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상님… 왜 또 그런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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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0월 19일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자택에서 정동영 당시 신당 후보의 예방을 받았다. 국회사진기자단 | ||
정치권은 DJ의 이러한 움직임을 애써 평가절하하고 있지만 호남권에서 여전히 적잖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그의 행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분위기다. 신당과 민주당이 4월 총선을 앞두고 벌써부터 김심(DJ 의중) 논란에 불을 지피고 있고 한나라당이 DJ의 훈수정치에 제동을 걸고 나선 것도 이러한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 대선 참패에 따른 후유증에 시달리면서도 또다시 총선에 개입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DJ의 끊임없는 막후 정치 속으로 들어가 봤다.
DJ는 이번 대선에서 범여권 못지않게 큰 상처를 입었다. DJ는 범여권 대통합과 후보단일화를 줄기차게 주창하는 등 막후 사령탑 역할을 담당했다. 대선 막판에는 권노갑 전 고문과 박지원 실장 등 동교동계 핵심 측근들을 총동원해 대통합민주신당 후보인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 지원에 나섰다. 장남인 김홍일 전 의원을 비롯한 민주당 핵심 인사들이 대거 탈당해 정 전 장관 지지를 선언한 배경에도 DJ의 입김이 작용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하지만 DJ의 막후 역할에도 불구하고 범여권은 끝내 단일후보를 내지 못했고 분열된 채 대선을 치러야 했다. 범여권 분열 속에 치러진 대선 결과는 어느 정도 예상됐지만 이명박 당선자와 정 전 장관의 득표율이 더블 스코어에 달했다는 사실은 충격 그 자체였다. 범여권이 대선 참패에 따른 책임론 공방전이 가열되고 있는 것과 맞물려 ‘DJ 책임론’이 불거지고 있는 것도 이러한 충격파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특히 1%에도 못 미치는 참담한 득표율(0.7%)로 고사 위기에 처한 민주당의 분노는 극에 달하고 있다. 민주당 황태연 중도개혁국가전략연구소장은 24일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당 쇄신위 회의에서 “범여권이 80여 석의 중도정당이 돼서 후보를 뽑았다면 대선에서 이길 수 있었고 만약 지더라도 총선에서 견제세력이 될 수 있었다. 모든 책임은 DJ에게 있다”며 ‘DJ 책임론’을 공개적으로 거론했다. 황 소장은 또 신당과 민주당의 당 대 당 통합 협상이 결렬된 배경을 설명하면서 “4자 지도부가 합의를 했는데 DJ가 ‘오마이뉴스’를 불러서 ‘통합 없는 후보 단일화를 하라’고 했다”며 4자 합의가 결렬된 것도 DJ의 입김이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DJ정부 시절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을 지냈고 97년 대선 때는 ‘DJP 연대’의 이론적 틀을 제공한 DJ의 정책 브레인 출신인 황 소장이 DJ에게 직격탄을 날렸다는 사실에 정치권은 주목하고 있다.
손봉숙 의원도 27일 한 라디오 프로에 출연해 “어떤 형태로든지 DJ가 더 이상 국내 정치에 왈가왈부하는 것은 정치 발전 측면에서 별로 도움이 안 된다”며 DJ의 처신을 비판했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DJ 책임론’에서 더 나아가 ‘탈 DJ’로 4월 총선을 정면돌파해야 한다는 논리를 펼치고 있다. 김민석 당 쇄신특위 위원장은 “호남은 내년 총선에서 ‘포스트 DJ’ ‘포스트 노무현’ 색채를 띤 인물을 선택할 것”이라며 “이에 걸맞은 공천 혁명을 일으킬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신당 일각에서도 DJ 책임론이 불거지고 있다. 대선 과정에서 DJ가 친정이나 다름없는 민주당을 버리고 정 전 장관을 적극 지지한 공로는 인정하지만 지역주의에 의존한 채 단순한 ‘반 한나라당’ 구도로 승부수를 던진 것이 참패의 한 요인이었다는 진단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이처럼 범여권 일각에서 DJ의 훈수정치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고 있는 가운데 4월 총선을 눈앞에 두고 호남권에서 여전히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DJ를 마냥 비판만 할 수는 없다는 현실론도 힘을 얻고 있다. 대선보다 지역주의가 강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는 총선에서 호남 대부인 DJ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호남권 맹주를 자임하고 있는 신당과 민주당이 벌써부터 뜨거운 ‘김심’ 논쟁을 벌이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신당은 DJ가 대선 때 정 전 장관을 지원한 만큼 이번 총선에서도 DJ가 신당 후보들을 지원할 것이란 기대감을 감추지 않고 있다. 오충일 대표와 정대철 상임고문이 대선 패배 이후 DJ를 찾아가 향후 당 진로 등에 대해 조언을 구했던 것도 이러한 기대감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DJ는 신당 지도부에게 “총선에서는 국민에게 ‘우리가 잘못했지만 한나라당을 견제할 수 있는 세력을 달라’고 호소해야 표가 나올 수 있다”고 주문해 또다시 훈수정치 논란을 야기하고 있다.
‘DJ 책임론’과 ‘탈 DJ’를 주창하고 있는 민주당도 내심 DJ와 등을 지면 총선에서도 참패를 당할 수 있다는 우려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대선과 달리 총선에서는 ‘김심’이 개입할 명분이 적다는 자체 분석을 내놓고 있지만 호남권에서 여전히 적잖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DJ가 직간접적으로 신당을 지원할 경우 또다시 낭패를 면치 못할 것이란 관측에도 힘이 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DJ가 대선에 이어 총선정국에서 또다시 훈수정치를 이어가고 있는 데 대해 우려감과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있다. 강성만 부대변인은 DJ가 지난 24일 신당 정대철 상임고문을 만나 총선 훈수를 한 것과 관련해 27일 논평을 내고 “대선이 끝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부터 총선 훈수인가”라고 비꼬았다. 강 부대변인은 “이번 대선에서 DJ는 노무현 대통령보다도 더 적극적으로 신당의 선거운동원 노릇을 했고 이에 따라 지금 민주당에선 대선 패배의 원인이 DJ 탓이란 책임론이 나오고 있다”며 “DJ는 더 이상 훈수정치하며 한국 정치의 물을 흐리려 하지 말고 모든 것을 국민의 뜻에 따른다는 마음으로 국민에게 맡겨 주시기 바란다”고 주장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