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부, ‘친문’ 김용익 원장 사표 반려…엄벌하겠다더니 솜방망이로 ‘톡’
민주연구원이 작성한 개헌 저지 문건이 친문 진영에 유리한 내용이 담겨 있어 논란이 됐다. 현재 민주연구원장은 친문으로 분류되는 김용익 전 의원이 맡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2월 26일 당시 김용익 민주당 의원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여당이 제시한 테러방지법안을 보이며 저지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모습. 연합뉴스
당초 추미애 민주당 대표는 관련자들을 엄벌하겠다고 밝혔지만 민주연구원에 대해 기관경고를 하는 솜방망이 처분을 내렸다. 추 대표는 문건 파동 책임을 지고 물러날 뜻을 밝혔던 김 원장 사표마저 반려했다. 문건 파동에 대한 당내 반발은 시간이 지날수록 사그라들기는커녕 더욱 거세지는 모양새다.
문건 파동은 민주당 대선경선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민주당은 지난 1월 11일 대선경선 규칙 마련을 위한 논의에 착수했으나 박원순 서울시장 측은 “당 지도부의 중립성에 대해 확신할 수 없다”며 불참했다. 박 시장 측 관계자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연구원이 경선규칙 마련을 위한 실무도 담당하는데, 최근 당 지도부는 (별다른 징계 없이) 문건 파동을 흐지부지 넘겼다”면서 당과 연구원에 대한 강한 불신감을 드러냈다.
연구원에 대한 솜방망이 처분을 비판하는 성명서 발표에 참여했던 한 의원은 “문건 파동은 대충 넘어갈 수 없는 문제다. 당장 대선 경선이 코앞인데 이런 당 지도부와 연구원에 공정한 대선경선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라고 지적했다. 성명서를 발표한 의원들은 진상조사 결과 공개와 책임자 문책, 재발방지 대책 수립 등을 요구하고 있다.
민주당은 그동안 연구원이 특정 계파에 휘둘리지 않고 독립성과 중립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었다. 연구위원들을 공채로 뽑고 원장의 임기를 확실하게 보장하도록 한 것도 그 일환이다. 연구원이 특정 계파에 휘둘리기 시작한다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문계로 분류되는 김부겸 의원은 “당의 공식기구인 연구원이 벌써 대선 후보가 확정된 것처럼 편향된 전략보고서를 작성한 것도 문제지만 개헌논의를 정략적 차원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연구원이 특정 계파에 장악되면 국가적 정책이나 전략들을 큰 틀에서 바라보지 않고 특정 계파의 유불리에 따라 정략적으로 판단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민주연구원. 박은숙 기자
이 의원은 “연구원 기능은 크게 ‘전략’ 발굴과 ‘정책’ 발굴이 있다. 개헌 저지 문건이 대표적인 전략 문건에 속한다. 내가 원장으로 있을 때는 정책보고서의 경우는 다양한 해석을 한다. 다만 ‘이것은 연구자의 개인 의견이지 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니다’라는 말을 분명히 넣는다. 반면 당의 전략은 다양성이 있어서는 안 되고 일치되어야 하니까 보고서를 내기 전에 당 대표에게 별도 보고를 한다“면서 ”당 대표는 연구원의 당연직 이사장이다. 당 대표가 이걸 수용하면 그 때 당의 전략이 되는 것이고 수용하지 않으면 당의 전략이 안 되는 것이다. 보고서를 배포하려면 당 대표에게 보고하고 허락을 받아야 했다. (현재 연구원의 시스템이 변하지 않았다면) 추 대표가 보고서 내용에 동의하고 배포하라고 지시를 했으니까 배포한 것”이라고 했다. 추 대표 역시 이번 문건 파동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번 문건을 작성한 문 아무개 연구위원에 대해서는 “연구위원들 중에서도 특정 계파 성향을 가진 사람이 있는 것은 맞지만 문 연구위원은 친노 성향이 아니고 정 반대였다. 문 연구위원이 기획실장이었는데 김용익 원장이 오면서 평 연구위원으로 물러났고 그 자리에 친노 성향으로 분류되는 한 아무개 연구위원이 발탁된 것으로 알고 있다. 문 연구위원이 문건 작성을 강하게 밀어붙여 김용익 원장이 할 수 없이 허락했다는 해명은 믿기 어려웠다”면서 “제가 알기로는 문 연구위원이 김 원장과 진성준 부원장에게 보고서 내용을 수차례 보고했고 세 사람이 상의해 작성한 것이다. 문 연구위원에게만 책임을 물어서는 안 된다. (연구위원이 실수를 한 것이라고 해도) 가장 큰 책임은 무조건 최종 결정권자인 김 원장에게 있다”고 꼬집었다.
김 원장은 이번 사건으로 아무런 징계도 받지 않았지만 문 연구위원은 연구원 인사위원회에 회부됐다. 민주당 측은 “문 연구위원에게 책임을 떠넘기려는 것이 아니라 연구원은 인사가 독립적이라 자체적으로 인사위원회를 연다. 당에서 개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당내 일각에선 이번 문건 파동도 연구원 내 계파갈등이 원인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그동안 독립성과 중립성을 지켜왔던 연구원이 김 원장 취임 후 특정 계파에 치우친 행보를 보이자 이에 불만을 가진 연구원 내 인사가 문건을 언론에 유출한 것 아니겠냐는 얘기다.
이 같은 논란들에 대해 연구원 측은 “문건의 일부 문장을 문제 삼아 특정 계파에 유리한 문건을 작성했다고 하는데 특정 계파에 유리한 문건을 작성한 적이 없다는 것이 연구원의 공식 입장이다. 비문 대선주자들에게도 문건을 전달했는데 특정 계파에 유리한 문건이라면 왜 전달했겠나. 그 외에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