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중앙 은밀한 곳 MRI 훑으니 ‘헉’
지난해 7월부터 국제 시세보다 비싸진 국내 금값으로 밀수입 범죄가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국제 시세와 국내 금값은 올해 초 최고 6% 넘게 차이가 났다. 이런 시세 차익을 활용하려 중국에서 금을 비밀리에 가지고 들어와 국내 시장에 판매하는 밀수 일당이 쇠고랑을 찼다. 특히 이들은 간단한 장비만 있으면 녹여서 재가공이 손쉬운 금의 특징을 이용해 신체 은밀한 부위에 넣기까지 하는 등 상상을 초월하는 방법을 썼다.
최근 세관을 피해 금괴를 밀수입하려던 일단 4명을 인천항에서 붙잡았다. 관세청이 공개한 폐쇄회로 화면에서 이들은 중국 단둥에서 출발해 인천항으로 입국하던 도중 지나치게 부자연스러운 동작을 반복했다. 휴대전화를 들고 이리저리 움직이는가 하면 진땀을 수차례 닦고 불편한 거동으로 조금씩 움직였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직원은 이를 놓치지 않았다. 관세청은 밀수 일당이라고 생각해 이들을 MRI 전신 탐지기로 훑었다. 몸 한중간 은밀한 곳에서 검은 물체가 확연하게 드러났다.
210g 씩 성형된 금괴(위)와 절연 테이프로 포장된 뒤 콘돔에 싸인 금괴 덩어리. 1인당 9개씩 신체 내부에 숨겨 밀수한 일당이 적발됐다. 사진제공=관세청
몸 안에 금을 넣어 오는 방식 외에도 기상천외한 아이디어가 쏟아진다. 모래 주머니처럼 개조한 금괴 주머니를 발목에 차고 긴 바지로 가리는 방식은 이제 구식이 됐다. 성형이 쉬운 탓에 금을 옷걸이로 만들어 밀수하려는 일당이 붙잡힌 적도 있다. 신발 바닥에 숨기는 일도 허다하다.
지난해 4월 베트남 하노이를 출발해 김해공항으로 들어온 비행기를 운전한 기장은 자신의 신발 양쪽에 1kg짜리 금괴 2개씩을 넣고 문형금속탐지기를 통과하다 세관에 발각됐다. 승무원 한 명 역시 1Kg짜리 금괴 1개씩 총 2개를 신발 안쪽 바닥에 몰래 숨겨 오다 적발됐다. 세관 조사 결과 이들은 금 1㎏를 운반할 때마다 수고비가 250달러씩 할당될 예정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옷걸이 등으로 성형 후 피복한 형태로 금괴가 밀수되기도 했다. 사진제공=관세청
지난 3월 31일 인천본부세관은 국가정보원 인천지부와 함께 바다 위에서 밀수를 하거나 이를 도운 혐의로 3명을 구속하고 18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일당은 지난해 12월부터 매주 3차례 중국 옌타이항과 평택항을 오가는 화물 여객선을 이용해 금 등을 밀수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여객선장까지 포섭해 밀수를 눈감아달라고 부탁하는 등 꼼꼼한 일 처리가 돋보였다.
특히 이들의 밀수 방식은 세관조차 혀를 내두르게 만들었다. 배가 경기도 안산 근처 바다에 당도할 무렵 일당은 에어캡으로 포장한 밀수 상자를 바다 위로 내던졌다. 주변에서 기다리던 어선 등은 에어캡 포장으로 바다 위를 표류하는 밀수 상자를 수거해 국내 유통책에 넘겼다. 지난해 12월부터 지난 3월 18일까지 4개월간 19차례에 걸쳐 13억 원 넘는 1kg짜리 금괴 30개를 포함 녹용, 비아그라, 면세 담배 등을 몰래 수입했다.
밀수가 비밀리에 진행되다 보니 밀수꾼을 사기치는 사기꾼도 등장했다. 밀수 조직은 보안을 위해 금을 전해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정보를 운반책에게 알려주지 않는다. 운반책은 목적지 부근에 도착해서 누군가가 “금을 가지고 계시죠? 주시면 됩니다”라고 할 경우 요청의 진위 여부를 확인할 길이 없다. 이를 역이용해서 금을 가로챈 일당이 경찰에 검거됐다. 지난 7일 인천국제공항경찰대는 홍콩에서 산 금괴를 일본으로 옮기는 운반책을 속여 4억 원 상당의 금괴를 가로챈 혐의로 A 씨(22) 등 2명을 구속하고 운반 정보를 A 씨 등에게 제공한 B 씨(24)를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A 씨 등 2명은 지난달 9일 오전 10시쯤 일본 후쿠오카 공항에서 금을 옮기던 운반책에게서 총 3억 5000만 원 상당의 1㎏짜리 금괴 8개를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A 씨 등은 금괴 운반책 모집을 담당하는 지인 B 씨에게서 해당 금괴 운반 일정과 항공편, 운반책의 신원 등 관련 정보를 미리 입수했다. 운반책과 한국에서 같은 비행기를 타 후쿠오카에 도착한 A 씨 등은 입국심사를 받기 전 공항 화장실에서 운반책에게 “금괴는 저에게 주면 됩니다”라고 말하며 금괴를 가로챘다.
일본의 경우, 약 200만 원 이하, 즉, 약 45g 이하의 금은 세금을 내지 않고 반입할 수 있다. 이를 넘어설 경우 신고서를 작성한 뒤 8% 수입소비세를 내야 한다. 하지만 범죄 발생이 적은 국가에서 오는 사람들, 특히 인천공항 환승객은 대부분 그냥 통과시키는 경우가 많아 일본으로 금을 운반하는 아르바이트가 횡행하는 실정이다. 일본 관세청에서 일부 국가에게 배려하는 ‘통상적 허용’을 범죄에 이용한 금괴 유통업자와 운반책, 그리고 그들을 상대로 한 사기 사건까지 발생한 셈이다.
이렇게 국내로 밀수입된 금괴는 1차 가공을 거쳐 귀금속 상가 등으로 팔려 나간다. 금의 끓는점은 은보다 조금 높은 수준으로 일반적인 금속 가공 장비만 있으면 다른 형태로 만들기 쉽다. 게다가 보통 금괴에는 순도와 제작은행 등 정보가 새겨져 있지만 아무 것도 새겨지지 않은 소형 금괴나 한복의 물방울 모양 단추 형태로 재성형해도 판매가 어렵지 않다. 종로에서 귀금속 가게를 운영하는 한 사업자는 “사실 금을 팔러 누군가 방문하면 일반적으로 반지나 목걸이, 혹은 두꺼비나 열쇠 등이 아니면 유심히 보는 편”이라면서도 “사실 신분증을 확인하고 연락처를 적어두는 것 외에 따로 금을 구한 방식을 묻지는 않아 수표보다 오히려 유통이 편하다”고 말했다.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