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안내해 달라” 청 지시 후 지원 품목 추가
최순실 단골 성형의인 김영재 원장 부인이 대표로 있는 서울 강남구 와이제이콥스메디칼 사무실 입구. 고성준 기자
와이제이와 관련해서는 이미 자체 생산하는 의료기기가 식약처 허가를 받는 과정에서 대통령 자문의가 도움을 줬다는 의혹, 경쟁 업체가 수사기관들로부터 상식을 벗어난 과도한 수사를 받았다는 의혹 등이 제기된 상태다. 최근에는 와이제이가 산업통상자원부(산자부)로부터 총 15억 원에 달하는 지원을 받게 됐는데 이 과정에서 특혜가 있었다는 의혹까지 제기돼 치열한 진실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와이제이는 지난 3월 산자부가 지원하는 ‘벤처형전문소재개발사업’에 선정됐다. 이는 기업들의 핵심 소재 및 부품 기술개발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와이제이는 봉합시 매듭과정이 필요 없는 기능성 의료용 봉합사를 개발할 예정이다.
이에 대해 주형환 산자부 장관은 지난 달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에 출석해 “청와대 비서관실에서 요청한 것이라고 보고를 받았다”며 “요청내용은 ‘지원을 희망하는 기업이 있으니 관련 절차를 안내해 달라’는 내용이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와이제이가 산자부가 공모하는 사업에 지원하려고 하니 잘 안내해 달라고 청와대가 직접 요청했다는 내용이다.
이 같은 증언이 나왔음에도 산자부 측은 와이제이에 특혜를 줬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안내해달라는 청와대 요청에 따라 관련제도를 안내했을 뿐 사업자 선정은 민간 전문가들로 구성된 위원회에서 객관적으로 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청와대의 ‘잘 안내해 달라’는 지시가 어떤 뜻인지 모르는 사람이 있나. 직장에서 사장이 잘 안내해달라고 했는데 정말 안내만 해줬다면 눈치 없는 직원으로 찍혔을 것”이라고 말했다. 산자부 측은 특혜는 없었다는 입장이지만 미심쩍은 정황들은 다수 포착된다.
산자부는 지난해 8월 13일 ‘2016년도 소재부품기술개발사업-벤처형전문소재개발’ 바이오 의료 분과 과제로 총 3건의 품목을 선정했다. 그런데 지난해 10월 16일 열린 회의에서 갑자기 ‘인체조직 고정력을 증대시키는 기능성 봉합사 소재’라는 품목을 추가했고 와이제이가 여기에 단독 지원해 선정됐다.
이 사업의 실무를 맡은 산자부 산하 산업기술평가관리원(산기원) 측은 “품목을 정하지 않고 자유과제로 사업을 선정하면 너무 다양한 품목들이 접수돼 1차적으로 품목을 정해 제한하고 있다. 그렇다고 특정 품목만 지원할 수 있도록 아주 빡빡하게 품목을 제한하는 것도 아니다. 자유접수와 품목제한의 중간 형태라고 보면 된다”면서 “다양한 업체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중간에 품목을 추가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품목을 추가하는 것은 특혜가 아니다”라고 했다.
와이제이가 이 품목에 단독 지원해 선정된 것에 대해서는 “총 43개 품목이 선정됐고 그 중 23개 품목에만 지원 업체가 있었다. 품목이 겹친 경우는 거의 없고 대부분 1개 품목당 1개 업체가 지원해 선정됐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취재결과 당시 품목 추가는 심사위원회에서 결정된 것이 아니라 해당사업 바이오의료분야 관리자인 최 아무개 직원의 요청으로 이뤄졌다는 사실이 새롭게 밝혀졌다. 심사위원도 아닌 관리자가 왜 갑자기 품목 추가를 요청한 것인지 의문이다. 당사자로부터 직접 해명을 들어보고 싶다고 했지만 산기원 측은 개인정보보호를 이유로 최 아무개 직원과의 인터뷰를 거절했다. 다만 관리자는 원래부터 품목을 추가할 권한이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최초 사업공고내용을 살펴보니 ‘품목지정 과제의 경우, 신청과제가 공고된 분야별 품목에 부합되지 않은 경우’는 지원 대상에서 제외한다고 공지돼 있었다. 반면 품목 추가와 관련해서는 어떠한 안내도 없었다. 품목 추가가 흔한 일이고 특혜가 아니라고 했지만 특정 품목을 개발 중인 업체들 입장에서는 품목 선정 결과에 따라 희비가 크게 엇갈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와이제이의 기술개발 과제는 서창석 서울대 병원장 등 쟁쟁한 인물들이 공동으로 진행하기로 해 눈길을 끈다. 서울대병원 노조 측은 서 병원장이 청와대의 지시를 받고 연구에 참여하기로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서울대병원장은 대통령이 임명하는 자리다. 서 병원장은 지난해 2월까지 박근혜 대통령의 주치의로 활동하다 퇴임한 후 같은 해 5월 서울대병원장에 임명됐다.
서울대병원 노조 측 주장에 따르면 서 병원장은 취임 후 갑자기 서울대병원 성형외과에 와이제이에서 생산한 봉합사를 의료재료로 등록하라고 압력을 넣었다. 서울대병원 의료재료로 등록되기 위해서는 보통 1년 정도가 소요되는데 와이제이 봉합사는 겨우 5개월 만에 등록돼 특혜가 의심된다는 주장이다.
<일요신문>이 일부 입수한 와이제이 사업계획서(※ 전체 사업계획서는 기업비밀에 해당돼 유출 불가)를 살펴보면 사업계획 내용이 공상에 가깝다는 지적도 나온다. 계획서에 따르면 와이제이는 새로 개발할 봉합사가 상용화되면 3년 만에 매출액이 264억 원에 이르고 향후 10년간 3만 명이 넘는 신규 고용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매듭이 필요 없는 기능성 봉합사는 이미 여러 제품이 나와 있는 상태다. 현재 연매출이 10억 원에도 달하지 않고 직원도 8명뿐인 업체가 봉합사 개발만으로 순식간에 30배에 달하는 매출 성장을 이루고 3만 명에 달하는 신규 고용효과를 얻어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산자부가 제시한 사업계획서 평가항목을 보면 ‘계획의 구체성과 타당성’이 첫 번째 항목인데 과연 와이제이 측의 사업계획서가 이 항목에서 몇 점을 따냈을지가 관건이다. 국회 산자위의 한 관계자는 “산자부 측은 공정한 심사를 통해 사업을 선정했다고 하지만 와이제이가 이 항목에서도 좋은 점수를 받았다면 특혜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산기원 측은 와이제이가 개발할 봉합사는 단순 외과용이 아니라 내부 장기 등에도 사용할 수 있는 새로운 봉합사라 사업계획이 허무맹랑한 것은 아니라고 반박했다.
서울대병원 노조 측은 “이런 황당한 계획서에 서울대를 비롯한 의과대학 교수들이 자신의 이름을 올리고, 이 계획서가 산자부에서 선정되었다는 것 자체가 경악스러울 뿐”이라고 주장했다. <일요신문>은 이 같은 의혹에 대해 와이제이 측에 수차례 답변을 요구했지만 담당자가 없다는 말만 반복하며 답변을 거부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