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큰 무기 꺼내들고 온라인 잠식 나서나’
2016년 마지막 날이자 주말인 지난 12월 31일, 손해보험회사 임직원들은 충격적인 뉴스를 접했다. 우리나라 손해보험시장 부동의 1위인 삼성화재가 이날부터 자동차 보험료를 평균 2.3% 내린다고 기습 발표했기 때문이다.
삼성화재는 이날 자동차 보험료를 개인용 2.7%, 업무용 1.6%, 영업용 0.4%씩 인하했다. 특히 개인용 온라인 자동차보험은 3.8% 파격 인하했다. 오프라인 자동차 보험에 비해 평균 15~17% 저렴한 온라인 자동차 보험의 인하폭을 더욱 높임으로써 대세로 자리잡아가는 온라인 차 보험 시장을 장악하겠다는 삼성화재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다.
삼성화재가 기습적으로 자동차 보험료를 인하함에 따라 중소형 손해보험사들이 진퇴양난에 빠졌다. 사진은 삼성서초타운. 박은숙 기자
하지만 보험업계는 삼성화재의 보험료 인하를 이례적이라고 평가한다. 지난해 4월 6년 만에 자동차 보험료를 평균 2.4% 올리면서 보험료 인상 러시를 주도했던 삼성화재가 8개월 만에 느닷없이 방향을 180도 바꿨기 때문이다.
연말 분위기에 들떠 있던 다른 보험사들은 갑자기 호떡집에 불이 난 꼴이 되고 말았다. 일부 회사는 일요일이자 새해 첫날인 다음 날 긴급회의를 소집해 대응책 마련에 들어갔다는 소식까지 들렸다.
실제로 프랑스 계열 보험사인 악사 다이렉트는 새해 첫 업무일인 지난 2일 오전 “장기보험 상품 예정이율을 2.75%에서 3.00%로 인상한다”고 전격 발표했다. 쉽게 말해 보험료를 내리겠다고 선언한 셈이다. 예정이율은 보험사가 보험료나 보험금·환급금을 산출할 때 적용하는 이자율로, 예정이율이 오르면 보험료는 인하된다. 이날 악사의 발표대로 0.25%포인트가 인상된다면 보험료는 평균 5~10% 내려간다.
하지만 다른 보험사들은 당장 대응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업계 2~3위권인 현대해상과 동부화재는 “자동차 보험료 인하를 검토 중”이라는 원론적인 답변만 내놓을 뿐 뾰족한 카드를 찾지 못하고 있다. 중위권인 KB손보와 메리츠화재, 한화손보 등은 아직 인하 계획을 검토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중소형 손보사들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보험료 인하 여력이 상대적으로 약한 중소형사들은 사실상 삼성화재의 기습공격에 속수무책인 상태다. 이들이 보험료 인하 공세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는 이유는 대형사들보다 자동차 보험 손해율이 월등히 높기 때문이다. 자동차 보험 손해율은 보험사가 계약자에게 받은 보험료에서 교통사고 처리 비용 등으로 지급한 보험금이 차지하는 비율을 말한다. 통상 자동차 보험의 적정 손해율은 70% 후반대인 것으로 업계는 추산한다.
삼성화재와 현대해상, 동부화재, KB손보 등 대형 손보사는 자동차 보험 손해율이 70%대 후반에서 80%대 초반 수준인 것으로 전해진다. 반면 흥국화재, 롯데손보, MG손보, 더케이손보, 악사손보 등 중소형사는 80%대 중반에서 최고 90%가 넘는 곳도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런 구조 때문에 대형사들은 자동차 보험료 인상을 자제해온 반면 오히려 중소형사들이 지난해 하반기 이후 차 보험료를 잇달아 올리며 수익률 만회에 나선 상황이다. 가뜩이나 가입자들이 보험료 인상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상황에서 업계 1위인 삼성화재가 보험료를 내린 것은 중소형 보험사들에는 사형선고나 다름없다는 것이 업계 반응이다.
삼성화재로의 쏠림 현상이 더욱 심해지는 것은 물론이고, 다른 대형 보험사들이 인하 행렬에 동참할 경우 가입자 추가 이탈이 발생할 위험이 커지기 때문이다. 한 중소형 보험사 관계자는 “요즘은 온라인에서 각 보험사별 자동차 보험료를 손쉽게 비교해 볼 수 있기 때문에 매년 조금이라도 저렴한 보험사로 옮겨 타는 것이 일반화돼 있다”면서 “특히 삼성이나 현대, 동부 등이 보험료까지 저렴하다면 굳이 중소형사 자동차 보험에 가입할 사람이 있을지 걱정”이라고 털어놨다.
보험업계는 삼성화재의 이번 보험료 인하가 특히 온라인 차 보험 시장에 손보업계 빅4 간 ‘전쟁’을 유발할 것으로 보고 있다. 전체 자동차 보험 시장에서는 삼성화재가 부동의 1위지만 온라인 비중으로 본다면 절대강자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말 기준으로 삼성화재의 온라인 비중은 32% 선인 것으로 전해진다. 전체 차 보험 가입자 10명 중 3명이 온라인으로 가입했다는 의미다. 반면 동부화재는 33% 수준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근소하지만 동부화재가 온라인에서는 선전하고 있는 셈이다. 반면 현대해상은 20%, KB손보는 10대 초반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형사들의 경우 상대적으로 가입자 연령대가 높아 온라인 비중이 낮은 편인데, 삼성화재가 이들을 타깃으로 삼을 경우 가입자 뺏기를 둘러싼 공방이 치열해질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삼성화재 측은 일단 공세적인 영업보다 시장 패러다임을 바꾸는 회사의 정책일 뿐이라는 입장이다. 회사 관계자는 “온라인 비중이 가장 높다는 영국도 40%를 넘지 않는 것으로 안다. 30%에서 더 이상 급속히 끌어올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최근 정체 상태에 있는 온라인 시장을 활성화하려는 차원이라고 보면 된다”고 전했다.
반면 경쟁사들은 삼성의 이런 설명을 믿지 않는 분위기다. 오히려 최근 현대해상 등 경쟁사들이 독특한 특약 등을 앞세워 시장을 잠식하는 상황을 지켜보던 삼성화재가 마침내 칼을 빼든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다른 손해보험사 관계자는 “현대해상이 어린 자녀가 있는 운전자에게 보험료를 추가 인하해주는 특약을 통해 수개월 만에 15만 건에 달하는 계약을 달성하는 등 가입자 유치경쟁이 치열했는데도 삼성화재는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며 “상황을 지켜보다 결국 보험료 대폭 인하라는 가장 큰 무기를 꺼내들고 전쟁터에 뛰어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장기적으로는 자동차 보험뿐 아니라 온라인 보험 시장 전체를 장악하려는 전략까지 포함됐다는 해석도 있다. 자동차 보험은 수익성이 높지 않기 때문에 전통적으로 ‘미끼상품’의 역할을 해왔다. 일단 자동차 보험에 가입하게 한 뒤 운전자 보험 등 다른 장기보험 상품 판매로 연결하는 것이 일반적인 판매 전략인데, 삼성화재가 이를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실제 삼성화재는 최근 온라인 장기보험 상품 라인업을 확대하고 향후 이를 더욱 확대한다는 계획을 세운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보험사의 또 다른 관계자는 “온라인에서 자동차 보험에 가입한 고객이 운전자 보험 등에 추가 가입하는 비중이 꽤 높다”면서 “삼성은 특히 브랜드 파워가 강하기 때문에 일단 차 보험에 가입시키는 데 성공한다면 다른 보험상품 판매에서도 우위를 점할 가능성이 높아 경쟁사들의 경계심이 커지는 중”이라고 전했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