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위 구성 전에 이미 그를 점찍었다”
최순실 씨가 김수남 검찰총장 인사에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과시했다는 증언이 나오고 있다. 검찰에 출석한 최순실. 일요신문DB
지난해 10월 정치권과 법조계 최대 관심사는 12월 임기가 끝나는 김진태 당시 검찰총장의 후임이 누가 되느냐였다. 임기 후반부로 접어든 박근혜 대통령 입장에선 레임덕 방지 및 2017년 대선 관리 등을 위해 검찰 친정체제 구축이 절실했던 때였다. 검찰 안팎에선 차기 총장의 최우선 덕목이 박 대통령에 대한 ‘로열티’가 될 것이란 얘기가 파다했다.
일찌감치 김수남 대검 차장검사와 박성재 서울중앙지검장이 유력 후보군을 형성했다. 둘 다 TK출신(김수남-대구, 박성재-경북 청도)에 현 정부 인사들과 비교적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도 한몫을 했다. 검찰 내에서는 “누가 돼도 이상할 게 없다”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검찰총장추천위원회는 10월 28일 예상대로 김수남 대검차장과 박성재 서울중앙지검장, 그리고 김경수 대구고검장, 김희관 광주고검장 등 4명을 차기 총장 후보로 김현웅 법무부 장관에게 추천했다. 한때 박성재 지검장이 확실시된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지만 10월 30일 박 대통령은 김수남 대검차장을 내정했다.
이처럼 박 대통령은 현 정부 마지막 검찰총장 인사에 공을 들였다. 그러나 일 년여가 지난 지금 김수남 총장은 최순실 게이트 수사를 통해 박 대통령을 정조준하고 있는 상황이다. 앞서 특별수사본부는 박 대통령을 사실상 ‘공범’으로 지목하고, 강도 높은 수사를 진행한 바 있다. 여기엔 김 총장 의지가 강하게 반영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 대통령으로선 ‘믿는 도끼에 발등이 찍힌’ 셈이다.
그런데 최순실 씨가 김 총장 임명 과정에 관여한 듯한 정황이 포착됐다. 대한민국 권력기관 중에서도 가장 힘이 세다고 평가받는 검찰의 수장을 뽑는 과정에도 최순실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있는 것이다.
최 씨와 가깝게 지내는 한 변호사는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최순실이) 10월 초쯤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대뜸 김수남과 박성재에 대해 물었다. 둘이 검찰총장 후보라는 소문이 무성하긴 했지만 박 대통령 스타일상 깜짝 인사도 배제할 수 없었기 때문에 다른 후보들도 물망에 올랐었다. 그런데 최 씨는 김수남과 박성재를 특정해서 말했다. 또 최 씨가 ‘총장 때문에 고민이 많다’고 했던 말을 분명히 기억한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최 씨가 검찰총장 인사에 대해 그냥 관심이 있구나 정도로 생각했다. 그래서 김수남과 박성재에 대한 조직 내 평판이나 과거 일화 등을 전해줬다. 당시만 해도 최 씨가 박 대통령과 친분이 있는 것은 알았지만 지금 드러난 것처럼 이 정도의 관계인지는 전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후 김수남과 박성재가 최종 후보에 올랐고, 또 김수남이 총장으로 낙점 받은 후 최 씨로부터 ‘많은 참고가 됐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나뿐 아니라 검사 출신의 또 다른 변호사도 최 씨로부터 그러한 얘기를 들었다고 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최 씨 지인들 역시 비슷한 취지의 말을 들려줬다. 최 씨의 한 측근은 “최 씨가 지난해 가을 검찰총장 인사에 관심이 많았다는 것은 아마 주변 사람들은 알고 있을 것이다. 특히 김수남 얘기를 자주 했었다. 김수남 총장이 과거에 수사했던 건들을 언급하며 칭찬을 했던 것 같다. 김수남 총장과 친분이 있었던 것 같지는 않았다. 우리끼리는 ‘최 씨가 얼마나 힘이 세기에 검찰총장 인사를 박 대통령과 논의하느냐’라며 반신반의했었다. 그런데 김수남이 실제로 총장에 임명되자 새삼 최 씨가 실세라는 것을 느꼈었다”고 털어놨다.
최 씨는 평소 친분이 있던 한 검찰 관계자에게도 김수남 박성재에 대한 문의를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관계자는 “(최 씨로부터) 연락이 와서 만난 적이 있다. 나에겐 박성재 지검장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봤다. 누가 차기 총장이 될 것 같냐, 조직 내에선 누가 더 평가가 좋으냐 등의 질문도 했다. 그래서 개인적인 입장에서 박 지검장이 되는 것 아니냐라고 하자 최 씨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재차 그럼 김이냐라고 묻자 최 씨는 ‘아마도’라고 답했다. 당시엔 그냥 자연스럽게 대화를 했는데 지금 떠올려보면 최 씨가 검찰총장 인사에 관여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긴 하다”고 했다.
이러한 증언들을 종합해보면 최 씨는 검찰총장 후보군에 있던 김수남과 박성재에 대해 수소문을 했고, 그 중에서도 김수남 당시 대검차장을 총장으로 점찍어놨던 것으로 보인다. 그 시기가 아직 후보조차 정해지지 않았던 10월 초라는 것을 감안해보면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엔 무리가 따른다. 검찰총장추천위원회도 10월 12일에야 꾸려졌다. 대검찰청의 한 관계자도 “물론 총장 인사가 나기 전 하마평이 나돌긴 한다. 3~4명이 거론됐었다. 그런데 최 씨가 추천위원회가 구성되기 전부터 둘을 압축했고, 또 김수남을 유력하게 말했다는 것은 놀랍다. 실제로 그렇게 되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앞서 <일요신문>은 지령 1282호를 통해 최 씨가 매주 일요일 청와대 관저에서 문고리 3인방과 국정회의를 했다는 내용을 단독 보도한 바 있다. 부속실 전·현 관계자 등에 따르면 최 씨는 이 자리에서 국정 여러 분야에 개입했고, 여기엔 인사도 포함됐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는 최 씨가 지난해 하반기 검찰총장 임명에 관여했을 것이란 추측을 뒷받침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최 씨는 박 대통령을 통해 국정을 농단했다. 인사, 외교, 문화 등 분야를 가리지 않았다. 검찰총장 인선은 박 대통령의 핵심 현안 중 하나였다. 최 씨가 개입하지 않은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라고 꼬집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