히려 군소후보였던 이재명 성남시장이 진보 지지층을 대거 흡수하며 양자구도를 위협하고 있다. 미래 권력의 ‘대세론과 대망론’이 동시에 흔들리고 있는 셈이다.
실제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얼미터>의 10월 4주차∼11월 5주차까지 차기 대선주자 지지도(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1.9%포인트, 응답률은 10.3%∼12.3%) 추세를 보면, 문 전 대표는 ‘20.3%→20.9%→21.4%→20.4%→21.0%→20.8%’였다. 반 총장은 ‘20.9%→17.1%→17.2%→18.1%→17.7%→18.9%’, 안 전 대표는 ‘10.5%→10.7%→10.2%→12.0%→11.8%→9.8%’였다. 반면 이 시장은 ‘5.9%→9.1%→9.0%→10.0%→11.9%→14.7%’로 유일하게 상승 국면을 탔다. 모든 조사는 전국 19세 이상 유권자 2500명 이상을 대상으로 전화면접·스마트폰앱·무선 자동응답전화·유선 자동응답전화 혼용 방식에 따른 무선전화(80%)와 유선전화(20%) 병행 임의전화걸기 및 임의스마트폰알림 방식으로 실시했다. 그밖의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홈페이지(www.nesdc.go.kr)를 참고하면 된다.
탄핵 정국에서 문 전 대표의 약점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헌정 사상 최대 규모인 200만 명 이상의 촛불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지만 문 전 대표 지지율은 박스권에 갇혔다. 지지도 20% 전후가 문 전 대표의 최대치라는 말이다. 탄핵 정국은 범야권 지지층이 총결집한 국면이다. 그런데도 문 전 대표의 지지도는 요지부동이다. 사실상 ‘샤이(shy) 문재인’은 없는 셈이다. 이는 ‘샤이 트럼프’를 빗댄 말로, 사전 여론조사와 실제 선거결과 차이를 설명할 때 쓰는 용어다. 은폐형 부동층인 ‘숨은 표’를 가늠하는 척도인 셈이다.
“외연 확장이 문제야.” 진보진영 한 관계자는 탄핵 정국에서 대뜸 문 전 대표의 표 확장성에 의구심을 드러냈다. 2012년(19대) 대선 때도 문 전 대표의 최대 아킬레스건은 ‘외연 확장’이었다. 범보수와 범진보의 총결집 양상이었던 지난 대선에서 문 전 대표는 안철수 전 대표와의 미완의 단일화, 심상정 정의당 상임 공동대표의 지지 선언 등으로 사실상 범야권 단일후보로 나섰지만 이탈한 중도층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문 전 대표 체제로 치러진 2015년 4월·10월 재보선 참패도 이와 무관치 않다. 이는 친노(친노무현)와 친문(친문재인)계를 따라다니는 일종의 족쇄다.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의 발목을 잡는 것이 ‘한나라당 주홍글씨’라면, 문 전 대표는 ‘표 확장성’이다. 이 지점이 ‘문재인 필패론’의 진원지다.
문 전 대표의 치명적 약점에 대한 민주당 내부 반응은 엇갈렸다. 개혁 성향의 중진 의원은 “문 전 대표의 외연 확장 여부를 지금 예단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며 “판이 깔리면서 경선에 불이 붙으면 충분히 만회할 수 있는 수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3%에서 시작하지 않았느냐”라고 말했다.
반면, 한 초선 의원은 “안심하기 힘들다. 워낙 예측 가능한 정국이 아닌 데다, 지금껏 야당이 주도해 판을 만든 게 아니라 촛불민심에 떠밀려 온 만큼, (문 전 대표 등이) 대선정국을 주도할 것이라고 단언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전 당직자도 “친문계의 패권주의, 즉 배신의 아이콘을 벗어 던지지 않는다면 지난 대선의 판박이로 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지지율 박스권’에 갇힌 문 전 대표가 ‘묻지마식 강경 노선’에 빠질 경우 이회창 전 자유선진당 총재의 전철을 밟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이회창 필패론’ 데자뷔다. 1997년 대선(15대)에서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 후보로 나섰던 이 전 총재는 2000년 4·13 총선을 기점으로 반대파 제거에 나섰다. 이른바 ‘피의 숙청’이다. 2002년 대선(16대)을 앞두고 치러진 5월 전당대회에서 민정계 주축의 지도부를 꾸린 그는 대선 후보 경선에서 68%의 압도적 지지로 당선됐다.
충청권 후보인 이 전 총재는 민정계의 TK(대구·경북)를 단숨에 접수했다. 보수의 대선승리 방정식을 모두 갖췄지만, 노풍(노무현 바람)에 일격을 당했다. 여론조사기관에 몸담았던 민주당 한 보좌관은 이와 관련해 “낙관론에 빠진 이 전 총재가 TK와 민정계 등의 호위무사에 갇혀 민심을 오판한 것”이라고 말했다. 문 전 대표도 마찬가지다. 친문 호위무사를 비롯해 영남 패권주의 등은 이 전 총재의 눈을 가린 그것과 빼닮았다. 여기에 현 구도는 4자 필승론이 야권 분열의 단초가 된 1987년 대선 체제와 유사하다.
야권 단일대오도 없다. 국민의당의 제3 지대론, 개헌파인 손학규 전 대표와 김종인 민주당 의원 등의 중간지대 플랫폼 등으로 야권 분열은 이미 상수로 격상한 지 오래다. 호남의 비판적 지지 복원도 깜깜무소식이다. 김대중(DJ) 정부에 몸담았던 민주당 의원은 “야권이 분열된 채 대선이 치러진다면, 안 전 대표보다 문 전 대표가 받는 부담은 상상 그 이상”이라고 말했다.
반 총장도 웃을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샤이 반기문’은 존재한다. 내일 당장 투표를 한다면, 외연 확장 면에선 문 전 대표보다 우위를 점한다. 박 대통령의 콘크리트 지지율이 무너진 상황에서 그간 친박(친박근혜)계 무등을 탄 반 총장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층은 스스로 은폐형 부동층을 자처할 가능성이 커서다.
역으로 문 전 대표처럼 팬덤현상의 강력한 지지층은 없다. ‘최순실 게이트’ 이후 반 총장의 지지율이 하락한 것도 이런 까닭이다. 외교 공무원이 아닌 ‘정치인 반기문’에 대한 검증도 전무한 상황이다. 여권 한 관계자도 “(국민 검증 과정에서) 정치경험 부족과 인물검증 부재의 아킬레스건에 노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오피니언 리더를 중심으로 반 총장의 ‘실권통치 능력’에 의구심을 드러내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이는 곧 권력의지와도 연결된 사안이다. 그간 ‘기름장어 행보’로 질타를 받았던 반 총장은 ‘최순실 게이트’ 이후 제도권 정치와 더 거리 두기에 나선 모양새다. 노련한 외곽 때리기인지, 아니면 우유부단함인지는 귀국하는 내년 1월 중순이 돼야 알 수 있다.
내부에서는 탄핵정국을 기점으로 제3 지대 신당 창당 쪽에 무게를 싣고 ‘대권 전진’ 준비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은 ‘반기문 리더십’에 대해 “미지수”라며 “특히 관료 출신의 약점인 내공이 있는지 검증해야 한다”고 밝혔다. 새누리당 비주류 인사도 “(반 총장) 지지율은 신기루”라고 잘라 말했다. 박 대통령의 탄핵 소추안 가결로 모든 것이 시계 제로에 빠졌다. ‘문재인 대세론’과 ‘반기문 대망론’은 이제야 끝이 보이는 출발선에 섰다.
윤지상 언론인
위기의 남자 안철수 앞날은? 자의반 타의반 제3지대로… 2012년 대선판을 흔들었던 안철수 전 국민의당 상임 공동대표의 고심이 깊다. 탄핵 정국을 이끌며 강한 승부사 면모를 보여줬지만 지지도는 제자리걸음은커녕 퇴보 중이다. 일각에선 ‘안철수 현상’의 수명이 끝났다는 비관적 전망까지 나온다. 탄핵 정국에서 안 전 대표는 발군의 실력을 보여줬다. 그는 범야권 탄핵 열차의 출발을 알린 대선주자 8인 회동을 이끌었다. 이 과정에서 ‘정치적 퇴진 선언→여야 합의 총리 선출→법적 퇴진일 포함 향후 정치일정 발표’를 골자로 하는 3단계 로드맵도 제시했다. 탄핵 당론을 가장 먼저 정한 것도 국민의당이었다. 그러나 존재감은 후퇴했다. 박 대통령 퇴진 서명운동을 주도했지만, 그보다 이재명 성남시장이 주목받았다. 오히려 ‘역단일화’ 시나리오가 안 전 대표 발목을 잡고 있다. 안 전 대표는 12월 7일 <오마이 TV>에 출연해 새누리당과의 연합설에 대해 “참 한가한 이야기”라고 일축했다. 그러면서 “만에 하나 부결이 된다면 촛불이 횃불이 돼 여의도를 불살라버릴 것이다. 헌법을 파괴한 대통령을 탄핵시키지 못하는 국회는 존재 의미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당 내부 상황도 좋지 않다. 국민의당은 ‘박지원 체제’ 후임으로 ‘김동철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를 띄웠다. 김동철 비상대책위원장은 내년 1월 15일 전당대회까지 당을 이끈다. 김 위원장은 지난 4·13 총선 때부터 안 전 대표 측과 갈등을 빚어온 대표적 호남 의원이다. ‘광주 탈당 1호’인 김 위원장은 유성엽·황주홍 의원과 함께 국민의당의 대표적인 개국공신이다. 하지만 20대 국회 원내 진입까지는 험로를 거듭했다. 민주당이 정세균계의 강기정 의원을 공천에서 배제하자 국민의당이 맞불작전으로 김 위원장 대신 신진인사를 전진 배치하려고 했다. 때마침 안 전 대표 측근으로 분류되는 김경록 대변인이 광산갑에 공천을 신청했다. 당시 김 위원장은 불출마 선언한 뒤 2018년 광주시장 쪽으로 턴하는 것도 심각하게 고민했다. 비대위원장 인선 과정에서도 애초 안 전 대표 측은 김병준 국무총리 내정자를 추천했다가 호남파 의원들의 강한 반발에 직면했다. 안철수계와 호남세력 간 정면충돌은 현재진행형이다. 기회는 있다. 대권 발 정계개편이다. 국민의당 한 관계자는 “대선 국면이 펼쳐지면 안 전 대표 중심의 판이 벌어질 것”이라며 “제3 지대는 여전히 매력적인 카드”라고 말했다. [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