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계 vs 호남계’ 원내대표 선거 패배 원인 따져보니…
안철수 전 대표가 지지율이 하락하는 데다 국민의당 원내대표 경선에서 ‘친안계’ 김성식 의원이 패배해 대선 행보에 빨간불이 켜졌다.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국민의당 원내대표 선거는 안철수 전 대표의 처지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장면으로 꼽힌다. 지난해 12월 29일 치러진 선거에서 호남 중진 주승용 의원은 안철수계 김성식 의원을 꺾고 원내대표에 당선됐다. 당초 주 의원과 김 의원이 막상막하의 대결을 펼칠 것이라고 예상했으나 주 의원은 총 23표를 얻어 12표를 얻는 데 그친 김 의원을 큰 표 차이로 따돌렸다. 안철수계로 분류되는 초재선 및 비례대표 그룹 일부에서도 이탈표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국민의당 창업주격인 안 전 대표로서는 충격적인 결과다. 안 전 대표는 원내대표 경선 이후 한동안 당에서 개최하는 각종 행사에 불참하며 칩거에 들어갔다. 대선을 앞두고 안 전 대표가 이처럼 진퇴양난에 빠진 셈이다.
한때 안 전 대표 최측근이었다가 지금은 거리가 멀어진 한 인사는 ‘안 전 대표의 위기는 이미 예견됐던 일’이라면서 “사실 호남 중진 의원들은 안 전 대표가 추구했던 새정치와는 맞지 않는 인물들이었다. 하지만 창당에 성공해야 한다는 압박감과 조바심에 안 전 대표는 그들과 손을 잡았다. 안 전 대표는 그분들에게 큰 애정이 없었고, 그분들도 안 전 대표에게 큰 기대가 없었으니 함께 잘 섞일 수가 있었겠느냐”고 지적했다.
이 인사는 또 “안 전 대표의 가장 큰 약점은 조직 관리다. 주변에 사람이 모이기는커녕 주변에 있던 사람들조차 안 전 대표를 자꾸 떠나고 있다”면서 “선거자금 리베이트 사건으로 안 전 대표가 스스로 대표직에서 물러났고, 안철수계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요직에서 모두 밀려나 있다. 이대로라면 자신이 만든 당에서 대선 경선을 해도 안 전 대표가 반드시 이긴다는 보장이 없다”고 말했다. 안 전 대표가 조직 관리 방식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키지 않는 한 지지율 하락세를 반전시키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주장이다.
또 다른 안철수 측 과거 인사는 특정인물에게 너무 의지하는 안 전 대표의 소통방식이 위기의 한 원인이 됐다고 꼬집었다. 그는 “안 전 대표가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꼭 박선숙 의원에게 조언을 구했다. 공식 회의에서 결정이 된 사안이 박 의원의 반대로 무산되기도 했다고 들었다”면서 “지난 총선 당시 박 의원이 사무총장을 했는데 영향력이 굉장히 강했다. 안 전 대표가 이상하리만큼 박 의원에게 의지를 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당 내부 사람들과 지금도 꾸준히 연락하며 당 내부 사정을 듣고 있는데 (선거자금 리베이트 사건으로) 박 의원이 공식적으로는 당무에 관여하지 않고 있지만 아직도 박 의원이 당무를 좌지우지한다는 이야기가 들린다”며 “안 전 대표가 박 의원에게만 의지하면 당내 불만이 쌓여 잡음이 생길 수밖에 없다. 다양한 채널을 통해 소통해야 한다. 이런 부분을 수차례 안 전 대표에게 말씀드렸는데 고쳐지지가 않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20대 총선 직후 국민의당은 박 의원이 연루된 선거자금 리베이트 사건으로 큰 위기를 맞았었다. 당시 여의도 정가에선 박 의원과 그 반대파들의 권력 싸움 과정에서 박 의원을 찍어내기 위해 반대파가 중앙선관위에 관련 내용을 신고했다는 이야기도 나돌았다.
호남권의 한 초선의원은 “호남 의원들과 안 전 대표의 갈등설은 오해”라면서 “호남 의원들이 안 전 대표를 일부러 배제시키는 것은 아니다. 원내대표 경선의 경우 주승용 의원은 4선의 풍부한 경험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 의원들이 선택한 것뿐이다. 김성식 의원을 출마시켜 호남 중진과 안철수계 인사의 대결 구도 프레임을 만든 것 자체가 잘못”이라고 했다.
이 의원은 “왜 그런 프레임을 만들어서 스스로 덫에 걸렸는지 모르겠다. 백전노장 의원들이 안 전 대표가 ‘당 외연을 확대시키기 위해 김성식을 원내대표로 합시다’라고 밀면 쉽게 따를 줄 알았나. 안 전 대표 마음대로 당이 좌지우지되면 패권주의라는 비판을 듣게 된다. 원내대표 경선에서 졌다고 안 전 대표가 기분 상할 필요가 없는데 왜 칩거에 들어간 것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의원도 “당내에 4선, 5선 한 의원들이 있는데 재선 의원(김성식 의원)을 원내대표로 뽑아놓으면 리더십이 생기겠나. 이제 4당 체제라서 원내대표의 협상력이나 리더십이 중요하다. 주승용 의원이 호남 중진이라 뽑은 것이 아니라 개인 능력을 본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안 전 대표가 소통 과정에서 미흡한 점이 있다. 안 전 대표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당내 중진들과 소통을 해야 하는데 안한다. 안 전 대표가 초재선 의원들 몇 명하고만 소통을 한다는 이야기가 들리는데 기분이 좋겠나. 당내 중진들과 소통하고 그 분들이 도와줘야 힘이 실리는 것”이라며 “안 전 대표는 호남 중진 의원들이 기득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거리를 두는 것 같은데 그 과정에서 서로 오해가 쌓인 것이다. 안 전 대표가 요새 전화도 잘 안 받는다고 하더라. (원내대표 경선 끝나고) 몇 분이 전화를 했었는데 (안 받았다)”라고 말했다.
호남 의원들이 안 전 대표를 배제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안 전 대표가 호남 의원들을 배제시켰다는 얘기다. 안 전 대표는 전국정당을 표방하고 있지만 국민의당이 호남기반 정당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호남 의원들의 적극적인 지지를 얻지 못하니 안 전 대표에 대한 호남 지지율이 하락할 수밖에 없고, 전국적인 대선 지지율 하락은 물론이고 당내 영향력 또한 감소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국민의당의 한 관계자는 “만약 국민의당 당내 경선에서 안 전 대표와 외부에서 영입한 후보가 맞붙는다면 현역 국민의당 의원 중 안 전 대표를 적극 지지하고 나설 사람은 절반도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 전 대표로서는 외연 확장보다 당내 기반을 다지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일요신문>은 이 같은 당 내 의견들에 대해 안 전 대표 측의 의견도 청취하려 했지만 안 전 대표 측은 아무런 답변도 하지 않았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