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량미달 납품으로 안전문제 심각’ 독점폐해 비판론
인천도시철도 2호선(인천2호선)의 안전문제와 사고는 새삼 철도차량제작사로서 현대로템의 독점적 지위 논란에 불을 지핀다. 현대정공, 대우중공업, 한진중공업 등의 경쟁체제였던 국내 철도차량제작은 1999년 정부 주도로 한국철도차량으로 통합됐고 이후 현대로템으로 바뀌어 2002년 현대차그룹에 편입됐다. 현대로템은 현재 국내 철도차량의 90%를 제작한다. 사실상 독점적 지위다. 인천2호선, 대구도시철도3호선, KTX-산천 등이 현대로템이 맡아 진행한 대표적 사업이다.
현대로템이 철도차량제작사로서 독점적 지위로 배짱경영을 한다는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최준필 기자
감사원은 2013년 인천시 도시철도본부가 현대로템 컨소시엄과 맺은 ‘인천2호선 차량운행시스템 계약’에 대해 ‘특혜’라고 지적했다. 인천시 도시철도본부가 정당한 사업 추정 가격보다 606억 원 많은 금액을 현대로템 컨소시엄과 수의계약함으로써 예산이 낭비됐다는 이유다.
감사원에 따르면 인천2호선 사업비 중 차량 가격은 1987억 원 상당으로 필요한 차량 수 84량을 기준으로 산정됐다. 하지만 인천시 도시철도본부는 84량에 해당하는 차량구매비를 산출하고서도 필요한 차량 수는 명시하지 않은 채, 목표속도와 이에 따른 소요 차량 수를 오히려 현대로템이 제안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2009년 현대로템 컨소시엄은 인천시 도시철도건설본부와 인천2호선 전동차 74량을 일주시간 99분에 맞춰 납품하기로 계약했다. 일주시간은 철도가 기점에서 종점까지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이다.
그러나 지난 7월 30일 인천2호선 개통 후 운행 결과 현대로템이 납품한 차량이 일주시간 99분을 맞출 수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현대로템은 2011년 3월 직접 철도운행 시뮬레이션을 수행하고 초기 목표 속도가 달성되지 않아 차량이 추가로 필요하다는 것을 확인하고서도 이 내용을 숨긴 것으로 밝혀졌다.
인천시 도시철도본부는 뒤늦게 현대로템 측에 추가차량을 납품할 것을 지시했지만, 현대로템은 지난해 9월 이를 거부했다. 인천시 도시철도본부 관계자는 “현대로템이 지난해 11월부터 대한상사 중재원에 중재신청 작업을 진행하는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현대로템 관계자는 “현재로선 인천시 도시철도건설본부와 조율 중이라 어떤 말도 하기 힘들다”고 답했다.
적은 열차 수로 무리하게 운행하다 보니 인천2호선의 안전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이한구 인천시의원에 따르면 인천2호선 열차의 브레이크 패드 592세트 가운데 225세트가 운행 3개월 만에 교체됐다. 다른 열차와 비교하면 3~4배 부품 손상이 많은 것이다.
관제소와 열차 간 통신이 두절되는 ‘타임아웃’ 현상도 발생하고 있다. 개통 이후 타임아웃은 700~800번 발생했으며 많은 날은 하루에 10번도 발생했다. 이 시의원은 “부족한 차량 수로 일주시간을 맞추기 위해 무리하게 운행하다보니 승객의 안전이 심각한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지적했다.
현대로템은 국토교통부가 추진한 2층 KTX 연구개발 사업에서 중간 목표 달성이 미흡해 연구비 환수 조치를 받았다. 최준필 기자
일부에서는 현대로템이 독점적 지위를 가진 탓에 배짱경영을 한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2층 KTX’가 대표적 사례다. 정부는 고속철도 이용 승객이 증가하고 밀집 이용 구간에 대비하기 위해 수송 인원을 1.5배 이상 증대시킬 수 있는 2층 고속열차(KTX) 개발 사업을 진행했다.
국토교통과학기술진흥원은 2013~2017년 290억 원을 들여 2층 KTX를 개발하기로 했지만, 연구개발과제의 2차연도 중간평가 결과 평가점수(49점)가 기준에 미달해 연구과제를 중단했다. 주관 연구기관인 현대로템이 연구 과정에서 단계별로 정해져 있는 성과목표를 미달성해 평가에서 낙제점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에 국토교통부는 현대로템 측에 연구비 46억 원을 환수하고, 3년간 국가 연구개발 사업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조치했다. 현대로템은 조치에 불복해 국토교통부를 상대로 연구비 환수와 국가 주도 연구개발사업 참여 제한을 무효화하는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국토교통부 산하 국토교통과학기술진흥원(진흥원)에 따르면 2013년 2층 KTX 연구개발 과제를 시작할 당시 한국철도기술연구원이 주도하에 국가의 연구비가 지원됐다. 하지만 현대로템 측이 연구개발에 임하는 태도가 불성실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진흥원 관계자는 “국가주도의 연구개발에서 평가기준 미달로 중도 탈락하는 기업은 1%도 안 될 만큼 드문 경우”라고 설명했다. 철도업계 한 관계자는 “국가주도 사업은 떨어지기가 더 어려울 만큼 평가 기준이 높지 않다”고 덧붙였다. 현대로템 관계자는 “우리가 연구에 불성실했던 것이 아니다”며 “연구개발 주도기관의 연구과제에 대한 방향성이 명확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아이로니컬하게도 현대로템은 지난해 11월 직접 2층 KTX 개발 사업 주체로 나서 코레일·한국철도기술연구원과 양해각서(MOU)를 맺고 2층 KTX 연구개발을 하고 있다. 정부가 주도할 때는 게을리하던 현대로템이 같은 과제로 직접 연구개발에 나선 것이다. 현대로템 관계자는 “코레일이 2층 KTX 상용화에 긍정적이라고 보고 있어 연구개발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두고 애초에 민간에서 개발할 수 있는 연구 분야에 국가 예산이 투입된 것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국가가 주도하고 연구비를 지원하는 연구개발 사업은 통상 민간 및 사기업에서 수행하기 어려운 건을 위주로 진행된다. 정해진 예산 안에서 연구비가 지원되기 때문에 사기업이 자체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분야까지 연구비를 지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철도산업은 기간산업으로 사회간접자본(SOC) 성격이 강하고 그 특성상 대규모 자본이 필요해 대부분 수요자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다. 철도와 고속철의 경우 국제경쟁입찰 대상에 해당되지만 수요처인 국내 지자체별로 요구 조건이 제각각이고 가격 요건을 만족하기 힘든 경우가 많아 해외 입찰자가 많지는 않은 상황이다. 이 때문에 사실상 현대로템이 대부분 국내 철도차량제작을 맡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전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관계자는 “철도차량은 해외의 고품질 차량을 들여올 수 있지만 운송비가 상당하다”며 “여전히 국내산을 선호할 수밖에 없는 여건”이라고 설명했다.
현대로템이 연구개발에 더 집중 투자하고 품질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무엇보다 철도는 국민 안전과 직결되기 때문에 책임감과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대로템의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는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최근 3년간(2013~2015년) 현대로템의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는 0.8%, 1.8%, 0.7%에 불과하다. 2011년만 해도 연구개발 투자비용이 556억 원으로 매출액의 2.1% 수준이었으나 이후 감소한 것이다.
전현희 의원실 관계자는 “매출액 대비 2%가 채 되지 않는 현대로템의 연구개발비는 해외 철도업체와 비교해 턱없이 낮은 수준”이라고 말했다. 현대로템 관계자는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독점적 지위 때문인 것으로 비춰져 안타깝다”며 “철도시장은 거의 국가별로 독점기업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영업이익이 2%가 채 되지 않아 연구개발 투자에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금재은 기자 silo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