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에서 소규모 기본소득 실험 시작한 ‘띄어쓰기 프로젝트’
대전에서 ‘기본소득’ 실험을 시작한 ‘띄어쓰기 프로젝트’ 팀은 ‘금수저’를 뛰어넘기 힘든 이 현실의 대안이 ‘기본소득제’에 있다고 주장한다. ‘기본소득제’는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국민 모두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일정의 생계비를 정기 지급하는 제도다. 이미 세계 여러 나라는 ‘기본소득’을 ‘경제적 불평등’의 대안으로 삼고 임상시험에 들어갔다. 핀란드는 올해부터 2000명에게 월 71만 원을 지급하는 실험에 들어갔으며 지난해 스위스에서는 모든 국민에게 매달 약 300여만 원을 지급하는 법안이 국민투표에 부쳐졌으나 부결됐다.
‘띄어쓰기 프로젝트’ 팀의 실험도 규모만 작을 뿐, 본질은 같다. 무작위로 추첨이 된 남녀노소에게 6개월간 매달 50만 원씩 지급한다. 50만 원이면 하루 3시간의 여유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밀려오는 삶에 띄어쓰기를 찍자’는 것이 팀의 신조다. 기본소득이 현 사회를 관통하는 사회적, 경제적, 신분적 불평등의 치료제가 될 것으로 기대했다.
이들은 국가나 기업의 도움 없이 오직 ‘크라우드 펀딩(창작 또는 사회공익 프로젝트를 위해 인터넷이나 소셜미디어로 익명의 다수에게 투자받는 방식)’만으로 자금을 모으고 있다. 그만큼 어려움은 크다.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맞다’고 여기는 신념을 위해 열을 올리고 있다.
“기본소득, 꿈과 삶 모두를 잡는 방법”
실험을 위해 팀을 꾸린 서한나 씨(26)는 “예술에 관심이 많았다. 그러나 예술을 하다보면 생계가 위협받을 것이라는 생각에 고민이 됐다. 그러던 중 인터넷에서 처음 알게 된 ‘기본소득’은 나에겐 상상하기 힘든 제안 이었다”며 “작은 단위지만 먼저 대전에서 해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밴드 ‘노마딕 플랜’의 드럼연주자이자 카페 파트너로 일하고 있는 신승리 씨(31)는 “‘선한 분노’라는 책에서 글쓴이인 박성미 감독은 자신이 부모님께 받는 기본소득이 있었기 때문에 독립영화 감독이 될 수 있다고 고백했다. 예술계에 몸담다 보면 생계의 한계에 도달한다”며 꿈과 삶 모두를 잡으려는 방법으로 기본소득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고백했다.
이들은 기본소득으로 어떤 세상을 꿈꾸고 있을까?
대전알바노조에서 간사를 맡고 있는 김재섭 씨(27)는 “사회운동가들은 대부분 2~3년 활동 후 다시 생계로 돌아간다. 자신의 신념이 잘못됐다고 판단해서가 아니라 생계를 유지 해야하기 때문이다. 최근 2~3년 사이 생활고로 죽은 사람이 많다. 그만큼 국가가 돌보지 못하는 사각지대가 많다. 사회활동을 하다 생계 때문에 죽은 사람도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기본소득이 있다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삶의 질은 더 높아질 것이다. 저소득층의 불안정한 미래 때문에 기본소득이 더 소중하다”며 기본소득에 대한 부푼 꿈을 털어놨다.
신승리 씨는 “사실 투표를 하고 싶어도, 또는 정치활동을 하고 싶어도 생계를 이유로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정치권리 회복을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사람들은 기본소득이 주어져도 일할 것이다. 생계가 아닌 자아실현을 위해”
‘기본소득은 불로소득’이라는 부정적 인식에 대해 이들은 노동환경이 개선 될 뿐만 아니라 사람들은 더 열심히 일하는 동기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신승리 씨는 “기본소득을 주제로 독일의 한 다큐멘터리에서 기본소득에 대한 의견을 묻는 설문조사를 했다. 조사결과, 타인이 일하지 않을 것이라는 답변이 40%에 달했다. 반면 자기는 일하지 않을 것이라는 답변은 4%에 불과했다”고 설명하며 자신감 있는 목소리로 “결국 사람들은 기본소득이 주어져도 일할 것이다.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일할 것이다. 다만 이 노동은 생계가 아닌 자아실현 만족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사실 부정적인 면, 긍정적인 면 모두 답을 모른다. 추측하는 것뿐이다. 그래서 실험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부정적 결과가 두려워 실험조차 하지 않는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힘줘 말했다.
김재섭 씨는 “흔히 기본소득은 도덕적 해이를 불러온다고 생각한다. 도덕적 해이는 이상한 말이다. 국정개입 같은 것들이 도덕적 해이다. 일하고 조금의 여유를 갖고 여가생활을 좀 하고 싶다는 것 뿐 인데 이를 도덕적 해이라고 치부하는 것은 잘못됐다. 강력한 지배를 위해 노동의 도덕화 하려는 경향이 있다. 일하지 않는 사람도 먹을 권리가 있다”며 “오히려 기본소득이 주어지면 공무원에만 목매는 젊은이들이 어느 정도 해소될 것으로 생각한다. 사실 국가적 낭비라 생각한다. 안정감을 위해 공무원에 도전하는데 기본소득으로 안정감을 주면 뒤집어질 것”이라면서 오히려 순기능이 더 클 것으로 예상했다.
기본소득 실험을 접한 사람들의 반응은 상당히 호의적이다.
김재섭 씨는 “스스로 작은 단위에서 실험을 진행하니 주변에서 흥미롭게 보고 있다.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기대하고 있다”며 주변 반응을 전했다.
신승리 씨도 “처음 접하는 친구들은 기본소득을 의심한다. 이후 차근히 설명하면 동참한다”고 설명했다.
“기본소득이 실질적 정책 되도록”
이들은 한 달 3~4회 은행동, 둔산동, 궁동 등 대전의 번화가를 중심으로, 기본소득을 알리고 프로젝트 참여를 독려하는 홍보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기본소득과 관련된 초청 강연과 커뮤니티 파티도 열고 있다.
프로젝트 참여 방법은 간단하다. 카카오톡에서 ‘대전 기본소득띄어쓰기프로젝트’를 검색해 친구추가 후 지원서와 6470원 이상의 후원금을 내면 추첨대상자가 된다. 젊은이들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생각해낸 방법이다.
‘띄어쓰기 프로젝트’ 팀은 이 실험에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이상적 삶을 투영하고 있다.
팀의 현재 목표는 이 실험을 통해 기본소득이 작은 부분이라도 실질적인 정책에 반영되는 것이다. 서한나 팀장은 “현재 대전시가 구직자를 위한 청년수당을 고안 중이라고 한다. 이 실험을 통해 ‘기본소득’이 실질적인 정책이 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당차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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