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분점식 연대 등 단일화 작업 가속
▲ (왼쪽부터) 문국현 후보, 정동영 후보, 이인제 후보 | ||
범여권이 후보 단일화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위기감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범여권 일각에선 정 후보와 청와대 측이 ‘이회창 변수’를 호재로 삼아 특단의 승부수를 띄울 것이란 소리도 나돌고 있다. 청와대 핵심 참모들이 이달 중순경에 신당에 합류할 것으로 알려진 것도 같은 맥락이다. 패색이 짙은 대권 8부 능선에서 중요한 승부처를 만난 범여권의 대응 전략을 들여다 봤다.
이 전 총재의 대선 출마는 한나라당뿐만 아니라 범여권에도 적잖은 파장을 던지고 있다. ‘이회창 변수’와 관련해 기회인지 위기인지를 놓고 갑론을박이 한창이고 대선후보 진영에서는 대선전략 수정 등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는 분위기다.
특히 각종 여론조사에서 드러났듯이 이 전 총재의 지지율이 2위권에 안착할 경우 범여권은 힘 한번 제대로 못써보고 공멸할 수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후보단일화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모습이다. 물론 단일화 대상과 방법 등 각론 부분에서는 제 정파간 이견이 다소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단일화만이 보수세력의 집권을 막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데 교감하고 있는 형국이다.
현재 범여권에서 추진하고 있는 단일화 행보는 크게 두 갈래로 나뉘고 있다. 정동영 신당 후보, 문국현 창조한국당 후보, 권영길 민주노동당 후보 등이 교감하고 있는 ‘반부패 3자 연대’와 정 후보와 이인제 민주당 후보를 중심으로 한 통합과 연대 논의가 그것이다. 이 전 총재 출마로 한나라당과 보수 세력이 분열될 조짐이 일고 있는 틈새를 최대한 활용하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즉 어떤 식으로든 후보단일화를 성공시켜 흩어져 있는 진보개혁 세력을 하나로 통합한 후 연말 대선을 ‘부패 대 반부패’ ‘과거 대 미래’ 대결구도로 끌고 갈 경우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계산이다.
특히 정 후보는 단일화에 1차 승부를 던지고 있는 분위기다. 이 전 총재 출마 이후 정 후보의 지지율이 오히려 소폭 하락하면서 3위로 밀리고 있는 위기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단일화와 범여권 통합이 급선무라는 전략적 판단이 선 것으로 해석된다.
정 후보는 7일 관훈클럽 초청토론회에서 “후보 등록일(11월 25일)까지 남아있는 17일 동안 범여 후보 통합을 만들어내겠다”며 구체적인 단일화 일정까지 제시하고 나섰다. 단일화 대상으로는 민주당 이 후보와 창조한국당 문 후보는 물론 반부패 연대를 매개로 한 민노당 권 후보까지 포함시키는 포괄적 단일화를 구상하고 있다. 신당은 이미 당내에 비공식 TF팀을 구성하고 단일화 대상 진영과 공식·비공식 접촉을 강화하고 있다. 이·문·권 후보 측도 전략적 연대 내지는 단일화에 적극성을 띠고 있어 후보 등록 직전에 가시적인 성과물이 도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각 후보들이 여전히 자기 중심의 단일화를 주장하고 있고 단일화 방법과 대상을 둘러싼 이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만큼 파괴력 있는 성과물이 나올지 여부에 대해서는 여전히 회의적인 시각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실제로 반부패 연대를 주장하고 있는 문·권 후보는 반부패 연대와 단일화는 무관하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고 정 후보와 이 후보가 진행하고 있는 통합과 연대 협상도 총선 지분 등 현실적 벽에 부딪힐 경우 난항을 겪게 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노무현 대통령을 정점으로 한 청와대의 심상찮은 움직임에 정치권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그동안 정 후보에 대해 소극적 지지 입장을 견지해 온 노 대통령이 예상치 못한 ‘이회창 변수’를 호재로 뭔가 승부수를 준비하고 있는 정황이 포착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회창 변수’로 대선판이 다자구도로 재편되는 등 대선정국이 요동치고 있는 만큼 노 대통령도 서서히 대권 복심을 드러내고 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범여권 일각에서는 노 대통령이 결국 정 후보 지원 쪽으로 방점을 찍고 있을 것이란 섣부른 관측을 내놓고 있다. 노 대통령의 핵심 측근으로 청와대 요직을 두루 거친 박남춘(인사)·전해철(민정)·윤승용(홍보) 등 현직 수석들이 이르면 이달 중순 늦어도 이달 말에 청와대를 떠나 신당에 합류할 것으로 알려진 것도 이러한 관측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들 청와대 수석들의 신당행은 내년 총선을 겨냥한 출마 정지작업 성격이 짙으나 노 대통령의 대권 복심을 원활하게 추진하는 산파 역할을 담당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한나라당 관계자들은 노 대통령과 정 후보를 정점으로 한 범여권이 재집권 전략에 의기투합하고 거대한 전략을 마련하고 있다는 의혹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BBK 사건의 핵심 인물인 김경준 씨의 송환 결정이 전격적으로 이루어지는가 하면 갑자기 삼성 비자금 사건이 터지고 청와대 핵심 참모들이 대거 신당행을 선택했거나 저울질하고 있는 일련의 정황들이 마치 잘 짜여진 각본에 따라 진행되고 있는 것 같다는 반응이다.
‘이회창 변수’를 발판으로 대역전극을 모색하고 있는 범여권의 마지막 승부수가 어떠한 결과물을 잉태하게 될지 또 그 폭발력은 어느 정도일지 대혼전 양상으로 치닫고 있는 대선정국을 지켜보는 또다른 관전 포인트로 부상하고 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