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에서 몰리면 밖에서 터트린다
▲ 지난 16일 BBK 주가조작사건의 핵심인물인 김경준 씨가 중앙지검에 도착했다. 김 씨는 100여 명의 취재진에게 놀란 듯 의미 모를 웃음을 짓기도 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김경준 뉴 X파일’과 관련해 가장 주목받고 있는 인사는 단연 김 씨 자신이다. 김 씨는 BBK 주가조작 사건의 핵심인물이자 이 후보 연루 의혹 여부를 가늠할 수 있는 바로미터로 지목받고 있기 때문이다. 김 씨가 검찰 수사 과정에서 어떤 진술을 하고 또 어떠한 증거물을 내놓을지 여부에 따라 이 후보의 대세론은 물론 대선정국 전체 판세가 요동을 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검찰과 정치권이 김 씨의 입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특히 김 씨는 미국 법원에서 재판을 받고 있을 당시 “이 후보가 BBK 실제 주인”이라고 주장하는가 하면 “국내로 송환되면 이 후보와 전면전도 불사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피력하기도 했다. 그가 공언한 대로 검찰 수사 과정에서 이 후보가 연루됐다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구체적인 증거를 제출하거나 신빙성이 담보된 증언을 할 경우 이 후보는 상당한 타격을 입게 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16일 오후 7시 50분께 서울중앙지검에 도착한 김씨는 “일부러 이때 온 거 아니에요. 민사소송이 끝나서 온 거예요”라는 짤막한 멘트만 남기고 청사 안으로 자취를 감췄다.
하지만 김 씨의 증거나 증언이 직접 언론에 노출될 가능성은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다. 검찰이 국내 송환 과정에서부터 서울지검으로 호송할 때까지 김 씨와 언론과의 접촉을 철저히 차단한 바 있고 향후 수사 과정에서도 김 씨의 외부 노출을 차단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언론의 촉각은 김 씨의 가족에 쏠리고 있다. 특히 BBK 사건의 또다른 핵심 인물인 김 씨의 누나 에리카 김의 행보에 시선이 쏠리고 있다. 에리카 김 씨는 당초 이 사건의 중요 참고인으로 분류돼 국내로 들어올 경우 검찰 조사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귀국하지 않을 것으로 관측돼 왔다. 하지만 그는 조만간 귀국행 비행기에 올라 검찰 조사를 받을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따라서 그동안 국내 언론들의 끊임없는 취재 요청에도 불구하고 BBK 사건과 관련해 극도로 말을 아껴왔던 그가 검찰 조사 과정에서 어떤 진술을 할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또 동생에 비해 행보가 자유로운 그가 정치권이나 언론 등을 통해 폭탄 발언을 하거나 새로운 증거를 내놓을 경우 검찰 수사와는 별개로 또다른 파문을 불러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에리카 김이 한때 이 후보와 개인적인 교분을 맺어왔다는 사실에 미뤄 그가 이 후보와의 개인적인 관계나 사업과 관련한 폭탄 발언을 할 경우에도 대선정국에 적잖은 파문이 일 것으로 보인다.
이 신문에 따르면 “김 씨 모친은 이미 김 씨의 한국 송환과 때를 같이해 한국으로 들어올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으며 다각도로 아들 김 씨 문제를 이명박 후보와 연관지어 부각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며 “김 씨 모친이 한국으로 들어와 기자회견을 통해 폭탄발언을 할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면서 이명박 후보 진영을 긴장시키고 있다”고 보도했다.
정치권은 언제든지 ‘뉴 X파일’ 폭탄을 투하할 준비를 하고 있다. 대통합민주신당을 비롯해 범여권은 그동안 BBK 사건과 관련해 수많은 자료를 공개하며 줄기차게 이 후보 연루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이 중에는 객관성과 신빙성이 담보된 자료도 적지 않았지만 정치 공방전으로 비화되면서 빛을 발하기도 했다. 하지만 범여권은 검찰 수사와 함께 파괴력 있는 자료들을 추가로 공개한다는 방침이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청와대를 비롯한 범여권 핵심부가 이 후보를 ‘한 방에 보낼 수 있는 뉴 X파일’을 확보하고 공개 시점을 저울질하고 있다는 소문도 나돌고 있다.
한나라당과 이 후보 측이 ‘BBK 공작설’을 제기하면서 그 배후로 청와대를 비롯한 국정원, 정동영 통합신당 후보, 김대중 전 대통령 측근 등을 지목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소문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무소속 이회창 후보 측도 폭발력 있는 ‘뉴 X파일’을 확보했거나 인지하고 있을 것이란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정치권의 전방위 공세에도 불구하고 이 후보가 대권 3수에 도전장을 낸 배경에는 범여권의 ‘이명박 죽이기’ 플랜과 맞물린 대선정국 변화 가능성을 예측했거나 뭔가 믿을 만한 승부 카드를 확보했기 때문이라는 시각이다. 실제로 이 후보 측은 김 씨 송환이후 본격적으로 ‘이명박 때리기’에 나서고 있고 BBK 사건을 잘 파악하고 있는 캠프 내 인사들도 활동 반경을 넓히고 있다. 이 후보 측 강삼재 전략기획팀장은 “이명박 후보는 대선후보직 사퇴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며 사퇴론을 거론하기도 했다.
이처럼 ‘김경준 뉴 X파일’은 대선정국 길목 곳곳에 매장돼 있는 지뢰밭이나 마찬가지다. 지뢰가 언제 어떤 식으로 터질지 또 그 폭발력이 어느 정도일지는 아직 속단할 수 없다. 다만 대권고지를 점령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지뢰밭을 통과해야 하는 이명박 후보나 대역전극을 연출하고자 하는 범여권과 이회창 후보는 ‘뉴 X파일’을 놓고 피 말리는 대권전쟁을 펼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