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당→반기문 영입→개헌파·국민의당과 연대→대선 승리 ‘시나리오’
집권여당의 2당 추락이란 타격을 입힌 비박계 35명의 분당 선언은 12월 20일 김무성 전 대표와 유승민 전 원내대표의 늦은 오후 단독 회동이 결정타가 됐다. 한 시간 가까이 이어졌다는 회동에서 둘은 어떤 결의를 했을까. 그리고 그들이 그리는 ‘개혁보수신당’의 그림은 어떤 모습일까.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이 신당행을 염두에 두고 있을까. 안철수 박지원 등 제3지대와의 합류 가능성은 있을까. 뒷얘기를 짚어봤다.
김무성 유승민 의원이 12월 23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보수신당(가칭) 창당추진위 첫 회의를 하고 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우선 김 전 대표와 유 의원이 각각 그린 조기 대선 전(前)의 그림부터 밝혀야 한다. 방향이 달랐던 두 사람이 전격적으로 손을 잡은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서다. 김 전 대표 탈당 결심은 지난 8·9전당대회에서 비박계 단일 후보였던 주호영 의원이 ‘박근혜의 입’으로 통했던 이정현 의원에게 패한 뒤부터 조금씩 주변부에 퍼졌던 것으로 전해진다. 결심을 굳힌 것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번지던 11월 즈음이고, 쐐기를 박은 것은 예상 외로 많은 새누리당 의원들이 박 대통령 탄핵을 가결한 순간이었다고 한다.
친박계와 공존하는 새누리당에서 정권재창출 가능성이 희박해지면서 김 전 대표는 “불임정당은 정당으로서의 존재 이유가 없다”며 주변부 설득 작업에 나섰다. 측근들 말을 종합하면 김 전 대표의 청사진은 ‘탈당→신당 창당→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영입→정의화·이재오·손학규 등 개헌파와의 개헌 작업 병행→김황식·정운찬 등 전 국무총리 및 안철수 등 국민의당과의 연대→친박·친문을 뺀 중간지대의 경선 돌풍 및 당선’으로 이어진다. 김 전 대표는 새 권력지형 재편의 안내자이자, 19대 대통령 킹메이커로서 역할을 하고 싶어 한다는 얘기가 된다.
유 의원은 강성으로 분류되는 친박계의 인적 청산을 통한 새누리당의 리빌딩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즉, 새누리당을 해체해 일부를 도려내고 재창당하는 시나리오다. 든든한 지지기반인 영남권을 고수하면서 신보수 노선의 걸림돌로 작용할 세력을 제거하는 대형 수술이었다. 그리고 새롭게 건립된 유일 보수정당에 반 총장을 영입하고 오세훈 전 서울시장, 남경필 경기지사, 원희룡 제주지사, 김문수 전 경기지사 등 보수의 아이콘들과 경선에 돌입한다는 그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경제는 진보, 안보는 보수’의 프레임을 가져가야 차기에 승산이 있다고 본 것이다.
‘김-유 단독회동’에서 두 정치인 사이엔 “잡탕은 만들지 않겠다”는 합의가 있었다는 전언이다. 김 전 대표로서는 ‘따뜻한 보수, 건강한 보수’의 기치를 내걸며 중도 진영으로의 확장 가능성을 높인 유 의원이 있어야만 제3지대나 일부 개혁보수파의 합류 가능성을 높일 수 있고, 유 의원도 이런 자신의 모토를 희석시키는 진영과의 연대나 합류는 오히려 정권재창출을 방해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정치는 생물’이라는 말처럼 제3지대와의 합류는 그때 상황을 봐서 결정할 수도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 정치인은 최대한 많은 인원이 1차 집단탈당 선언 때 함께 하도록 힘을 합치되, 만약 어려울 경우엔 지속적인 설득 작업으로 제2, 제3의 탈당을 이끌어내자는 공감대를 이뤘다고 한다. 이를 위해선 ‘개혁보수신당’이 불협화음 없이 신당 창당 작업에 속도를 붙이도록 노력하고, 집단탈당에 합류한 다양한 의원들에게 신당 작업의 일정 부분을 맡김으로써 역할 분담을 하자는 이야기도 나온 것으로 전해진다. 당장 대변인 격인 황영철 의원이 바통을 오신환 의원에게 넘긴 것이나, 주호영 정병국이라는 지난 전대 비박계 대표주자가 창당준비위원장을 맡은 것 등이 이날 회동의 이야기를 뒷받침하고 있다.
비박계가 집단탈당을 결의하면서도 그 어렵다는 신당 창당을 1월 20일 전후, 즉 한 달 만에 끝낼 것이라 자신하는 것은 반 총장의 영입 가능성에 있다는 분석이다. 차기 대선 주자군만 확실하다면 탈당을 주저하는 새누리당의 의원 다수가 결행할 수 있고, 전국 각 지역에서 활동 중인 소위 ‘반기문 세력’도 대거 합류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실제 탈당파의 대변인 격인 황 의원은 여러 언론 인터뷰를 통해 “탈당을 함께할 의원들 중에 반 총장과 상당 부분 소통하고 있으며 탈당과 신당 창당의 취지도 반 총장에게 잘 전달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우리끼리 내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고 있다“면서 ”반 총장이 우리와 함께한다면 새누리당에 남아 있는 많은 의원들의 중심이 우리 쪽으로 오게 된다고 본다“고 밝혔다. 누가 봐도 노골적인 스카우트 제의다.
게다가 반 총장의 주변부에서도 반 총장이 김 전 대표나 개헌론자인 정의화 전 국회의장 등과 교감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정작 김 전 대표는 일부 매체의 보도에 “개인적으로 반 총장과 통화를 하거나 그러고 있진 않다”고 한발 뺐지만 그 반대의 이야기가 반 총장 측에서 나오고 있는 것이다. 반 총장 사정을 잘 아는 한 정치권 인사는 “친박계와 합류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는 게 맞다”고 설명하면서 “여러 가능성을 두고 소통이 진행되고 있으며 귀국 전 결심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또 다른 인사는 “사실 반 총장과 가깝다는 친박계 윤상현 의원이나 홍문종 의원 등과는 완전히 돌아선 걸로 안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반 총장이 당장 신당에 합류하기보다는 독자 노선 상에서 지지율 제고에 힘쓰다 전격적으로 어떤 진영과 합류할 것으로도 내다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유 의원은 여러 인터뷰를 통해 반 총장을 “환영한다”고 인사하며 “대신 치열한 경선 과정을 뚫어야 할 것”이라며 그와의 흥행성에 기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반 총장에 눈독을 들이는 진영은 개혁보수신당뿐 아니다. 호남을 기반으로 반문재인의 선봉에 선 국민의당도 적극적으로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는 대놓고 “반 총장 측에 사람을 보냈다”면서 “반 총장이 박지원이 밀어준다고 하면 새누리당이나 더불어민주당으로 안가고 국민의당으로 오겠다고 했다”고 밝혔다. 반 총장이 안철수 전 국민의당 상임대표나 천정배 의원, 정운찬 전 총리,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 등과 경선을 통해 이긴다면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정치권에서는 국민의당의 시나리오대로라면 차기 대선은 민주당 문재인 후보와 개혁보수신당 후보, 제3지대 후보의 3파전으로 전개될 것으로 점친다. 친박계만 남을 새누리당에선 이인제 전 의원이나 김관용 경북지사 등이 거론되지만 흥행의 측면에선 당선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관측이다. 만약 개혁보수신당과 제3지대의 연대가 성사된다면 18대 대선과 같은 2파전이 가능해지는데, 여기에는 유 의원과 교감이 있는 김한길 전 의원이 안 전 대표와의 연대를 성사시킨다면 가능한 시나리오다. 정치판이 요동치고 있다.
이정필 언론인
새누리 TK 의원들 ‘친박 지도부만 믿다 오리알 될라’ 새누리당 탈당파 35인의 ‘개혁보수신당’을 놓고 지지기반인 TK(대구경북) 국회의원들 고민이 커지는 모습이다. 당장 집단탈당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의원은 유승민·주호영 2명이지만 나머지 23명 중 친박색이 다소 옅은 의원들이 좀처럼 거취를 정하지 못하고 있다. TK에서는 최경환, 조원진, 이완영, 이만희, 곽상도, 정종섭, 추경호 의원 정도가 강성 친박계로 분류된다. 이른바 ‘탈당 보류층’으로 분류되는 나머지 TK 의원들은 박근혜 대통령을 향한 나라 전체의 여론은 부정적이지만 자신의 지역구에서 본인의 선거를 도와줬거나, 차기 총선에서 투표장으로 향할 노년층 여론이 아직은 새누리당 잔류 쪽에 기울어 있어 고민이 된다고 토로한다. 정치인으로서의 행로는 신당행을 선택해야 함에도, 정치생명을 담보하기 위해선 잔류파로 남아 있어야 한다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이들 의원들은 최근 지역구에 상주하다시피하며 바닥민심을 훑어보는 한편, 사비를 들여 여론조사를 돌리는 등 여론 수렴에 적극적이다. 의원들끼리는 또 삼삼오오 모여 탈당과 관련한 정보를 교환하면서 기초자치단체장, 지역구 소속 시·도의원 등의 판단도 경청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최근에는 박근혜 대통령 호위무사를 자처했던 주류 친박계의 행보가 믿을 만한지를 두고 이들 TK 의원들이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다. 고민의 발단은 박 대통령이 3차 대국민담화에서 밝힌 “합법적 절차대로 국회가 진퇴 문제를 결정해달라”고 밝힌 대목을 주류 친박계가 제대로 해석하지 않았다는 말이 최근 정치권에 회자하고 있어서다. 당시 친박계는 전직 국회의장과 국무총리 등 정·관계 원로들이 모여 박 대통령의 ‘4월 사퇴, 거국중립내각 구성’이란 해법을 내놓자 그것을 고스란히 당론으로 결정하게 된다. 문제는 한 친박계 의원이 최근 뒤늦게 당시 박 대통령의 의중이 무엇이었는지 알아냈기 때문이다. 이 의원은 “박 대통령이 당시 밝힌 ‘합법적’이란 표현은 18대 대통령의 임기축소를 명시한 개헌읕 통해 법적인 절차대로 명예롭게 직에서 물러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며 “하지만 당시 주류 친박계는 그 같은 원포인트 개헌이 아닌 전혀 다른 방향을 제시했고, 무엇보다 그 이후 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도 막지 못했다”고 했다. 이러한 이야기가 최근 TK를 강타하면서 “우리가 과연 친박계 지도부만 믿고 당에 남아 있어야 하는가”라는 고민이 시작됐다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박 대통령도 저버리는 마당에 소총수와 같은 자신들을 지켜주지 않을 것이란 불신이 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한 중진 의원은 “솔직히 퀄리티(품질)가 높은 의원들은 전부 탈당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지 않았느냐. 솔직히 여긴 쭉정이만 남았다고 본다”며 “비박계 신당이 개혁보수를 정강정책에 제대로 담고 전국 시도당 설립 및 창당발기인 영입 등을 순조롭게 이어나가면 저쪽으로 합류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그는 이런 생각을 공유하고 있는 TK 의원들이 다수 있다고도 전했다. 반면 주류 친박계는 이런 TK 의원들의 움직임을 간파하고 적극적으로 설득 작업에 나서고 있다고 한다. 호남권을 국민의당에게 뺏긴 더불어민주당이 수도권 정당의 한계를 실감하는 것을 목격한 주류 친박계는 본류인 TK의 두 동강을 가장 겁내고 있다. [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