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치는 호남… 게임은 끝나지 않았다
BBK 수사결과가 발표된 이후 대통합민주신당의 정동영 후보는 이명박 후보에 이어 검찰과의 본격적인 싸움을 시작했다. 정동영 후보 측은 ‘이명박 후보 감싸기’에 급급한 검찰의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정치검찰’에 국민이 속지 말아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정 후보는 지난 6일 대선후보 TV토론회에서도 BBK 수사 결과에 대해 이명박 후보와 검찰을 공격하는 발언을 잇달아 내놓았다. 정 후보는 “솔직히 이 자리에서 탈세, 위장, 각종 거짓말 의혹에 휩싸여 있는 후보와 나란히 앉아서 텔레비전 토론을 한다는 것이 창피하다”며 “미국 같으면 BBK 말고도 지금까지 드러난 것만 갖고도 이명박 후보는 오늘 방송 토론 자리에 앉을 수 없다”고 이 후보를 맹비난했다.
이미 정 후보 캠프에는 검찰수사 발표일이 임박해오며 결론이 이명박 후보에 유리한 쪽으로 날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대통합민주신당은 검찰발표에 앞서 “BBK 특검 법안을 검찰의 수사결과 발표 이후 발의할 것”이라며 검찰에 수사가 마땅치 않다고 판단될 경우에 대비해 일종의 ‘사전 경고성’ 멘트를 내놓은 바 있다. 하지만 정동영 캠프 내에서도 검찰 수사 발표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선 예상을 넘어섰다는 반응이다.
정 후보는 당분간 촛불집회 등 장외집회와 특검 논의 등을 통해 BBK 수사 결과에 대한 공격의 수위를 최대한 높여간다는 전략이다. 물론 이러한 공격이 BBK 수사 결과를 백지로 돌릴 수 있을 것이란 계산을 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공격을 통해 정국을 일단 ‘이명박 vs 반이명박’의 구도로 만들어 나가는 것이 1차 목표다. 뿐만 아니라 검찰이 ‘면죄부’를 준 이명박 후보의 BBK 관련 의혹을 다시 살려내 선거 마지막 날까지 가지고 간다는 노림이다.
정 후보 측에서는 BBK 수사 결과 발표가 정국을 일단 ‘이명박 vs 반이명박’이라는 단순 구도를 만들었다며 한가닥 위안으로 삼고 있다. 이런 결과가 범여권의 후보 단일화에 대한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전망과 진보세력과 호남 지역민의 단결을 가져 올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일단 의혹에 다시 불을 지펴 이명박 후보의 지지율을 30%대로 끌어 내리고 반이명박 진영을 결집하면 한번 해볼 수도 있지 않느냐는 희망이 있는 것이다.
정 후보로서는 호남 지역의 지지율을 끌어 올리는 데도 주력하고 있다. 현재 호남 지역의 정 후보에 대한 지지율은 과거 1997년 대선에서의 김대중 전 대통령이나 2002년 대선 때의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을 크게 못 미치고 있다. 지난 4일 <동아일보> 조사에서 정 후보는 광주 전라 지역에서 40.8%로 수위를 달렸지만 이명박 후보도 11.1%로 두 자릿수 지지율을 지켰다. BBK 수사결과 발표 후인 6일 <조선일보> 조사에서도 정 후보는 광주 전라 지역에서 55%의 지지율을 보여 후보 등록 후 처음으로 50%대를 넘겼지만 이 후보 역시 11.8%를 지켰다. 과거 김 전 대통령이나 노 대통령이 막판에 받았던 거의 90%에 가까운 지지율과는 엄청난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정 후보 캠프에서는 앞으로 호남지역의 지지율도 착실히 올라갈 것으로 보고 있다. 캠프 측 한 인사는 “유권자들이 아직 큰 관심을 보이지 않지만 예전 지지율 회복에는 문제가 없다. 각종 조사에서 차근차근 올라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고 희망적인 관측을 했다. 그러나 우려하는 소리도 없지 않다. 지역의 한 관계자는 “이번 대선은 과거에 비해 지역적 과열 양상이 현저히 낮아졌다. 호남 유권자들도 실망감이 높아 지역색이 옅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정 후보 캠프 측은 젊은 층에도 상당한 공을 기울이고 있다. 앞서 <조선일보> 조사를 보면 정 후보는 연령별로 20대 10.4%, 30대 21.5%, 40대 19.9%, 50대 이상 13.4% 등의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 이명박 후보의 지지율은 20대 37.9%, 30대 28.5%, 40대 42.5%, 50대 이상 59.1%였다. 전통적인 지지층인 20대의 지지율 회복이 시급한 이유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정 후보 측은 앞으로 단일화와 BBK 사건 공세 등을 통해 ‘부패 vs 반부패’ ‘진보 vs 보수’ ‘이명박 vs 반이명박’의 구도를 살려 낼 수 있다면 전통적인 지지층인 젊은층, 진보세력 그리고 호남을 묶어 대역전을 시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아직 대선이 일주일여 이상 남아있는 이상 문국현·이인제 후보뿐 아니라 이회창 후보와의 ‘BBK 전선 극적 연대’ 가능성에도 어느 정도 무게를 싣고 있는 분위기다. 수세로 몰리고 있는 급박한 상황이 정동영 후보로 하여금 예상외의 최후의 선택을 내리게 할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