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으로 얼룩진 ‘가깝고도 먼 나라’
태국 아유타야의 유적 왓 프라 마하탓. 보리수 뿌리에 휘감긴 불두로 잘 알려진 곳이다. 사진제공=다큐멘터리 사진가 류기남
그후 세력을 재정비하여 버마를 몰아냈지만 버마는 늘 두려움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수도를 남쪽 방콕으로 이전하였습니다. 아유타야는 폐허 상태로 방치된 채 슬픔을 간직한 유적지로 남게 되었습니다. 역사학자들은 이 시기에 태국의 ‘여장남아’ 풍습이 생겨났다고 합니다. 남자아이가 인질로 잡혀가는 걸 두려워해 생긴 풍습이라는 겁니다. 그럼에도 아유타야는 복원을 거듭하여 화려한 유적지로 거듭났습니다. 강에 둘러싸여 마치 섬처럼 이뤄진 올드타운 안에는 400여 개의 주요 유적이 되살아났습니다. 왓 프라 씨싼펫, 왓 랏차부라나 등.
왓 랏차부라나 사원 중앙에 우뚝 솟은 쁘랑은 크메르 제국의 앙코르 톰을 정벌하고 돌아온 기념으로 세워졌습니다. 내부에 비밀창고를 만들어 빼앗은 보물들을 보관해 둔 곳입니다. 이 보물들은 1957년 도굴꾼에 의해 우연히 발견되면서 세상을 놀라게 했습니다. 태국인들에겐 옛 버마와의 뼈아픈 역사를 기억케 하는 아유타야입니다. 지금도 미얀마인 난민문제, 한 외국인 커플의 살인사건을 놓고 두 나라가 벌인 법정싸움 속에는 두 나라 국민들의 정서가 스며 있는 듯 느껴집니다.
깐짜나부리는 영화 ‘콰이강의 다리’로 유명해졌다. 사진은 2차 세계대전 당시 희생이 많았던 ‘죽음의 철도’ 난공사 지역이다.
인도를 점령하기 위해 계획된 이 공사에서 가장 많은 인명이 희생된 장소가 콰이강의 다리와 헬 파이어 패스(Hell Fire Pass)입니다. 콰이강의 다리 철도 건설을 저지하기 위해 중국도 특수 원정군을 파견했고 많은 군인들이 사망했다고 합니다. 강 모서리에 중국군 위령탑이 세워져 있습니다. 가장 난코스였던 꼰유절벽을 부르는 헬 파이어 패스는 마치 ‘지옥불처럼’ 켜진 횃불 아래에서 밤낮없이 강행했기에 수많은 민간인과 전쟁포로가 죽어나간 장소입니다. 1944년 연합군 최후의 공습으로 콰이강의 철교는 완전히 파괴되었습니다. 현재 철교는 최초 건설 당시의 아치형으로 복구된 것입니다.
죽음의 철도공사에서 가장 많이 희생된 민간인은 미얀마인들입니다. 일본군에 의해 태국으로 끌려가 수만 명이 사망했습니다. 그들은 현장에서 죽거나 살아 남았어도 돌아오지 못한 채 콰이강 인근에 비참하게 살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철로를 따라 아직도 미얀마 몬족의 후예들이 살고 있습니다. 깐짜나부리는 미얀마 국민들에겐 깊은 상처를 안겨준 곳입니다. 태국은 일본과 동맹을 유지했기에 피해가 덜했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일본의 지배를 받던 미얀마에 돌려졌습니다. 두 나라 간 역사적인 슬픔의 장소, 아유타야와 깐짜나부리. 두 나라 국민들에겐 썩 가보고 싶지 않은 장소 중의 하나로 남았습니다.
정선교 Mecc 상임고문
필자 프로필 중앙대 문예창작과 졸업, 일요신문, 경향신문 근무, 현 국제언론인클럽 미얀마지회장, 현 미얀마 난민과 빈민아동 지원단체 Mecc 상임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